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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샌님 정약전에게 반하다
『서울 샌님 정약전과 바다 탐험대1』(김해등, 웅진주니어, 2011)
이숙현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볼까요? 이 자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지는 알고 오신 거죠?
네. 저기 저 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캐릭터 탐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잖아요. 솔직히 ‘탐구’라는 단어가 부담되어 망설이기도 했는데 나란히 그 옆에 있는 제목 ‘나를 매료한 □□’에 마음이 끌려 이 자리에 오게 됐어요.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를 돌아보고, 그 이유를 찬찬히 헤아리는 과정이 신인작가인 제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탐구’라 할 만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고요.
그렇군요. 일단 오늘 이야기할 캐릭터 소개 좀 해주시죠. 어떤 책에 나오는 캐릭터인가요?
이 자리에 초대를 받고 책장에 꽂힌 책부터 쭈욱, 훑어보았어요. 책등에 박힌 제목을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책 속의 캐릭터가 ‘나야, 나!’ 하고 반갑게 툭,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조용하더라고요. 그동안 책을 허투루 읽은 까닭인지, 너무 오랜만에 불러보는 까닭인지, 몇 번을 훑어봐도 등장인물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말고, 방 구석구석 숨어있는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잡다한 종이뭉치들 사이에 숨어있던 이 책, 『서울 샌님 정약전과 바다 탐험대1』을 발견했지요. 벌 밭에서 문어와 씨름하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과 이 분(!)의 모습이 담긴 책표지를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소란스럽고 요란스럽게 날 법한 그림 속 소리들이 마음을 간질이는 기분이랄까요. 암튼 반갑게 책을 꺼내들고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되겠구나, 마음먹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 분이 누구입니까? 그 얘기를 해주셔야지요.
아, 네.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정약전입니다. 책 속에서는 ‘정 좌랑’으로 나오지요. 작가가 작품 뒷면에 친절하게 덧붙인 정약전에 대한 소개를 빌어 말씀드리자면, 정약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쓰신 분으로 정조 임금의 신임을 한껏 받아 병조 좌랑까지 올랐다가 천주교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벼슬을 잃고 유배를 당한 인물입니다. ‘신유박해’ 당시 동생 정약종의 죽음에, 정약용까지 유배되는 가족의 비극을 겪지만 ‘절대 풀 죽지 않’고 ‘넘쳐 나는 호기심 때문에 콧노래를 부르며 살’았다고 하네요.
그럼, 정 좌랑이라고 할까요? 이 책에 등장하는 좌랑의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일단 표지 그림부터 재미있었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릴 듯 한 표지 그림 속 정 좌랑의 모습이 참 웃기거든요. 두 손으로 문어 다리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뒤로 젖혀 잡아당기고 있는 좌랑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문어다리에 잡힌 채 눈물 찔끔, 땀 삐질 흘리며 목젖이 다 드러나 보이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책 속의 캐릭터들을 떠올릴 때, 그림도 중요한 역할을 하잖아요. 제목화면에 등장한 산발한 좌랑의 모습이라든지, ‘작가의 말’ 끝에 몽돌이, 창해와 더불어 비스듬히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좌랑의 모습, 그리고 ‘나오는 사람들’에서 아이들 사이에 놓여 게처럼 집게발 흉내를 내고 있는 좌랑의 모습을 보면서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지요.
