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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욱일승천기가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어떤 연예인이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옷을 입었다든지, 학생들이 만든 광고에서 아무 생각 없이 욱일승천기가 연상되는 효과를 사용했다든지,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 응원단이 욱일승천기를 흔들었다든지 하는 일들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분개한다.
욱일승천기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욱일승천기가 일본의 ‘제국주의’ 혹은 ‘군국주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보며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욱일승천기의 등장에 우려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치즘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아시아에서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게 욱일승천기라면, 유럽에서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1)(Hakenkreuz)’를 꼽을 수 있겠다. 나치즘을 상징하는 갈고리 모양의 십자가 하켄크로이츠. 연구자들은 이 상징의 기원을 인도에서 찾는다. 나치는 모든 인류의 시조가 아리아인이며, 그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이 게르만의 독일 민족이라는 믿음을 주입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그들은 아리아의 발상지인 인도의 힌두교나 불교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스와스티카(swastika)’ 즉, 우리에게 익숙한 ‘만(卍)’자를 변용하여 사용했다는 것이다. 원래 정치권력들은 자신들이 갖지 못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들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하켄크로이츠는 그 대표적인 예다.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가 끌어다 쓴 상징이 또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독수리다. 물론 독수리는 하늘의 왕으로서 용맹스러움, 지혜로움,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공간의 초월성 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치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자국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이번에는 독수리를 국가의 상징으로 삼은 나라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독수리에 얽힌 이야기들은 국가와 상징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은 독수리를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살펴보면, 여러 동물들의 상징과 함께 독수리를 매우 귀하게 여긴 흔적들이 나타난다.
그리스신화에서도 독수리는 으뜸가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독수리와 가장 밀접한 신은 제우스다. 그리스신화에서 독수리는 제우스 그 자체이기도 하고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많은 그리스의 그림과 조각에서 제우스와 독수리가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를 위해 불을 훔쳤던 프로메테우스는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를 괴롭히는 독수리를 보낸 이는 바로 제우스이다. 이렇게 독수리는 수많은 신 가운데 으뜸인 제우스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위엄이 예부터 남달랐다 하겠다.
BC 550년경의 유물 ‘라코니아 큰 잔’. 제우스와 제우스의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작품 보러가기
고대 세계에서 새를 상징으로 삼은 것은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신은 하늘에 존재하기에, 그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새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용맹하며 대담한 독수리가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를 묶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신화에 언급된 독수리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로마제국의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가 그리스신화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 영리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은 것은 그리스신화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로마에 독수리가 등장한 것은 로마 건국 이전의 부족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아마도 그 부족을 상징하는 토템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족사회에서 독수리나 사자, 곰 같은 용맹한 동물을 토템으로 삼는 것은 흔한 일이다.
다만 눈여겨 볼 점은 로마 건국신화에 독수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늑대 젖을 먹고 자라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장성하여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는데, 도시 건설의 책임을 둘 중에 누가 맡을 것인가를 놓고 새 점(占)을 쳤다. 형제가 각각 선택한 곳 중에서 더 많은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곳을 선택하자는 것이었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노(Palatino) 언덕을 선택했고, 레무스는 아벤티노(Aventino) 언덕을 선택했는데 팔라티노 언덕에서는 12마리의 독수리가, 아벤티노의 언덕에서는 6마리의 독수리가 날아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는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이 건국신화의 내용이다.2)
아무튼 이렇게 찬조 출연 형식으로 로마 건국신화에 등장한 독수리는 점차 로마제국의 유일무이한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다. 바로 로마의 군대 때문이다.
