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문이 뽑은 인상 깊었던 문장-
강혜경
여우피리
P.15 사실 사요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 소리가 들렸다.
들린다기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두 눈썹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것이다.
P.83 "네 어머니는 하나노라는 이름이었다.
[깊이 듣는 귀]의 재주가 뛰어났지.
초목에 깃든 영흔의 목소리조차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요와 하나노의 능력이 갖고 싶다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는 '능력'까지는 아녀도 기를 수 있는 감각이겠다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초목. 모든 관계에서 [깊이 듣는 귀]가필요하겠다.
사슴의 왕(하)
P.236 "그러니 우리는 가혹한 인생을 헤쳐 나온 심성으로
다른 사람을 지키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을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경외를 담아
사슴의 왕이라 부르고 있소.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오.
그렇기때문에 날 때 부터 귀인인 사람이 없다는 그런 것이오."
우리도 반과 같이 동등한 시선에서 타인을 봐야 한다는 생각.
우리에게도 "사슴의 왕"과 같이 감동적인 힘이 있는
우두머리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선
<여우피리>
여우도 사람도 아닌,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 어디쯤 틈이 자신의 세계인 노비, 누구하나 자기를 걱정해주지 않는 외로운 처지이지만, 자신이 받은 작은 친절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갚을 줄 안다.
좋아하는 사요까지도 온전히 자기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 노비...
보통은 말 안해서 상황을 어렵게 끌고 가는 케릭터는 속 터지는데^^;;
노비는 다르다. 가슴이 아린다.
<사슴의 왕>
"효율이 떨어질 텐데... 보고도 놓치는 사냥감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저희는 흔히 부부나 형제자매끼리 사냥을 떠나니 그중 누군가 잡으면 그만이거든요."
"둘 다 잡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냥감을 얻을 텐데요."
"그렇지요... 그래서 신들은 저희에게 영역을 지키라고 가르쳐주신 거겠지요. 저희가 놓치는 사냥감이 있기에 산이 살아있는 거라고."
박진숙
<여우피리> 296쪽
그순간 생명이란 것이 참 덧없이 느껴졌다.
지금껏 막연하게 이 생명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수면 위 거품의 운명처럼 그 끝이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노비가 양손으로 건져올려 주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지금이라는 투명한 거품.
--오늘은 지금이라는 거품을 몇번이나 팡팡 터뜨리며 살았는지...
<사슴의 왕(하)> 396쪽
아버지는 한명한명 가리키며 말씀하셨어. 나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씨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착각도 유분수다. 너희들 같은 애송이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한다. 제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건만, ......
필사적으로 달아나서 목숨을 부지하고 자손을 낳아 늘려라. 그것이 너희 의무다.
--반의 아버지가 사슴의 왕이니 뭐니 구역질난다고 말하던 장면입니다. 하지만 반은 사슴이 왕이 되었죠ㅎㅎ
김순옥
<여우피리>
112쪽 아버지 밑에서 수행을 쌓던 어린 시절에는 죽이라는 명령을 받을 때마다 가여움에 눈물이 나왔다.
259쪽 사요는 ... 노비의 등에 업혔다. 노비의 목덜미에 볼을 대자 햇볕 냄새가 났다.... 이러고 있으니 가슴속에 따스한 해님의 온기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282쪽 ---사요는 어쩌면 이렇게 부드러울까 맞닿은 곳이 짜릿했다.
🍒
사람마다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면 지금나는 어떤 냄새가 날까? 좋은 냄새가 날까? 사요와 마주한 나를 상상해 본다.
생명은 존엄하기에 하찮은 생명은 없다. 함부로 헤치지 말자.
<사슴의 왕(상)>
79쪽 자신을 버리지 마라
뭔가가 경고한다. 이 기묘한 육체적 감각에 모든 것을 내맡겨서는 안된다. 스스로를 넘겨주어서는 안된다...
🍒
독자에게 하는 말 같았다.
김분희
여우피리 331쪽
벚꽃잎이 흩날리는 들판을, 여우 세 마리가 봄 햇살에 등을 반짝이며 기분 좋게 달려간다.
: 여우 피리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너른 들판을 여우처럼 달리고 싶어졌어요. 그러나 체중 감량에 성공해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접어둡니다.
<사슴의 왕(상)> 424쪽
건강할 때는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병이 들면 몸은 마음을 무시하고 움직인다. 경험해보아야 비로소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별개라는 사실을.
: 코로나에 확진된 적 없는 1인이지만 나이 드니 건강이 걱정입니다. 몸이 마음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병이란 놈이 두려워지네요.
양윤정
여우피리 172쪽
‘...이제 나는 노비도, 토오타도 아니에 되었구나.’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노비인 토오타」야. ...이제 어느 한쪽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경계를 건너 스스로를 긍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노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것 같은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노비의 모습은 「사슴의 왕」의 반의 모습과 겹친다. 그리고 이쪽인가 저쪽인가 선을 긋고 경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그 용기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인 것 같다. 경계를 긋는 건 분쟁을 만들고 적을 만들지만 경계를 건너가면 모두는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사요와 노비가 평화로이 뛰어노는 결말을 맞이하고 반과 사에와 유나가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경계를 건너가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의 왕(하)> 441쪽
“아리사, 모시르.”
오래도록 입에 담지 않았던 아내와 아들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목구멍에 뜨거운 응어리가 흐르는 듯했다.
“두 사람에게 해주지 못했던 걸 혈연도 인연도 없는 사람들에게 해줘도 될까?”
너희가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미련도 주저도 사라질 텐데.
반은 쓴웃음을 지었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죽은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머물지 않고, 혈연도 인연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경계를 뛰어넘어 나아가는 반의 결심. 결국 모든 선택은 나 자신이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고뇌와 결단을 보여준다. 어느 선택을 하느냐, 그것은 나 자신의 몫일 뿐이다.
412쪽
“옛날에... 아버지가 그러셨어. 사람이라는 건 서글픈 생물이라 무엇을 해도 어딘가 후회가 남는 법이라고.” -하권 p412
--그러나 오롯이 만족스럽고 올바르기만 한 선택은 없다는 인생의 진실을 알려주는 저 한 마디가 또한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