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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등명] 불교용어사유정리모음
2565. 5. 28
제시어: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
1. 법전 불자님
불교용어정리
2565. 5.28.
제시어 :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
삼보에게 귀의하는 것은 무명의 사슬을 끊고 지혜의 길로 다가서는 과정입니다.
부처님께 귀의 한다는 것은 진리를 온몸으로 구현한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내가 안주할 수 있는 섬으로 여기고
귀의하여 흔들림 없는 마음의 확신과 안정을 얻는 것 입니다.
가르침에 귀의한다는 것은 진리 그 자체인 법에 귀의하는 것 입니다.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과 법에 따라 수행하고
가르치는 스님들을 믿고 따르는 것 입니다.
또한 좋은 벗과 복 밭인 거룩한 스승에게 귀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 한다는 것은
불·법·승 삼보를 믿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전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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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강 선다향불자님
불교 용어 사유
2565.5.28
3보에 귀의하는 의미?
사회생활이든 인생살이든 삶이라는 것을 살아가다보면 뜻하지 않게 나보다 약한 사람도 만나게 되고 강한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학습적으로나 사유적으로 약자에게 관대해야하고 강자에게는 옳고 그름을 따져 행동해야 하다고 배우지만 실상 강자를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움츠려드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힘없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중생의 기본 생리이기에 잘됐다, 못됐다를 논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이와 같이 삼세를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강자 같은 부처님과 어린 아이 같이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 근시적으로 살아가는 중생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갭(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 또한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깊지 못하고 풍부하지 못해 어디에 내놓을 만한 실력이 못 되는 수행경력이지만 가끔 이 3차원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뭄에 콩 나듯 경험하게 될 때, 부처님에 대한 환희심이 용 솟음 침을 느낍니다. 처음 불교 공부를 시작할 때 이거 맞아? 내가 가는 이길이 진짜 맞아? 괜히 시간 낭비하는거 아냐? 라는 기우 속에서 시작된 공부가 아함이나 대승이나 티벳불교나 중관 유식 그 어느것 하나에 걸리지 않고 홀로서기 교재들 속에 다 들어 있고, 맞아 들어갈 때 그 동안 그 어디에서도 속시원하게 답을 구하지 못했던 것들이 퍼즐조각이 맞춰 들어가면서 형태를 잡아 갈 때 그때 부처님에 대한 의심은 점점 사라지고 강한 믿음과 환희심만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안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동안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던 견혹과 사혹이 조금씩 조금씩 말랑말랑해져 풀릴 여지와 기미를 마련하는 바탕이 되는것이지요.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란 무턱대고 맹신하거나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란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되는 것이고, 중생과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사유하여보고 그 분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를 해 나가야하며, 그대로 공부해 나아갔을 때 어떻게 달라지고 과위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달라지며, 사향사과라고하는 승가(공동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들어갈수 있으며 들어갈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고 직접 교학과 실수행을 통해 꿰어 맞춰질 때 깊은 의문은 해소가 되고 차츰차츰 삶에서의 변화를 감지할 때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안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귀의의 의미인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회근님의 금강경 중 제9품 일상무상분 일부를 발췌해 올리겠습니다.
혹(惑)을 해결하여 제거하다.
삼계의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일러 팔십팔결사(八十八結使)라 합니다. 이것은 욕계 속에 가장 많은데, 마치 여든여덟 개의 매듭이 한 덩이로 묶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을 통해 이 중 한두 개만 풀어 낼 수 있더라도 이미 훌륭합니다.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네댓 개를 풀어 낼 수 있다면 머리카락까지도 빛날 겁니다! 진정한 수행은 결사를 풀어 내어 자신의 심리적 행위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심리적 행위가 변화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지혜를 개발 할 수 있습니다. 불법의 수행은 대승, 소승을 막론하고 모두 다섯 개 과정, 즉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 해탈지견(解脫知見) 입니다.
왜 지계(持戒)가 필요할까요? 자기 마음속의 결사가 다시 바깥 세계와 연계되어 매듭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외부의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며, 스스로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지만 지계를 위해서는 정력(定力)이 필요합니다. 정(定)을 닦아야 합니다. 타좌는 정을 닦는 일종의 방법일 뿐입니다! 진정한 수정(修定)은 어느 때든 정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 한 점에 응결되어 지선(至善)에 머무릅니다. 선(善)의 한 점에 고정되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팔십팔결사는 아직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혜가 일어나기 시작할 때에야 결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몇 개의 결사가 풀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사혹(思惑)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습니다.
