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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관련글 스크랩 [변선환박사]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
차돌 추천 0 조회 224 09.04.21 23: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종교의 벽’ 허문 변선환 박사  

1991년 감신대 변선환 학장은 목사직에서 면직됐다.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며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영국 국교회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파문당한 뒤 ‘교회가 아니라 세계가 나의 교구’라고 선언했던 감리회 창시자 존 웨슬리(1703~1791)가 세상을 뜬 지 200년 만이었다.

   
 
  ▲ 종교의 벽’ 허문 변선환 박사 “기독교 밖에도 구원은 있다”라는 이유로 종교재판 받고 목사 자격 박탈, 그는 수많은 ‘교회 희망’길러낸 진정한 스승이다!  
 
다음해인 92년 5월 7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 금란교회에서 ‘종교 재판’이 열렸다. 재판정은 김홍도 목사가 이끄는 금란교회 신자 3천여 명의 찬송과 기도 소리로 가득했다. 스승을 구하려는 감신대 대학원생들의 절규 어린 함성은 수천 군중의 함성에 묻혀버렸고, 수십 명의 대학원생들은 곧 억센 남신도들에게 예배당 밖으로 끌려 나갔다. 감리회 재판위원회는 변선환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처분을 내렸다. 감리교회 목사직을 파면하는 것은 물론 신자 자격까지 박탈한 것이었다.  

종교재판 받고 목사 자격 박탈
현실 눈뜬 신학, 타종교와 대화, 수많은 ‘교회 희망’길러낸 스승
  

변선환은 서울 정동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위해 단상에 올라 “나는 죽지만, 내 제자들은 노다지”라고 했다. 그가 내 제자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에서 ‘노 타치’(손대지 마라)의 어원인 ‘노다지’라고 했지만 말 그대로 그의 제자들은 그로 인해 세상에 빛을 나눠주는 노다지가 되었다. 그는 서구신학의 틀대로 만들어진 모조품을 찍어내는 스승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수천 수만년 동안 이 땅의 자연 속에서 잉태돼온 광맥을 찾게 해준 능숙한 사부였다.

비록 변선환 자신은 오직 책 속에만 묻혀 산 학자였지만, 그로 인해 이현주 목사, 최완택 목사, 2년 전 타계한 채희동 목사 등 동양적 영성의 우물을 길러내는 영성가들이 나왔고, 한국기독교청년회(YMCA) 환경위원장 이정배 감신대 교수, 연세대 교목실장 한인철 교수,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수원등불교회 장병용 목사, 홍천동면교회 박순웅 목사, 기독교환경연대 양재성 사무총장 등 한국교회의 ‘희망’들이 탄생했다.

변선환은 평안도의 항구 진남포에서 태어나 유가적 가풍에서 자랐다. 해방 후 그를 기독교로 인도한 것은 3·1운동 민족대표의 한명인 신석구 목사였다. 신석구는 처음엔 3·1운동 가담을 주저한 인물이었다. 외국 선교사들이 다른 종교인들과는 어울리지도 말고, ‘정치적 일’엔 관여치 말라고 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홀로 기도하던 중 응답을 얻은 뒤 가장 늦게 참여를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16명의 기독교인 민족대표 가운데 마지막까지 지조가 꺾이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 신석구가 변선환의 첫스승이었다.

감신대와 한신대를 거쳐 육군 군목과 이화여고 교목을 지낸 그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신학을 배웠다. 그 7년의 유학생활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나는 결코 서양 사람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가족과 벗들과 동포들이 있는 고국의 역사 현장에서 우뚝 섬으로써 좋은 기독교인이 되고, 좋은 한국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교적 기독교신학을 했던 두 번째 스승 윤성범으로부터 배웠던 변선환은 불교학자 이기영 박사를 비롯한 많은 타종교인들과 깊은 대화를 시작했다.

