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6 부흥을 기대합니다
김연숙 씨가 쓴 ‘흔들리는 신앙, 붙들어 주소서’라는 글에 22년 동안 미국 이민 교회에서 108번 교회를 옮긴 장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1년에 약 다섯 번 정도, 평균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바꿨습니다. 그분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 등 108개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장례식이 문제였습니다. 명색이 장로인데 섬기는 교회가 없으니 장례식을 집례해 줄 목사와 교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한 분이 나타났는데 죽기 전 108번째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집례해주었습니다. 만약 그분이 천국에 올라가 주님 앞에 보물처럼 여긴 108개 교회의 허물을 기록한 두툼한 노트를 펴놓는다면 우리 주님은 좋아하실까요? 어쩌면 그 사람의 허물이 적힌 수만 권의 책을 보여주시지 않을까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란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완전한 교회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은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이나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본을 보여준 교회를 닮기 위해 기도하며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줄 믿습니다.
희망은 가장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 희망의 별은 가장 빛나는 법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살맛도 없습니다. 북한 체제에 희망이 없으니 목숨 걸고 탈북합니다. 희망이 없으면 자살도 합니다. 반면, 사람이 희망이 있으면 젊어지고, 인생이 아름다워집니다. 어떤 장애물도 두렵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희망이 있으면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희망이시니 자연에도 희망이 넘칩니다.
낮이라는 희망, 봄이라는 희망, 밀물이라는 희망, 양지라는 희망, 아침이라는 희망, 정상이라는 희망, 오아시스라는 희망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자연에도 희망을 담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희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희망 이야기로 더욱 넘쳐납니다. 모든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향하여 갈 때 구원의 길을 준비하여 준 희망 이야기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죄인에게 구원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를, 가난한 자에게는 부요를 약속하신 따뜻한 복음입니다.
빈 배가 두 배 가득한 희망이, 흉년 가운데 100배 결실을 얻은 희망이, 종 생활 가운데도 함께하여 형통한 희망이, 감옥 생활 가운데도 만남을 통한 희망이, 타국에서 국무총리가 되는 희망 스토리도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희망이 넘칠 거리는 내용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희망이 가득해야 합니다.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것은 우리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희망을 항상 노래해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절망을 보지 않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위기(危機)”라는 단어를 만들 때 ‘위험’과 ‘기회’를 합하여 위기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위험도 하나의 기회가 된다고 위험에서도 희망을 본 것입니다. 서양에도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 두 마리가 깊은 우유 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힘껏 뛰어올라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한 마리는 몇 번 애써 보다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여 우유 통 속에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구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통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두 뒷다리를 움직여 계속 헤엄쳐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유는 어느새 굳어져 버터가 되었습니다. 그 개구리는 단단한 버터를 도약판 삼아 무사히 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 욥기 38장 14절을 보면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욥 38:41) 사랑받지 못한 부정한 까마귀, 힘조차 없는 새끼 까마귀, 그를 위해 먹잇감을 준비하여 먹이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배고픈 까마귀 새끼에게는 하나님이 희망입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눅 12:24)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까마귀를 생각해 보면 희망이 넘치고 들에 핀 백합화를 생각하면서 희망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까마귀보다, 백합화보다 더 소중하여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들이니, 더 귀한 존재들이니 하나님께서 더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닮은 시인들은 자연 속에 담아 둔 희망을 찾아 시를 씁니다. 담쟁이를 보고 희망을 노래하고, 별을 보고도, 아침 이슬을 보고도, 상록수를 보고, 어떤 이는 폐수를 통해서도 희망을 발견하여 희망의 시를 씁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입니까?
성도 여러분, 무덤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희망이 넘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절망적인 상황 자체를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처럼 보일 뿐이지 마지막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어 목말라 죽을 거 같아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반석에서 물을 주시는 희망의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이 찾아와도 그게 끝이 아닙니다. 아침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새 아침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지진이나 태풍이 지나가도 끝은 아닙니다. 지진이 지나간 땅에도 샘은 솟고 태풍이 불었던 들에도 꽃은 피는 법입니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 부활은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었습니다.
♪파도여 잠잠하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희망이시니 교회가 희망입니다.
방주가 되어 영혼을 살리는 곳이니 교회가 희망입니다. 영혼을 많이 건져 살리는 교회는 희망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회 부흥,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영혼 구원과 부흥성장의 주체가 되시고 그것을 위해 능력까지 주시고 역사하시니 교회 부흥성장은 반드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부흥합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3)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6-7)
커서 나무가 되고, 전부 부풀게 하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부흥성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성장의 자원이 되는 불신 영혼이 세상에 아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고기 반 물 반이라고 할 만큼 한국에는 아직도 불신자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므로 영혼 구원과 교회 부흥성장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눅 10:2)
우리는 절망과 희망 사이에 분명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절망이고 가까이 오면 희망입니다.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면 두렵고 절망스러울 수 있지만,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만 바라보면 희망이 넘칩니다.
20세기 부흥 운동가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님에게 어느 날 교인 한 분이 찾아와서 목사님, 저는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때 목사님이 그 교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에 원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바로 여기에서부터 부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 원 안에서 부흥이 일어난다면 당신도 당신 가정도 당신의 교회도 당신의 민족도 놀라운 부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부흥은 기도로부터, 기도하는 나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흥을 원하십니까? 진정한 부흥을 원하십니까? 먼저 부흥을 기대하고 기도합시다.
개인이든, 교회이든 부흥은 기도부터입니다. 나부터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신앙, 사업, 직장, 자녀들의 부흥을 기대하며, 우리 시대 부흥을 기대하며 말씀 붙잡고 기도부터 하시길 바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하 5:10)
점점 강성, 강대해집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점점 축복하시고, 점점 좋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 8:14)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니 이깁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이기게 하십니다. 강성하게, 부흥하게 하십니다.
부흥을 원하시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이김을 원하시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나에게 생수 부으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