지견(知見)은 또 다릅니다. 견(見)이란 보는 것인데, 지혜(智慧)를 보는 것입니다. 성공연기(性空緣起)를 바꾸어 말하면 연기성공(緣起性空)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온갖 종파, 중관(中觀)을 닦아야만 옳다거나 혹은 무엇을 닦아야만 옳다거나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모두 오견(五見) 속의 견취견(見取見)입니다. 오직 이것이라야만 옳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미 그것에 속박 된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체로부터 해탈해야만 비로소 불법을 배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경 강의(남회근 지음) 제9품 일상무상분 중에서
금강 선다향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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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혜호 불자님
불교용어정리
2565. 5. 28
* 3보에 귀의하는 의미?
신라의 원효(元曉)에 의해 독창적으로 주창·유포되었다. 귀는 ‘경외하며 따라간다.’, ‘방향을 그쪽으로 돌린다.’는 의미이고, 명은 ‘목숨의 근원’을 뜻한다. 이 명은 인간의 감각적·심리적 기능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원효는 가장 귀중한 목숨을 들어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야말로 신심(信心)의 극(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생의 감각적·심리적 기관은 일심(一心)에서 생겼지만 이들 감관기관이 많은 번뇌를 일으키기에 이르렀으므로, 목숨을 들어서 감관기관들을 거두어 잡아 본래의 원천인 일심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한 수단이 귀명이라고 보았다. 원효는 돌아가야 할 대상인 일심을 삼보(三寶)라고 정의하였다.
이 일심의 삼보 중 첫째, 불보(佛寶)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마음, 두루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로운 마음에 의지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몸을 갖추고 대자비로써 이 세상을 구하는 자라고 보았다.
둘째, 법보(法寶)는 부처의 몸 그 자체인 동시에 그 몸의 여러 가지 속성·미덕·양상 등이라고 보았으며, 그 법의 본성을 바다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원효는 바다가 매우 깊고 넓고 크며, 무궁무진한 보배를 감추고 있고 세상의 모든 영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일심 속의 그와 같은 작용이 곧 법보라고 보았다.
셋째, 승보(僧寶)는 무량한 공덕을 감추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행하는 구도자라고 보았다. 특히, 원효는 승을 대승의 보살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해석하였으며, 그들이 일행(一行)을 닦으면 만 가지 좋은 일들이 다 모이게 되고, 그 하나하나의 일이 모두 법계(法界)와 평등해진다고 하였다. 즉, 그들의 행위는 모두가 한결같이 참된 수행〔如實修行〕이며 모든 중생과 하나가 되는 수행〔徧修行〕이라고 하였다.
이 삼보관은 선종(禪宗)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서, 외형적인 형태보다는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삼보라는 사상으로 확대·발전되었다.
* 인터넷발취
--혜호합장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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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묘정불자님
불교용어 정리
삼보에 귀의 하는 의미
2565,5,28
삼보 (三寶)
불교를 달리 불·법·승 삼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삼보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불교도는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시작되며 최후까지 삼보에 귀의해야만 한다. 따라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에게는 불가결한 요건이며,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막론하고 삼보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삼보의 성립은 석가모니불의 성도(成道)로부터 시작된다. 석가는 35세가 되던 해 12월 8일의 이른 새벽에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정(絶對寂靜)인 열반의 세계를 실현한 것이며,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자, 즉 불(佛)이 되었다는 자기혁신의 일대 전환으로써 불보가 성립되었다.
성도한 뒤 석가모니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뒤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지난날 같이 고행(苦行)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를 찾아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갔다. 이때 석가모니는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배재하는 중도(中道)와 사제(四諦)·팔정도(八定道)·십이연기(十二緣起) 등의 법(法)을 설하였다. 이것이 법보이다.
이 설법을 듣고 최초의 제자인 5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승보를 이룬다.
삼보는 현전삼보(現前三寶)·주지삼보(住持三寶)·일체삼보(一切三寶)의 세 종류로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들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현전삼보는 별상삼보(別相三寶)라고도 하며, 부처의 생존 당시의 삼보를 뜻한다. 석가모니 자신이 불보이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이 법보이며, 부처의 제자로서의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의 출가교단(出家敎團)이 승보이다.
