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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001년의 한국연극
한 상 철 (연극평론가)
세기말 세기초를 맞아 한국연극은 방황과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세상의 질서와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은 급격히 바뀌는데 반해 연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연극은 그동안 군사 독재체제 하에서 30년간을 보냈다. 연극은 이러한 비민주적 억압체제에 대항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회복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 강력히 투쟁해 온 것이 그간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80년대말 군사 체제가 붕괴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왔으나 연극계는 이 새로운 변화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에 실패하였고, 1997년 IMF사태를 당해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다. 정부의 본격적인 연극 지원이 시작된 것은 이 때부터였고 연극은 서서히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정부에 의한 대대적인 연극 지원이 이루어진 것은 그 때가 유사이래 처음이었다.
그 후 금년(2002)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지원이 고사 직전의 연극계에는 소생의 물줄기가 되었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마치 빈민 구제 사업처럼 누구에게나 분배되는 지원금이기 때문에 연극의 질적 발전과 향상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못하였다. 지원금 수령자에게 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의 생산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2000년 이후 한국연극은 과거의 유산을 벗어던지기에 급급해왔다. 즉 군사 정부하에서 일관된 특징으로 지속되어왔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주제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던져버리고 가볍고 재미있으며 사상적이기보다 감각적 자극을 주는 연극을 만들기에 주력했던 것이다. 과거의 연극이 지적이며 사색적이었다면 최근의 연극은 오락적이며 현실도피적이다. 따라서 과거의 중후한 연극을 기대했던 관객은 경박하고 치기어린 장난같은 연극을 보고 크게 실망하기 일수이다.
다른 한편 똑같이 심각한 문제는 극작의 대부분이 20~30대의 젊은 신인들이며 그것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배우 역시 20~30대의 젊고 미숙한 연기자들이라는 점이다. IMF 이후 극단들은 극도로 영세하기 때문에 경험 많고 나이 든 배우를 고용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벎은 배우들에 의한 무대 공연은 연극 흉내만 냈지 연극이 갖는 참 매력과 감동은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연극의 질적 부진과 저조함은 오늘날(2002년 상반기)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 쉽게 개선될 희망이나 기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자체는 매우 활발하고 의욕에 넘쳐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직접적인 원인의 하나는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이었다. 경험 없는 젊은 연기자, 연출자, 무대 스텝들로 이루어진 극단이 새로히 대량으로 증가하고 그만큼 그들의 공연 활동이 많아진 것이다.
또 한가지 한국연극계에 나타난 진귀한 현상은 전통적으로 천시와 멸시를 당해왔던 굿, 또는 사당패 놀이인 연극이 대중의 호기심과 기호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배우려는 지망생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최근 몇 년 사이로 연극 영화 전공학과 개설 대학이 80여개로 급 팽창한 현상이다. 아울러 중고등학교에 연극 교육 과정이 처음으로 신설되는 획기적인 발전도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한국의 교육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연극이 폭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폭발 덕택에 대폭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연극 인구이며 그들의 폭증하는 활동이다. 젊은이들의 연극 활동은 기존 극단에 가입하는 것 이외에 그들끼리 새로 모여 그룹을 짓고 하나의 공통된 테마를 중심으로 무슨 무슨 페스티발을 펼치는 경향이 무척 늘어났다. 예를 들어 <하이너 뮬러 페스티발>, < 신인 연출가 전>, <변방 예술제(Fringe Festival)> 등이다.
이상은 최근 2,3년간 한국연극의 특징적인 경향과 추세를 살펴본 것이다. 다음은 그 시기의 구체적인 활동을 살펴보겠다.
2000년도 한국연극
정부에서는 21세기 새 천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고 아울러 2001년「한국방문의 해」와 2002년「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한국전통연희에 바탕을 둔 세계적 수준의 공연물 창작을 목적으로 창작품을 공모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김지하가 구상하고 또한 유명한 연출가인 임진택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꽃같은 한사람>이 채택되었으며 그 내용은 고대 설화를 바탕으로 가치관을 상실한 현대인에게 한국인의 오래된 전통과 가치관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화와 현대의 화학적 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 둘이 따로따로 놀 뿐이었다. 이와 유사한 다른 시도들도 같은 이유로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창작 희곡의 전반적인 수준 미달과 독창성의 부족을 놓고 볼 때 박근형의 등장은 주목할만했다. 그는 99년에 <청춘예찬>으로 데뷔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고, 금년에도 <쥐>, <물속에서 숨쉬는 자 아무도 없다>, <여자의 세월> 등 신작 3편을 발표하였다. 그는 신작 발표 때마다 이색적인 소제와 남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어 주목을 받곤 했다.
