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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펜살과 굳은살
최경주
저쪽으로 쭉 들어가 몇 번 꺾어져야 하는 곳, 멀고 깊은 기억 속에 오래된 상자가 있다. 봉인 끝이 말려 올라가고 뚜껑이 어긋난 사이로 기억이 새어 나와 여기저기 뒹군다. 기억 한 조각을 주우면 멀리 전철 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 창으로 들어오는 붉은 햇살과 스치는 그림자들 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자기야!”
오래된 화면이 스르륵 돌아가고 훈훈한 방이 드러난다. 멀리 전철이 달리는 소리가 난다. 쌓인 신간 책들에서 잉크 냄새가 난다. 햇살에 떠도는 먼지들, 전철 소리가 사라지자 내 숨 쉬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해진다. 주방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툭툭 떨어진다. 건넛방에서 재촉하듯 나를 부른다.
안방을 나오면 좁은 주방이 있고 건넛방과 화장실이 마주 보고 있다. 반쯤 열린 작은 방문은 흔히 쓰인 무늬 없는 합판 문짝이고 창이 작아 분홍색 형광등이 늘 켜져 있다. 그녀의 부풀린 머리가 살짝 보인다. 헐렁한 셔츠와 치마에 살짝 드러난 가는 발목, 좁은 어깨, 엷은 화장품 냄새, 한두 발자국 만에 손을 내밀면 어깨가 닿는다.
방에 들어서면 자판 치는 소리가 쉬지 않는다. 빨간 머리띠, 흐늘거리는 회색 스웨터, 독수리 타법이다. 오른손은 검지로, 왼손은 네 손가락으로, 흑백 모니터 반짝이는 커서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글을 쓴다. 머그잔에 커피가 오래전에 식었고, 재떨이에 담배가 타들어 간다.
“원고지에 쓰는 게 낫겠어.”
흑백 모니터 컴퓨터를 사기 전까지 늘 원고지에 글을 썼다. 검은 사인펜으로. 필체에 힘이 넘쳤다.
“잘 치는데, 왜.”
나는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고 허리를 편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집어 한 모금 빨고는 살며시 내 손을 잡는다. 손이 차다. 담배 연기가 천장으로 오른다. 돌아보며 웃는다. 작은 얼굴, 검은 피부, 스핑크스의 머리처럼 부풀린 머리가 유행이던 시절이다. ‘안녕!’ 나는 뇌까린다.
“이런 글 그만 쓰고 소설을 써야겠어.”
주름진 입술 사이로 담배연기가 아직 나풀거린다.
“책 내게?”
“출판사 하는 형이 톡톡 튀는 글을 써보라는데, 모르겠어. 요즘 소설들이 그렇잖아.”
다시 한 모금 뿜어내고 손을 저어 흩뿌린다.
“여류작가 시대지. 신경숙, 공지영, 공선옥 거기에 자기도 들어가야 하는데.”
고개를 젓는다. 그녀의 가는 턱밑에 사마귀 같은 작은 점이 움찔 거린다.
1990년이었나? 91년? 왜 수원과 오산 사이 작은 소도시가 있지 않은가? 거기 성당 증축공사를 했을 거다. 그 현장에서 일하는데, 친구로 지내던 그녀가 찾아 왔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서 함께 살자고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았을 때, 그녀의 오른손 중지 첫마디에 굵은 굳은살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 손바닥에 가지런히 박인 굳은살을 느꼈으리라. 거기서 생각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손바닥의 차이 너머에 웅크리고 있는 맨몸의 두 남녀를 봤어야 했는데 말이다.
현장이 끝나는 동안 그녀는 부천에 집을 마련하고, 나는 그녀의 집으로 짐을 옮겼다. 손을 내밀기 전에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짐을 옮길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달리는 열차에 올라탄 이상 뛰어내릴 수는 없다. 누군가 등을 밀기 전에는.
2년을 살았나? 3년? 모르겠다. 비슷하다. 그녀가 달리는 완행열차 계단에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는 내 등을 후려친 것이다. 나는 엎어지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찡그린 어두운 얼굴로 팔짱을 끼고 서서 떨어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잘못된 거지? 나는 바닥에 뒹굴었고, 그녀를 태운 열차는 멀어져갔다. 긴 시간 동안.
얼마 전,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새삼 그때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무슨 이야기 끝에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이제 한 번은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봄이 오면 목련이 피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다.
