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 김병곤>
별밤의 기도
요란한 소음을 돌아선
침묵이
경적 없는 깊은 골에서
삼킨 하늘에 오르는 꿈
토막들을 토하여 비운다.
외로운 밤이 되면
유리벽에 갇힌 산노루
촉촉한 슬픈 눈망울로
밤이슬을 훔치며
거미줄에 걸린 마음 풀지 못한다.
먹어도 먹어도 남는 별꽃
꼭 안았다 놓쳐 버린 후회를
부전나비 같이 계곡 샘물에 담아
씻는 소리로
한 줌 슬픔으로 사라지고
벼락 춤추는 폭포 되어 가는
절실한 기쁨 되소서
본 심
사월의 꽃다지 향기는
연거푸 쏟아내는 양지 뜰
차가운 넋을
독한 마음으로 잊은 탓이지요.
옹골차게 채웠던 푸른 고집이
내 품에서 사랑의 샘 됨이
거품 먹은 꿈은 아니라오.
때로는
난간에 선 빈 마음으로
행여 낙엽 지는 줄
새까맣게 잊은 생각에 들 줄이야
가슴으로 엮은 정으로
욕심을 저장하여 담으면
쏟아질 줄은 몰랐지요.
<김채영>
수미곱창
석쇠를 달구는 연탄불에
빨간 곱창들
흐물대다 익어
통통해 지면
삶의 애환을
등짝에 짊어진
곱창 속 같은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든다
하루가 버거운 사람들
부딪치는 소줏잔에
시름을 잠재우고
포만에 젖은
내일을 위한 밤은
곱창과 함께
지글지글 익는다.
시간이 멈춘 마을
살다 지친
어느 하루엔
그대여
손잡고 철암으로 가자
통리장에서 삶은 옥수수를 싣고
사철 푸른 동백산을 지나
시간이 멈춘 마을
철암역으로 가자
까치발집 다리 아래
강물이 흐르고
순돌이 찾는 엄마 목소리
장터에 흩어질 때
하루 두 번
현재를 타고 미래로 떠나는
산골 사람들 탄
기차가 지나면
아득한 과거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자
한양다방엔
시들지 않는 장미가 피어있고
간이역 대합실엔
옅은 졸음이
탄가루처럼 쌓여있는
철암역에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또
하루가 생길 것이다
또
한 생이
새로이 시작될 것이다
<남우정>
귀향
돌담 병풍 삼아
가운데 한 평 남짓
발 뻗어 누웠자니
뵈는 하늘
한 평이 다 일세
빈주먹 알몸으로 온 세상
짊어진 업보
갈무리는 하고 가는지
염치없이 올라앉은
비문의 이름 석 자
남세스럽지 않아야 할 텐데
청룡백호 주작현무
수려한 산수
산자의 허영이라
빠져나간 수액만큼
세월을 살찌우고
뼈 몇 조각으로 남을 육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세상사 실어주면
그것이 호사 아닐는지
돌아가야 할 길
짐 다시 메지 말게
떼는 발걸음
버겁지 않겠는가.
<윤순석>
중국대륙 11/294만큼 여행중
잊혀진 옛 지명을 들고
폭 삼십리 황하강 저너머 수양산을 바라보며
함곡관에서 낙양으로 형양성에서 개봉으로
매일 밤 등 밝히고 찾아 헤멘다
순자의 육성과
맹자 견양혜왕하시고 유세하는 음성이
크게 들렸다가 사라진다
진나라 백기의 압승에
생매장당한 조나라 40만 포로가
온 천지를 하루살이처럼
하느님은 없다고 간증하며 날라다닌다
사방 줄자로 재어봐도
역시 거대한 진시황 묘역 ...
태행산맥 산골짜기
이제는
헤엄쳐 건널만한 한신의 배수진 강물
항우의 오추마는 마지막 날
태백에서 울산정도를 달렸다
은하수 별빛 같은, 해변의 모래 마냥
허물어진 성곽옆 무덤
이 돌더미
저 흙담이 아마 그때 흔적일까
면면히 펼쳐지는 智謀와 인간성
아득한 옛 주소와 고인들의 일화
평면활자 위에 공간과 시간을 조립하여
인공위성에서
다큐멘터리로 감상하는
統
感
如
幸 ...
<설주 윤원욱>
6070 태백(太白)
그 시절
탄 때 묻은 얼굴로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오늘도 무사했다는 안도감에 미소 지으며
퇴근길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 들이 키고
돼지비계 한 점 씹는 걸로
목구멍 속의 탄가루를 씻어내던 우리네 아버지들
광부사택 공동수돗가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빨래방망이 두드리며 수다 떨다가
병원구급차가 앵앵거리며 달려가면
모두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걱정스런 표정을 짓던 우리네 어머니들
장화 없이 살 수 없는 질척거리는 도로 위를
비틀거리며 살아왔던 탄광촌의 옛 주역들은
개도 오백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믿기 어려운 전성시대의 전설을 남기고
이젠 흐릿한 잿빛 추억 속에서 쿨럭 거리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그들의 소중한 기억마저도
점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있다.
<승파 이진수>
탄광촌
엄동설한 억겁의 세월 잊으려
연탄 석 장 아랫목에 태워
질긴 목숨 이으려 몸부림친다.
따스한 체온 채가시지 않은 서방을
지하 막장에 밀어 넣은 아낙네는
떠난 자리 부여잡고 속울음을 토해낸다.
어린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싫은 늙은 광부는
차가운 어둠을 움켜쥐고 오늘도
나를 불사르기 위해 막장을 향한다.
사방이 칠흑 같은 공간에 묻혀
간드래불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체
막장을 먹고 사는 그들
오늘따라 쪽방 아랫목에 그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고미 정기영>
이냥 봄은 가나 보다
꽃 지짐 부쳐놓고 마주 앉은 산과 산
이산새들 불러 모아 태평가도 드높더니
뻐꾸기 둥지 버리듯 이냥 봄은 가나 보다
꽃샘바람
경칩이 성급하게 봄옷으로 갈아입자
알싸한 꽃샘바람이 앞섶을 헤집는다
꽃이면 저승꽃이라도 시샘하고 싶은 건지
백합꽃은 뿌리로 핀다
백합꽃 한 아름 안겨드릴 사람 있어
단숨에 사십 리길 설레던 날 있었다
역에 선 시계탑같이 비 맞아도 괜찮던
마늘쪽 닮은 뿌리 가슴에 심었더니
맵싸한 세월 속에 꽃대는 약해져도
때 되면 피고 지더라 향기 여전하더라
<정봉헌>
태백이여
물음표 하나와
별빛 아래 고독한 자작나무 한그루 서로
바라보며 숲이 아닌 곳에 서 있다
자작나무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슬픔에
시간 반을 쪼개 그 단면을 보며 여물지
않은 행복들이 수정(授精)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음에 안도한다
전설은 동풍을 타고 밀려오고 빌딩
사이로 깜빡이는 차갑게 쏟아지는
눈빛들
그대 가슴속에선 언제나 볼 수 있던 별이
있었지
육체에 갇힌 영혼의 몸부림이 손톱을
깨물며 죄스럽게 누군가 그리워하듯
핏기없이 서 있는 그곳
그래 떠나련다
약속 없이도 늘 마주칠 수 있는 타인이
아닌 긴 세월 가슴에 주인이었던 곳으로
사는 게 조금 힘들면 어때 그대 품에서
자잘한 물음표 하나씩 까먹으며 세월
흐르는 소리에 잠드는 것도 행복인데
카페 게시글
월례회학습자료
월례회(시낭송)
長江滿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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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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