가령 <청춘예찬>은 젊은 주인공의 저주스럽기까지 한 청춘을 뒤집어서 이야기한 작품이다. 그런데 「절망과 자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젊은이에게는 인생의 의미가 없을까? 과연 의미 없는 인생이 존재할까?」하고 묻는 작가에게서 나는 65년 영국에서 발표된 Edward Bond의 <The Saved>를 연상하였다. 책임이 전적으로 본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젊은이를 낳은 사회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근형 외에 젊은 극작가로 <미친 키스>와 <종로 고양이>를 쓴 조광화가 차세대를 이을 작가로 주목받았으며, 윤영선과 김윤미도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거의 불모지로 변한 중견 극작가 중에는 오직 오태석만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60년대에 극계에 걸출한 오태석은 현존하고 있는 극작가 중 최고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1년에 1편 이상의 신작을 발표하고 자기 작품을 연출하고 있다. 금년에도 그는 국립극장에서 한국현대희곡의 서막을 알렸던 기념비적 작품인 <태>를 새롭게 연출하였는데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를 활용한 대규모 공연이었다. 왕과 그의 손에 무참히 희생된 사육신의 혼령과의 갈등을 더욱 강조한 스펙타클한 공연이었다.
금년도의 그의 신작은 코소보의 비극을 한국전의 참상과 대비시켜놓은 <코소보 그리고 유랑>으로서 작가의 의식이 생생히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70년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이현화가 오랜 침묵을 깨로 과거의 정치범 고문 치사 사건을 극화한 <협종망치>, 남의 위협에 굴복하여 지은 죄는 망각할 수 있으나 자발적으로 범행한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과거 독재 치하의 범죄를 단죄하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려는 작품이었다.
중견 작가로 창작의 노력을 쉬지 않는 작가가 이강백과 김영무였다. 이강백은 allegory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는데 <마르고 닳도록>은 그가 처음으로 farce에 손을 댔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몇 편 더 희극을 써보았지만 과거의 심각한 우화들처럼 뛰어나지는 못했다. 김영무는 그가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내세워 오늘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차 있는가를 비현실적인 스토리에 담아 묘사하였다. 이어서 <소나무집 여인아>라는 멜로드라마를 원로 연출가인 권오일의 손으로 무대에 올렸다.
한국 무대는 옛부터 외국의 번역극 상연 비중이 꽤 높은 나라였다. 그러나 저작권법 발효 이후 원작 사용료가 가뜩이나 궁핍해진 극단에 큰 압박이 되었기 때문에 번역극 상연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성공적인 번역극 공연은 하이너 뮬러 작, 채승훈 연출의 <햄릿머신>과 사뮤엘 베케트 작,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이상 두 작품은 다같이 재공연을 포함한 임영웅의 연출작 중 가장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만든 공연이었다.
임영웅이 성공적이 연출적 성과를 거둔 또 하나의 작품은 체홉의 <갈매기>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3대 여배우(박정자, 손숙, 윤석화)를 3자매에 분하고, 무대장치를 19세기가 아닌 현대로 옮겨온, 현대화한 <세자매>였다. 무대화에 성공한 또 하나의 재공연은 미국 초연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립극단이 공연한 아서 밀러 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윌리 로만에 이순재, 린다에 윤소정이 출연하였다. 연출과 주연 배우들이 모두 한국연극의 중견들이지만 무대 성과는 그들 명성에 값할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밖에 주목할만한 번역극은 작고한 마이클 커비(Michael Kirby) 작, 김우옥 연출의 구조주의 연극 <혁명의 춤>과 <겹괴기담(Double Gothic Story)>이었는데 한국초연 때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어도 희귀한 작품의 재공연의 의미는 충분했다. 신작 번역으로는 소련의 음악극 <아보스>와 체코의 하벨 작 <아싸나체>가 있었고 특히 아일랜드작가 브라이언 프리엘(Brian Friel)의 <몰리 스위니(Molly Sweeny)>는 현존 아일랜드 최고 극작가인 프리엘의 첫 한국무대공연작이었다.
금년부터 일본의 문화가 자유롭게 수입되기 시작하여 2000년 벽두 이노우에 히사시 작 <달님은 이쁘기도 하셔라>가 공연되었다. 동양권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는 우연의 문제를 매우 재미 있는 사건의 설정으로 풀어가는 흥미 있는 연극이었다. 금년 상반기 최대의 화제작은 영국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첫 내한 공연 <말괄량이 길들이기>였다. 극단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관객들의 기대는 대단했었다. 그러나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해외 순회용으로 제작된 단순한 공연인데다 말괄량이 역의 여배우가 불행히도 사고로 내한하지 못해 대역을 썼다는 사실을 공연 당일에야 알고 적지 아니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금년도 공연으로 언급할만한 또 하나의 작품은 1980년 군사정권에 대한 광주의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연극이었다. 임철우의 소설을 김아라가 연출, 각색한 <봄날>과 황지우 작, 김광림 연출의 <5월의 신부>였다. 전작은 당시에 있었던 사건만 추적했지 사건 배후에 스며 있는 정서를 살려내지 못해 별 감동을 주지 못하였다. <5월의 신부>도 광주의 비극적 사건을 되살려내는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2001년도의 한국연극
2001년도 한국연극은 양적으로 볼 때 전년도 수준이거나 그보다 더 활기에 차 있었지만 질적으로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처럼 연극의 질이 저조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의견은 작품의 질, 창작 희곡의 질이 좋지 않은데 두고 있었다. 명성이 있는 극작가이건 젊은 신인 극작가이건 그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결함은 플롯이 튼튼하지 못하고 논리적 필연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의미 있는 대사, 시적인 대사가 거의 없는 메마르고 일상적인 대사뿐이다. 게다가 인물 형성력이 부족하고 리얼리티가 없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무대가 연극적 환상과 아름다움을 살려내지 못함은 희곡문제보다도 더 치명적이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아닌 외부적 요인에 의한 강제적 세대교체를 한 연극계는 경험 많은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였으니 좋은 무대작품 생산하기가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1년은 이러한 상황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려는듯한 증후를 보여 다행스러웠다. 노 대가인 차범석, 이근삼이 신작을 발표하여 극계를 오래간만에 흥분시켰다. 차범석이 연극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새로 쓴 <그 여자의 행복론>을 임영웅 연출, 손숙 출연의 빅 카드로 막을 올렸고, 이근삼은 70 평생 배우의 길을 걸어온 한국 배우의 대부인 장민호의 자전적 스토리를 장민호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열연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로써 이근삼은 장민호 은퇴를 기념하여 <이성계의 부동산>에 이어 두 번째 희곡을 쓴 것이다.
