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洞察)’한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본다’는 뜻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이는 것을 넘어 그 안을 심층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삼성이나 LG 같은 세계적 IT회사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단지 전년 대비 매출이나 영업 이익이 현저하게 줄었거나 적자로 전환되어서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예견되었된 것입니다.
벌써 몇 년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0년 앞의 삼성을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고 말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성장 드라이브를 지속하려는 최고 경영자의 으례적인 멘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벌써 이 회장은 자기 회사의 한계를 통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몰락할 지 모르겠다는 그다운 통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10년 앞을 내다보며 식은 땀을 흘렸겠지요? 아무튼 그의 이런 발언이 현실화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볼 때 그는 어떤 의미에서 통찰력 있는 경영인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Nokia)가 저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세계적인 게임기 회사인 닌텐도(Nintendo)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이제는 뉴스도 아니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불과 1, 2년전만 해도 이들 회사들은 난공불락의 요세처럼 비쳐졌었습니다. 이제는 석양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 남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요?
보이는 것만 보는 통찰력의 한계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일례로 소니(Sony)를 들어보면, 소니사는 아시는대로 워크맨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워크맨은 으레히 오디오는 크고 가구처럼 붙박이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파격적으로 깨뜨리고 들고 다니며 오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말 그대로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소니는 자신들의 장기인 이동가능하고 휴대하면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을 애플에게 넘겨 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IT 산업은 애플대 비애플의 구도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스티브 잡스 대 애플을 제외한 모든 IT업계 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로 빠르게 스타브 잡스의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애플은 단 3 종류의 스마트폰 종류를 가지고도 50종이 넘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노키아를 아주 간단히 제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앞선 통찰력 때문에 핀란드 국민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노키아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작년 112조 이상의 매출을 올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10분의 1을 담당했던 삼성 역시 위기의 근원은 그들의 노력이나 몸부림에 상관없이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통찰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긴 시간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통찰력 없는 노력이나 수고는 결국 헛고생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년의 명성을 구가하면서 노키아는 교만했습니다.
“누가 감히 휴대폰 시장을 넘본다는 말인가?”라며 스마트폰 시대를 예측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1등의 저주요, 성공신화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그동안 잘 한 것이 오히려 겸손의 미덕을 저버리고 최소한의 통찰의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보이는 부분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아니 영의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100세를 바라보며 외딴 섬에 유배되어 있던 노 사도, 요한은 어느 날 영안을 떠서 보이지 않던 천국을 보고 계시록을 기록합니다.
돌에 맞아 죽어가던 스데반은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무릎을 꿇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하며 죽어갑니다. 그들의 실상을 통찰했기에 나온 기도 아니겠습니까? 보이는 세상이 다면 우리의 신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대로 다 되면 통찰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통찰력을 지닌 삶을 살도록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보이는 것은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