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기산리岐山里 유래
[기산리岐山里 마을]
주위의 산이 아주 험하고 기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기아동의 기와 장파(산)동의 파(산)를 합하여 지은 이름인데 '파'는 언덕이요 '산'이다.
본래 영양군 북초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에 행정 구역을 고칠 때에 기아동과 장파동의 일부를 따다가 합하여 기산동으로 하였다.
[마을의 특징]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곡식이 잘 안 되지만 경치가 빼어난 게 보람이라 할 것이다. 밤나무와 걸림을 두어 볼 때 이 곳의 밤 생산이 넉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기산마을
주위에 산이 기이하고 산세가 험하여 약초와 산열매가 흔하다. 기아동과 죽파동의 이름 글자의 일부를 따다가 합하여 기산동이라 하게 된다. 수비면에 들게 된 것이 1914년 이다.(황봉래(51) 제보)
*느트지ㆍ느트지니· 회정이
마을은 마을 어구부터가 모두 느티나무로 덮혀 있다 해서 느티나무 터 곧 느트지라 부른다.(황봉래(51) 제보)
회정은 느티나무 정자를 한자로 뒤쳐서 적은 것이다. 더러는 느티나무 괴자를 써서 괴정이라 하는 마을도 많이 있다.
*밤나무둔지ㆍ율목ㆍ기아동
마을에는 밤나무가 울창하고 산새가 많은 곳으로서 옛날은 기아동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밤나무둔지라 한다.(김남우(58) 제보)
율목은 밤나무를 한자로 옮긴 것인데 밤나무는 먹거리 자원으로서의 주요한 자리를 갖고 있었다.가령「삼국유사」의 원효 부분을 보면, 사라수라 하여 밤나무에 얽힌 일화가 전하여지고 있는데, 온나라의 마을에는 밤나무와 걸림을 보이는 마을 이름이 많이 있다. 여가 사라는 살-쌀을 뜻함이니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실상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의 주된 먹거리라 할 밥도 밤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밤이란 껍질을 벗겨 먹는 열매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소리가 발달하는 고정을 생각하면 밤-밥을 상정할 수 있으니 밤이란 열매는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운 먹거리였음에 틀림 없다.
*삼귓골ㆍ삼구
이 곳에 산의 모양이 거북등처럼 생긴 세 곳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산이 이 마을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거북 신앙에서 말미암은 것이다.(홍성호(57) 제보)
「삼국유사」를 보더라도 거북신앙에 대한 것은 아주 오래 되었다고 하겠다. 이르자면 거북 설화가 나오는 구지가 곧 거북 맞이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거북이는 물과 뭍에서 산다. 이름하여 물과 땅에 신격을 부여하고 이를 상상하는 지모신의 섬김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하긴 김수로왕도 금수로요. 이는 금의 머리 곧 거북의 머리라는 뜻이 된다. 시대를 거슬러 오르면 이는 곰신앙과도 무관하지가 않다. 이는 우리의 조상신이 곰이라는 토템에 바탕을 둔 것이요. 수렵문화 시기를 대표하는 표상이기도 하다.저시이 곳은 골짜기가 깊으며 땅으로서 거름지지 않으므로 곡식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고기환(49) 제보)
글자로 보면 지대가 낮고 골이 깊어서 붙인 이름이 아닌가 한다.
*중기산
기산골 전체로 보아 중간에 자리하였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인심이 좋고 산수가 빼어나며 자연석 곧 수석이 나는 마을이다.(김덕화(47) 제보)
기산의 기는 산갈래 기인데 일월산맥이 이 곳에서 갈라져 내리는 모양을 보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피박골
농토가 매우 되져서 다른 곡식은 잘 안 되므로 주로 피를 심어서 이를 먹거리로 하였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김덕화(47) 제보)
피 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이 같다는 말이 있다. 고려 때의 문헌인 계림유사를 보면 보통 때의 먹거리로는 흰 쌀을 제한하였으며, 피쌀을 주요한 먹거리로 삼아 살와 왔음을 알 수 있다. 피밭의 밭의 소리가 약해져서 앝으로 소리를 내어 피앝골 혹은 피앗골이라 하는 마을도 있다.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지만 지리산의 피아골도 피밭골의 소리가 약화되어 떨어져 나간 뒤에 피아골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피밭의 소리가 바뀌어 피박이 된 것이다.
[출처:영양군청홈페이지, 영양군지]
(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00, 176) 영양읍 기산리(岐山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바께, 대깨, 엄체, 밤낭구, 디게, 등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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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岐山)는 산(山) 쭐기가 대깨(5~6개)로
갈라지는 데라꼬 기산이라 카기도하고.
마실 근바 산(山)이 디게 험하고
기이하다 케가 기산이라꼬 카기도 하니더.
본래 영덕군 북초면(병곡면) 땅이었찌만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기아캉 장파(수비면 죽파) 일부를 엄체가
기산(岐山)이라 카고
영양군 수비면(首比面)에 속하게 된니더.
그후, 1987년 1월 1일에는 수비면에서
영양읍(英陽邑)으로 행정구역이 바께가
영양읍 기산리(岐山里)가 된니더.
(기아ㆍ밤나무둔지ㆍ율목)
산 줄기가 갈라지고 산새가 디게 좋타꼬
기아(岐兒)라 카다가
밤낭기 쌔배따꼬 밤나무둔지라 카니더.
율목(栗木)은 밤낭구 둔지를 한자로 쓴거시더.
(느트지ㆍ느트지니ㆍ회정)
마실 입새부터 느티낭구로 덮패져 있따꼬
느티낭구터 혹은 느트지라 카다.
마실입구에 느티낭구 정자(亭子)를
맹글고 부터는 회정(檜亭)이라 카니더.
회정(檜亭)은 느티낭구 정자(亭子)를
한자로 쓴거시더.
(삼귓골ㆍ삼구)
산 모양이 거북 등따리 가꺼러 생긴데가
시곳(세곳)이 있다꼬 삼구(三龜)라 카니더.
(저시)
땅은 황무지고 꼴짝은 찔따 한데로
곡식은 디게 안되는 데시더.
디게 어려운 서민들이 모데가 살던데라꼬
저시(低市)라꼬 카기도하고
지대가 낮고 골이 찔따라타꼬
저시(低市)라 켔타 카기도 하니더.
(중기산)
기산골 전체로 봐가 중간쯤에 있따꼬
중기산(중岐山)이라 카니더.
여는 전국 유일의 폭포수석이 나는데시더.
(피박골)
농토가 디게 척박 해가꼬 피를 심가
먹꺼리로 했따 케가꼬 피박꼴이라꼬 카니더.
피박꼴은 피밭꼴이 바껜 거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