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의 내력 외1편
박병렬
초가집 한쪽 기둥에 박힌 옹이 진 대못이
줄 하나 입에 꽉 물고 녹물을 쏟아내고 있다
마당 가장자리에 계절의 책장을 넘기는 밤나무는
서물서물 기어온 줄 하나 몸에 칭칭 감고 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를 붙들어 매지만
한 시름도 걸어둘 수 없는 바람이 된 그 줄
아무리 팽팽하게 당겨 동여매어도 출렁인다
다시 잡아당겨 매어도 빗물 고인 천막처럼 축 늘어진다
마당 깊은 집*
하루는 아버지 기침 소리 머물다 돌아가고
하루는 어머니 한숨 소리 쉬었다 돌아가는데
우리 집 밥상은 사계절 말없이 걸려만 있다
어쩌다 쌀 한톨 생기면
아침이 물을 길어 와 밥을 짓는다
뜸이 들 때쯤 분사기 같은 연기가
어머니 얼굴에서 밥꽃으로 아롱진다
느티나무같이 울창한 산을 쪼개서 지게에 지고
돌덩이 같은 감자를 광주리에 담아 이고
비탈진 고부랑길 쉬지도 않고 내려오던 그 길이
장터 광대 손에서 펄럭이는 부채의 흥정으로
통통 배가 부른 도루묵의 비릿한 바다 냄새로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던 그 사랑, 그 손길,
살아간다는 것은 바람 등지고 외줄 타기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외줄 위에서
밭은 기침소리로 세상을 건너오신 내 어머니, 아버지
그 중심에서 우리들의 키는 날마다 한 뼘씩 커 갔다
*김원일소설가의 작품 명.
추억은 소금처럼 짜다
박병렬
고향 집 추녀 밑
소금항아리 뚜껑 벗기면 어머니 냄새 살아나고
정성껏 싸맨 하얀 무명천은 어머니 가슴처럼 따뜻하다
묵을수록 약이 된다는 처방전 같은
또 담아오자는 아내의 거듭되는 말에
나는 가재미처럼 눈을 흘겼다
뙤약볕에 그을리고
수레에 치이고
광주리에 눌려
솜털 같이 가벼워진 어머니의 몸
할머니 때부터 가풍으로 내려오던 장독
바닥이 어머니 맨몸처럼 드러날 때
어머니 얼굴은 소금같이 하얘졌다
설탕인 줄 알고
몰래 한 움큼 입에 넣던 어린 시절도
어머니의 하얀 알사탕 같은 사랑도
이젠 어머니의 야윈 몸처럼
빈 항아리만 웅웅 바람소리를 낸다
* 박병렬 약력
2015 제4회 '세계안보문학축전' 시부문 입상
한림대학교 커뮤니티교육원 시창작반
법무부 보호사무관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