세조5년(1459) '坡州'지명 처음 등장, 올 해로 558년 서울시와 과천시를 합한 면적, 경기도
31시군중 6번째 삼국시대 치열한 전투의 현장, 고려때부터 수도권 위치 1996년 파주군이 파주시로 승격, 현재
4읍5면7동1출장소 파주가 급변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그 변화의 양상을 가시적인 것으로만 판단
한다. 그러나 파주의 변화는 분명 보여 지는 것만이 아니다.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고 도로가 새로 뚫리고 신도시가 조성되는 것처럼
외형적인 변화도 있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갖가지 통계수치의 변화, 시민 감성의 변화, 도시 품격의 변화, 지역 풍속의 변화 등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는 변화들이 무수하다.
▶ 서울시 전체 면적보다 넓은 땅, 파주 파주 땅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약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하며 동쪽 및 북동쪽으로는 양주시와 연천군, 서쪽은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 남쪽은 고양시, 북서쪽은 군사분계선과 접하고
있다. 수리적으로는 동경 127°01″? 126°41″, 북위 37°42″? 38°07″이며 동서길이가 30km, 남북길이가 36km의
범역을 포함한다. 총 면적은 677.77㎢로 서울시와 과천시를 합한 면적과 비슷하다. 경기도 31개 시 군 중에서는 6번째로 면적이 넓으며
경기도 전체면적의 6.3%를 차지한다. ▶하늘에서 본 파주 땅은 동고서저형(東高西低形) 파주 땅을 하늘에서 보면 동쪽으로 광주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솟아
있고 북쪽 경계너머에는 마식령산맥이 동서로 달리고 있는 동고서저(東高西低) 형태다. 따라서 동쪽 지역인 적성의 감악산, 파평의 파평산, 법원의
비학산, 광탄의 고령산 등 높은 산들이 분포하며 서쪽인 교하, 금촌, 탄현, 조리 지역은 낮은 구릉 형태를 띠고 있다. 서울의 한복판을 지나
서남쪽에서 흘러드는 한강과 북한의 마식령에서 발원한 임진강이 적성, 파평, 문산, 탄현 지역을 거쳐 교하에서 한강과 합수 서해로 흘러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파주는 옛 고대국가 시기부터 지리적인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간의 각축장이 되었다. 고려ㆍ조선시대를 통하여
송도(松都)의 동교(東郊), 한양(漢陽)의 서교(西郊)로서 교통의 요지 및 수도 방비의 군사요충지로 자리 잡아 왔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에는
왕기가 쇠한 한양을 버리고 파주 교하(交河)로 수도를 옮기자는 '교하천도론(交河遷都論)'이 제기되기도 하였던 길지이다. ▶ 삼국시대 치열한 전투의 현장 삼국시대에 최초로 파주를 차지한 것은 백제였다. 그러나 고구려와의 계속된 영토싸움으로
475년에는 파주 땅 전체가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그 뒤 신라 진흥왕 때 고구려를 몰아내고 신라가 차지했으며 삼국통일 과정에서 파주는
고구려와 신라가 서로 싸우는 각축장이 되었다. 실제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기록에는 적성의 칠중성 전투가 가장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 고려 때부터 현재까지 파주는 수도권에 위치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ㆍ부ㆍ군ㆍ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 때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畿縣)에
속하게 된다. 1018년(현종 9)에 들어 파주지역은 경기(京畿)에 속하는데 본래 경(京)은 천자(天子)가 도읍한 경사(京師)를 뜻하고
기(畿)는 천자의 거주지인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이내의 땅을 의미했다. 즉 오늘날로 치면 수도권을 의미한다. ▶ 1459년 세조5년에 파주(坡州)라는 지명 처음 등장 조선시대 파주는 모두 5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
파평, 파주, 적성, 장단지역이 그것인데 1398년에 파평현과 서원현(파주지역)이 합해 원평군이 되었다. 1414년에는 중앙관제와 지방군현제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교하현이 원평군에 소속되고 장단현은 임단현이 되었다. 이듬해 1415년에 인구 1,000호를 넘어선 원평군이
원평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9년(세조 5) 원평도호부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파평윤씨)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목(牧)으로 승격되고 파주로
고치게 되었다. 바로 이때 파주(坡州)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 일제강점기인 1912년 당시
파주의 행정구역은 크게 4개 군(郡)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군, 파주군, 장단군, 적성군인데 1914년에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 졌다. 그 결과 적성군이 연천군에 흡수되었고 교하군 전역이 파주군에 폐합되었으며 또한 양주군, 고양군, 적성군의 일부가
파주군에 편입되어 주내, 월롱, 천현, 광탄, 조리, 임진, 파평, 와석, 청석, 탄현, 아동 등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45년 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던 적성면과 남면이 파주군에 편입 되었고 이듬해 남면이 양주군에 편입
되었다. 1963년에는 장단군 군내면에 속했던 백연리, 정자리, 조산리, 읍내리, 송산리, 공덕리, 방축리, 방목리가 임진면에 편입 되었다.
▶ 1996년 파주군이 파주시로 승격 1972년에는 장단군의 장단면, 군내면,
진서면, 진동면이 파주군으로 편입 되었다. 1973년에는 아동면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되어 2읍 9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80년에 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다시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 하였다.
1996년에는 파주군이 도농복합의 파주시로 승격하였다. 2002년 조리면과 교하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2011년 교하읍이
4개동(교하동·운정1동·운정2동·운정3동)으로 분동되고 금촌1·2동이 금촌1동·금촌2동·금촌3동으로 분동되어 현재 4읍 5면 7동 1출장소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 -파주이야기가게
대표 -e-mail:yhlee62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