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고 희망 찬 선물
박 지 연
월드컵 시즌이다.
우리는 오랜만에 환호하며 하나 되어 행복했다. 잔뜩 낀 구름이 걷히는 쾌적한 날처럼 종일 홀가분하다. 천안함의 비극, 나로호, 사대강, 세종시, 6.2선거의 후유증 은 답도 없이 표류한 채 국민의 마음은 제각각 출구를 못 찾고 우울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들려오는 승전보에 우리들은 하나 되어 낮이나 밤이나 남아공에 가 있었다. 그리스전에서 절묘한 이정수의 선취골, 테클의 숲을 제치고 바람처럼 내달은 100만 불짜리 박지성선수의 기적 같은 슈팅. 어떻게 이 기쁨을 견디겠는가. 나이지리아와 싸우던 새벽 3시 반을 위해 우리는 잠을 설치고 추운 줄 모르고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와 선수들과 마음을 같이 했다. 대한민국을 외치면 왜 이리 가슴이 뛰고 벅찬 눈물이 나는지.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박수치고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치며 열광하고 행복했다. 하루 종일 괜히 웃음이 나오고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은 그 화면에서 눈을 뗄 수 가 없다. 우리가 해냈다는 이 사실이 놀랍고 대견하고 기뻐서 말이다.
오늘은 6.25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지긋지긋한 6.25의 참상을 잊고 있었던가. 조국의 산야는 3년 1개월 동안 전쟁터로 폐허가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총소리는 멈췄지만 조국의 강토는 초토화되어 세계 최빈국 아프리카 가나에 비견되던 국민소득 67불,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가난뿐이었다.
1954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선수들의 에너지원은 축구팬들이 들고 온 계란꾸러미가 전부였다. 외상으로 얻어 낸 단복이 긴 여행에 꼬깃꼬깃해 기자들이 의아 해 물었다. 비행기편이 없어 열차를 타고 미군 전용기로 스위스에 60시간을 걸려 경기 전날 도착했다. 여독과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진흙탕 속에서 터키에게 0-7 우승후보라는 헝가리에게 0-9로 뛰고 뛰었어도 참패 했다. 1954년 우리의 경제는 정말 말이 아니었다. 춥고 배고파 높기만 하던 보릿고개처럼 세계의 벽도 넘기가 힘들었다.
1955년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1956년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군인육상대회가 열렸다. 그 무렵 아직 대학 초년생인 육상의 꿈나무로 각광 받던 서영주 선수는 공군에 입대하여 넓이뛰기 선수로 출전했다. 세계의 막강한 선수들을 제치고 최연소 서영주 선수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선수단 일행은 서영주 선수의 개가를 앞세워 금의환향했다. 여의도 비행장은 군악대의 환영주악과 시민들의 태극기 물결이 엄청나게 출렁이고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은 선수단을 경무대로 초청하여 실의에 빠진 온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준 큰 선물이라며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연일 신문에서는 대서특필을 했다.
바로 1958년 제3회 도교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또다시 60만 교포가 환호하는 메인스타디움에서 첫날 첫 번째 서영주 선수의 금메달 수상식이 있었다. 애국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교 하늘에 태극기가 높이높이 펄럭이며 올라가고 있었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남모르게 외롭게 땀 흘리며 기량을 연마해 오던 선수. “60만 교포가 보는 도교 하늘에 태극기를 올리는 것이 나의 꿈이다”라던 서영주 선수는 꿈을 기어코 이루고야 말았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일본 침략에 치를 떨 그 무렵, 일본의 주종목이며 우승 후보인 소노다 선수를 제쳤고 첫 육상 금메달이었기 때문에 일본신문은 연일 대서특필로 예상을 뒤엎는 일이라 놀라움을 표하며 인터뷰가 쏟아졌다. TV가 없었던 그 때 임택근 인기 아나운서의 멘트가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국민들을 라디오 앞에 모았다. “국민 여러 분, 기뻐해 주십시오. 우리 고국의 자랑스러운 서영주 선수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도교 하늘에 태극기를 올렸습니다. 교포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막을 찌를 듯한 목소리로 환호하고 있습니다.”라고 박력 넘치게 외치던 임택근 아나운서. 그 목소리와 함성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다. 한국에서는 거리마다 프랭카드가 펄럭이고 일본을 제쳤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지축이 흔들리듯 환호했다. 그 때 온 국민은 일본에게서 받은 상처가 마치 치유된 듯 우리에게 희망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선물이라 기뻐했다. 일본은 올림픽에서 이 종목에 우승을 했으니 기대가 컸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비인기 종목인 육상, 불모지나 다름없는 종목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했으니 일본 육상연맹은 너무 큰 충격으로 모두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별처럼 빛나고 사랑 받던 서영주 선수는 그 외 많은 메달을 획득해 국가에 바치고 결혼적령기가 되어 나에게 프로포즈를 해 왔다. 나는 그 때 국가관이 투철하고 자기 이상을 꼭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여겨 스포츠 스타 서영주 선수의 뜻을 받아드렸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지펴 준 쾌거는 스포츠사에 길이 빛난 업적과 기록으로 남아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선수들이 힘든 땀을 흘리며 세계 60억의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럽도 아프리카도 남미도 주눅 들지 않고 그들을 제치고 슈팅하는 그 모습, 자신감에 찬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당당하고 야무진 실력파 박지성, 기성룡, 이정수, 박주영, 이창룡, 이영표 ...23명의 태극전사들은 더 이상 변방의 축구가 아닌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설 것이다. 미국에서 파리에서 일본에서, 독일에서 우리교포도 하나 되어 열망했다.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장한 아들들이다.
월드컵대회는 시합을 넘어 코리아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세계에서 제일가는 우리 기업의 이미지를 더욱 높여 세계인이 모두 신뢰하고 감동했으리. 우리는 초빈국에서 세계12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6.25때 신세 진 나라에 빚을 갚는 의리에 찬 나라로 발전했다.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을 지켜 준 대한민국의 아들들아 고맙다. 그대들이 보내 준 선물, 이보다 더 위대하고 희망 찬 선물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