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에 대한 이런 정도의 개괄적 뜻풀이만으로는 '바른 견해'를 갖기에 부족하다. 바른 견해를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첫째, 업에는 윤리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선업과 불선업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둘째, 구체적으로 무엇이 선업이고 무엇이 불선업인지를 아는 것,
셋째, 이런 업이 솟아 나오게 되는 근원적 뿌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경에 나오듯이 "고귀한 제자가 무엇이
불선업인지를 알고 그 불선업의 뿌리를 알고, 또 무엇이 선업인지를 알고 그 선업의 뿌리를 알면, 그는 곧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1) 이런 점들을 정리해 보면 먼저, 업은 불선한 (akusala) 것과 선한(kusala) 것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선업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정신적 계발에 방해가 되는 것, 나와 남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반면에 선업은 도덕적 면에서 권장할 만한 것, 정신적 계발에 도움이 되는 것, 나와 남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2)선·불선, 이 두 가지 경우 각각에 해당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요한 것을 열 가지씩 선택하여 이를 열 가지
불선업 및 열 가지 선업이라 부르셨다.
이 열 가지 중 세 가지는 몸으로, 네 가지는 말로, 그리고 나머지 세 가지는 뜻으로 짓는 업이다. 열 가지 불선업의 과정을 그것이
표출되는 문(門)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업(kayakamma)
1. 생명을 해침 [殺生]
2.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함 [偸盜]
3. 감각적 쾌락 면에서의 그릇된 행위 [邪淫]
구업(vacikamma)
4. 거짓말 [妄語]
5. 말전주 [兩舌]
6. 거친 말 [惡口]
7. 쓸데없는 말 [绮語]
의업(manokamma)
8. 탐심 [貪]
9. 악의 [瞋]
10. 그릇된 견해 [癡]
이 열 가지 불선업에 반대되는 것이 바로 열 가지 선업이다. 다시 말해 살생에서부터 쓸데없는 말까지의 일곱 가지 불선업을 짓지 않고 탐심과 악의에서 헤어나고, 바른 견해를 견지하는 것, 이 열 가지가 선업이다. 설령 앞의 일곱 가지 불선업을 짓지 않으려는
생각이 오직 마음에서 그칠 뿐 명백한 외적 행위를 수반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신체적, 언어적 선업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런 마음상태가 몸과 말의 기능을 제어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3) 업은 앞에서 '뿌리(mula)' 라고 부른 그 기저 동기에 입각해서 선과 불선으로 구분되며, 이 기저 동기에 따라 이에 수반되는
의욕의 도덕적 성질이 달라진다. 그래서 업은 그 뿌리가 선한지 불선 한 지 여하에 딸 선한 것이 되기도 하고 불선한 것이 되기도 한다. 선업과 불선업의 뿌리는 각각 세 갈래이다.
불선의 뿌리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탐욕(lobha), 진에(dosa), 치암(moha)의 세 가지 번뇌이다. 이들 번뇌로부터 비롯된
행위는 모두 좋지 못한 업이 된다. 세 가지 선의 뿌리는 이와 반대의 것으로 옛 인도 어법대로 부정 접두사 'a [無]'를 붙여
무탐욕(alobha), 무진에(adosa), 무치암(amoha)으로 표기되는 것들이다. 이 세 가지가 어휘상으로 부정적 형태를 띠고 있어도
그것은 이 세 가지 번뇌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수반되는 덕성까지도 포함한다.
'무탐욕'은 (욕심)버림 [出離], 초연함, 관대함을 내포하고 '무진에'는 자애, 연민, 친절을 , 그리고 '무치암'은 지혜를 내포한다.
이 세 가지 뿌리에서 나오는 행위는 어떤 것이든 선한 업이 된다.
첫댓글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바로 선업이다. 감사합니다()()()
1.윤리적으로 선업과 불선업의 구별
2.구체적으로 선업과 불선업을 아는 것
3.선업과 불선업의 뿌리를 앎
이것이 곧 비른견해이다.
감사합니다()()()
선업과 불선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뿌리를 알아
바른 견해로 나아갑니다()()()
감사합니다
바른 견해로 나와 남에게 이로움이 있기를()()()
바른 견해로 정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