로마의 군대는 현재의 군대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조직화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연대 병력 정도를 포괄하는 것이 레기온(legion)이다. 300명의 기병을 포함하여 약 5,000명 정도의 인원으로 편성되는 레기온은 동맹군과 결합하여 약 2~3만 명 정도의 대규모 군대로 확장되며 이 지휘는 로마의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맡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군단’이라고 번역되는 레기온은 각각을 상징하는 깃발이 있었는데, 이 깃발은 독수리로 장식된 장대 아래에 걸렸다3). 깃발이 걸리는 깃대는 그 자체가 독수리를 뜻하는 단어인 ‘아퀼라(Aquila)’, 그리고 그 깃발을 들고 다니는 기수를 ‘아퀼리페르(Aquilifer)’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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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퀼라(Aquila)를 들고 있는 아퀼리페르(Aquilifer). 일반적으로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독수리 아래에 군단을 상징하는 깃발을 걸었다. 2 로마의 아퀼라. 로마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독수리는 곧 로마 그 자체의 상징물로 여겨졌다. <출처: (cc) MatthiasKabel at en.wikipedia.org> |
로마 군인에게 이 독수리 깃발을 들고 다니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었고, 군단의 깃발을 빼앗기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한다. 독수리가 크게 조각된 군단기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알려주는 일화들이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기원후 9년경 있었던 토이토부르거 숲 전투(Schlacht im Teutoburger Wald)에 얽힌 이야기가 대표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조각상. 이 조각의 복부에는 기원전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에게 빼앗긴 군단기를 회수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20년이 지나도 군단기는 회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는 독수리 군단기가 로마에게 얼마나 중요한 상징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다. <출처: (cc) Soerfm at en.wikipedia.org>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 AD 14) 황제는 라인강을 넘어 게르만족을 평정하고자 했고, 일련의 군사행동이 성공을 거두어 기원후 5~6년경에는 이 지역을 제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겨우 3년 후인 기원후 9년, 게르만 부족들이 연합하여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황제의 명을 받은 바루스(Publius Quinctilius Varus, BC46~AD9) 장군은 17, 18, 19군단을 이끌고 전선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 전쟁은 로마의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되었다. 3개의 군단이 모두 전멸하였고, 바루스 장군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이때 3개의 군단과 함께 독수리 깃발 세 개 역시 게르만족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참 재미있는 것이, 잃어버린 군단기를 새로 만들면 될 텐데 로마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무려 7년이나 지난 뒤인 기원후 16년, 게르마니쿠스 장군은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반란을 일으킨 게르만 부족들을 제압한 것이다. 이때 로마군은 잃어버렸던 3개의 깃발 중 2개를 되찾았다고 한다. 굳이 승리와 함께 군단기를 찾았다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군단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수리는 공화정 로마와 로마제국을 거치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의 군대가 신성하게 여기는 영물이 되었다. 그리고 독수리는 로마와 로마가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나라와 영역, 부족들에게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과 통치력, 그리고 제국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독수리로 상징되는 로마제국이 395년 동과 서로 분열되었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476년 서로마제국은 멸망하여 프랑크왕국으로 대체되었고, 동로마제국은 비잔틴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향후 약 1000년간 지속되었다. 당시 왕국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시 서로마 교회와 동로마 교회로 분열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약 15세기경 사용되었던 비잔틴 제국의 쌍두 독수리. 동과 서로 갈라진 로마의 계승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때 비잔틴제국이 상징으로 삼은 것이 바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다4). 본래 쌍두 독수리는 우리가 소위 소아시아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오랫동안 신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히타이트 문명이나 수메르 문명의 여러 유물에서 이미 두 머리를 가진 독수리 문양이 발견되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 인도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마이소르 왕국 역시 왕국의 상징으로 두 머리의 독수리를 사용한 것을 보면 쌍두 독수리가 서양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비잔틴제국이 사용했던 쌍두 독수리가 이렇게 동쪽 세계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로마의 전통을 따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비잔틴제국의 쌍두 독수리가 갖는 의미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이 대부분 연구자들의 의견이다. 비록 로마 세계와 기독교가 둘로 갈라졌지만, 동과 서 모두를 계승하는 것은 비잔틴제국이라는 것이다. 로마 세계든 기독교 세계든 “내가 원조다!”라는 의미다5).
비잔틴제국의 쌍두 독수리는 우리가 소위 동방정교회라고 일컫는 동로마 교회의 전통과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를 이어받은 여러 동유럽 국가들에 의해서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러시아인데, 러시아 황제를 지칭하는 ‘차르(царь)’라는 호칭이 로마의 ‘카이사르(Caesar)’를 따랐듯이 로마와 비잔틴의 독수리 역시 그들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동로마 쪽에서 독수리를 상징 삼아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주장했다면, 서로마를 계승하는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잔틴제국보다 먼저 붕괴된 서로마제국을 이어받아 명목상 서방 교회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것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었다. 로마제국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는 로마 교황의 위엄과 옛 로마제국의 권위를 빌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기독교로의 개종이었고,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로마제국의 상징을 차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필요성은 실질적인 힘은 없지만 기독교라는 후광을 가지고 있던 서방 교회의 수장, 교황의 요구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에 등장한 것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다. 샤를마뉴 사후 프랑크왕국은 동서로 분열되었는데, 동프랑크왕국의 왕 오토 1세가 로마 교황에 의해 대관을 받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인정받으면서 로마제국 역시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6).
