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주를 어떻게 찾았나?'란 주제에 대해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좀... 안옵니다...이유는 제가 단주를 찾았다기 보다는... 제가 믿고 있는 친구들이 단주를 찾았기 때문인데요...ㅎㅎ
이전에 충영과 충본이 쓴 글들을 보니, 신앙의 과정을 적는 거 같아서, 저도 여기까지 오게된 과정을 적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법 오래된 이야기라 2부로 나눴습니다.
제가 처음 대순진리회에 잡혀서 대순진리회 포교방에 갔던게, 1996년 겨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K대 1학년이었는데, UBF라는 성경동아리에 가입해서 성경 공부를 했었습니다. 집안에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시고, 어렸을 때는 기독교 관련 유치원에 다녀서 기독교가 익숙한 부분이 있었고, 성경책에 대해 관심도 있었거든요. UBF에서 성경책을 해석하고 알아가는 게 처음에는 즐거웠는데, 계속 접하다보니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흥미가 떨어진 이유는 성경책을 해석하면서 어색한 번역본의 책을 읽는 어려움 때문이었는데요. 성경책이 쓰여질 당시에는 자연스러운 구어체로 썻을꺼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에 예수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우리나라 말로 된 경전을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뜻을 알수 있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2천년 역사에서 예수가 나왔는데, 5천년 역사인 우리나라에도 예수같은 인물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 던 중에 집근처 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가기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대순진리회 교정되시는 분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교정님하고 한참 버스 정류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에 어떻게 된 건지, 그 분이 저희 집을 방문하게 된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문 포교 때문에 그런거 였는데, 그때는 '아... 이건 인연인 갑다...' 생각을 하고 대순진리회에 가서 입도식을 하게 됩니다. 그 후 2번 인가를 더 가게 되었는데, 잘 안가게 되더라구요.
이런 일이 있고, 97년도 3월에 학교에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보고 있는, 같은 과에 복학한 증산도 선배님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책인지 궁금하여 '저는 대순진리회를 하고 있는데, 무슨 책인지 궁금합니다.' 라고 물었고, 대순진리회는 아주 위험한 곳이다라며,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아현동에 있는 증산도 도장에 가서 주문 수행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거기서 한 21일 정도 수행을 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 아현동에 가서 수행을 하고, 이렇게 21일을 하고, 증산도에 단체입도식을 하는 날 입도식을 하게됩니다. 이렇게 증산도를 시작하게 되고, 강일순이라는 분을 알게됩니다.
그 당시 증산도가 전국동아리였고, 저는 아현동에 있는 도장 소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아리를 통해서 여러 대학교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데요. 그 당시 아현동에 있는 도장은 E여대 분들이 있었고, 근처 연희동에는 Y대 동기들이 있었는데, Y대에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왕십리에 H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충영을 만나게 됩니다.
충영이 지금은 배가 많이 나오고 아저씨 같지만, 그 당시에는 슬림하니 귀여운 상이 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도 '치와와' 였는데, 이렇게 보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충본은 저의 학교 다른 과 선배님이셨는데, 저희 학교 증산도 책임자셨고, 증산도 서울 강남 지역 대학생 포교회 책임자셨어요. 지금도 슬림하니 가벼운 남자지만, 그 때는 더 날라 다녔습니다~ㅋㅋㅋ
여튼, 97년도는 증산도를 하면서 즐거웠습니다. Y대 도우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H대 다니는 충영도 만나고, 서울에 있는 각 대학교에 아는 친구들이 생기고, 동아리가 있는 학교를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증산도의 대의명분은 '인류구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말입니다. 그런 대의명분 아래 뜻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라, 그 이후에도 주로 이 친구들과 만났고, 만나면 그 당시 순수하고 풋풋했던 기억에 즐거웠습니다.
그 후 98년도 3월에는 군대를 갔고, 졸업을 하고 서울대학교 근처 도장으로 적을 옮겼습니다. 한 때는 공무원이 되어보겠다고 4년 정도 공부하면서 증산도 광화문도장에 적을 두기도 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이 안되다보니, 시험을 포기하고, 원단 무역을 하는 회사를 들어가게 됩니다.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알게된 단골 무당집이 있었는데, 그 분 덕분인지, 조상님들께 제사를 한번 지내고 회사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간 회사가 원단을 수출하는 무역회사였는데, 나중에 단골 무당집 할머니 말씀으로는, 정순왕후(단종비) 할머니가 연결 시켜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이 저희 윗대 할머니시거든요. 천을 염색해서 장에 팔아서 생계유지하셨었습니다.
그 후 2012년에 증산도에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안종도사님이 돌아가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 참, 회사원이었던 시절이었고, 도장에도 잘 나가지 않는 일명 나일론 신앙인(?)이었던 시절이었는데, 개벽을 집행하신다던 그 분이 돌아가신 거에요. 많은 도인들이 충격을 먹었었습니다. 이 당시에 충영은 특장차 영업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충룡이 H대 써클장이었는데 충영과 함께 가끔 술마시고 놀던 사이였습니다.
종도사님 돌아가시고 대전에서 대포(대학생 포교회 준말) 때 친구들이 모이는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충룡, 충영과 함께 있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충영에게 어떻게 할거냐고(증산도 계속 할꺼냐?란 의미)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도 증산도를 계속하겠다고 답변을 들어서 좀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종도사님 돌아가시고, 증산도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납니다. 노상균씨와 진성종원이 손을 잡고 증산도를 혁명하겠다고 증산도 혁명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법륜도, 옥단소 등등이 생깁니다.
저는 회사원이 되고 충본의 한의원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그 당시에 충본에게 '혁명판에 한번 가보고 싶다, 가보는게 좋겠냐?' 의견을 물었었습니다. 가보라고 해서 혁명판에도 잠깐 기웃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 기웃했던 인연으로 박감독과도 알게 됩니다.
2016년도에는 충본이 년말에 개벽이 올거 같다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피난 할 곳이라도 마련해야 안심이 될 정도였는데, 그때, 저, 충영, 충본... 이렇게 셋이 쉼터(일종의 대피처)를 만들게 됩니다. 충본이 충영에게 같이 피난처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를 했고, 충영이 같이 하자고 해서 피난처로 할 만한 곳을 셋이 여러곳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정착한 곳이 추부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태을도에도 잠시 들렸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조만간 2부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UBF에서 성경 공부 하셨었군요.
중학교 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반 친구에게
성경과 천주교, 기독교에 대해 많이 물어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충봉도인의 신앙편력이 화려하게 펼쳐지니 일단 흥미진진합니다.
사연없는 집 없다더니, 여기도 시리즈이군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고 순탄할 리 없지요.
결말을 알고 있으니(태을도에 안착해 신앙생활을 훌륭히 하고 계시니)
편안한 마음으로 2부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