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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8일 온고을교회 주일설교(황의찬 전도사)
침례 요한
마3:1~12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 중에 대중들로부터 가장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요한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본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레위지파의 제사장 사가랴이고,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이 부부에 대해서 누가복음 1장 6절에서 말하기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나이가 들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제사장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분향단에 분향하고 있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천사가 말하기를 ‘네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되어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고 해라’ 그 요한이 주 앞에서 큰 자가 되고 여러 사람들이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하나 줄 터인데, 그에게는 하나님이 부여하는 사명이 있다. 그래서 그는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독한 술도 멀리하면서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대단한 아들이 될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를 전한 천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는 이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자신도 나이가 많고, 아내도 고령이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불신의 죄 값으로 사가랴가 말 못하는 자로 살도록 명령합니다. 실어증 환자가 된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열 달이 지난 후에 가브리엘 천사의 말씀대로 아내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고 8일 만에 할례를 하면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아버지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하라고 했는데, 그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던 아버지 사가랴가 서판을 달라고 몸짓하여 서판을 갖다 주었을 때, ‘요한’이라고 써 보였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가랴의 입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요한은 가브리엘 천사의 말씀대로 범상치 않게 자랐습니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멀리하고 광야에서 절제 생활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전파하기를,
(2절)『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장차 태어날 ‘이삭’에 대해서 말씀하신 일과 대단히 흡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요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전혀 모르고 읽는 것보다, 이렇게 설교 시간을 통해서 한번쯤 듣고 난 다음 읽으면 훨씬더 은혜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눅1장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자, 이렇게 태어난 요한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4절)『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주> 이렇게 태어난 요한은 자라면서 일찍부터 집을 떠나 광야 생활을 하는 기인이 됩니다.
광야라는 곳은 황무지입니다. 한국의 환경으로 보면 깊은 산 속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요한은 이처럼 광야에서 수도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의> 낙타털로 옷을 지어입고, 가죽으로 허리띠를 만들어 맸습니다.
<식> 요한의 식사는 메뚜기와 석청이라 했습니다. 석청이란 것은 큰 돌 밑에 벌이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돌에서 따내는 꿀을 석청이라고 합니다.
<요한의 기행의 원인?>
요한은 왜 이렇게 스스로 어려운 삶을 살아갑니까?
그가 제사장의 아들로서 세습 제사장이 되면 당연히 제사장 사택에서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곳을 떠나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가 입은 옷은 낙타의 털옷이라 했는데, 낙타 털옷 하면 요즘 사람들은 무스탕이나 토스카나, 밍크 모피, 뭐 이런 것을 연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당시에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은 가장 싸구려이고, 가장 천한 옷입니다. 야만적인 옷이지요.
그가 아버지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면 제사장의 의복을 입게 됩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세마포로 만든 고급 옷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맵시 있고, 품위를 갖춘 옷을 마다하고 거친 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주식으로 삼은 꿀 역시 요즘처럼 잘 정제하여 먹기 좋은 꿀이 아니라 원시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메뚜기는 한국에서도 반찬으로 먹기는 하지만 어쨌든 곤충입니다.
원래 제사장들이 먹는 음식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가져오는 희생 제물들 중에서 소제로 드린 곡식 가루나 화목제로 드린 동물의 고기가 주식입니다. 백성들이 드린 제물 중에서 제사장들의 주식으로 사용되는 것을‘응식’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이처럼 당시의 종교적 관행과 편리한 문화 습관에 철저하게 반발하고, 당시의 종교와 문명으로부터 확실하게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이 당시의 종교와 문명이라면, 종교는 유대인의 히브리 종교, 그러니까 구약 성경만이 존재하는 가운데, 율법 중심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그담에 문명은 그리스~로마 문명입니다. “그레꼬로망”이라고 합니다. 레스링에 그레꼬로망형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상체만을 공격할 수 있는 싸움이지요? 이것이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요한은 이렇게 독특한 의, 식, 주로써 당시의 종교와 문명을 비틀었습니다.
사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문화인, 종교인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은 당대의 의식주 문명을 이렇게 철저하게 비틀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대중들에게 설교를 하고 침례 예식을 베풀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당시의 종교, 당시의 문화로서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만큼 당시의 종교와 문화의 타락상이 심했습니다. 특히 히브리 종교, 유대 종교가 율법에 치우쳐서 도대체 소망이 없음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 당시로부터 400여 년 전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를 보내시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하나님의 메시지가 없는 암흑기가 400여년이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사장이랍시고 세마포 고급 옷을 입고, 저택에 살면서 좋은 음식을 먹는 제사장이 어찌 참 제사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없는 문명이 어찌 참된 소망을 주는 문명이겠습니까?
