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카메라
김 옥 매
얼굴을 거울에 바짝 댄다. 두 손을 머리에 대고 눈을 치켜세운다. 가르마 도로에 벚꽃길이 생겼다. 장마철에 잡초 자라듯 쑥쑥 자라는 새치는 도망치면 따라오는 추적자처럼 끈질기다. 차라리 항복해 버릴까. 호호백발 할머니가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그럴 수 없어.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흰 머리카락을 잡기 위해 미용실로 향했다. 한산한 도로를 아무 생각 없이 달렸다. 지나가는 운전자가 수신호를 한다. 바퀴에 바람이 빠졌단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신 나게 달렸으니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다행스럽게도 평소에 다니던 정비 공장이 코앞에 있다. 조금만 늦었어도 견인차를 불러야 할 정도였다. 이 우둔함을 어찌할꼬.
구멍 난 곳을 못 찾겠다 한다. 누가 일부러 바람을 뺐을 수도 있단다. 바람은 채웠는데 그래도 안 되면 타이어전문점에 가서 물에 넣어 봐야 알 수 있단다. 누가 일부러 빼기야 했겠는가. 어디에 부딪혀 주입구가 열렸겠구나 생각했다. 직원을 믿고 싶었다. 그동안 불편함 없이 살펴주던 곳이라 신뢰가 쌓여있었다. 본사에서 확인 전화가 오면 매우 만족하다는 답변을 요구했었다. 다른 곳에는 탈이 없는지 거금을 들여 점검을 끝냈으니 별일은 없겠지. 그래도 위급한 상황은 아니기에 열쇠를 넘겨줬을 거로 생각했다. 미장원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자동차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려앉았다. 탱탱하던 몸집이 두어 시간 사이에 할머니 뱃가죽처럼 처져 있다. 절대로 못 움직인다고 땅을 잡고 누워 버렸다. 자동차의 상태에 대한 걱정보다 배신감이 밀려온다. 전문가의 경험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예상 못 했을까. 애초에 자신이 없었으면 타이어 전문점으로 보냈어야 옳지 않은가. 아니, 바퀴는 팔아먹으면서 귀찮은 일은 왜 남에게 미루어 버리는가. 고객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처사에 화가 난다. 전화를 걸었지만, 견인차가 없어서 견인이 안 된단다.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견인해 오란다. 후텁지근한 날씨만큼 불쾌한 기분은 극에 달한다.
다른 곳으로 보냈다. 30분 동안 물을 받고 있단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직원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혀있다.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다. 허공에 달린 자동차는 자신의 아픈 신발을 걱정스럽게 내려 보고 있다. 아주 미세한 틈이었단다. 물에 넣어야만 알 수 있었다 한다. 마모상태까지 꼼꼼히 챙겨주는 손길에 청량한 바람이 스친다. 같은 업종인데 서비스의 질이 이렇게 차이 날 수 있나. 물을 받는 30분의 수고로움을 양심과 바꾼 그의 마음도 지금쯤 편치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고객을 감시용 카메라로 내세워 놓았지 않는가. 그 태도를 봐서 내가 아니라도 곧 그에게 경고장이 도착할 것이다. 감시의 존재를 알면서도 무시했으니 정작 그것마저 없다면 어떠했을까.
우편물이 왔다. 위반사실 통지 및 과태료부과 사전 통지서란다. 제한 속도를 16km 초과했단다. 아깝다. 내비게이션을 달아야 하는데. 법을 어긴 반성보다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야 할 돈이 먼저 생각난다. 초보 운전 시절에는 위반은 곧 죽음이라 생각했다. 가끔 남편이 카메라 앞에서 급 브레이커를 잡을 때마다 속 보이는 짓이라 비웃었다. 아무도 없는 건널목에 푸른 신호를 불만 없이 기다렸다. 언제부터인지 빨강 신호등은 빨리 가라고 있는 거라던 지인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뒤의 차에 대한 배려라 생각하며 슬금슬금 신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것은 그곳에만 조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감시하는 눈을 피해 오른발에 힘을 조절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다.
고객의 마음을 잡지 못한 그의 모습이 감시의 그물에 걸려 파닥거린다. 그것은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내 양심의 몸부림이었다. 보이지 않는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과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굳은살이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려 둔해져 간다. 내동댕이친 양심이 감시의 칼날에 베여 울고 있다. 감시용 카메라는 사후적인 용도에서 더 나아가 사전예방의 용도로까지 발전된단다. 곳곳에 눈을 번득이는 불신의 산물. 서로가 믿지 못해 장치해 놓은 족쇄. 그 책임이 나 자신에 있음을 통감한다. 내가 친 그물에 내가 걸리다니.
이제야 의식한다. 나처럼 함부로 버린 마음들이 모여서 믿음의 벽을 뚫었다는 걸. 믿고 싶다. 일진이 안 좋았으리라.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 붙잡지 못하고 놓아 버린 마음 한 자락을 지금쯤 애통해하리라.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내 실수였음을. 나태한 내 탓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후텁지근한 날씨만큼이나 불쾌했던 마음이 어느새 편안해진다. 소나기라도 내리려나. 창 밖에 한 줄기 바람이 나뭇가지를 쓰다듬는다.
거울 앞에 앉았다. 염색약이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까맣게 염색된 머리카락이 불빛에 반짝인다. 거울에 비친 마음을 살핀다. 시커먼 양심이 새치가 자라듯 뾰족뾰족 돋아 나와 있다. 양심까지 깨끗하게 물들이는 염색약은 없을까. 양심의 속도를 감시하는 카메라 하나를 내 마음에 내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