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구도로 도솔천궁을 묘사한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칠장사 괘불은 길이 6.56m, 폭 4.04m 크기로 구름을 이용하여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었다.
맨 윗부분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과 노사나불이 좌우에 모셔진 삼신불을 묘사하고 있고, 중간은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여러 보살들이 있어 삼세불을 표현하였으며, 맨 아래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그려져 수미산 정상의 도솔천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3단 배치는 예배자들에게 삼신불과 삼세불의 세계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게 하고,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구원으로 도솔천궁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괘불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다.
채색은 녹색을 주로 하고 황색과 황토색을 대비시켜 다소 어두워 보이나, 옷 처리를 붉은색으로 하여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이 괘불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법경(法烱)이 그린 것으로 괘불함 없이 종이에 싸서 대웅전에 보관하고 있다. 이 괘불에서 보이는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등은 당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17세기 전반의 불화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석가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안심사에 있는 이 괘불은 길이 7.26m, 폭 4.72m의 크기로,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여러 무리들과 석가를 호위하는 사천왕상 등이 대칭적으로 배치된 형식이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을 걸치고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하고 중앙에 앉아있다. 길어진 팔과 손의 처리 등 세부적인 표현은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각진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해 근엄해 보이며, 전체적인 신체비례는 안정되어 있다. 광배에 있는 화려한 꽃무늬장식은 석가불을 강조하며 돋보이게 한다. 위로 갈수록 석가 주변의 무리들을 점점 작게 묘사해 상승효과를 나타내었다. 채색은 주로 홍색과 녹색을 사용하였는데 두텁게 칠해 밝은 느낌을 주지 못하며 부분적으로 덧칠을 한 흔적도 보인다.
조선 효종 2년(1652)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청주의 보살사 괘불이 조성된지 3년 후의 작품으로, 구도상 비슷한 점이 있어 17세기 중엽 충청지역의 불화연구에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진리를 설법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그림은 길이 12.47m, 폭 9.48m의 크기로 전체적으로 상·중·하 3단 구도를 이루고 있다. 맨 윗부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이 배치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비로자나불, 석가, 노사나불 등 삼신불을, 맨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 사천왕상, 사리불 등이 묘사되어 있다.
가운데부분의 비로자나불은 등뒤로 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둥근 얼굴에 두 어깨를 감싼 옷을 걸치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큰 얼굴과 큼직한 손에 비해 몸은 다소 왜소하며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이 넓은 모습이다. 비로자나불의 왼쪽에 있는 노사나불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쪽의 석가불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의 손모양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은 기둥처럼 솟은 특이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
맨윗부분은 붉은 색의 두광을 가진 관음·세지보살과 십방제불, 나한 등이 화려한 빛깔의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천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비교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맨아래부분은 사천왕과 문수보살·보현보살, 사리불이 배치되어 있다. 채색은 녹색, 홍색, 황색과 같은 중간 색조와 금으로 채색하여 화면전체를 밝고 화려하게 나타내었다.
이 괘불은 효종 원년(1650)에 제작되었는데 중단의 삼신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또한 그림에 괘불 조성에 필요한 많은 물품의 시주자를 적어놓고 있어 17세기 중반의 생활상과 사찰의 재정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하여 노사나불이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길이 11.18m, 폭 6.88m 크기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이 단독으로 중생을 설법하는 모습으로,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다. 단독으로 그려진 노사나불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녹색과 홍색, 분홍색 등을 이용하여 옷을 표현하였고, 5가지색으로 빛을 형상화하여 주변 배경을 표현하였다. 중심 불상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물건과 두광이나 옷색의 차이 등을 이용해 10대보살들을 표현하고 있다. 보살 위의 10대제자들은 서로 다른 얼굴 방향과 표정, 각기 다른 옷과 물건, 자연스러운 동작과 모습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인조 22년(1644)에 제작된 이 괘불은 짜임새있는 구도, 섬세한 표현, 밝게 표현된 색조 등이 세련된 솜씨로 표현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화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용화수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장곡사에 있는 이 그림은 가로 5.99m, 세로 8.69m로 미륵불을 화면 중심에 두고 6대 여래, 6대 보살 등 여러 인물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인 미륵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머리에 4구의 작은 불상이 있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풍만하고 살찐 모습으로 유난히 긴 팔과 커다란 상체를 가지고 있다.