부천역과 역곡역 사이, 소사역이 생기는 중이었다. 전철 혹은 화물을 실은 기차가 요란하게 달려가고, 부천역에서 역곡역으로 넘어가는 소사동 언덕길에 가끔 자동차 경적이 울린다. 거기에 3층 건물 1층에 방을 구했다.
아버지도 노가다 친구들도, 선배들도, 냄새 지독한 하숙집이나 여관방들, 짧은 고민 속에 튀어나오는 거친 말투, 유치한 농담을 위안으로 삼는 나에게 그녀의 방은 아늑했다. 작은 바구니에 담긴 과일과 사탕, 음악을 듣고, 식은 커피에 빵을 찍어 먹으며 발을 뻗어 신간 잡지를 읽고, 신문을 펼치고, 원고지 긁는 펜 소리, 의식이 담긴 대화, 10대 말부터 노동에 지친 몸을 뉘어 모처럼 안식을 취했다.
그 아늑한 안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순전히 내 탓이겠지만, 어느 곳에 편하게 안주하기에는 더 굴러먹어야 했나 보다.
한 번은 영등포 건설노동조합에 있는데, 옛 친구가 처음 보는 사내를 데리고 와 인사를 소개해 주었다. 민족사상과 민족종교 부활을 위해 활동을 한다는 친구였는데, 셋이 노동조합 사무실 아래 ‘삼포 다방’에서 차를 마셨다. 처음 만난 친구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꽤 알려진 점술가였노라 자신의 이력을 말했다. 하루에 당시 한 달 치 내 일당을 벌었다는.
다른 말을 하면서 혹시나 하고 당시 처의 생년월일을 적어 주며 사주가 어떤가 내밀었다. 그 친구는 손으로 슬쩍 밀어 놓더니 이제는 사주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사주를 가진 사람이 남다른 고집이 있군요.’ 하는 것이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자비롭게 웃으며 말을 했다.
“저 사주 못지않습니다.”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염으로 죽었다.
‘주인이 기가 세면, 개가 안 된다!’ 개가 죽었다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자네들은 너무 달라!”
동거 첫 평가이자 마지막이 된 말이다.
누가 그 말을 했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들었다.
아마도 처가 이천 어디 도자기를 굽는 선배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한 것 같다. 안방 가운데 사각 천을 오려 이리저리 이어붙인 상보가 눈에 띄었다. 처가 어쩐 일로 상을 차렸나 싶어 상보를 들어보니 정성껏 차려진 밥상에 드러났다. 진하게 옻칠한 상 위로 가지런한 수저와 함께 하얀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를 집었다. 창밖에 저녁놀이 스며들고 막 인천행 기차가 덜컹거리며 지나치고 있었다. ‘전철이 지나가는군.’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동시에 ‘배운 사람이라 다르군. 편지도 쓰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편지지에 가득 채워진 문장을 요약하자면 마지막 줄에 있던 글대로 ‘너무 힘들다. 서로를 그만 갉아먹고 이만 헤어지자!’라는 내용이었다.
그 밥상 위의 밥을 먹었나? 아마 먹었을 거다.
혼자 자는 게 처음이 아닌데도, 어둠 속에 혼자 누워 있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전철 막차가 지나갈 때까지 잠이 들지 못했던 것 같다.
편지를 받기 직전 며칠째 일을 하지 않았고, 아니 몇 달, 어쩌면 일 년에 반 정도만 일을 나갔던 것 같다. 나머지 반의반은 노조에서 빈둥거리고 나머지 반의반은 집회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니다. 일하고 있었다.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이었던 건물 보수공사 현장을 다니고 있었다. 아니다, 코스모스 현장은 한참 후의 일이다. 어쨌든 일을 하다가 집회 간다고 하루나 이틀 쉬었던 것 같다.
처는 한동안 별다른 말이 없었다. 특히 당시에는 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지만, 알 길이 없었다. 편지를 읽고 집을 나와 왜 한동안 암시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주변 가정사를 두루 상담하던 선배는 이렇게 말을 했다.
“암시하지 않은 여자는 없어. 여자는 느닷없이 헤어지자고 말하지는 않아. 자네가 그렇게 느낄 뿐이지.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지. 그리곤 지금처럼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지.”
“나만 몰랐나?”
“아마 그랬을 거야.”
“내가 그렇게 감이 떨어지나?”
“감의 문제는 아니고, 헤어진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았겠지. 내가 너를 알잖아.”
내가 그랬나?
언젠가 꿈을 꾸었다.
