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지난 2월 중순 우연히 tv대담프로에 나온 심수봉을 중간에서부터 보게 되었으며 심수봉의 마음을 달래 그날 그 자리에서 있었던 사실과 느낌을 가감없이 털어 놓게 해 박근혜의 청와대 입성을 막아보고자 컴퓨터에는 소경에 가까운 제가 수소문하여 심수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음치 중에 상 음치인제가 심수봉의 팬인 것 같이하고 카페에 가입한 뒤 거기에 올린 글입니다.
심수봉이 직접 읽어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보는 노래, 귀로 듣는 노래, 가슴으로 느끼는 노래
심수봉!
1979. 10. 26궁정동 안가에서 있었던 박정희 최후의 주색연(酒色宴)에 노래를 부르러 불려갔다가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아주 우연히 대한민국의 추잡하고 부끄러운 역사의 유일한 산 증인이 되었다.
그 사건 때문에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가수가 되었지만, 그의 타고난 가창력이나 듣는 사람의 가슴에 보슬비를 뿌리는 것과 같이 호소력이 강한 노래는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초일류 가수가 되고도 남을 그런 출중한 가수의 재질을 타고났다.
그 사건 때문에 가수로서 절정기를 구가할 30년 가까이를 반 강제로 은둔의 세월로 보내야 했다.
오히려 그 사건이 국민들의 호기심어린 관심과는 관계없이 그의 순탄하고 화려한 가수생활을 굴곡지게 한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요새 현란하다 못해 현기증 나게 하는 몸짓에 괴성을 지르거나 신들린 사람이 주문을 외워대는 것 같은 젊은이들의 노래는 그게 노래인지, 광기인지, 마약 기운으로 자신도 주체 못하는 몸 비틀기인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간 그것도 노래이고, 그런 것을 하는 사람도 어엿한 가수란다.
노래 가사를 자세히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아들을 필요도 없고, 눈을 감고 들으면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시장바닥이나 사람이 꽉 들어찬 혼잡한 마당 한 복판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기분이 든다.
이런 노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모습이 없는 라디오로 듣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무대에서 직접 그 공연을 보거나 TV에서 화면과 곁들여 보고 들어야만 한다.
귀로 듣고 머리나 가슴으로 감상하는 노래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노래다.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눈을 돌리면 딱히 남는 게 없다.
반면 1960-70년대에 명성을 날리던 가창력이 돋보이는 가수들의 노래는 귀로 듣는 대표적인 노래이다.
아마 이게 노래의 전형적인 부류일 것 같다.
꼭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모습을 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음악을 충분히 감상할 수가 있고, 노래를 듣는 동안은 그 노래가 뿜어내는 향기에 흠뻑 취할 수가 있다.
내 그 방면에 밝지 못해 대표적인 가수의 이름은 나열하지 않겠다.
위 두 번째의 경우에 가까우나 귀로 들으면서 머리로 느끼고 숨을 쉬듯 가슴으로 빨아들이는 노래가 있고 노래가사와 곡조가 따로 떼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다.
바로 심수봉의 노래가 여기에 해당된다 할 것이다.
심수봉의 노래는 곡 하나마다 다 사연과 곡절이 있고, 들으면 들을수록 애잔하다.
얼핏 들으니 심수봉은 자신이 부른 노래를 거의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을 한 것이고, 자신이 직접 겪었던 경험이나 추억을 나중에 시로 써서 노랫말을 만들고 곡조가 떠오르면 자신이 직접 작곡을 해서 자신만의 노래로 만들어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노래를 귀로 듣고 감상하는 것만큼 가사를 듣는 것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심수봉의 노래를 듣고 나면 오랫동안 긴 뒷맛이 남는다.
어제(2월 17일)낯 우연히 TV(KBS2)를 보니 어떤 프로인지에서 심수봉의 가수생활 30여년의 경험과 화려한 무대 뒤에 있었던 비화와 소회를 코미디 대담형식으로 사회자와 몇 명의 대담자가 뒤섞여 함께 심수봉에게 질문을 하고 심수봉이 답변을 하는 프로가 있었다.
