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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부산일보 신춘문예-시]
뱀을 아세요? / 윤석호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
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
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
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
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2014 경향 신춘문예]시 심사평 “불편·설렘 동시에 안겨주는 당당함… 생생하다”
본심에 넘어온 10인(장혜령·김영미·서진배·서명옥·이현우·김묘숙·박승렬·이호준·엄기수·심지현)의 후보작들을 검토하며, 오늘의 삶과 의식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후보작들 다수가 그 음울과 살풍경을 막막하게 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고통의 복판을 피해갈 시의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는 ‘참말’을 하려 한다. 담긴 메시지가 논리적·도덕적으로 맞다거나 합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초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생이 진부하기는커녕 매순간 새롭고 아프고 기막힌 것이며, 누구에 의해 대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참이다. 그때 ‘참말’은, 설사 낯익은 메시지를 싣고 있는 듯 보일지라도 반드시 새롭고 절실하다. ‘참말’은 또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습성화된 느낌과 생각과 말의 회로로부터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말의 힘은 겉을 꾸며 흉내낼 수 없다. 오직 온몸을 던진 낮은 포복을 거쳐 이루어질 뿐이다.
신춘문예가 일부 문학 지망생들의 잔치를 넘어, 전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기꺼움과 설움과 고뇌를, 우리의 아름다움과 매혹과 깊이를, 나아가 우리의 공포와 분노, 우리의 파렴치와 비열함까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줄 새 소리꾼, 새 만신,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재독을 거쳐 우리는 이호준·엄기수·심지현 3인으로 일단 후보를 압축했다.
이호준의 감각과 솜씨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들은, 필요하다면 신선함조차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과 자신감의 과잉이 오히려 시적 모험의 기개와 순결성을 손상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엄기수도 이미 능숙한 시인이었다. ‘이끼소녀’ 등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바 비애를 갈무리해 내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오랜 습작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투와 시적 조형방식에는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음이 없지 않았고, 시들이 좀 더 다채로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지현의 당돌함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동시에 설렜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어딘가 불균형한 듯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새롭고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삶과 세계의 잔혹과 비극성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슬픔과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언어들은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련과 안정감보다 심지현의 이 용기와 젊은 당당함 쪽을 선택했다.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깊이 앓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빈다.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당선작 : 대화
김진규
대화
-김진규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가 구겨져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부리 위를 기어 다니는 어두운 벌레들
작은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는 꺾인 날개가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의 그림자를 쓰다듬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밀어 넣은 새의 몸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나도 분명 그런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것들의 속을 채워보기 위해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한 번 밀어 넣어 보듯이
혼자 날아가지도 못할 말들을 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둥근 머리통을 한참 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이쪽의 눈과 저쪽에 있는 새의 눈이 마주치자,
여태껏 맞아본 적 없는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머리통이 간지러워져서,
나도 어딘가 머리를 드밀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방에서 방으로 옮겨갈 때의 걸음을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나 이곳과 저곳의 국경을 넘는 사람인 거 같아
누워있는 사람의 말을 대신 전할 때
구겨진 새의 몸을 손으로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 듯
나도 어떤 말인지 모를 말들을 했던 것 같아
새의 부리가 날보고 웅얼거리는 것 같아서
내 귀가 어쩌면, 파닥거리다가 날아갈 것 같아서
나무옹이를 나뭇가지로 쑤신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삼키지 못할 것들을 밀어 넣듯이 밀어 넣는다
[한국일보 2014 신춘문예 - 시 부문] 심사평
응모자는 884명이었다. 이분들의 시 4,000여 편을 예심해서 우선 30여 편을 추렸다. 이 시들에는 소위 '미래파'가 많았다. 기존 시단의 미래파가 예비 시인들에게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징표일 테다. 최종 본심에 김동수('새가 그려준 지도'외 2편), 이재근('토르소' 외 5편), 김진규('나무라기엔' 외 2편)를 올렸다. 다른 분들이 최종 본심에 못 든 이유는 2%가 모자라서다. 미래파건 전통파건, 앞의 '유행'에 젖은 뒤 그것을 돌파해야 하는데, 강력한 경향이랄지 추세에 흔들렸다. '영향에 대한 불안'이 부족해 보였다. 휘둘리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이재근의 '토르소'는 시적 논리가 이미지의 다양성을 제압할 만큼 탄탄하고 스케일이 큰 시다. 우리 삶에 대한 긍정적, 남성적 힘이 있다. 그런데 굳이 흠을 잡자면 논리가 과해서 이미지를 밀어낸다. 이 부분을 해결하면 뚝심 있는 큰 시인이 되리라. 김동수는 시를 상당히 많이 써 본 솜씨다. 이미지 전개가 조화롭고 참신하다. 기발하면서도 튀지 않는 시어들로 논리와 이미지 사이가 친근하다. 그런데 전하는 바가 또렷하지 않다. 물론 좋은 시는 해석의 지평이 열려 있게 마련이지만, 시에 허용되는 '모호함'에도 한계가 있다. 두 분 시 모두 이만하게 쓰기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한 편만 뽑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는다.
