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공룡능선 1,275m봉과 그 주변
겨를도 없었고 얼마만큼이나 올라왔는지 또는 몇 시간이 지났을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단지 주위가 조금씩 훤해지고 있음을 느낄 뿐 거의 같은 각도에서의 길고 긴 아이스 클라이
밍은 지루하면서도 즐거웠다. 어수선한 꿈자리와 닥쳐올 위험도 심지어는 자신이 북벽을 오
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같은 속도로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여길 지나간 수많은 명
등산가들의 발자취와 흔적을 읽는 듯했다.
--- 임덕용,『나의 DNA는 불가능에의 도전』
▶ 산행일시 : 2010년 1월 17일(일), 맑음, 포근하였음
▶ 산행인원 : 혼자 감
▶ 산행시간 : 9시간 2분(휴식, 점심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실 거리 20.9㎞
▶ 갈 때 : 동서울에서 06시 30분 첫차로 한계령 감(요금 : 14,500원, 소요시간 : 2시간 25분)
▶ 올 때 :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에서 시내버스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소요시간 40분,
요금 : 1,000원), 19시에 동서울 가는 우등버스 타고 옴(요금 : 16,700원, 소요시간
간 35분)
▶ 시간별 구간
06 : 30 - 동서울종합터미널 출발
08 : 53 ~ 09 : 00 - 한계령(표고 935m), 산행시작
09 : 45 - 1,307m봉
10 : 12 - 서북 주능선 진입, ┬자 갈림길(표고 1,350m)
11 : 00 - 1,460m봉
11 : 18 - 1,474.3m봉, ├자 능선 분기, 오른쪽은 독주골로 떨어짐
11 : 44 - 끝청봉(1,604m)
12 : 12 - 중청봉(1,676m)
12 : 51 ~ 13 : 11 - 희운각, 점심식사(20분 소요)
14 : 12 - 샘터, 이정표(희운각 2.4㎞, 마등령 2.7㎞)
14 : 39 - 1,275m봉
15 : 13 - 나한봉(1,280m)
15 : 42 - 마등령
16 : 37 - 능선 진입
17 : 21 - 비선대
18 : 02 -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
21 : 35 - 동서울종합터미널 도착
2. 칠형제봉 위, 한계령에서
▶ 끝청봉(1,604m)
요 며칠간의 혹한으로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었다. 지구온난화라는 말은 쑥 들어가고 뜬금없
이 소빙하기가 도래하였다고도 하고, 내 집 앞 눈 치우는 선진 외국의 사례를 두루 알게 되고 앞
으로 눈 치우지 않는 집에는 된통 벌금 물리겠다는 당국의 결연한 의지에 맞서 ‘어디에다 눈 치
우랴’라는 누리꾼들의 볼멘소리도 들렸다.
그 강추위를 설악산 공룡능선의 1,275m봉과 범봉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오늘 설악산을
가는 까닭이다. 한계령 가는 첫차 탄다. 만차다. 차표를 예매하기 잘했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
공단은 주초에는 등로에 눈길 러셀이 미흡하므로 10명이상 무리지어 입산하도록 단속했는데
주말이 되자 아무나 겨울장비 튼튼히 갖추고 등산할 것을 당부한다.
한계령 가는 길. 어둠속에서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를 지나고 홍천에서 날 샌다. 신남은 빙어
축제한다고, 인제 원통은 열목어 축제한다고 대대적으로 플래카드 내걸었다. 빙어야 오래전
부터 겨울이 수난기였지만 화천에서 산천어 축제로 재미 보는 통에 인제 열목어가 느닷없이
유탄 맞은 격이 아닌가 싶다.
한계령. 한산하고 의외로 등산객이 뜸하다. 주초대로 입산허가 10명을 모으려면 애먹을 뻔
했다. 화장실의 따뜻한 난로 곁에서 산행복장 다듬는다. 조망대 난간 가까이 다가가 칠형제봉
봉봉 개수 헤아려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108계단 오른다. 위령비 뒤 안내소는 문 굳게 닫았다.
