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샤(cabochard)
그레( Grés), 1959년
사람은 먼저 사랑을 선택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선택을 사랑해야 한다.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나다나엘 호돈의 대표작 [주홍 글씨] (1850)는 개척 단계에 있던 미국 보스턴 시의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쓰여진 것으로 작가는 여기에서 언제나 인간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죄와 사랑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주제로 취급하고 있다.
아름답고 덕망 있는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 그녀의 남편으로서 일생을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사는 칠링그로우스, 그리고 헤스터와 더불어 불륜의 관계를 맺은 청년 목사 딤스데일, 이들 세 인물은 너무나 선명하게 오늘날 우리 세대에 사는 사람들을 반영해주고 있다. 헤스터가 청년 목사 딤스데일의 아이를 분만함으로써 그녀의 불륜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으며, 그 벌로써 간음(Adultery)이라는 영어의 첫 자인 ‘A’자를 붉은 색실로 수놓아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다. 이것이 곧 이 소설의 제목 [주홍글씨]이다. 죄를 고백한 헤스터는 그런대로 담담한 참회의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나, 고백하지 못한 딤스데일은 심신이 사경에 이른다.
한편 헤스터의 남편 칠링그로우스는 딤스데일에 대한 복수의 일념에 불타고 있었다. 결국 딤스데일은 자기의 과오를 고백함과 동시에 죽고, 그 광경을 본 칠링그로우스는 미쳐 버린다는 것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것은 재미로 읽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헤스터의 드러난 죄, 딤스데일의 감추어진 죄, 그리고 칠링그로우스의 복수심과 오만, 이 세 가지 죄악 가운데서 어떤 것이 가장 심각한 것일까?
자신이 범한 과오를 스스로 문책하려는 의지, 이것은 모든 실존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이다. 시성 단테는 ‘모든 죄악 가운데서 오만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말했으며, 호돈 역시 칠링그로우스의 오만한 성품을 가장 큰 죄라고 규명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서 조용하고 은밀한 산간을 거닐며 참회하는 젊은 청년 딤스데일. 가슴에 인간애를 간직한 사람이라면 그를 용서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마음, 이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1959년 불멸의 카보샤(Cabochard) 향수를 탄생시킨 알릭스 그레(Alix Grés). 조심스러우며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강인하고 완고한,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다. 1942년 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파리에서 그녀는 가게를 열었다. 진열장 주변을 프랑스의 3색기 색상인 빨강, 흰색, 파랑으로 디자인하였다는 이유로 곧 독일 당국에 의해 가게는 폐쇄 되었다.
(중략)
Grés는 결국 Chuda와 강한 시프레 향조 Cabochard(고집장이라는 뜻) 둘 다 출시하기로 했다. Cabochard 향기의 중심 기조는 1880년경 발견된 합성향료의 하나인 이소부틸퀴놀린(isobutylquinoline)의 연기 냄새가 나는 레더(leather) 향조이다.
그러면 예쁜 리본을 단 Cabochard 향기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술적으로 Cabochard는 Bandit(Piguet, 1944)를 둥글게 해석해 놓은 것이다. Bandit는 좋은 향수지만 가죽 향취가 너무 강하여 야수적인 느낌이다. 너무 중후한 동물적인 시프레여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다. 조향사는 가죽 향취를 침묵 시키고 좀더 꽃향기를 내는 어코드를 만드는 훌륭한 방법을 찾아냈다. 부드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다린을 사용하여 신선한 탑 노트도 개량하였다.
”카보샤의 성공은 여성용과 남성용 모두에서 leather-chypre 어코드의 새로운 시대를 불러일으켰다. 해를 거듭하면서 Aramis(1964), Miss Balmain(1967), Cachet(1970), Montana(1986) 등이 Cabochard 계보의 뒤를 좇았다. 특히 인도에서 보았다는 희고 큰 꽃, 진저 플라워를 주제로 젊은 층을 겨냥한 카보틴(Cabotine, 방랑자라는 뜻)은 ‘카보샤의 딸’로서 옛날의 화려한 영광을 꿈꾸며 1990년 다시 태어났다.
재클린 케네디,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주 등 수준 높은 단골 고객을 거느리고 있었던 전통적인 디자이너 그레는 Vogue 잡지에서 1988년에는「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았다.
늘 소박한 차림새였지만 독특하고 감각적인 그녀의 정신은 그녀가 선택한 향수에 살아있다. 알릭스 그레는 카보샤 그 자체였다. 사랑은 모든 곳에 놓여진 등잔과 같다. 그러나 다만 그것을 찾아서 소중히 간직하는 자에게만 불이 켜질 것이다.
*출처 : 불후의 명품향수 이야기(신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