갈대숲이 우거진 늪지대에 허리까지 잠겨 있었다. 무슨 일로 황소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일본 군인들이 늪지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일본군이라니, 왜 이런 일이?’ 일본군들이 나를 보고 나오라고 칼이 달린 총을 들이댔다. 나는 검은 늪을 나가 그들의 손에 잡혔다. 그 둘 중 한 명이 예리한 일본도를 꺼내더니 허공에 쳐들었다. 사정없이 휘둘러진 예리한 칼에 내 목이 ‘툭’ 하고 잘렸다. 내 머리가 눈앞에서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확연히 보였다. 어찌나 놀라운지, 심장이 멎기 전에 달려가 내 머리를 들어 목을 붙이면서 꿈을 깼다.
목을 만져보니 내 방, 아니 그녀의 방이었다.
그 순간에 비록 꿈일지언정 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다.
그게 무슨 꿈일까 생각을 하다가 인천의 한 선배가 집에 왔을 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배는 쓸데없는 꿈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문득 그때 음식을 하고 있던 처가 보였다.
“아마도 저 친구와 헤어질 것 같아요.”
그런 무서운 말을 하다니. 처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들었나? 아니다. 나직하게 했다. 처가 헤어지려고 집착을 하니 내가 그런 암시를 받았나? 핑계인가? 내가 왜 그런 해몽을 했을까? 가정을 위해 한 일이 없었는데, 뭐가 힘이 들었지? 무의식중에 알고 그 집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알았나?
그 집을 얻을 때 나는 한 푼도 내놓지 못했다. 처음 가정을 이룰 때 가방 두 개만 가져갔는데, 하나는 예비군복이고 하나는 작업복 가방이었다. 돈이라고는 주머니에 토큰 두 개가 다였던 것 같다. 토큰이 그때까지 있었나?
얼마 후 집을 나와 현관을 보았다. 두 번 다시 그 현관에 설 일이 없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당시 열성 노동조합 회원이었으니 노동조합 사무실에 몸을 뉘었다. 나 말고도 늘 예닐곱은 동거를 하고 있으니 그들 틈에 끼어 있다고 특별한 사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적어도 한두 주일쯤은.
일주일쯤 지나 내가 왜 집을 나왔는지 고민을 해봤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앞날에 어떤 희망이 없었나? 열성적인 성격이 아니었으니, 어떤 전망을 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사랑이든, 활동이든, 돈이든, 그 모든 게 불분명했다.
1군은 고사하고 2군에서도 방출될 위기의 선수들, 매일의 훈련은 그저 고된 노동일뿐 아무 기회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뭔가 잘못된 길이라고 깨달을 때쯤 너무 많이 와 버린 날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만 흘러간다.
어쨌든, 바람개비같이 조각 천을 이어붙인 상보가 있었다. 그 상보도 내 것이 아니다. 난 아무것도 가지고 간 게 없으니. 어쩌면 몸도 마음도 밖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창문을 열고 달려가는 인천행 전철 노선 어딘가에 서성거리고 있었지 않을까?
노동조합 사무실에 며칠 있으니, 후배고 선배고 우려하는 눈이 많아 더 있기도 뭐했다. 단순 부부싸움이라면 몰라도 헤어지는 문제라 대놓고 말하기도 그랬다. 별수 없이 홀어머니가 사는 부천 집으로 들어갔다. 빈 몸으로, 처음 나올 때 있던 가방 두 개는 어디 갔지?
몇 달 후, 예비군 훈련이 나와 불가피하게 처에게 전화했다.
역곡역에서 예비군복을 받으려 1시간 반을 기다렸다. 1시간 반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몇 번 전화해서 재촉했다. 그 긴 시간 후, 처는 집에서 입는 편한 옷으로 가방을 메고 나왔다. 초췌해 보였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나? 망할 단체 놈들하고.’
당시 부부생활은 나에게 뭐였는지? 우리가 왜 만나 한 살림을 차렸는지? 그런 것까지 고민하고 붙어 사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추구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닥치는 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동일을 열댓 살부터 해서 인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해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서 있는 이 좌표는 어디며 내가 눈앞에는 무엇이 있고, 내 뒤통수에 따라오는 과거는 어떤 근거로 이루어진 건지, 그리고 배우자의 삶은 무엇인지? ‘내 집에 여자가 있어요.’ 그뿐이었나?