좌우에 있는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머리에 둥근 두광이 있고 각각 두 손을 맞잡은 손모양과 어깨높이까지 두손을 들어 올려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여래와 보살들은 각기 상징하는 물건들을 들고 있으며 10대 제자는 두손을 모아 합장한 자세로 방향이나 표현을 달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채색은 붉은 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 연록색, 주황 등의 중간 색조를 사용하여 밝은 화면을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조선 현종 14년(1673) 철학(哲學)을 비롯한 5명의 승려화가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미래불인 미륵을 본존으로 삼고 있지만 그림의 내용은 현세불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것으로 등장인물들과 배치구도가 독특한 작품이며 경전의 내용과도 다른 점이 있어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많은 작품이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둘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손가락을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길이 10.4m, 폭 6.4m 크기의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는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모습에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람하게 표현되었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은 중후하게 묘사하였는데, 가슴을 과감히 노출시킨 점이 눈에 띈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석가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 하늘색, 연분홍색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 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조선 경종 2년(1722)에 승려화가인 의겸(義謙) 등이 참여하여 제작된 이 괘불은 석가불,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예천 용문사의 괘불도와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라 보여져 불교회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매우 가치있는 작품이다.
석가의 모습이 단독으로 그려진 괘불로,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의 대상으로 사용하던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그림은 가로 4.5m, 세로 9m의 크기로 거대한 화면에 꽉 차게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석가의 모습을 그렸다. 석가는 보살처럼 화려한 장식을 하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다.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이목구비는 작고 가늘지만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우람한 체구와 좌우로 벌린 발이 인상적이다. 녹색과 붉은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옷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둥근 장식과 꽃무늬들은 이 그림을 한층 더 장엄하고 정교해 보이도록 한다.
조선 영조 1년(1725)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약간 바래지고, 떨어져나간 부분도 있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화려한 보살모습을 한 석가모니불을 그린 당대를 대표하는 괘불로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화면 구성은 석가불을 중심으로 한 하단과 노사나불과 아미타불이 있는 상단으로 구성된다. 사각형의 광배를 한 석가불의 주위를 팔대 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등이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대좌 아래에는 사리불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있다. 상단에는 아미타불과 보살처럼 화려한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사래보살에 의해 둘려 쌓여 있다. 아미타불과 노사나불 사이에는 보탑을 두어 화면을 구분하고 있다. 보탑 위로 반원형의 큰 광배 안에 9구의 보살을 중심으로 천상세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숙종 36년(1710)에 그려진 이 괘불은 석가불이 그려진 하단 단독으로도 영산회상도를 묘사할 수 있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며, 상단과 합쳐서는 삼신불을 간략하게 표현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간략화한 구성 방식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는 방법으로 이 괘불은 이런 구성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다.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괘불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있어 보인다.
이 그림은 효종 9년(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화를 말하며, 영산회상도는 그 중에서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보살사영산회괘불탱은 길이 6.13m, 폭 4.26m로 삼베 위에 그린 것이며,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녹색·황색 등 중간색을 넣어 밝은 화면을 보여준다. 남아 있는 글을 통해 조선 인조 27년(1649)에 경기도·충청도 등지에서 활약했던 신겸, 덕희, 경윤 등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중앙에 앉아 있는 석가모니 본존불은 사각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근엄하고 엄격한 표정을 지니며 당당한 신체에서는 중후한 모습을 풍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며, 오른손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하단의 8대보살, 중단의 10대제자 등은 석가불 주변을 빽빽하게 에워싸며 좌우대칭의 구도를 보이고 있다.
본존불의 얼굴이 또렷하고 신체가 당당하여 화면을 압도하는 듯하며, 선명한 색채·화려한 문양·석가를 둘러싼 무리들의 세밀하고 단아한 묘사로 당대 불화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리불과 8대보살·10대제자·제석천·범천·사천왕·금강역사 등의 신중들과 사방불이 겹겹이 에워싼 군도형식이다. 거신형 광배를 한 채 수미단 위에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의 자세를 취한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주는 석가불은 방형의 얼굴에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이며, 옆으로 퍼진 육계에 반달형의 중간 계주가 크게 묘사되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은 가슴을 넓게 드러내어 승가리의 묶음이 마치 하의를 묶은 것 같이 보이며 두광은 녹색을, 신광에는 보상당초문 등 화문들로 꽉차게 치장하여 본존불을 강조시키고 있다.