변선환은 공항에서 책을 보다가 비행기를 놓치고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자신의 오줌 소리인 줄 알고 30분을 바지춤을 내린 채 서있을 만큼 뭔가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불교학자 이기영 교수, 유학자 유승국 교수,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 강원용·김흥호 목사, 가톨릭 토착화 신학자 심상태 신부 등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게 집중했다. 대화가 깊어갈수록 그의 세계는 풍성해졌다. 마침내 그는 아시아인들의 종교성과 민중성(가난)을 놓치면 아시아의 신학일 수 없다면서 아시아인은 아시아의 현실에 눈을 감지 않은 신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 감신대에서 스승 변선환을 회고하는 이정배 교수  
 
늘 두루마기를 입고 보따리에 책을 싸들고 다니면서 제자들이 찾아오면 을지로4가 우래옥에서 냉면을 사준 뒤 비원과 창덕궁 길을 걸으며 동양과 자연의 신비를 넘나드는 신학과 개인적 고뇌를 나누고, ‘스승의 노래’를 부르는 제자들 앞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변선환은 당시 감신대생들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이정배 교수는 “대학원생들이 하나같이 그에게 학위 지도를 받으려했기 때문에 한 교수가 학생 6명 이상을 지도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새해 첫날이면 꼭두새벽에 스승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던 이현주 목사는 변선환의 10주기 추모 예배에 올린 ‘우리의 스승 변선환’이란 헌사에서 “우리의 진실한 친구 변선환, 살아있는 동안 너로 하여 우리 외롭지 않았노라’고 노래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구원은 뒤로 한 채 마지막 한사람까지 지옥에 내보낸 뒤 가장 마지막에 지옥문을 나서겠다는 불교 지장보살의 서원을 들어 자신과 타자, 기독교와 타종교, 선과 악 등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나눠 다른 쪽을 지옥으로 내쳐버리는 기독교의 한계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년 8월8일이면 용인의 변선환 묘소에 하나둘씩 모여드는 제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도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교회 밖에 내동댕이쳐졌던 기독교인이 있었다고.


 

 

 

변선환박사 주요 논문 목록

"종말론의 관점에서 본 그리스도론의 재구성", 감리교신학대학교 졸업논문, 1953.
"웨슬레 신학에 나타난 ordo Salutis -은총의 우위를 찾아서", 한국신학대학 교 대학원 졸업논문,1960.
The Possiblities of Theological Correlation of S ren Kierkegaard and Karl Barth based on Der R merbri         ef 2.Auflgage,STM Dissertation(Drew University,1967).

 
"The problem of the Finally of Christ in the Perspective of Christian-Zen Encounter, Dr. Theol. Disserti          on"(Univ. Basel,1975).

 

          "두 유형의 무신론자",{기독교 사상}(1965,8).