테크 계단 오르는 중에도 고개 돌려 눈은 교악(喬嶽)인 가리봉에 고정한다. 눈길. 잘 다져졌
다. 설사면 비스듬히 오르고 능선 진입. 단체 등산객을 추월한다. 옷을 너무 껴입었나보다. 땀
난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도리어 시원하다. 셔츠차림하고 장갑도 얇은 것으로 바꾼다.
1,275m봉 지나 1,307m봉까지 단숨이다. 1,307m봉은 끝청봉으로 가는 서북주능의 장려한
사면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경점이다.
1,307m봉 내림 길은 설벽으로 변했다. 밧줄에 매달려 내린다. 너덜 길의 허방은 눈으로 꼭
꼭 메워져서 내닫기 좋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설원의 한낱 둔덕으로 여겨 대깍 넘고, 사태 난
골짜기 지나 대슬랩의 데크 계단에서는 가리봉 너머 천산만학 구경하느라 뒷걸음질로 오른다.
서북 주능선 ┬자 갈림길. 귀때기청봉 쪽으로도 눈길이 훤히 뚫렸다. 발돋움하여 백운골
내려다보고 서둘러 끝청봉을 향한다. 거목의 주목(볼만하다) 지나서 암릉 같던 너덜은 간데없
고 미끄럼타기 아주 좋은 눈길이다. 암봉 돌아내렸다가 암릉의 슬랩에 쌓인 눈 쓸고 올라가서
지나온 1,307m봉 자세히 뜯어본다.
1,460m봉 오르는 길은 연만한 단체 등산객들로 지체다. 60명이 대청봉 올랐다가 오색으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무전기로 후미와 교신하는데 일행 중 다친 사람이 있어 늦는다고 하자
하산해서도 부지하세월 기다리게 생겼다며 두덜댄다.
고개 들면 사방 어디고간에 눈부신 설경이다. 가리산, 귀때기청봉은 대담하고 백운골과 용아
장성은 섬세하다. 점봉산은 고도로 변했다. 가스가 찬 것이다. 한석산, 매봉산, 방태산, 가칠봉
… 등등은 푹 잠겼다.
눈이 쌓여서다. 나뭇가지 높이를 얼른 대중하지 못하고 번번이 머리 받는다. 1,474.3m봉. 지
난여름 독주폭포 갔던 능선은 아무 발자국 없이 조용하다. 아치문은 여러 등산객들 사진배경
노릇하였나보다. 특히 그 주변 눈밭은 반질반질하다. 차츰 고도를 높임에 따라 교목이 관목화
(灌木化) 되고, 머리 내민다. 끝청봉이다. 드러나는 대청봉과 중청봉의 웅자(雄姿)에 숨쉬기조
차 잊는다.
3. 가리봉
4. 멀리는 한석산 연릉
5. 귀때기청봉 지능선
6. 끝청봉 가기 전의 1,406m봉
7. 귀때기청봉
8. 서북능선에서 남쪽 조망
9. 서북능선 진입 삼거리 근처
10. 왼쪽은 넘어온 1,307m봉
▶ 중청봉(1,676m), 희운각
가만히 서있어도 다 보이는 것을 하마 놓칠세라 이 바위 저 바위 올라 두루두루 살핀다.
그러고도 대청봉 마냥 바라보며 가다가 길 벗어나 무릎 넘는 눈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안부에는 눈이 더욱 깊다. 중청봉 정상 즈음하여 오른쪽 사면으로 돈다. 정상으로 직진한
사람도 있었다. 희운각에서 점심 먹을 요량으로 중청봉 대피소에는 들리지 않는다.