하단에는 청문을 하는 사리불과 더불어 문수·보현보살,관음·대세지보살 등 팔대보살이 제석·범천과 함께 배치되고, 중단에는 10대제자와 3구의 금강역사들이 2∼3겹씩 에워싸고 있다. 상단에는 용왕과 용녀, 야차와 건달바, 십방제불(十方諸佛)들로 배치되었다. 이 괘불도는 여러 권속들이 배치된 틀에 박힌 좌우대칭 구도를 보이고 있는데, 본존불은 방형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근엄하고 신체가 당당하여 중후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손과 팔이 도식적이나 이러한 면은 밝고 선명한 채색, 화려한 문양과 기타 권속들의 세밀하고 단아한 묘사로 보완시키고 있다. 즉, 석가불이 압도하는 화면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사는 경기도와 충청남도 일원에서 활약한 신겸·덕희·경윤 등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쓰이는 대형불화를 말하며, 이 불화는 보살 형태의 단독상을 화면 전체에 꽉 차게 그려 넣은 것이다.
보살상은 양 손으로 꽃가지를 받치고 서 있는 모습으로 상체를 크게 묘사한 반면 하체는 짧게 나타냈다. 머리에는 산(山) 모양의 화려한 장식이 달린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네모진 얼굴을 하고 있다. 양쪽 어깨를 감싼 옷은 다양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하여 큼직하게 그렸다. 몸광배 안에는 꽃무늬, 구름무늬 등을 그려 공간을 채우고 있는데 옷의 화려한 무늬들과 어우러져 부처님 세계의 정경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광배 위쪽으로는 구름이 감싸고 있고 화면의 가장 윗부분은 흰 광선이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걸쳐져 있다.
전체적인 비례가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묵중하고 중후한 느낌을 보여주며 다양한 문양과 장식, 밝고 선명한 원색과 중간색을 적절히 사용하여 화려하고 밝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참여한 많은 인물들과 함께 법주사 창건 배경과 당시의 불교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이 남아 있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품이다.
※ 법주사 대웅보전 보수공사로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임시 이관함(2002.5.30∼2005.12.30)
이 괘불도는 보살형태의 단독상만이 화면전체에 꽉차게 배치된 전형적인 독존도 형식으로 화려한 보관을 쓴 채 꽃가지를 들고 있으며, 큼직한 원형 두광과 거신형 신광에는 화불들이 배치되어 있다.
신체는 상체를 크게 묘사한 반면 하체는 짧게 하여 전체적으로 비례가 어색하며, 광배윗쪽 상단에는 서운(瑞雲)이 감싸고 있다. 화면을 구분짓듯 큼직하게 표현한 신광 안에는 모란·연화 등의 화문과 서운으로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는 적색 불의의 겹둥근 문양과 사각형 문양, 옷깃의 지그재그문양, 변형된 파도문양, 밝고 선명한 색채와 어우러져 마치 화려한 불세계의 정경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방형의 얼굴과 삼산형의 보관에 장식된 영락과 화문, 그리고 사각형과 마름모꼴 등 여러 문양이 어우러졌고, 보관 끝에는 흰 광선이 소용돌이를 이루면서 상단을 덮고 있어 마치 보개와도 같아 보인다.
불의는 홍색으로 어깨를 덮은 통편의(通扁衣)에 다양한 화문(花紋)이 치장된 군의를 입었는데 홍색·녹색·군청색 등의 원색과는 대조적으로 중간 색조인 분홍과 연녹색 등을 사용하여 화면을 밝게 해주며, 화면의 좌우끝단은 범자(梵字)로 장식하였다. 이 괘불도는 전체적인 비례가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묵중하고 중후한 느낌을 보여주며 다양한 문양과 영락장식, 그리고 밝고 선명한 원색과 중간 색조를 적절히 사용하여 화려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화기에 의하면 괘불조성에 사용된 바탕·후배지·포시주와 황금·주·이청·대청 등의 안료시주, 청밀·식염(食鹽)·말장(末醬) 등의 공양시주자는 물론 원경·낙영·복장·등촉까지도 시주자가 기록되어 있다. 14m가 넘는 대형의 괘불화로서 제작에 참여한 많은 인물들을 알게 해 주는 것과 함께 법주사의 창건배경과 불교사상적인 측면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중요시된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용하던 대형 불화를 말하며, 이 괘불은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그린 것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제자, 제석천과 범천, 사천왕, 천자, 아수라, 용왕 등이 좌우 대칭으로 화면 가득히 그려진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용화수가지를 양 손에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이 다른 신체 부분에 비해 크게 그려져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둥근 머리광배와 배(舟) 모양의 몸광배로 구분되는데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여러 구를 그려 넣었다.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협시하고 있는 제화갈라보살을 비롯한 6대보살은 관음·대세지·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되었으며 10대 제자상과 보향·명월천자가 상단 좌우 끝에 그리고 아수라 가루라 용왕들이 배치되어 있다. 