주지삼보는 불멸(佛滅) 후의 각 시대를 통해 그 시대의 불교에서 삼보라 불렀던 것으로, 불멸 후의 시대에 불보로 숭배된 것은 금속이나 나무·돌 등으로 만든 불상 또는 종이 등에 그려진 불상 등이다. 법보는 나뭇잎·나무껍질·직물·종이 등에 쓰인 경전 또는 인쇄된 경권서책(經卷書冊) 등의 불교성전이며, 승보는 비구·비구니 등으로 구성된 출가교단이 되었다.
이 주지삼보에는 특수한 불보가 있다. 불멸 후 불상이 제작되기 이전에 불보로서 숭배된 것으로는 석가모니의 4대기념처인 탄생지 룸비니동산과 성도지(聖道地)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등과 불족적(佛足蹟)·보리수(菩提樹)·법륜(法輪)·불탑(佛塔) 등이 그 상징으로서 경배되었다.
그리고 부처의 사리(舍利)가 불보로서 참배됨에 따라 여러 지방에 불사리탑이 건립되어, 불탑숭배(佛塔崇拜)가 행하여졌다. 부처의 유신(遺身) 중 불치(佛齒)와 유발(遺髮) 등도 불보의 일종으로 보았다.
일체삼보는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도 하는데, 삼보를 철학이론상으로 보아 셋을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법은 부처에 의해 발견되고 실시됨으로써 비로소 교법(敎法)이 되는 것이고, 부처는 법을 발견하고 법을 깨닫고 법을 터득함으로써 부처가 된 것이므로, 법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승려는 부처를 대신하여 부처의 대리자로서 민중에게 법을 설하는 자이므로, 불과 법을 떠나서는 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처와 법은 승려에 의해 그 가치와 의의가 나타나고, 승려로 인해 부처와 법의 기능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승려는 부처와 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 삼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체삼보라 한다.
보통, 삼보라 할 때는 이 세 종류 중 역사상의 현전삼보를 가리킨다. 이 현전삼보에 의해 삼보를 정의할 때 불(佛)은 불교의 개조(開祖)이며 교주로서의 석가모니불이다. 그러나 역사상의 석가뿐 아니라 법신으로서의 석가모니불, 정토교(淨土敎)의 아미타불(阿彌陀佛), 밀교(密敎)의 대일여래(大日如來) 등, 교법의 설주(說主)이고 구제자이며 신도의 귀의 대상이 되는 모든 부처님을 불로 보고 있다.
법은 중생들로 하여금 현실의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이상경에 도달하게 하는 가르침이며, 사회 전체를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다. 즉, 법으로써 불교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설해지고 사회와 인생은 어떻게 있으며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가 설해지며, 거기서부터 불교의 신앙과 실천이 전개된다. 이와 같은 교법을 총칭하여 법보라 한다. 승이란 부처를 대신하여 민중을 교화, 지도하는 출가자의 단체이다.
그러나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삼보가 신봉하고 따라야 할 객체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화(主體化)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중생의 육근(六根)은 일심(一心)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 스스로 근원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져 육진(六塵)을 일으킨다. 이제 목숨을 다하여 번뇌의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그 본래의 원천인 일심으로 되돌아가는 까닭에 이를 귀명(歸命)이라 하며, 그 일심이 바로 삼보인 것이다.” 하여 일심을 삼보라고 정의하였고, 일심에로의 환원이 불교수행의 목표라고 보았다.
묘정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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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화심 불자님
불교용어
2565.5.28
제시어: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
불ㆍ법ㆍ승 삼보는 불자들에게 귀의처이다.
삼보 속에는 생명, 철학, 종교, 세계, 인생, 가치 등 모든 진리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안의 불성을 찾는 끊없는 노력이고, 수행이다라고 볼 수 있다.
바르고 진실된 의지처인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바른 귀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
연화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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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련안 불자님
불교용어정리
2565. 5. 28
제시어: 삼보에 귀의하는 의미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은 가장 훌륭하시고 지혜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이며 올바른 의지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지혜의 눈이 되고
진정한 의지처가 되어야 하고
스님의 말씀을 잘 공부하고 따르며
열심히 수행하므로써
삼보에 귀의해서 불자로서의
한결 더 나아지는 모습으로 배운 대로 수행하는 의미입니다.
靑蓮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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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청련안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