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감수성과 자립심 기르는 대안교육 산촌유학
청양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 지역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 이 암울한 현실의 근원에 ‘열악한 교육여건’이 있다.
청양의 처지와 같은 전국의 지자체 중에서 교육여건을 개선시킨 사례를 취재해 청양에 접목시킬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번 호에는 폐교 위기를 벗어나 본교 승격 논의에까지 이른 전북 완주군 고산면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와 그를 가능케 한 고산산촌유학센터의 역할을 소개한다.
글 싣는 순서
1. 교육여건 개선, 지자체가 앞장선다.
2. 교육에 올인하는 지자체들의 고민과 성과
3. 장학재단 운영과 명문고 육성사례
4. 친환경급식은 미래에 대한 책임
5. 농촌마을의 새로운 꿈, ‘산촌유학’
6. 청양의 교육환경,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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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교위기를 벗고 본교승격 논의에까지 이른 양화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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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대상 전국 1순위였던 양화분교
봉동초등학교 양화분교는 2개 학년씩 복식수업을 하던 전교생 12명의 소규모학교였다. 전북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폐교 1순에 해당될 만큼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분교에 학생이 14명이나 늘었고, 교사 두 명도 새로 부임했다. 활기 넘치는 교실과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운동장, 예전의 학교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다.
교육프로그램도 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송호필 분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연과 하나 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체험학습 위주로 교육일정을 꾸린다.
그렇다고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다른 학교에서 쓰는 만큼 쓴다.
오히려 가장 특징적인 일정은 돈이 안 드는 프로그램이다. 교사들은 도시에서 온 학생들이 자연을 재미있게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학습 일정표를 짠다. ‘두꺼비알 채집’, ‘버들강아지 관찰’ 등 인근 마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학생들이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다’, ‘컴퓨터 할 때는 눈 아픈데 눈도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이처럼 어느 학교에서보다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사이 양화분교는 어느새 폐교 위기를 완전히 벗고 본교 승격 논의를 할 정도에 이르렀다.
본교 승격 논의에 대해 최용근 봉동초 교감은 “추가 전학생과 입학생 현황을 알아본 뒤 긍정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라며 “교육청도 양화분교와 산촌유학센터의 사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산산촌유학센터의 의미 깊은 출발
그렇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골 분교에 어떻게 갑자기 학생이 14명이나 늘었을까?
양화분교에서 서방산 쪽으로 2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고산산촌유학센터’(이하 센터)에 가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센터는 7년 전 이 마을로 귀농한 조태경·지아가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고, 이곳에는 현재 14명의 학생들이 있다. 양화분교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12명이고, 봉동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2명이다.
학생들 가운데 9명은 센터에서 생활하고 있고, 5명은 인근 농가에 살며 농가체험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서울, 안산, 대전,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센터를 통해 전학을 왔다.
센터는 이 학생들이 집에서 생활할 때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구성원간의 호칭도 친족 지칭어를 쓴다. 부모 대신 학생들을 따뜻하게 보살핀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운영자인 조태경씨의 호칭은 삼촌이고, 지아가씨의 호칭은 이모다. 그리고 양화분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김현정씨는 고모로 불린다. 명상을 가르치고 있는 미국인 교사도 고모다.
학생들은 삼촌과 이모, 고모에게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각자의 내면에 있는 영성을 발견하고 기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조태경씨는 “이 센터는 단순히 학생들의 기숙사에 그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면서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의 영성을 계발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산촌유학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학교와의 상생관계가 확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학교 선생님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지 않으면 자칫 학생들만 괴롭게 할 수도 있다”며 “산촌유학을 보내는 도시 학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가면서 서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태 감수성과 자립심 기르는 학생들
고산산촌유학센터 같은 산촌유학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지난 1976년 교사 아오키씨는 입시전쟁터가 돼버린 도시 학교와 교육방법에 절망한 뒤 ‘시골이야말로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가르칠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 그때부터 산촌유학운동을 벌였다.
한국에서는 도농 교류학습을 하던 귀농자들과 대안교육운동을 하는 격월간 ‘민들레’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산촌유학 논의가 활발해졌다.
산촌유학은 ‘도시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생태감수성과 자립심을 길러주고, 귀농인이나 지역 주민들에게는 농촌의 가장 큰 문제인 학생수 감소나 자녀 교육 등에 직접 참여하게 하면서 동시에 농외 소득을 올리는 방안까지 제공한다.
실례로 고산산촌유학센터로부터 학생을 소개받은 5농가는 학생을 돌보는 대신 월 40만원씩 받고 있다. 5농가는 자신의 자녀를 기를 때처럼 학생들이 농사일을 거들게 하고, 식사도 자신들이 먹는 상에 수저 한 벌만 더 놓는다. 많지는 않지만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센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의 변화다. 산만하던 학생이 차분해지고 편식이 심하던 학생이 이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토피를 앓던 학생이 낫기도 하고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 있던 학생이 컴퓨터를 찾지 않는다.
산촌유학은 학생들의 가슴속에서 자연이 자라게 하고, 세상은 여럿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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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촌유학에서 아이들이 가꾼 채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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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환경의 소중함 가르치는 산촌유학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 속에 익어 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서야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고산산촌유학센터 주방 한 쪽에 붙어 있는 이현주 시인의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다.
센터는 이처럼 밥 먹는 것 하나에서도 학생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밥투정을 하지 않고 인스턴트 음식도 찾지 않는다.
동네에서 매일 만나는 분들이 농사를 짓는 분들이고, 그분들의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는 학생들은 먹을거리 한 가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만한 정성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안다. 자연스럽게 도시 식생활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도 하나씩 해소된다.
학생들은 방과후 센터에 돌아와 삼촌으로부터 하루 일정을 들으며 20분 가량의 명상 시간을 보내면 자전거 하이킹이나 홍시 따먹기 등 자연과 함께 하는 놀이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내가 환경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함께 배운다.
학생들은 이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는 것이 일이고 경쟁’인 도시에서의 학교생활을 벗어나 어느덧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배우는’ 산촌유학에 깊이 빠져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