김진규의 '대화'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메마른 나무옹이에 새 한 마리 구겨져 있다', 죽은 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고통을 '구겨진 새의 몸을 감싸서 누구한테 내밀듯'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같은 시구가 달래준다. 김진규는 관찰력이 뛰어난 시인이다. 세심한 관찰로 잡아낸 광경이 감각적인 성찰로 전화(轉化)한다. 아마도 죽음을 아는 게 성년이리라. '비성년' 이미지에서 시작해 '비성년'을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스런 움직임이 고통스러우리만큼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당선을 축하 드린다. 새로 태어나는 시인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발레리나 / 최현우
부슬비는 계절이 체중을 줄인 흔적이다
비가 온다, 길바닥을 보고 알았다
당신의 발목을 보고 알았다
부서지고 있었다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몸짓이 처음 춤이라 불렸고
바람을 따라한 모양새였다
날씨는 가벼워지고 싶을 때 슬쩍 발목을 내민다
당신도 몰래 발 내밀고 잔다
이불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듯이
길이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에 보니 당신의 맨발이 반짝거린다
간밤에 어딘가 걸어간 것 같은데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돌았다고 한다
맨발로 춤을 췄다고 한다
발롱*! 더 높게 발롱!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
당신이 자꾸만 가여워지고 있다
*발레의 점프 동작
[당선소감] "눈이 내렸다… 오늘은 암호를 해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랭보가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팠다고, 외로웠다고 자랑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시를 앓는 사람들이 다 아프고 외로워서 혼자 특별하게 피 흘린 척할 수가 없다.
시와 현실의 압력 차이로 사람이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겠구나 하며, 희망과 절망을 양 겨드랑이에 한쪽씩 목발 삼고 걸었다. 편한 쪽으로 기대려다가 자꾸 넘어졌다. 주저앉는 곳은 어디나 골목이 되었다. 그 담벼락에 실컷 낙서나 하다, 침도 뱉다가, 날아다니는 나방을 세어보기도 하다가, 다시 일어나려고 할 때 희망과 절망에 같은 힘을 주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십원짜리 동전을 세우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김혜순·송찬호 두 심사위원께서 호명해주셨다. 스무 살 때 허연 시인이 영혼에 열병을 심어주셨다. 불치병이 되었다. 박찬일 교수님과 김다은·윤호병 교수님께 목구멍의 생선가시처럼 걸려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이형우 교수님과 많은 술잔을 기울였고, 임경섭 선생님과 거짓말처럼 한 약속이 있다.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추계 학우들의 축하 때문에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고, 부모님께 아직도 반찬 투정하는 아들이고, 내게 미현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간밤에는 목발을 잠시 내려놓고 주저앉아 길게 자란 발톱들을 깎았다. 날이 밝았다. 이곳에 눈이 내렸다. 그 위로 누군가 모스부호처럼 흘린 발자국, 오늘은 해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989년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 문창과 4학년 재학 중
[심사평] 발뒤꿈치 들고 도약을 시인이여, 더 높게 발롱(점프)!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의 말과 현란한 드라마 대사 속에서 시가 나아갈 길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꽃·별·구름·사랑과 이별, 버려진 구두 한 짝, 창문의 덜컹거림, 전화기 속의 흐느낌… 등을 질료 삼아 늘 그래 왔듯 묵묵히 시를 쓰는 것. 황지우 시인은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고 하였다. 갑갑한 소화불량의 사회에서 시는 더욱 예민해졌고 더욱 갈급한 형식이 되었다.
이번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송민규의 '곰팡이로 만드는 바람소리'外, 조창규의 '불안한 상속'外, 서문정숙의 '시간여행자들'外, 최현우의 '발레리나'外를 주목해 읽었다. 위 응모작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인으로서 외침은 있되 아직 그 울림이 뚜렷하지 않고 자기만의 웅얼거림에 갇혀 있는 듯했다.