남아 있는 글로 보아 시주자를 비롯한 여러 승려와 일반인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석가탄신일 외에도 수륙재와 49재에 쓰였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대형화면에 나타난 중후한 형태·화려한 색채 등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 본존불을 중앙에 크게 묘사하고 다른 무리들을 주위에 작게 배치하여 석가모니가 일반 대중들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삼신불 가운데 석가불을 노사나불과 동일하게 보살형으로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의 그림이며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이란 석가의 존명과 함께 각 상들의 명칭도 기록되어 있어 불화 연구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법당 앞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화를 말하며, 광덕사의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머리에 보관(寶冠)을 쓴 노사나불을 다른 형상보다 크게 그려 중앙에 배치하고 주위에 2대보살·2대제자·사천왕을 그려 넣은 모습이다. 본존은 타원형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둥근 머리광배에는 작은 부처 7구를 표현하였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고 양 손은 어깨 높이 정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붉은색의 옷과 매듭, 옷깃의 둥근 모양 장식 등이 어우러져 화려함이 돋보인다. 주변의 인물은 좌우대칭으로 나타나 있는데 어깨 부분의 양쪽에는 2대 제자가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2대보살이 있으며 둘레에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붉은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배경에는 군데군데 구름을 그려 넣어 밝고 선명한 채색과 더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이 괘불도는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이대보살·이대제자·사천왕, 화불로 구성된 군도형식이다. 본존의 형상은 타원형 얼굴에 과거칠불 상징의 화불이 있는 화관을 쓰고 있는데 화불로 인해 머리가 무거워 보이고 생동감이 뒤떨어져 도식적이다.
원형의 광배에 신광을 생략하고 두손은 어깨 부근에서 설법인의 수인을 하였으며 넓게 파여진 가슴에는「만(卍)」자가 크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승가리에는 금니를 묘사하였는데 적색의 가사와 매듭, 옷깃의 겹둥근 문양 등과 어우러져 화려함이 돋보인다. 이대보살 중 문수보살은 경책을 얹은 여의(如意)를, 보현보살은 연꽃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도상으로 역시 생동감이 없는 도식적인 모습이다. 이대제자인 아난과 가섭존자는 원형두광에 변형된 설법인과 지권인의 수인을 취하였다.
제석과 범천이 생략된 좌우대칭의 비교적 간략한 구도로 하단에는 사천왕이 배치되고 상단의 시방제불은 서운(瑞雲) 사이 좌우로 각각 5구씩 배치되어 있다. 본존의 형상은 마곡사 석가모니괘불탱(1687년작, 보물 제1260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1673년작, 국보 제300호)과 같은 과거칠불을 상징하는 화불을 안치한 보관을 썼지만 수덕사 영산회괘불탱(1673년작, 보물 제1263호),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1644년작, 국보 제299호)과 같은 설법인을 취한 모습의 도상으로 보아 노사나불임을 알 수 있다. 채색은 짙은 홍색을 주조색으로 하여 녹색·회색·백색 등 원색을 사용하였으며 여기에 금색의 사용으로 인해 화려함을 더해 준다. 공간처리에 있어서도 곳곳에 서운을 배치하여 밝고 선명한 채색과 더불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를 화면 가득 그리고, 8대보살, 10대제자 등의 무리가 석가의 주위에 에워싼 구도이다. 석가는 오른손은 무릎에, 왼손은 배꼽에 갖다 댄 모습으로 중앙에 앉아있다. 석가불 양 옆으로 서 있는 8명의 보살들의 얼굴은 갸름하고 연꽃 등을 들고 있으며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격인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이 보살들과 함께 석가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림의 윗부분엔 10명의 제자들이 있으며 석가와 머리모양이 같은 보살도 보인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많이 사용하였고 연녹색과 자주색 등의 중간색을 넣어 화면이 차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숙종대왕의 아들이 일찍 죽자 거대한 불화를 그려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조선 숙종 16년(1690)에 승려화가 진간이 그렸는데, 영조 1년(1725)에 그림을 고쳐 그리면서 적어 놓은 글이 그림의 아랫부분에 있다.
이 괘불도는 본존인 석가불의 크기가 작아진 점 등에서 17∼18세기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회화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