처는 글을 써 돈을 벌었다. 뭐든 썼다. 소설을 쓸 여력이 없었을 게다. 늘 생활과 글 마감에 쫓겼으니. 구성작가, 르포 취재, 전기, 대필도 했나? 아마 했을 거다. 거의 노동판에서 먼지만 먹고 산 나와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최루가스를 맡으며 거리를 누볐다는 작은 공통점일 게다. 그것도 차이가 꽤 난다. 족보로 따지면 나는 초보자고 그녀는 숙련공이다. 그 친구는 80년대 초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나는 80년대 말부터 시작했다.
가정을 이루면서 그 친구에게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난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직업도, 가정도 인생도 난 그저 얹혀 있는 게 다가 아니었나 싶다.
서로 사물을 바라보는 정도의 차이도 컸지 않나 싶다.
글을 쓰는 그 친구 옆에서 빈둥거리다가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무슨 글을 쓰고 싶은데?”
“무협지.”
“우리도 한때 무협소설을 썼지. 현실 정치를 빗댄, 혼란에 빠진 강호에 어느 날 ‘주체 신검’이 나타나 무림을 제패한다는.”
주체 신검?
집에 불손한 책 두 권이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어떤 문제로 주변 사람이 구속되기 시작하면서 책 두 권을 창도 없는 화장실에서 태우다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큰일로 생각되었다. 확실히 그 친구는 나하고 달랐다. 내가 누나라고 불렀어야 했다.
“한 번 써봐. 잘 쓰면 내가 밀어줄게.”
자리를 내준 그 친구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A4 두 장짜리 글을 썼다. 두 검객이 지붕 위에서 싸우는 장면이었다.
내가 다 썼다고 했을 때,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내가 쓴 글을 손보기 시작했다. 띄고 지우고 고치고. 커서는 가차 없이 글 속을 헤집고 다니며 들쑤셨다.
“‘것’이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들어가네?”
나는 그 친구 어깨너머로 모니터에서 움직이는 커서의 칼질을 십 여분, 혹은 이십 여분을 뚫어져나 쳐다보았다. 지금도 비문이 많다는 말을 듣는데, 그때는 문법이 초등학교 수준이었을 게다. 커서의 움직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휘두르는 칼질에 망설임이 없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글공부를 한 셈이다. 아, 저게 퇴고구나. 지우고 바꾸고 엎어서 정렬하는 것이. 순식간에 줄이 줄었다 늘었다 자리를 바꾸고 흑백 모니터 안은 불순물을 걷어내고자 하는 칼질이 멈추지 않았다. 내 시선, 몸은 바늘 끝처럼 커서에 집중했다.
열일곱 혹은 열여덟부터 글을 썼다. 대학노트에 일기를 쓰면서 시를 썼다. 그걸 시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제대로 쓰고 싶은 생각에 원고지에 쓰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중편소설을 써서 보내기도 했지만, 시간만 버렸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때까지 쓰고 읽기를 되풀이했다.
노동조합 생활을 하면서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책이 바뀌었다. 소설은 던져졌고, 문건과 이론, 회의지에 집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쉬지 않고 썼던 일기도 그만두었다. 불순한 생각과 행동을 글로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런 시기였다. 별 활동 같지도 않은 단순한 노조활동이었는데도 자신을 옥죄는 결과가 글과 읽기를 멀리한 셈이다.
노조에 가입하기 전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입한 후에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잃어버렸다. 술과 집회, 집회, 집회, 지겨운 집회. 누군가 한 달 만에 구두 밑창이 나가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촌의 한 청년단체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편지로 시작해 수첩에 글을 써 주고받으며 남다른 인연이 되었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글을 쓰는 모습이 너무 좋았는지 모르겠다.
“괜찮아?”
처음으로 프로가 본 내 글에 대한 소감을 어깨와 허리를 풀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저었다.
처는 내 글을 한 번 더 읽어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이야. 가망이 있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내가 글을 써온 바로는 자기가 서 있는 시점에서 밥벌이 글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너무 멀어. 자기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고, 그렇게 되려면 내 삶을 얼마나 희생시켜야 하겠어? 미안, 자기는 거기까지 생각 못 하지? 사실,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 낭비 아닐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일이 아니라, 김영삼의 거짓 민주정부를 무너뜨리고 진짜 민주정부를 세우는 일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말을 못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처는 다시 돈이 되는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랬다가는 ‘글은 내가 쓸 테니 빈둥거리지 말고 일이나 하지?’ 이런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는 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글은 내 몫이야, 당신은 현장에 가서 묻히고도 남을 만큼 땅을 파!’ 그렇게 들렸고 반감은 없었다.