"불트만의 종말론적 윤리",{사상계}(1967,12).
"현대 종말론의 초점",{기독교 사상}(1968,5).
"기술 문명의 미래와 종말론적 신앙", {기독교 사상}(1969,1).
"실존과의 랑데브-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연구", {현존}2(1969,8).
"사무엘 베케트와 실존주의 신학 1-3", {현존}14(1970,9):15(1970,11).:16(1970,12).
"예수의 부활과 현대신학", 청암 홍현설 박사회갑기념논문집, 감리교신학대학 (1971).
"후기 틸리히의 종교사의 신학"{신학과 세계},창간호(1975).
"Raymond Panikkar und Hindu-Christen Dialogue",{신학과 세계}2(1976).
"동양적 예수의 문학적 개척(원승주작론)", {기독교 사상},(1976,8).
"Missio Dei 이후의 선교신학",{신학사상}14(1976,봄).
"한국 감리교의 선교신학", 기독교 대한감리회(1976,10).
"5천교회 백만신도 선교운동을 위한 감리교 전국선교대회 연구 교재",기독교 대한 감리회(1976,10).
"불트만의 신비화와 토착화의과제", {신학과 세계}3(1977).
"Buddihism and Christianity, Re- eval‎!ution of Yagi's Topos Theology: Centering on "The Point of Cont          act of Buddhism and Christianity"(1975),{신 학과 세계}3,(1977).
"팔목성일의 장소적 기독론",신학사상}18(1977).
"경영의 근대화의 새로운 가치관", 춘계경영이념 세미나, 한국경영학회(1977).
"동서종교의 대화",{고대문화}17(1977).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월간목회}(1977,7).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월간목회}(1977,9).
"이용도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신학과 세계},4(1978).
"현대 과정신학에 나타난 기독론",{신학과 세계},4(1978).
"탁사 최병헌과 동양사상",{신학과 세계},9(1979).
"일단목회의 진리와 좁재신비주의",{한국종교}4,5(1980),원광대학교 출판부.
"현대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생의의미에 관한 탐구{산돌}3,(1980),감리교서울신학 교 출판부.
"웨슬레 신학과 선행 은총", {신학과 세계} 7(1981).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기독교 사상}(1982,9).
"교회 개척의 신학적 근거",{산돌}5(1982)감리교서울신학교 출판부.
"시간,공간,창조", {특수연구}제2집(1983)서울예술전문대학.
"해천 윤성범 학장님을 추모함"{신학과 세계} 9(1983).
"하이데거와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대한기독교출판사(1983).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대한기독교출판사(1983).
"아시아 교회의 신학적 과제",{기독교 사상} 27(1983,4).
"동양종교의 부흥과 토착화신학", 1(1983,5):2(1983,6):{기독교 사상}.
"한국종교의 근대화 방향-기독교적 입장에서",숭산 박길진 박사고희기념 한국근 대종교사상사,
 원광대학교     출판부,1984.
"정치신학과 문화신학",{사목}93(1984).
"비서구화와 제3세계신학",{신학사상}46(1984,가을).
"신학적 입장에서 본 정신건강-특히 Frankl V. E.의 실존요법과 기독교 신학과 의 대화",             
 {정 신건강연구} 제2집(1984,2),한향대학교 정신건강연구 소.
"타종교와 신학", 한국기독교 백주념기념 신학자대회 강연,{신학사상}47(1984, 봄)
"웨슬리신학과 종교신학의 전방",{냉천}2)1985)감리교신학대학.
"현대화냐 보수화냐?{사목}100(1985,9).
"아세아 그리스도론의 여명",{신학사상}48(1985,가을).
"Other Religion and Theology", {신학과 세계} 11(1985,가을), "South East Asian Journal of Theology",
Vol.3,No2.1985.
"한국 문화 속의 기독교",{인문과학연구}6(1986),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 소.
"한국기독교와 한국문화",{아카데미총서}6(1986)호호출판사1986.
"현대 한국 사회와 기독교의역할",제6회 원불교 사상 연구원 학술회의(1986,5).
"팔목성일의 성서해석학과 선불교1"(1986,가을)2(1987가을),{신학과 세계} 13,15.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인성을 중심으로", {성서와 함께}118 (1986,1).
"칼 라너의 익명의기독교",{여성과 신학} 백경숙학장 회갑기념 논문집편찬위원 회,1988.
"Buddhist-Christian Dialogue Toward the Liberation of Minjung, 미국 뜨루 대학교 Vosbough 강연
(1987,10),{신학과 세계} 16(1988,봄).
"웨슬리와 민중",존 웨슬리 회심 250주년기념 감리교선교대회강연, 하나님의 나 라.교회.민중, 기독교대한
감리회 본부,19885,23-25.

 

에세이 목록

현대문명의 정신적 상황,{질병}13(1978)카톨릭의과대학교.
사랑의 동반자 예수,{경향잡지}1978,1.
우리모두에게 평안을,{경향잡지}1979,1:{하늘과 땅사이에}천주교중앙협의회.
'80년대 한국종교의 흐름,{경기}제5집(1981),경기대학교.
죄로부터의 해방,{경향잡지}1981,8.
종교와 구원,{목화}제9집(1981)동덕여자대학교.
민중신학을 넘어서서,{정경문화}1982,8.
한국재래종교의 역사의식,{경향잡지}1982,8.
서구의 황혼과 기독교신학,{원광문화}19집.(1982)원광대학교.
유.불.선.무와 공존하는 기로,{마당}1984,2.
단독자와 대중적 인간,{북악}국민대학교,1984.
저마다 자기 영혼을 가져야 한다,{주부생활}1984,2.
전쟁과 평화,{정경문화}1984,4.
청소년-모라토리움의 시대,{정경문화}1984,5.
천주교도들의 순교,{문예중앙}1984, 여름.
역사의 진실앞에서,{정경문화}1984,6.
쾌락이라는 이름의 우상,{정경문화}1984,7.
진리에로의 여로,{정경문화}1984,8.
대화막힌 동토의 시대,{정경문화}1986,4.
동서지성의 대화,{금강}1986,1.
한국사회-오늘의 병리 ,{정경문화}1986,7.
신 앞에 홀로선 자,{샘터}1977,10.
{아레오바고지}에 거는 소원,감신대 대학원,1985,봄.

