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종의 개조인 법안문익(法眼文益)의 문하 중에 현측감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감원이란 사원의 행정 일체를 담당하는 소위 부주지급 직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스승 문익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문익은 그 까닭을 물었다.
"현측아, 너는 여기 온 지 벌써 23년이 되었다. 그러데 어째서 한번도 나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지 않느냐? 무슨 까닭이라도 있느냐?"
현측이 대답했다.
"별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오라 실은 제가 여기 오기전에 청봉
의성(靑峰義誠) 선사한테서 받은 화두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하고 제가 여쭈었을 때 스승께서
는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런가, 그것 참 좋은 가르침을 받았구나. 그러나 너는 아직 그걸 알지 못하였구나."
그러자 현측은 이렇게 말하였다.
"병정(丙丁)은 오행(五行)에서 화(火)에 속하므로 모두 불(火)을 취급하는 신을 말합니다.
화신(火神)이 불(火)을 구하고 있는 것은 불(佛)을 구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불(佛)이란 자기를 말한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문익은 이에 대하여 긍정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구나. 너 따위가 알 리가 없지."
이 말을 들은 현측은 성내며 절을 뛰쳐 나왔다.
"이런 스승 밑에 있어봐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양자강을 건너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도중에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문익 선사는 많은 제자들로부터 스승으로 숭앙받는 사람이다. 어째서 그런 말을 했을까?
무슨 까닭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때 문익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현측이란 놈, 성내며 가고 말았으나 무척 아까운 놈이다. 혹여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현측이 다시 스승에게 돌아와 사죄했을 때 문익이 진심으로 기뻐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무슨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는가?"
"네, 불(佛)이란 대체 어떤 것입니까?"
문익은 숨도 쉬지 않고 한숨에 이렇게 말하였다.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
현측은 이때 비로소 두 번째의 깨달음을 얻었다. 두 번째의 깨달음이 진정한 깨달음이었다.
첫 번째의 깨달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에 의한 깨달음이다.
생활 속의 실제 체험으로 알아버린 것이 두 번째의 깨달음이다.
<碧巖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