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향곡 대부분이 묘비이다. 너무 많은 수의 우리 국민들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친척들조차 알지 못한다. 내 친구도 여러명 그런 일을 당했다. 메이에르홀드나 투하체프스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최은규님의 말러카페 음감회 해설자료에서 재인용.
지난 1월, 한민구(빅터)님의 해석을 주제로 한 말러 4번의 인상적인 음감회 모임 이후에 연이어 이번 2월에는 최은규 님의 쇼스타코비치 11번을 주제로 한 음감회가 열렸다. 말러카페가 주목하는 주요 시절이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등에 있고 특히 지난번에도 빅터님이 쇼스타코비치 5번을 주제로 명강을 펼친 바 있어서 카페회원들에게는 이제 친숙한(!) 작곡가로 자리잡고 있는듯 하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겠지만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시대 특히 시대의 정권과 뗄레야 떼기 힘든 연관성이 강하게 작용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소비에트연방이 세워지고, 이후에 들어선 스탈린 체제하에서 파시즘을 능가하는 철권통치가 들어섰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쌓여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고 자본주의가 정점에 달했던 나라도 아니었고 차르라고 불리는 전제군주체제였던 러시아에서 혁명으로 들어선 볼세비키 정권은 이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러 현실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소련에서 인민예술가로 불리워 마땅할 존재는 여럿 있겠지만 영화계에선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음악계에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먼저 떠오른다. 에이젠슈타인은 [전함 포템킨]에서 나타나듯이 인민을 위한 프로파간다로서의 사회주의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술가로서 더없는 적임자였다.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는 에이젠슈타인과는 조금 다르다. 프로코피에프도 그러했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어느 때는 음악을 통해 혁명을 노래하였지만 어느 때는 음악을 통해 역사의 비극과 내면의 분열과 정체성의 복잡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교향곡들을 순서대로 감상하면 순수와 혁명과 내면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복이 느껴질 정도이다. 인민을 위한 혁명이 인민의 뜻에도 부합하고 숭고한 가치에도 부합될 수 있었겠으나 그 외의 다양한 심성과 가치들을 표현하는 것에도 것에도 관심이 많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세계를 탐탁치 않게 보는 관료들이 많았던 시기였고 예술분야라면 오직 체제의 선전선동을 위한 것에 주로 복무해야 한다는 관점을 지닌 스탈린 체제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은 미스테리하기까지 하다. 아마 그는 매우 운이 좋았거나 머리가 좋았을 것이다. 아마 두가지가 모두 작용했겠지만. 21세기를 넘어선 요즘에도 블랙 리스트가 횡행하는 시절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15개의 교향곡을 남겼지만 교향곡 1번부터 10번까지의 시대는 철권 스탈린의 체제에서 그가 예술을 위해 살아남는 것과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고자 하는 그 심경의 괴리는 상당히 깊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은 악장별 주제와 메시지가 뚜렷하고 형식적, 내용적으로 내러티브가 자연스러워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 특색을 보여주는 곡이라 할 만 하다. 교향곡 11번은 볼세비키 혁명으로 소비에트연방이 수립되기 전인 니콜라이 차르 체제에서 일어난 주요한 혁명중의 하나인 1905년 ‘피의 일요일’ 대학살이 발생한 시기를 다룬 곡이다. 이 곡은 차르 체제에 대한 염원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민중들의 바램과 그것을 무색하게 하는 대학살의 참상과 그 결과를 추도하는 마음과 진정한 민중을 위한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이 들어 있는 곡이다.
최은규 님은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15개의 교향곡을 크게 순수, 성악, 전쟁, 혁명의 네가지로 분류해서 그의 음악적 전개에 대한 성격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했던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를 통해 당시 예술가들이 어떤 접점으로 만났는지의 예를 잘 보여주었다. D, S, C, H라는 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곡에 새겼다는 이야기는 마치 히치콕이 그의 영화에서 잠깐 등장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즈다노프가 소련체제에서 문화부 장관에 들어서면서 '완장'을 차고 여러 예술가들을 비판한다든가 라스푸틴이 차르 체제 말기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대에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
1악장에서 궁전 앞 광장에 모인 민중들을 묘사하고, 2악장에서 차르에 대한 바램을 무너뜨리는 대학살이 일어나는 과정, 3악장에서 추도하는 내용들을 음악적으로 묘사한 부분, 4악장에서 바르샤바 노동가를 묘사하는 이야기들은 음악의 주제와 멜로디의 주요 부분을 예로 들며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최은규 님은 각 악장이 연주되는 부분의 주요 부분을 들으며 동시에 설명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내가 후일 취하고 싶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특정 소절을 들으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애호가들의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다. 아마 참석자들이 웃으면서 공감한 부분의 하나인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주제와 4악장의 멜로디 유사성은 대부분의 군대행진곡에서 느껴지는 유사성이기도 하겠지만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음악의 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음악이 만국공통어라는 것은 이런 경우에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최은규 님은 쇼스타코비치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감안해서 베토벤 교향곡 3번의 주제를 중간에 이야기하였는데 이 주제가 독일무곡에서 유래한 것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시대를 이야기하는 하는 많은 곡들은 전통의 민속음악 주제나 민요, 가요 등에서 주제나 악상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베토벤 뿐만 아니라 쇼스타코비치의 곡에서는 그런 점이 더 두드러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은규 님은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이면서도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와 같은,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클래식에 더 접근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좋은 소개서로서 손색없는 저작도 보여주고, 여러 공연의 평론을 연합뉴스를 비롯한 기사로도 만나볼 수 있고, 학교와 여러 특강에서도 클래식과 그 배경적인 여러 이야기들을 잘 풀어주는 뛰어난 강연가이기도 하다.
부천필의 말러 전곡 연주 시리즈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에서의 말러 열풍과 그로 인한 말러리안들의 ‘커밍아웃’ 등 여러 인연으로 말러카페에서 이번 음감회가 성사되었다. 특히 이번에는 특별히 최은규 님이 연주곡을 함께 들을 수 있는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의 와인과 함께 하며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각자 까다롭기 마련이어서 행사진행에 있어서 아쉬움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은규 님의 정성과 돋보이는 진행, 여러 운영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와 모임장소였던 라비따 카페 임직원의 수고 등으로 많은 참석자들에게 여러 즐거운 생각과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모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말러카페의 지향점이 음악적 애호와 깊이의 즐거움을 병행하는 쪽에 서 있는만큼 이번 모임뿐만 아니라 후일의 행사에도 많은 격려와 의견, 관심을 바란다.
이날 모임이 끝나고 일부는 음악당으로, 일부는 광화문의 광장으로 향했다. 클래식은 과거에 작곡된 곡이 대부분이지만 지금 연주됨으로써 재해석되어 살아나고 민주주의는 오늘에도 여전히 상기하고 일깨워야만 오욕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모든 진화의 발걸음에 밝은 빛이 함께 하기를 바랄 뿐이다.

첫댓글 율리시즈님의 '세밀화' 같은 정성어린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저 또한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클래식은 온고이지신이다' 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와닿습니다.
클래식의 최전선에서 늘 애써주시고 친절히 가이드해주시는 최은규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좋은 표현 드러내주셨네요~ 모든 고전은 온고이지신으로 인해 다시 밝아지는것 같습니다~
최은규선생님 강의와 율리시즈님 글 덕분에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율리시즈님께서 최은규선생님 강의의 핵심을 요약해주시고 본인의 생각까지 적어주시니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