한번은 그 친구가 벌레 먹은 쌀로 밥을 지어 화를 낸 적이 있다.
시골에서 온 쌀이었을 텐데, 오래 묵어 벌레가 생겼을 거다. 한창 짜증을 듣던 그 친구 조용한 목소리를 나에게 일렀다.
“가장이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말을 해야 하지 않겠어? 가족의 건강에 안 좋으니까 벌레 먹은 쌀로 밥을 하지 말라고.”
네 말대로 가장을 가르치려 하다니? 더구나 빨간 줄을 쳐가면서. 아무리 동갑이라도 그렇지.
그 말에 할 말을 잃고 귀를 후볐다. 밥을 끝까지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벽을 느꼈다. 나보다 조금은 크고 넓은 한 사람이 앞에 놓여있 었다. 아니 호인이 아니라 나는 그릇이 다른 이보다 훨씬 작아졌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그때 가장이 이런 거구나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자기야, 이렇게 하면 안 돼, 그건 더 안 되고. 제발 그런 엉뚱한 짓 좀 하지마. 눈을 크게 떠, 눈을, 그 눈이 아니고 마음의 눈을. 맙소사, 그건 최악이라고.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아니 인생이 뭔지를 고민이나 하는 거야? 당신은 가장이라고, 나를 쳐다보지 마, 내가 아니고, 너. 내가 너의 일거수일투족에 의지해야 한다니, 이런 엉터리 같은 삶이 어디 있어. 제발, 그만하고 닥치라고. 그리고 일은 언제 나갈 거야? 내 원고료로는 네 술값도 안 된다고 멍청아!”
근데 우리가 처음 왜 만났지?
“헤어지게나. 자네는 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
처가에 불리는 곳에 불려가 들은 말이다.
다른 대답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왜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을까?
결국, 나는 내 삶이 아니라, 그 친구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금도 그 친구에 관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한 가장, 사안에 끌려가는 가장, 나침판을 던져버린 채 사는 길, 청춘의 정점에 허송세월 보낸 것이 아닐까? 내 인생에 엮이어 있던 한 친구의 시간까지. 그 주변부 사람들은 어떻고?
“활동가들의 이혼이 많아. 왜 그럴까?”
당시 처가 한 말이다.
남다른 삶을 살아가는 치열한 활동가들의 이혼은 무슨 뜻인가? 얼치기로 대충 살아가는 나는 그렇다 치고 왜 의식이 뚜렷하고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잘 아는 친구들이 헤어지는 거지?
활동은 활동이고 사는 것은 다른가?
전에 함께 회의했던 지역 위원장이 있었는데 감옥에 다녀와 보니까 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로 가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이혼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인가? 사람이 만날 수 있으면 헤어질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 또한 또 다른 선택이니.
“친구들이 자기에 대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뭔지 알아?”
“직업?”
“아니,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물어봐. 그런 걸 왜 물어보는지.”
“뭐라고 했는데?”
내가 물었을 때 뭐라고 했는데,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나와 사니 난처한 점이 많겠구나 싶었다. 확실히 바닥부터 노동자인 친구와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친구가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울면서 기댈 뭔가로 보이지 않았겠지.
사는 동안 일상생활이 힘든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기 일을 하고 사랑했고, 많은 책을 읽었다. 단체 생활도 열심이고, 사람도 적극적으로 만났다. 가끔 늦게 술을 마시러 다니 것에 화를 내곤 했다. 특히 남자들하고.
“나를 의심하고.”
돌아서서 눈을 흘기며 한 말이다. 변명하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부터 나라는 그릇을 알아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처를 의심하다니, 사실이다. 아주 애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생활이 너무 달라 이해의 폭이 커 생긴 오해일 수도 있고.
친구는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한 가지 문제만 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뭔가에 쫓기듯 어두운 골목을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아, 사람아』라는 책에서 비슷한 내용을 읽었다.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대학생 출신인 여성이 노동자와 결혼을 했다. 일만 하는 노동자와 살아가는 여자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이다!’라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여성은 항상 어떤 공백을 느낀다. 복잡한 시계부품과 같은 삶에서 느닷없이 방앗간 톱니만 존재하는 단순한 세계에 빠진 기술자의 위안으로 읽혔다. 노동하는 노동자가 역사의 주인인데, 늘 노동만 한다? 머릿속에도, 밥상 위에서도, 침대에서도 기름 냄새가 나고, 말투, 호흡, 눈높이. 지식인만이 아는 세상에서 유배된 듯한 막막함. 법륜스님 법문이라도 듣는다면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다. ‘지식도 집착이야. 좀 더 진실한 삶에 눈을 뜨게나’ 하는. 유감스럽게 세속인의 집착과 수도자의 법문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틈이 있다.