정 좌랑 =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때로는 아이처럼 아이들 가운데 있고, 아이들과 더불어 온갖 소동(!)을 벌이는 인물
그런가하면, 정 좌랑이라는 캐릭터를 마음에 들이는데 좌랑을 만난 공간, ‘검은섬’도 한 몫 했어요. 실제로 있는 두 섬을 배경으로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 낸 ‘검은섬’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왔거든요. 사람의 첫인상에 있어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장소, 공간배경도 중요한 몫을 차지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바다’라는 공간이 낯선 공간이에요. 잘 모르는 공간이면서, 알고 싶은 공간이지요. 가끔씩 가보고 싶다, 여겨지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공간에서 좌랑을 만난 거예요. 게다가 좌랑은 오래 전 이 땅 위에 진짜로 살았던 사람이라니, 짠 내가 물씬 풍기는 ‘검은섬’에 초대되어 특별한 누군가와 만나는 느낌이었지요. 작가가 놓아준, 시공간을 거슬러가는 다리를 건너 좌랑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 느낌이 좋았어요. 그렇게 ‘정 좌랑’이라는 캐릭터가 제 마음에 들어오게 됐지요.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오다, 라는 표현이 재미있네요. 자, 그렇게 마음에 들어온 ‘정 좌랑’이라는 캐릭터가 책 전체를 통해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한데요.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마주한 정 좌랑의 모습은 표지 그림하고는 또 좀 다르더라고요. 검은섬 포구에 겨우 닿은 뗏목에 서 있던 정 좌랑의 모습은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도 안 되는 얼굴에 ‘덩치는 아주 크고, 상투 튼 머리는 헝클어져 산발’이었으니까요(29쪽). ‘엉덩이 쪽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체면이고 뭐고 내던지며 빠꿈이 영감에게 밥을 얻어먹는 좌랑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어요. 빠꿈이 영감과 판소리를 주고받듯 노랫가락으로 풍랑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보면 참 별난 ‘서울 샌님’이 따로 없다, 싶지요.
하지만 그런 좌랑도 뭍에 두고 온 아들이 있는 아비라는 걸 몽돌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 돼요. 그 부분은 짠하지요. 좌랑은 청어 척추 뼈마디를 두고 한 내기 한 판을 비롯해서 표주박 편지 띄우기 사건을 통해 몽돌과 가까워지는데 몽돌 덕분에 도지지 않기를 바라던 ‘안 믿어 거꾸로 병’을 아예 제대로 실천해 보기로 결심을 해요.
‘물고기에 대해서만은 조선 땅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안다고 자부했는데, 여기 검은섬에서는 코흘리개보다도 못하다는 게 몹시 부끄러’워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믿지 않고, 거꾸로 뒤집어 보기로’ 하면서 ‘보고, 듣고, 만지고, 때로는 낱낱이 해부해서라도 물고기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알아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게 되지요(113쪽). 또, 좌랑은 ‘저를 책 속에 가두는’ 창해라는 아이를 만나 ‘급박하게 변해 가는 세상에 대해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던 차에 빠꿈이 영감 덕분에 魚遊堂(어유당:물고기와 노는 집)이라는 서당을 열고 몽돌, 창해, 갯돌, 파람, 육손이, 떠꺼머리 등 여섯 명의 아이들과 마음을 트고 만나게 되지요. 그림을 보면, 이때부터 좌랑의 머리가 산발을 벗어나게 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145쪽). 魚遊堂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로부터 배우면서, 좌랑은 본격적으로 <자산어보>를 향한 첫발을 떼요. 철목어(凸目漁), 즉 짱뚱어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고요.
검은섬 사람들에게 한 발 다가간 좌랑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책 속 한 줄을 써 먹어 사방에서 날치 떼가 날아오르도록 하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지요. 나도 모르게 좌랑과 같은 마음이 되어, 이다음 이어질 ‘검은섬에서의 하루하루가 무지무지 설레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되더라고요.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올 때 독자로서 느끼는 점과 작가로서 느끼는 점이 다를 것 같은데 어땠나요?
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일단 독자로서는 좌랑이라는 인물이 아이들 마음 곁에 있는 이상적인 선생/어른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었어요. 사실, 제가 날마다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에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어른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고민할 때가 많거든요. 참 오래된 고민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그 질문을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 곁에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서는 좌랑을 만나면서 새삼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어요. 그리고 좌랑에게 몇 수 배웠지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부라고 여기지 않고 아이들로부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좌랑의 모습에 반했어요. 좌랑의 고질병이라는 ‘안 믿어 거꾸로 병’은 ‘아, 나도 한 번 제대로 앓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좌랑의 눈썰미는 얼마나 대단한지, 몇 마디 말만 섞어보아도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짐작하고 자신이 곁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헤아려보지요. 그러나 좌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일방적으로 전해주지 않더라고요. 절대 서두르지도 않고요. 아이들이 온몸으로 겪으며,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기다려요. 자신도 그렇게 아이들로부터 배우고자 점차 스스럼없이 굴고요.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며, 아이들과 더불어 물고기 백과사전을 만들어 나가는 좌랑의 모습에 반할 수밖에요.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여 알고 있는 것도 많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하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게다가 알고 있는 지식을 써서 삶에 이롭게 하고자 놀라운 광경을 눈앞에 보여주기까지 하는 ‘훈장 아제씨’ 좌랑이니, 좌랑 같은 선생/어른이 곁에 있다면 아이들은 하루하루 즐겁게 자라나겠구나, 싶더라고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바라본 정 좌랑은 어땠나요?