중청봉 돌아 소청봉 가는 길은 데크 계단 말고는 완만한 슬로프다. 소청봉 조망대에 들려
침봉의 제국 용아장성을 눈으로 넘는다. 그리고 희운각으로 내리는 길에서 엉덩이 근질근질
한 스릴 맛본다. 영락없는 봅슬레이 코스다. 길이 그렇게 나버렸다. 우선 서서 보기에는 워낙
가파른 사면이라서 오금저리고 겁이 나지만 일단 타고 보면 더 가파르지 않은 게 오히려 서운
할 정도다.
봅슬레이 길 또한 움푹하니 파여 있어 코너링에도 밖으로 튕길 염려가 전혀 없고, 과속
제동은 두발 쫙 벌려 설사면과 밀착도를 더욱 높이면 된다. 나 혼자다. 보는 이 없어 잘못
제동하여 앞으로 고부라져 쓰러져도 우세스럽지 않다. 소청봉에서 희운각까지 1.3㎞. 아마
그 2/3는 신난다.
데크 계단 통통 내려 희운각. 노천 탁자 넘나들며 놀고 있는 동고비들이 반긴다. 신혼인
듯한 부부 등산객과 프로 냄새가 나는 등산객 한분이 버너 불 피워 라면 끓인다. 프로 냄새
나는 등산객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자, 천불동계곡으로 간다고 하며, 공룡능선 타실
거냐고 대번에 알아본다. 자기는 지난주에 다녀왔다며 등로가 고속도로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식수, 간식, 랜턴 등 야간산행 장비를 갖추고 갈 것을 조언한다. 안내판에 마등령까지
5.1㎞. 소요시간 4시간 30분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시각 13시 11분. 거기서 비선대까지
3.5㎞다. 버나드 쇼가 부추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In this world there is always danger for those who are afraid of it)'고.
11. 1,307m봉
12. 귀때기청봉
13. 멀리 가운데는 공룡능선 1,275m봉
14. 중청봉과 대청봉
15. 가리봉
16. 백운골
17. 중청봉
18. 중청봉
19. 대청봉
▶ 공룡능선, 마등령
간다. 내 그림자 앞세우고. 하긴 눈길의 숱한 발자국이 동무다. 무너미재 가기 전 조망대에
올라 만물상 감상한다. 찬찬히 보면 만불상(萬佛像)이기도 하다. 천불동계곡 내리는 길을
조금도 미련두지 않고 아까와는 달리 앞선 발자국에 내발 맞춘다. 사면 돌아 골짜기 건너고
가파른 사면은 설벽이다. 걸음마다 발 디딜 데 마련하여 오른다.
이어 대슬랩. 혼자여서 더 가파르다. 쇠줄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신선대에서 내려오는 등산
객과 만난다. 마등령으로 가는 사람 있더냐고 괜히 물었다. 아무도 없더란다. 야간산행이 될
것을 걱정해주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우스운 일. 가스통 레뷔파, 머메리, 나오미 등
을 떠올린다.
신선대 내리는 길은 수월하다. 눈길 줄달음하기 알맞다. 1,275m봉과 범봉이 요연하게
보인다. 앙다문 침묵. 언제나 그렇듯 의연하다. 1,275m봉 주변이 현란하다. 시야 가린 숲에
들어서는 속도 낸다. 이랬던가. 뚝뚝 떨어진다. 샘터에서 바닥 친다. 샘터 암반에는 말간 얼
음이 층층 얼었다. 주능선까지 돌계단으로 오르면 슬랩과 설사면이 기다린다.
슬랩은 더러 빙판이지만 쇠줄이 달려있어 팔 힘으로 오른다. 설사면. 오늘 산행 중 제일
어려운 대목이다. 뒤돌아 내려다보고 움찔한다. 도무지 잡을 것이 없다. 너덜은 다 메워졌다.
가쁜 숨이라도 고르자면 스틱과 아이젠으로 눈 깊게 찍고 엎드린 자세 그대로 부동하여 어깨
만 조심스레 들썩인다.
