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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
주폭(酒暴)과 일진(一陣)은 ‘패륜(悖倫)의 형제’ 옥형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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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상의 해악(害惡)을 차치하고 라면 술만큼 좋은 음식은 없다고 한다. 물론 주당들의 이론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와 좋은 마음으로 마시고 좋게 삭여야 하는 것이 술이다.
젊었을 때는 술 많이 마시는 자가 영웅인양 으스대던 시절이 있었다.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하기 전, 커피타임의 화제는 단연 지난 밤 술자리의 뒷얘기였다. 누구와 몇 시까지 마셨네, 몇 차까지 마셨네, 몇 십 병을 마셨네, 술 값이 몇 십 만원이었네 하며 호기를 부렸다.
나 또한 타고난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력(酒力)으로 주웅(酒雄)중에서도 상위 급이었다. 그런 술값을 충당하기 위해 월급봉투를 이중으로 작성해 가며 마누라의 눈을 속이고 일정금액을 떼 내기도 하였다. 월급의 계좌입금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가능했지만 들통이 나면 둘러대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 그런 건 낭만이었다. 술에 취해 밤거리를 누비고 다녀도 폭력은 없었으니까. 그런 낭만이 오늘 날 우리로 하여금 술에 대하여는 관대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인가 보다.
술 먹고 한 짓을 탓하는 것을 우리는 금기시 했다. 취해서 그랬다는데 뭐 그런 걸 가지고 쪼잔 하게 따지냐고 오히려 핀잔이다. 엄청난 추태를 부리고도 다음 날 “죄송합니다. 너무 취해서, 필름이 끊겨서,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변명 한 마디면 우리는 “괜찮아. 술 마시면 다 그렇지 뭐. 술 먹으면 개라고…” 이러면서 그를 용서하고 만다.
술은 안정된 사람이 마시면 낭만이지만 절제를 모르는 꼬인 사람이 마시면 주폭이 되는 것이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는 이치다.
요즘 신문의 머리기사는 온통 주폭(酒暴)아니면 일진(一陣)문제로 도배를 하고 있다. 날마다 시리즈로 엮어가고 있다. TV뉴스를 틀어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우리의 음주문화와 학교폭력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문제의 심각성이 최악에 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술에 취해서 가정에서 또는 지역사회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주폭이며 학교에서 동급생이나 하급생에게 집단 따돌림을 주고 집단 괴롭힘을 가하는가 하면 스승에게도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학생집단이 일진이다.
한 가정의 행, 불행의 열쇠를 쥔 사람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가장이며 한 가정의 미래는 자녀들이다. 이들이 건전한 생활을 하고 바르게 자라는 것이 한 가정의 행복이요, 희망이며 미래가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는 주폭(酒暴), 아들은 일진(一陣)이라면 그 집구석이 어떻게 되겠는가?
주정뱅이 가장이 한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듯이 주폭이 넘쳐 나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비행 청소년이 한 가정의 미래를 꺾어 놓듯이 일진과 그로인해 시달림 받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 민족의 미래 또한 없을 것이다.
이러니 주폭과 일진은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양대 축으로 패륜의 형제 내지는 패륜의 부자(父子)라 할 것이며 이들의 사회악은 어느 쪽이 좀 더하고 덜하다고 구분할 수 없는 난형난제(難兄難弟)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회 문제이며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시급함인 것이다. 옛날의 순박한 우리 여인네들은 주정뱅이 남편에 시달리면서도 가문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하여 묵묵히 인내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국제결혼의 시대다.
결혼이주 여성의 코리안 드림이 남편의 음주폭력으로 무너지면 한국을 혐오하고 한국을 외면하며 친정(母國)에다 일러대니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잠정 금지하는 나라도 생겼다고 한다. 이 어찌 국제망신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곧 국제사회에서 선진한국의 위상을 무너뜨리고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선(善)이 선을 낳고 악(惡)이 악을 낳는 법이다. 주폭 가장의 가정에서 어찌 자녀들이 건실하기를 바라겠는가. 왕대밭에 왕대 나고 시누대밭에서 시누 대 나듯 주폭 가정에서 일진이 나지 않을까하는 것이 결코 우려가 아닐 것이다.
부부치료 전문가 박성덕 박사는 ‘부부의 풍경이 곧 가족의 풍경’이라고 정의 했다. 좀 더 진행시켜 보면 가족의 풍경이 곧 사회의 풍경이고 사회의 풍경이 곧 나라의 풍경이란 말로 이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부부관계가 좋아야 가정이 화목하고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가족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각자의 일에 성실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고 나아가 국가 전체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장차 세계를 이끌 엘리트 국가 반열에 점점 다가가고 있으며 반세기 안에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아탈리는 말했다.
그는 아마 한국의 외형만 보았지 내부의 주폭과 일진의 실상을 보지 못한 탓에 이런 오진(誤診)을 내 놓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의 진단이 결코 오진이 되지 않도록 곯아 들어가고 있는 우리 내부의 퇴폐한 음주문화로 인한 가정폭력과 패륜에 가까운 학교폭력을 하루 속히 떨쳐 내는데 참여하고 앞장서야 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번지기 전에…(재경향인. 연초면천곡출신.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수필가협회, 거경문학회, 서울시우문학회 회원. 산림문학회 이사. 주식회사 3S회장. 의령옥씨대종회 회장)
첫댓글 새겨들을 대목들입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