야구 방망이로 공을 공중에 띄워 놓고 한 대 갈기면 멀리 날아간다. 가끔 공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엉덩이가 채여 날아가는, ‘이건 내 길이 아니야!’ 외치며. 느낌뿐이었고, 그 느낌이 구체적으로 풀어서 이건 이런 문제야 하고 드러낼 수가 없다. 잘못 온 길에서 인생을 되새기게 되는 게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처인 그 친구는 나와 섞어 살면서 담배만 더 늘었던 것이 아닐까?
“오는 길에 담배 한 보루 사와. 생리대하고.”
그 외 무엇을 시킬 수 있었으려나.
그 친구에게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나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서로의 문제를 넘어선 뭔가를 하려고 하지 못했다. 처는 차마 말 못할 자신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지 못했다. 자존심만 놓고 따지면 나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벌레 먹은 쌀의 문제는 쉬웠다. 말만 제대로 하면 되니, 행동이 필요할 때 나는 내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당신의 문제야!’ 가장이 할 말은 아니었다. 뭔가 부족했다.
“네가 가장이냐?”
동갑인 그 친구가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문으로, 그다음에는 질책으로. 나는 여전히 똑같은 대답을 했다.
“당신이 가장하면 안 될까?”
“지금까지 그래 왔어. 그래도 한 번쯤은 가장인 척 좀 해봐. 뇌도 근육이야, 술 마시고, 말장난, 화장실 다니는 데만 쓰지 말고 좀 더 의미 있게 써보라고, 제발.”
조직에서는 일 좀 했는데, 가정사에서는 늘 겉돌았다. 가정사는 조직 일에 비하면 한낱 겉치레일 뿐인가? 그럴듯한 활동이나 하면서 그러면 폼이라도 나지, 그것도 아니면 배우자의 손가락이나 빨아대는 한량일 뿐인가? 조직은 여럿이 하지만, 가정은 둘이서 녹슨 쇠바퀴가 달린 수레를 끌고 밀어야 한다. 더구나 힘을 써야 하는 사내가 빈둥거리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울거나 언덕 위에서 밀어 버려야 할 것이다.
나와 사는 그 친구의 기분이 어땠을까? 목에 ‘체인 볼’을 달고 깊은 늪에 빠지기 직전에 날아가는 야구공을 바라보는 기분이 아니었나? 배를 띄워 항해를 하려고 노를 깎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바다로 밀려 나가면 어찌 될까? 기분이 더러울 게다. 아니 노를 깎기라도 했으면 방법을 찾았을 텐데.
내가 여자라면 나에 대해 어떻게 했을까? 집에서 쫓아내기 전에 목을 조르지 않았을까?
그 친구는 돈 때문에 친정집에 간 적도 있다. 자기 어머니와 내 옷을 사주니 마니 다툰 적도 있고. 나는 그 시간에 뭐를 했지? 배우자가 배우자를 위해서. ‘불굴의 의지로 뭔가를 이루려 초석으로 삼으려고 가정을 꾸린 것이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어.’ 나는 푸념만 했나?
친구는 뒤에서 울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게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고통은 견디기 어려웠을 게다. 시작부터 뒤틀린 끈을 풀려고 무던 애를 썼을지 모르고. 이게 뭐야? 하면서.
“우리 1년 후에 다시 만나 생각해보자!”
헤어질 때, 그 친구가 말을 했다. 가기 싫다는 놈 달래서 보내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1년 후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서로 견딜 만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또 다른 선택이 훌륭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덕분에 나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두 가지의 물건을 받았다.
한순간 어깨너머로 배운 빛나는 글쓰기와 ‘가장이 뭔가?’ 하는 화두다. 다시 서너 해가 지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아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그 친구와 함께 살면서 제대로 된 글쓰기를 배웠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허접스러운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는 아니었으리라. 아니다, 글을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을 테니.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땅을 파고 나는 글을 씁니다! 이걸 천직이라고 하지요.’