독수리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공식적인 상징이 된 것은 12세기 초부터 황권을 넘겨받게 된 호엔슈타우펜 왕조부터다. 노란 방패 문양에 검은 독수리가 검붉은 부리와 혀, 그리고 발톱을 무시무시하게 내밀고 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뜻하는 이 독수리는 강력했던 고대 로마의 군사력, 통치권, 그리고 드넓은 영토를 연상시키는 아주 강력한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15세기경 그려진 신성로마제국의 국장. 황제의 관을 쓴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펼치고 있고, 날개에는 다양한 국가의 국장들이 그려져 있다. 이는 신성로마제국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괄하는 수많은 나라들을 나타낸다. 기독교 제국을 품는 거대한 날개가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13세기경 신성로마제국에서도 단두 독수리가 아닌 쌍두 독수리를 문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 대한 연구는 제각각 다른 정보를 제시하여 신뢰성이 다소 떨어진다. 어떤 문헌에는 보헤미아의 왕 카를 4세(Charles Ⅳ, 1316~1378)가 처음 사용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문헌에서는 황제의 관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지기스문트(Sigismund, 1368~1437)에 의해서였다고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12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매슈 파리스(Mattew of Paris, c.1200~1259)의 문장총람에 프리드리히 2세의 문장을 쌍두 독수리로 그렸다는 점에서 이 시기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의 왕에 등극한 프리드리히 2세가 서쪽의 로마와 동쪽의 성지 두 곳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쌍두 독수리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아마도 비잔틴제국보다 자신에게 쌍두 독수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독수리는 이렇게 로마제국에서 로마제국의 권위를 이어받았다고 여겨지는 신성로마제국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당연히 신성로마제국이 영향력을 미치던 거대한 제국 영토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치의 독수리. 독수리와 하켄크로이츠는 나치의 주요한 상징물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독수리는 오스트리아에 둥지를 틀었다. 이때 신성로마제국의 쌍두 독수리는 단두 독수리로 돌아가게 된다. 오스트리아뿐만이 아니라 1871년 등장한 독일제국, 그리고 1919년의 바이마르공화국에서도 이 독수리 문장은 계승되었다. 그러나 독수리를 적극적으로 광대한 제국, 무시무시한 군사력 등과 연관시킨 것은 머지않아 등장한 독일의 나치였다.
나치의 상징은 노골적으로 로마제국을 베낀 것이었다. 아래 그림은 나치 시대의 독일군이 사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로마군을 똑같이 모방한 것이다. 독수리 형태의 깃대에 붉게 내린 나치의 깃발은 앞에서 살펴본 아퀼라와 아퀼리피에르의 복사판이다. 나치는 이렇게 로마의 독수리를 차용하여,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중요한 나치의 상징으로 삼아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배포했다. 곳곳에는 독수리의 깃발이 나부끼고, 군인들은 모자와 군복 가슴에 독수리 표식을 차고 자랑스러워했다.
“독일 만세!”라는 문구가 적힌 나치 포스터. 마치 히틀러를 신격화한 듯 그의 뒤에는 서광이 비추고, 저 멀리 독수리가 날아오고 있다.
나치가 이렇게 로마의 상징을 차용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치는 수많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전 유럽을 대상으로 하는 자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었다. 이 당시 발달한 골상학, 우생학 등이 모두 나치의 인종적 우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마찬가지의 목적으로 나치는 모든 유럽인들이 정신적ㆍ문화적 근원으로 여기는 로마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고자 했다. 나치는 ‘나치 독일 = 로마제국’이라는 알레고리를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로마제국 시대에 쓰였던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로마제국의 독수리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나치는 유럽인들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유럽 지배를 받아들일 것이라 여겼다.
물론 유럽인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겠지만, 최소한 나치의 치하에서 나치식 교육을 받은 세대들에게는 그러한 선전선동이 효과적이었다. 나치 독일을 위해 목숨 바쳤던 이들은 그들의 세뇌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증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전쟁은 마치 로마가 유럽을 정복하였던 전쟁과 동일시되었다. 아마도 나치에 동조했던 이들은 스스로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를 열었던 로마제국의 일원인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았을 것이다. 유럽 정복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미국의 국장.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는 13개의 화살과 올리브나무 가지는 독립 당시 13개 주를 의미한다.
독수리는 예나 지금이나 용맹하고 날렵하며 호전적인 이미지 덕분에 매우 인기 있는 상징물로 대접받고 있다. 프로 스포츠를 즐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독수리는 팀의 마스코트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국기 혹은 국장에 독수리를 넣고, 국조로 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모든 독수리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상징적 의미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이 독수리를 국조로 삼고 있는 이유를 많은 학자들은 기독교적 근거에서 찾는다. 이사야서 40장 31절에 의하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끊임없이 발전하리라는 건국 이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미국의 독수리는 여타 독수리와 생김새도 다르다. 로마, 그리고 나치가 사용한 독수리는 검은 독수리이고, 이집트 등에서 사용되는 독수리는 대머리 독수리인 반면, 미국의 국장에 사용된 독수리는 흰머리 독수리다.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는 13개의 화살과 올리브 가지는 독립 당시 13개 주의 의지와 권한을 하나로 묶었다는 연방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자면, 현재 미국이야말로 독수리의 상징을 계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독수리가 물고 있는 라틴어 문장 “E pluribus unum(다수로 이루어진 하나)”라는 말이 다양한 의견들을 묵살하고 단 하나의 것으로만 묶어내려고 하는 제국주의 혹은 전체주의적인 문구로 해석되지 않도록, 욱일승천기가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가 역사에 다시 등장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상징하는 바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