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識viññāṇa
다음으로, ‘제행이 있으면 식識이 있다.’입니다. 식은 한문으로 ‘알 식識’이지요. 빠알리어로는 윈냐아나viññāṇa인데, 위vi는 ‘분리, 구분, 떨어짐, 쪼갬’이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나야나ñāṇa는 ‘앎’이라는 말입니다. 윈냐아나는 ‘구분하여 아는 것, 분별하여 아는 것’이지요. 무엇과 무엇을 구분하여 그 차이를 통해 인식하는 앎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그릇이고, 이것은 마이크다.’라 할 때, 우리는 사물의 특성이라는 차이에 따라 그 물체를 인식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소리다. 이것은 빛이다’ ‘희다, 검다’ ‘짜다, 맵다’ 다 차이에 의한 지각 아닙니까? 차이를 통해 구분함으로써 아는 능력, 그게 ‘식’이라는 말입니다.
윈냐아나viññāṇa는 이처럼 나와 너, 유와 무, 시간과 공간, 즐거움과 괴로움 등으로 구분하여 그 차이로써 사물을 구별하면서 아는 것입니다. 차이에 기초해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식입니다. 또한 위 vi°는 ‘결여됨, 부적절함, 낮음, 잘못됨’ 등의 함의도 있는데, 그 뜻을 적용할 경우 윈냐아나는 ‘결여된 앎, 낮은 앎’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앎도 여러 수준이 있는데 그중에서 윈냐아나, 식은 낮은 수준의 앎에 속한다는 겁니다. 식識. 윈냐아나가 낮은 앎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짓거리가 천박하여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윈냐아나의 특색은 개체화, 개별화입니다. 식은 ‘나, 내 것’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장본입니다. 윈냐아나는 나와 남을 구분하고, 그뿐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윈냐아나는 온전한 앎, 일체로서의 앎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식識과 상想이 함께 작용하는데 이 둘에는 차이가 있지요. ‘나, 내 것’ 할 때는 주로 식, 윈냐아나가 활동하고, ‘우리, 우리 것’ 할 때는 상, 산냐saññā가 주로 활동합니다. 산냐는 과거의 경험을 통한 사회적, 공동체적 앎입니다. 다시 말해 산냐는 어떤 문화권에서 공유된 개념을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오온五蘊에서 수·상·행은 식과 함께 어울려 일어납니다. 수·상·행이 기능하려면 근본적으로 식이 작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식은 상보다 근원적이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식과 상이 함께 작용하지만 상보다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식입니다.
첫댓글 윈냐아나는 나와 남을 구분하고, 그‘나를 중심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
법보시 감사합니다
차이를 구분하여 인식하며 '나 내것'은 주로 식
과거 경험을 통한 사회적 공통체 적인 앎으로 '우리 우리 것'을 할 때는 상. 감사합니다()()()
식은 구분하고 분별하여 차이를 통해 아는 것.
상은 과거의 경험을 통한 사회적, 공동체적 앎
법보시 감사합니다()()()
산냐는 사물의 차이를 아는 것이고, 과거의
경험을 통한 사회적, 공동체적 앎이다.()()()
오취온을 해체하여
'나', '내 것'이라는 분별을 알아차리고
지혜로 마음을 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