서로의 몸에서 나는 소리가 어긋났으리라 생각을 한다. 내 몸은 연장 부딪치는 일과 노조 일들을 몰고 집을 드나들었고, 그 친구도 자신의 조직일과 글쓰기, 홀로 가정의 여러 문제가 부딪치는 소리로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그 친구는 내가 안기에는 적당한 무게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친구의 몸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나와 다르게 귀가 밝았다. 노래도 잘했지만, 놀랍게도 두세 번 들으면 가사를 외웠다. 내 안의 소리가 너무 복잡하게 들려 질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자기야, 그게 아니고, 신뢰라고. 당신에게는 보이지 않아.’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거나 알아듣지 못했다. 그 모든 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정작 가정을 어거지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은 그녀였지 않을까 싶다. 끌려가기도 귀찮은 놈까지.
“지금부터 반말하지 마세요.”
예비군복을 받던 날, 그 친구가 말을 했다.
뭔가 뒤트는 농담이었나? 이게 우리 관계의 핵심이었나? 상호존경? 나는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 엉킨 혀가 무슨 말을 뱉어내야 할지 꼬여버렸다.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 했지만, 나는 입을 닫았다. 마지막 인사도 못 했다.
“우리가 잘 될 수 있었을까?”
한 번쯤 해볼 만한 질문이다.
“당연하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지금이라면 서로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벽돌 사이에 시멘트가 있듯이 둘 사이에 성장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다면 가능한 말이다. 하지만, 당시 둘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우리가 왜 헤어졌지요?”
“나가라고 했잖아요.”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랬었나?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때는 안 해 봤는데요.”
“됐고, 그럼, 처음에 왜 시작하자고 했어요?”
“사실은, 헤어지자는 말을 못했어요.”
으슥한 골목 아래서 스물여덟 혹은 아홉의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머릿속과 다르게 마음이 주도권을 잡았다. ‘헤어집시다!’라고 생각하고 ‘같이 삽시다!’로 말을 했다.
“당신은 나하고 사는 게 현장 하나 옮기는 수준이지만, 여자는 온 몸을 던진다고. 내 발을 부러뜨린 거라고. 내가 들인 공을 생각한다면, 꼭 그렇게 말을 해야 돼? 나는 바닥을 드러냈어. 당신은 푸념만 하다가 나간 거고. 내가 쫓아낸 게 아니고 넌 들어온 적도 없었다고.”
“미안, 다시 말할게, 너무 사랑해서 함께 하자고 매달릴 수가 없었어.”
“저리 비켜 자식아! 잊으려는 노력조차 아까운 놈.”
변명으로 보일 수 있는 말들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밀어냈을 때 저항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이유에서라기보다 내 성향이었을지 모른다. 조선놈은 무릎을 꿇지 않는다. 헤어지자는 말에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언제 철로가 교차하는 선로 위에서 만난다면 묻고 싶다.
“잘 살아요?”
“당신 먼지 냄새 나는 작업복, 오줌 묻은 빤스, 양말 안 빠는 것만으로 충분하답니다. 밥 먹을 때 떠들고 흘리는 건 여전하시나? 늙은 사나이답게.”
나는 이 방 저 방에서 담배 냄새 안 맡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정세에도 세금 고지서 나오고, 아들놈 등록금 만들려 골머리 썩히는 개인사가 돌아가는 게 신기한 세월이다. 세상은 땅에 붙어 중력으로 살아간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진작 알았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다. 지금이라면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을지 모른다. 아니다,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저 씩 웃고 집을 나와 버렸을지 테지.
“왜 내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아?”
“나는 도망치기 선수잖아.”
“유치한 농담으로 위안 삼지 마. 나까지 비참해지잖아.”
“무슨 말을?”
“나 이천에 도자기 굽는 언니네 집 좀 다녀올게.”
“얼마나 걸리는데?”
“삼일.”
나는 건성으로 들었고,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게 펜살이야!”
그녀는 검은 플러스펜을 원고지 위에 놓고 손가락을 보여 주었다. 딱딱한 굳은살이 중지 첫 마디에 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글쟁이의 자부심이지.”
그녀는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나도 굳은살이 있어. 자부심은 아니고.”
바르게 누워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박인 굳은살을 천장을 배경으로 보았다. 오랜 가위질로 얻은 이력이다.
그녀는 웃더니 머그잔에 반쯤 찬 식은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원고지를 검토하였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그녀가 뿜어낸 담배 냄새를 음미하였다.
라커룸을 나와 빈 운동장으로 걸어간다.
나무 방망이가 무겁다. 투수로 나온 그녀가 웃는다.
나는 멋지게 저쪽 담장으로 넘어가는 공을 상상하며 자신을 북돋는다.