1,275m봉 돌파. 진땀난다. 1,275m봉 내리는 길도 좋다. 완만한 슬로프여서 아이젠 벗고
눈길 지쳐 내린다. 협곡 오르내리고 성곽 같은 절벽 내림 길이 살짝 깔린 눈으로 매우 미끄럽다.
나한봉. 이제부터는 설벽 오르는 것을 즐긴다. 오른쪽 사면 돌다가 곧추 올라 능선을 가로
지른다. 1,298m봉 정상 바람막이 암벽에 기대서서 공룡능선 봉봉을 짚어보며 지나온 발길
음미한다.
그러고 한달음으로 내려 마등령이다. 범봉이 잘 보이는 공터에다 자리 잡고 커피 타 마신다.
겨울 산에서 마시는 커피는 윗니 아랫니 딱딱 맞부딪치도록 추워야 제 맛인데 오늘은 이리
포근하니 그 맛이 한참 덜하다.
20. 점봉산
21. 귀때기청봉
22. 중청봉 사면
23. 용아장성
24. 범봉
25. 범봉 위
26. 1,275m봉 가는 도중
27. 1,275m봉
28. 1,275m봉에서, 넘어온 봉우리
▶ 비선대,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
마등봉 오르는 숲속 길의 나무도 눈이 높아 교목으로 변했다. 누군가 새 크렘폰 한 짝을
흘리고 갔다. 내발에는 맞지 않아 그대로 두고 간다. 마등봉 정상 즈음하여 슬랩을 데크 계단
으로 내리고 급전직하한다. 샘터는 흔적 없이 눈 속에 파묻혔다. 사면 돌아 금강문을 지난다.
석양빛이 범봉을 황금색으로 도색한다.
설악골에서 범봉 오른쪽 안부로 오르는 사면이 거의 수직이다. 작년 여름 거기를 올랐다는
게 쉽사리 믿어지기 않는다. 자기 키 만큼이나 큰 배낭을 지고 마등령을 오르는 대학생 또래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4명. 너무 추울 것이어서 비박은 못하겠고 마등령만 찍고 내려오겠단다.
백두대간을 벗어나서 그런지 마등봉 지능선은 적설량이 확연히 적다. 군데군데 빙판이라
걷기가 외려 조심스럽다. 석양은 울산암과 화채봉 내린 칠성봉에 오래도록 머문다. 짧은 암릉
지나고 철계단 내리면 지겨운 바윗길이 시작된다. 1㎞. 눈으로 덮여 슬로프이리라 예상했는데
눈이 없다.
형제봉, 장군봉 번갈아 우러르고 스틱 휘도록 짚어 내린다. 금강굴 입구에서 비선대까지는
0.45㎞. 눈길이 시작된다. 비선대. 잔광의 여운이 남았다. 으스름하다. 얼음장 밑으로 골골대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곤한 겨울잠 코고는 소리다. 설악동까지 3㎞. 눈으로 포장하였다.
가게는 다 문 닫았다. 신흥사 앞 청동대불은 심지 돋은 수십 개 촛불 쬐고 있다. 일주문 넘어
환속한다.
29. 나한봉
30. 범봉
31. 칠성봉
32. 울산암
33. 형제봉
34. 장군봉
35. 선녀봉
첫댓글 또 한방에 가셨네요.. 부럽따... 언제 러셀하러 한번 가야 하는데요...


가고 잡다...



첫번째 사진의 봉봉들이 아주 늠름해 보입니다. 아
오실때도 한방에 동서울에 21시 30분이라...
전날 방태산에서 다음날 형님이 설악의 어디를 가실까 가늠해 보았지요.
저희가 방태산에서 본 설악을 100배 줌으로 처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음


욜케 절나 
리시다가 넘어지시면 마이 아픈디 
당일로 저두 함 가봐야지...사진 볼때마다 부럽^&^
정말이지 사진한장 한장이 모두 예술입니다.
선배님 후기글과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자주 들려서 좋은 글 많이 보고 갈께요.
멋~집니다.
바람도 만만찮았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