그가 입은 옷은 낙타의 털옷이라 했는데, 낙타는 구약 성경에 의하면 부정한 짐승입니다. 부정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 짐승을 부정하다고 하는 윤리를 비웃는 것입니다. 그 짐승이 부정하다고 하는 종교를 뒤집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의 끄트머리에서 요한은 참 제사장으로 이 땅에 왔기 때문에 그렇게 현실을 온 몸을 다해 꾸짖는 것입니다. 총체적인 타락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의식주를 비롯한 자기 삶을 송두리째 던져서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온갖 문명과 잘못된 종교를 다 집어치우고, 야만적인 상태로부터 새로 시작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경영학, 행정학에서 쓰이는 말로 ‘제로 베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예산을 편성할 때, 지금까지의 것들을 다 무시해버리고, 영, 제로에서 시작하여 예산을 편성하는 방법을 ‘제로 베이스’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부분 새해 예산을 편성할 때는 금년의 예산 시스템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예산을 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산 집행 실태가 총체적으로 문제점이 많다. 어느 일부분을 손대는 것으로는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제로 베이스 예산 편성을 시도합니다.
제로 베이스 예산을 편성했다면, 이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모든 사업을 재검토하고, 지금까지의 관행을 깡그리 다 무시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은 인류의 경륜에 있어서 그때까지의 모든 것들을 다 부정하고, 그때까지의 종교, 문화를 다 제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의 사명입니다.
그러한 사명자, 요한의 첫 설교가 어떤 설교였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침례 요한>
광야에서 그렇게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겠습니까? 조금이라도 현실에 대해서 ‘뭔가 잘 못 되었다. 잘 못 되어가고 있다,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도심을 떠나 광야에 있는 그에게 갔습니다. 이들은 그래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대해서 별 문제 의식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요한의 행태를 비웃었습니다. “미친 *”
그러나 “이건 아니야” 하는 사람들, 경건한 사람들은 거친 광야, 요단 강가로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이들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기를 찾아오는 자들로부터 죄의 고백을 듣고 나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침례 요한”으로 부릅니다.
침례 요한에게 오는 사람들, 경건한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당시의 권력의 측근에 붙어서 온갖 문화적 이득을 누리는 부류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놀랍게도 이들 중에서도 요한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7절)『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참 아이러니 합니다. 침례요한이 볼 때 이들 두 부류의 사람들은 타락의 앞잡이들입니다. 침례요한이 모든 문화적이기를 외면하고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사는 이유가 어찌 보면 이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이쪽으로 돌리고 싶어도 바로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때문에도 더욱 외면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일부가 자기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냅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피하도록 가르쳐 줘서 나에게 왔느냐? 너희가 마치 산에 불이 났을 때, 산불을 피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인가로 스며드는 독사들 같구나!” 대단한 욕입니다.
당시의 다른 타락한 제사장들은 이들이 나타나면 허리를 90도로 꺾으면서 귀빈대접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당시의 실세들이니까요. 그러나 침례요한은 이들에게 여지없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8~9)『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 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너희가 지금까지 겉으로만 회개하고, 아니 회개 하는 척하고, 거들먹거리면서 온갖 거룩한 척은 혼자 다하고, 율법만을 내세우고, 평생 율법 조문에 매달려 살면서 백성들을 정죄하고, 국민들 착취하고, 권력 지향적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다. 하나님이 택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우리는 정의롭다.”라고 자부하는데, 어림없는 소리 말아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뭐하냐, 길거리에 널려있는 돌부리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그런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심지어 돌맹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하는 말로써, 장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전 세계 만민을 구원의 대상으로 하실 분이라는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침례요한은 구약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신약시대를 새롭게 여실 분이 뒤에 오심을 밝힙니다.
(10~11)『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 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400년간 침묵하고 계셨는데,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모종의 조치를 시작하셨다. 그래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들은 찍어서 불에 태워버릴 것이다. 그 심판에 앞서 내가 지금 회개를 촉구한다. 나에게 와서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아라! 그래야 심판을 면할 것이다. 그런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계시다.
나는 지금 이곳 요단강에서 물로 침례를 행하는데,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행하실 것이다. 나를 그분과 비교하지 말라, 나는 그 분의 신발을 들고 있을 자격도 없다.
당시 하인들은 주인을 수행할 때, 주인이 신발을 벗고 누군가와 만나고 있으면, 종은 밖에서 주인의 신발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 관행을 빗대어서 요한은 뒤에 오시는 분의 종의 자격도 아니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침례 요한의 이러한 외침은 구약에서 이미 언급한 일의 성취라는 것을 마태복음 기자는 강조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40:3)”고 했는데, 침례요한의 설교와 회개의 침례는 바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패망하여 강대국의 포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끝내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실 것이며, 이때가 되면 하나님도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돌아오실 터인데 포로 되었던 하나님의 백성이 귀환하는 그 길, 즉, 하나님께서도 왕림하시는 그 길을 ‘외치는 자’가 앞서서 “물렀거라”하면서 장애를 제거할 터인데, 침례요한이 바로 그 외치는 소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이 패악하여 포로가 되겠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끝내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의 영광을 허락하심을 예언했고, 침례 요한은 다시 한 번 하나님 나라, 천국의 주인이신 메시야의 오심, 강림(降臨)을 소리 높여 알리는 첨병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길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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