차범석, 이근삼 원로 작가 이외에 그 보다 조금 아래인 노경식, 윤대성, 윤조병, 세 사람이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한 것은 2001년의 수확이었다. 노경식은 <치마>를, 윤대성은 <당신 안녕>․<부르투스 너마저>․<나는 타스마니아로 간다> 세 작품을, 윤조병은 <이혼연습>과 <세상 어머니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모두 오랜만에 글을 써 손이 무디어진 듯 하였고, 연출자들 역시 예리한 솜씨를 발휘하지 못해 범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올해 연출봉은 두 중견 연출자들 모두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가지고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임영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목을 받을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하였다.
수많은 신인이 배출되었고 또한 그만큼 많은 연출자들이 활동하였지만 굳이 문제가 될만한 신인은 연산 때 궁중배우와 왕과의 관계를 다룬 <이>를 쓰고, 연출한 김태웅만이 단연 돋보였다. 그밖에 올해의 우수작으로 뽑을만한 작품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무대에서 최고로 평가되는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시골 선비 조남명>이었다. 출세를 마다하고 시골에 은거하면서도 선비의 비판 정신을 조금도 잃지 않았던 남명 조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이 작품은 오늘날 땅에 떨어진 지식인에게 경종을 울려주었으며, 연출에서 우리의 옛 시조가락과 무물을 처음으로 도입해본 공연이었다.
그러나 금년은 창작극이 아니라 번역극에서 빛을 발한 해였다. 우선 고전으로 한국에서는 그동안 공연 되지 않았던 앙드레 지드의 <교황청의 지하도>(문호근 연출), 칼데론의 <인생의 봄>(김광림 연출), 베데킨트의 <봄이 눈 뜰 때>(조태준 연출) 그리고 중세 파아스인 <삐에로 빠트람>(김태웅 연출)이 공연되었다.
작년까지 왕성하던 ‘셰익스피어 마음대로 뜯어고치기’ 작업은 쇠퇴한 반면 셰익스피어를 원작 그대로 공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셰익스피어 못지 않게 한국에서 호기심이 강한 작가가 체홉인데 모스크바 유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는 체홉의 4대 작품을 체홉이 원한대로 희극으로 연출하여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체홉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외국 극단의 내한 공연에서도 금년은 매우 주목할만한 해였다. 불란서에서 무느쉬킨의 태양극단이 처음으로 내한하여 <제방의 북소리>를 공연하였으며 러시아에서는 발리극단이 레프 도진의 <가우데아무스>를, 불가리아에서는 극단 크레도가 고골의 <외투>를 공연하여 외국 극단의 좋은 공연에 목말라하던 관객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한국의 젊은 극작가로는 김명화가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작년에 <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로 데뷔한 그녀는 금년에 <첼로와 케찹>, <돐날>을 발표했고 특히 후자는 80년대 학생운동 세대들이 90년대를 맞이해서 변화된 세상과 가치관에 극심한 혼돈과 갈등을 겪는다는 줄거리이다. 작년에 <이>를 발표한 김태웅은 <불티나>, <풍선교향곡>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재확인하려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과의 연극 교류는 더한층 심화되어 일본과 합작 공연까지 이루어졌는데 한국의 미추극단과 일본의 스바루극단이 합작한 <히바카리>가 한국의 손진책에 의해 연출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도예가 어떻게 일본에 전래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극이었다.
금년(2001)은 작년보다 뮤지컬 공연이 더욱 활발했다. 공연 편수도 증가하고 관객의 호응도 더욱 높아졌다. 한국에서 뮤지컬의 열기를 잘 보여준 실례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120억의 투자비를 들여 미국과 영구의 <유령>에 필적하는 뮤지컬을 만들려고 하였으며 불과 3개월만에 투자액을 회수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객의 호응을 얻었는데 2002년 6월 30일로 만 7개월간의 공연을 끝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