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무용단의 『37° N,127° E,북위 37도,동경 127도』(한상근 안무, 장성원 연출)
지난 3∼4일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아트홀에서 대전시립무용단 제41회 정기공연으로 공연된 『37°N,127°E,북위 37도, 동경 127도』는 이념으로 분열되고 지도자들의 무능으로 희생된 숱한 민초들의 아픔을 얘기하며 진정한 지도자의 탄생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본으로 한민족의 수난사를 풀어나가는 춤꾼들은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듯 상황에 맞게 정열적으로 자기 역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예술감독 한상근의 말처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이 매머드 춤은 ‘분단과 단절, 갈등을 넘어 아름다운 희망을 꿈꾸는 춤’이다.
춤을 사랑하는 지역주민들과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해온 그가 그동안 전통 소재의 창작 작품의 무대화와 실험적 작품을 수용해온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총체극은 춤에 대한 무한상상으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일곱가지 빛깔』에서 보여준 계몽성, 『우화등선』에서 보여준 현학적 우화 등의 작품, 그리고 이번 작품은 관객 업그레이드 작업 마지막 실험 무대였다. 이제 어느 누구가 작품을 해도 기본 밑그림이 그려지는 단계에 까지 이른 것이다.
『바람의 정원』,『백일몽』,『갈가마귀』,『눈물』,『진동』,『바람의 풍경』등 6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전통을 잔혹 미학에 결합, 비극의 심도를 점층적으로 꽤하고 있다. 이 작품의 미적 가치는 재현과 표현 사이의 절묘한 조화에 있고, 원색으로 처리된 의상들은 몸짓들이 이루어낸 예술을 미학으로 끌어 올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서사적 무용극에서 차가울 정도로 냉철한 흑의의 전사들은 죽음의 제례와 관계가 있다. 스타팅은 긴장감을 알리며 한반도의 좌표를 알린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죽음을 알리는 천을 든 상여는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알린다. 각각의 소제들은 각자의 전쟁의 아픔을 보여준다. 사자의 서(Schreiben der Toten)는 십자가처럼 슬프고 진한 아픔의 그림자들을 드리운다. 이 전쟁 속에서 여인들은 관찰자였으며 대지의 수호자였다. 가엽게 흔들리다가도 한반도의 여인이라면 투사적 삶을 견지해야 했다.
그 아픔의 진행은 무대에 공간을 남기지 않는다. 소복의 여인들은 굽이굽이 역사와 세월의 고개를 말없이 넘어간다. 그 어둠을 딛고 하늘을 향해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구원의 손짓을 보낸다. 의상들은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다. 방대한 양의 문서꾸러미를 펼쳐놓는 듯 춤꾼들은 역사를 증언해 낸다. 사운드는 전통에서 현대, 사물에서 클래식, 창에서 시조의 음역을 모두 다루고 있다.
무대공간의 적절한 분할과 활용, 적절한 조명 콘티, 역할에 맞는 춤 연기,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블로킹한 앙상블은 장엄미와 의상들은 머리, 어깨, 허리, 치마와 바지로 미묘한 변화를 상징으로 상정한다. 부드러운 서정성을 타고 오듯 무대는 높낮이와 회전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불안감과 대비되는 안정감들은 해설인듯 낯익은 시조창에서 긴 호흡이 다가오고 삼각 구도의 유기적인 하모니 속에 각 라인은 독자적인 변화를 가미한다. 관현악을 타고 일곱 쌍이 어처구니없는 슬픔들을 이야기 하고 있을 때에도 관찰자들은 무대 깊은 곳에서 응시하고 있다.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한상근, 그래도 그에게서는 전형과 정극의 진성성을 발견할 할 수 있다. 무대회전 속에서 관찰자들은 사라지고 가변의 계단들이 조형미를 형성하며 파격의 떨어짐과 충격적 전환이 강박적으로 이어진다.
한반도에 깔린 적색경보를 알리듯 적의(敵意)는 사라지고 느린 호흡으로 평화는 왔다. 한밭별에 퍼진 대 서사시는 수미쌍관 미를 보여준다. 상여는 긴 여운을 남기며 새 지도자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의 끝, 이 땅에 민들레는 희망으로 다시 핀다. 한상근, 그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37°N,127°E, 북위 37도, 동경 127도』였다. 그의 차기작은 작지만 주제에 더욱 밀착되는 작품이기를 기대해 본다.
/장석용(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