고심 끝에 최형우씨의 '발레리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발레리나'는 '한 번의 착지를 위해' 거듭 삶을 연습해야 하는 발레리나의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시에서 계절로부터 '부슬비'의 가는 발목을 발견하거나 바람으로부터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는' 원시의 무용을 발견하는 응시의 시선이 돋보인다. 발레는 발뒤꿈치를 들고 돌거나 도약과 착지를 거듭해야 하는 고된 춤이다. 시도 이와 다를 게 무어랴. 당선자는 오래 습작기의 열정을 내려놓지 말기 바란다. 새로운 시인에게 시가 발롱! 더 높게 발롱!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주방장은 쓴다
이영재
눈은 이미 내렸다 새가 날아온다 그리고 새는 날아간다 이곳에서 시가 시작되는 건 아니다
세상엔 먹을 것이 참 없다 먹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허기가 시보다 나은 점이라면 녀석은 문을 두드릴 줄 안다는 것 요리는 곧 완성 된다 완성되기 전에 이 깨끗한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던질 수 있을까
내 몸에겐 건강한 학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이곳은 학대에 매우 알맞다 떠나는 새조차 둥지를 훌륭하게 지을 줄 안다
시를 포기하고 시인이 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더 멋진 건, 죽어서 시인이 되는 일 거짓이다 누구도 시인이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 담배를 문 주방장만이 오래도록 써왔을 뿐이다
휘파람이 휘파람을 불 생각이 없듯 우체통은 붉을 필요가 없다 다행히 라면집은 가끔만 문을 연다
요리는 완성될 필요가 없다 이 깨끗한 접시를 온전하게 버리기 위해
철새가 돌아올 둥지를 삶아 먹고 이사를 할 것이다 겨울과 더 가까운 곳에 주방을 열고 문을 닫을 것이다 어디서든, 시작하지 않기 위해
거짓인 명제가 가득한 접시 위에만 쓴다
**이영재: 1986년 충북 음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졸업
심사평
"기발한 詩想·세련된 언어감각 지녀 "
올해도 900명이 넘는 예비시인들이 응모해 주셨다. 현실적 보상이 따르기 어려운 이분들의 고독한 헌신에 한국문학은 크게 힘입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일일이 기려야 하겠지만, 차라리 아쉬운 점을 몇 가지 적시하는 것으로 상투적 덕담에 대신하려 한다.
우선 긴장이 떨어지는 설명조의 사설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장황한 관형어구의 습관적 사용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것으로는 산문과 구별되어 마땅한 시적 촌철살인을 구현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 언어 일반에 대한 자각, 모국어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생활언어의 많은 부분이 ‘국영문 혼용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미 중심의 가속적인 세계화 추세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인들은 모국어의 쓰디쓴 현실에 좀더 깨어 있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편협한 외래어배척운동을 다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해요’ ‘∼이에요’ 투의 어미가 유행처럼 많았다는 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여성스러운 경어체 입말의 실감이라는 특수 효과가 없지 않지만, 이것은 시를 주관화, 연성화하고 자칫 시를 사적 독백 쪽으로 끌고 가는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듯하다. 역시 자각과 절제 속에서 제한적으로 구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작위적으로 시를 꾸려가고 있거나 낡은 시적 투식을 답습하는 투고작들 대부분에서 그러한 문제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시작에 임하는 태세의 안이함’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검토를 거쳐 김동환 민현 이영재로 범위를 좁힌 다음 재독에 들어갔다. 서민적 삶의 그늘을 침착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는 김동환의 시들은 고르고 품위가 있었다. 반면, 시적 긴박감이 부족한 느낌과, 안정적인 대신 선도가 떨어지는 비유와 이미지들이 지적되었다. 민현의 시들은 일견 낯익은 듯했지만, 절실함이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간곡’ ‘아이가 자는 방’ 등은 아름다웠다. 어투의 기시감을 극복한다면 그는 더 높은 시적 성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는 언어에 대해 좀더 민첩하고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은 존재의 미세한 기척들에 대한 민감함과 결부된 것이었다. 빠른 리듬은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좋은 발상과 표현이 신인으로 손색없었다. 그를 당선자로 합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언어의 운용에 깊이와 신중함이 더해지기를 당부하는 우리의 노파심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 김사인·최승호
뱀을 아세요? / 윤석호
2013-12-31 [07:56:10] | 수정시간: 2014-01-02 [08:20:50] | 41면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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