친구가 공을 던지고 나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른다.
니기미, 헛방이다.
다시 공이 날아오고 나는 한 방 날린다. 멀리, 하지만 파울이다. 나는 방망이를 집어 던진다.
“나는 아직 출사표를 던지지 않은 기분이야. 내가 세상에 출사할 날이 있을까?”
내 말에 그녀는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는 선배와 누워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었다.
“철이 먼저 들어야지. 공부도 더 하고.”
선배가 말을 했다.
“보수의 탈을 먼저 벗고. 당신 그것 모르지?”
그녀가 거든다.
“내가?”
“누구겠어. 항상 진심으로 여성을 존중하라고. 당신 어머니처럼. 그럼 모든 일이 잘될 거야. 장담하지.”
한쪽 눈을 감고 웃는다.
“여성이라고 무시할 일도 없지만, 나는 사나이라고,”
“노가다 아니고? 여성을 존중할 줄 알면 삶의 눈을 뜨게 돼. 비로소 타인에게 반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거지. 이 단순한 걸 왜 모르는 거야? 사나이라는 말은 ‘나는 바보입니다.’ 라는 말을 갈음하는 거라고. 당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열정을 패대기치지 마.”
“맞아 노가다라니까, 내 길을 갈 뿐이야. 운명에, 특히 여자들에게 살살거리지 않아.”
“여전히 ‘나는 구제불능’이라고 외치고 있어. 언젠가 목을 조를 거야. 이 손을 잘 봐. 여기.”
그녀는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입으로 ‘탕’ 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 못된 버릇 어디서 배운 거야? 가장한테.”
“당신의 문제가 뭔지 알아? 모든 감성이 자신에게만 쏠린 거야. 그게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줄 알아? 그저 짜증을 내고 기껏 기분이 좋으면 떠벌이기만 해. 그 모든 말을 모아보면, 한마디야. 나는 ‘밥’입니다. 무슨 ‘밥’인지 알지?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줄게. 인생부터 퇴고해봐. 혹시 죽기 전에 철들지 알아?”
“나도 동의. 타인에게 제대로 된 반응을 하라고. 특히 부인에게. 미안!”
그 친구와 선배의 말을 외면하고 일어나 창가로 가서 기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멀리 소사역에 지붕이 얹어지고, 철로 옆에서 청소부가 가구를 태우고 있다.
붉은 도장 찍힌 봉인이 창밖으로 날아간다. 청소부가 가구를 태우는 철로를 지나 나풀거린다. 돌아보니 두 여인이 보이지 않는다.
□최경주: 1997년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발전기 소사」, 「헬로우 김남주」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산문집으로 『닥트공 최씨 이야기』가 있음.
□작가의 말
가끔 넓은 현장에서 작업에 집중하다가 창도 없이 꽉 막힌 창고에 딱 들어서는 순간, 멍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요. ‘내가 뭐하러 왔지?’ 잠깐이긴 하지만, 단절된 그 순간이 꽤 막막하게 느껴지고 기억이 날 때까지 생소한 자신을 보게 되는데, 글을 쓰고 나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글을 내가 왜 쓴 거야?’ 무슨 기술적 장치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니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필이요, 산문이겠지만. 바로 이 글이 그렇습니다. ‘내가 쓰긴 쓴 거야?’ 아무 일도 없이 창고에 가지 않듯이 뭔가 있어서 쓰기는 했지만, 기분이 그렇습니다. 왜 거, 펜 뚜껑을 열어 공책을 펼쳐 들고 뭐라도 쓰려다가 여닫기를 몇 번, 문득 스쳐 가는 한 생각으로 몇 날을 휘갈겼더니 나온 글 같은.
‘내가 언제부터 글을 썼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글 주변에 엉겨 붙어 있던 사람과 인연이 딸려 나오듯 생각이 엮이어 글이 되었습니다. 이걸 누구에게 ‘읽어 주십시오, 라기보다는 어찌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ㅎ
오랜만에 올라온 소설 잘 보았습니다. 소설을 읽는 일은 시간이 들어서 쉽게 답글을 못 달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 펜살과 손바닥의 굳은살이 손을 잡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무슨 사연이 펼쳐질까?
시간차 때문인지 펜살에 대한 기억이 가물한데다 남자의 기억에만 의존하니까 둘의 사연이 조금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가위질 굳은살로 쓴 글은 밑바닥 노동으로 굳은 펜살이 되리라고 믿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