우선은 작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래 된 역사 속 인물인 정약전이라는 사람을 이토록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숨결을 불어넣다니, 정말 작가가 많은 품을 들였겠다, 싶었어요.
앞에서 표지그림 이야기하면서 좌랑의 모습에 웃음이 나더라고 했잖아요? 검은섬에 나타난 좌랑의 모습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났었어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이야기가 참 맛깔나면서 구성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뭐랄까, 역사 속 인물인 정약전이 갖고 있었을 것 같은 진지함이라든지 깊은 탐구 정신 같은 것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가운데 새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몽돌을 만나면서, 창해를 만나면서, 좌랑의 깊은 내면이 드러나더라고요. 좌랑이 웃기고 재미있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 나름 가슴 속에 슬픔도 있고 깊은 고민도 품고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과정을 눈여겨보았지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건을 거듭할수록 좌랑이라는 캐릭터가 더욱 생동감 있게 마음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을 통해 좌랑이라는 캐릭터를 마음에 들이면서, 역사 속 인물 정약전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몹시 궁금해지더라는 거죠. 아무래도 좌랑의 캐릭터는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니, 실존했던 인물과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 넣은 작품 속 인물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 점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싶더라고요. 제가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이렇게 실존했던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작품을 쓴다면(솔직히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 대목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여러 가지 사건들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좌랑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한 장면이 궁금합니다.
표주박 편지를 띄우기 위해 좌랑이 몽돌을 데리고 벌집을 따러 갔다가 대소동을 벌이는 사건이 떠올라요. 긴장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이 사건, 읽으면서 몇 번이나 침 삼켰나 몰라요. 몽돌의 순박한 마음이 담긴 맛깔 난 사투리 때문에 깔깔 웃기도 했고요. 게다가 ‘벌침을 손쉽게 빼는 전복 껍데기 사용법’이라든지 ‘피를 멈추게 하는 홍합 껍데기 사용법’, 그리고 ‘밀랍을 이용한 표주박 구멍 틀어막기’ 같은 신기한 정보 때문에 눈이 ‘휘둥그레’ 떠지기도 했어요. 이 사건을 통해 몽돌과 갯바위에 나란히 앉은 좌랑이 몽돌의 손을 꽉 잡고 ‘안 믿어 거꾸로 병’을 제대로 실천해 보겠다는 아주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 장면이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약전과 함께 하는 바다 탐험대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 아직 언제 어떻게 끝날 지 알 수 없어요.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가 밝혔듯이 ‘바다 이야기는 계속될 거니까, 기대 왕창’하면서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좌랑이 아이들과 또 어떤 소동을 벌이며 <자산어보>를 완성해나갈지 무척 궁금해요.
<자산어보>가 완성되고 바다 이야기가 매듭지어지는 그 날, 독자들도 온전히 좌랑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제까지 한 이야기, ‘캐릭터 탐구 - 정 좌랑 편’은 미완의 이야기가 될 듯해요. 그럼에도 이 글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구석이 있었으면 좋겠고, 훗날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아, 갑자기 마구 떨려오네요. 너무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글쎄요, 그건 아마도 독자 분들이 판단하시겠죠? 아, 그 사이 『서울 샌님 정약전과 바다탐험대 2』가 나왔다고 하네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럼,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은데 이만 마치겠습니다. 살펴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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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아동문학 판에 발을 들였고, 『초코칩 쿠키, 안녕』을 냈다. 경북 구미 금오유치원에서 그림책과 더불어 아이들을 만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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