신문기고 목록

자유에로의 초대(장래 그것이 너희의 것),(거울)411,이화여자고등학교.
죽음을 기억하라,(거울)416,이화여자고등학교.
크리스마스의 현대적 의의,(거울)439,이화여자고등학교.
허공속에 존재를 창조한 예술가,알베르또 짜꼬메띠,(거울)440,이화여자고등학교.
역사적 예수의 문제,{감신대학보}1965,12.
프리츠 부리의 실존신학의 중심문제,{감신대학보},1967,10.
    세계10대 전위신학시리즈.
  1. 게르하르트 에벨링,{크리스챤 신문},1968,10,26.
  2. 위르겐 몰트만,{크리스챤 신문},1969,1,4.
  3. 위버트 오그덴,{크리스챤 신문},1969,3,29.
  4. 칼 라너,{크리스챤 신문},1969,5,31.
  5. 가브리엘 바하니안,{크리스챤 신문},1969,6,28.
  6. 떼아르 드 샤르뎅,{크리스챤 신문},1969,8,9.
고난의 신비주의-도르트 죌레,{감신대학보},1976,7
변선환교수 특별대담,{감신대학보},1976,7.
자랑스러운 감리교도,{기독교세계}1977,8,9.
자랑스러운 감리교도,{교회연합신보},1977,10,16.
기독교 지성의 사명 상,{크리스챤 신문},1977,11,26.
기독교 지성의 사명 하,{크리스챤 신문},1977,12,3.
요한 웨슬레와 현대신학,{감신대학보},1978,5,10.
현대철학과 신학의 대화-철학적 신앙과 프리츠 부리의 책임의 신학, {감신대학보},1978,9.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주간조선]1978,10,1.
선교의 새 방향,{감청회보}1978,10,14.
사회학에 있어서 종교의 위치-기독교,불교,유교의 공동이념, {감신대학보},1979,7.
봄의 찬가,{감청뉴스},1980,5,17.
21세기 한국신학,{크리스챤 신문},1980,7,12.
한국문화와 기독교,{감신대학보},1980,10,10.

"책임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원불교신문}1980,12,6.
해천 윤성범님의 사상,{감신대학보},1981,3.
실존주의와 신,{한대학보},1981.3.
감신의 신학적 전통과 유산,{감신대학보},1981,1,10.
웨슬레와 휴머니즘 상,중,하,{학국복음신보},1981,5,24;5,31;6,7.
새로운 성령이해는한국선교의 과제,{감신대학보},19826,10.
한국선교와 타종교와의 대화,{교회연합신문},1982,7,18.
한국선교와 타종교와의 대화,{크리스챤 신문},1982,8,7.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상,하,{크리스챤 신문},1982,9,25;10,7.
의의 최후승리를 믿노라-대화를 통한 선교 필요...학문적 소신 굽힐 수 없다, {감신대학보},1982,9.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감신대학보},1983,5.
민중신학과 뱅쿠버 총회,{크리스챤 신문},1983,8,6.
유동식의 풍류신학,{크리스챤 신문},1983,9,17.
아픔과 십자가의 교회,{감신대학보},1983,10,10.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과 계시신앙,{크리스챤 신문},1983,10,29.
대담:심령 사회구원은 조화되야,(변선환-김호식),{중앙일보},1983,12,23.
미완의 종교개혁,{크리스챤 신문},1983,11.
가족간의 "이교"-현명한 "화해의 길",{동아일보},1983,12,24.
'83년의 신학계, 보수와 급진의 대립 양상,{크리스챤 신문},1983,12,24.
"1984년"에 거는 희망,{중앙일보},1984,1,7.
예언자적 지성,{중앙일보},1984,2,4.
전통 문화와 기독교 사상,{크리스챤 신문},1984,2,4.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중앙일보},1984,3,17.
웨슬레 신학의 전망-개교 80주년 기념공개강좌, 감리교의 회고와 전망, {감신대학보},1985,11.
지성인의 두 유형,{경향신문},1986,3,12.
4월이여 평화여,{경향신문},1986,4,1.
마음속의 폭력 직시해야 한다,{경향신문},1986,5,13.
기독교의 한국화는 멀었다,{한국복음신보},1986,1,19.
인류의 평화와 신학적 과제,{감신대학보},1986,7,10.
토착화 신학의 미래,{감신대학보},1988,7,10.
서울서 거듭나게 하소서,{중앙일보},1988,9,17.


 

[http://www.nathanjo.net/pyun.html 일아 변선환박사 추모 홈페이지 / 조병철목사운영]에서 허락얻어 전재함.


출처 : Tong - 추락하는 한국교회님의 한국교회의 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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