프로를 이끌어가는 사회자도, 답변을 하는 심수봉도, 질문을 던지는 남성 대담자들도 간간이 눈시울을 적셨고, 감수성이 예민한 어떤 젊은 남성 대담자 한 사람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해 얼굴을 파묻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었다.
앞부분은 보지를 못 했고 중간 넘어서부터 보았다.
나중에 인터넷을 보니 궁정동 안가에서 심수봉만 보았던 최후의 만찬 비화도 어느 정도 털어 놓은 것 같았다.
우연히 그 더러운 역사의 유일한 증인이 되어 숫한 고통을 겪었고 첫 번째 남편이 옆방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직접 귀로 들어야 했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무슨 약물주사를 억지로 맞기도 하였고, 제대로 가수생활을 할 수가 없었고, 그날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가 부른 노래가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고, 그래서 한때는 생활이 궁핍하기도 하였다고 하며, 내가 직접 보지를 못한 앞부분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그 나름의 평가와 박근혜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도 털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정희 정권을 정상적인 정권으로 보지 않은 것 같았고, 박근혜가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고 생뚱맞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현재 57세인가 라고 했다.
그 궁정동에 그날 말고도 앞서 2번을 더 불려가 총 3번을 불려갔었단다.
미루어 박정희의 주색연이 얼마나 뻔질났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곱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다고 보였다.
사람의 눈길을 유혹하는 고혹적인 미모는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수려한 모습에 만고풍상을 다 겪은 것 같은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미소를 간직한 중후한 중년여인의 모습이었다.
그 사건과 떼어놓고 찬찬히 살펴보면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이고, 동년배의 모든 남성으로부터 호감을 살 그런 인상이다.
그런데 그 희고 환한 얼굴 한편에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심수봉의 얼굴 한편에 드리워진 그 그늘의 정체는 무엇일까?
1979, 10. 26 궁정동안가에서 있었던 일은 오직 심수봉만이 알 수 있듯이 그 그늘의 정체도 오직 심수봉만이 알 수 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있었던 객관적 사실이야 거의 밝혀졌지만, 그 자리를 지배했던 “느낌”이라는 게 있다.
또 그보다 앞선 2번의 “느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심수봉만이 알 수 있다.
심수봉은 그날 그 자리의 “느낌”을 아직도 속 시원히 털어 놓지를 못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적인 여건이 그것을 알게 모르게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심수봉의 얼굴 한편에 드리워진 그늘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덮고 있는 먹구름이다.
더럽고 추잡한 역사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갔어도 그 더럽고 추잡한 역사는 깨끗이 청산치를 못하고 오늘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심수봉씨에게 간절히 바란다.
당신의 가슴을 쪼개서 보여주듯 당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느낌” 과감 없이 세상에 드러내시라!
당신이 겪고 보고 경험했던 추잡한 역사가 역사의 이면에 가려지고, 그런 역사가 또 되풀이 되는 것을 이해하고 납득 할 수 있겠나?
당신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느낌”을 털어내어 당신 얼굴 한 편에 드리워진 그늘을 걷어내고, 대한민국 하늘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에 구멍을 내시라!
당신이 먹구름에 구멍을 내면 밝은 햇살이 나머지 검은 구름을 거두어 갈 것이다.
당신이 겪었던 고통 당신혼자 가슴속에 묻고 가면 먹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을 수도 있다.
박근혜가 온갖 추잡한 것을 치마폭으로 집어 누르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양 하면서 1979. 10. 26에 눈물 뿌리면서 나섰던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려고 온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꼴을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당신의 “느낌”대로 하시라!
박정희가 천사의 아버님이 맞고 박근혜가 그 딸인 천사라면 당신은 그냥 노래나 부르면서 행복해 하시라!
당신의 “느낌”이 그게 아니었었다면 속 시원히 당신의 가슴을 열라!
당신의 가슴을 열어 당신의 “느낌”을 밝은 햇살아래 드러내시라!
하늘이 당신에게 그 일을 시키려고 하늘이 그날 그 자리에 당신을 보냈던 것임을 “느낌”으로 느끼시라!
첫댓글 심수봉씨의 양심선언? 만 있어도 많은 것을 알수 있겠네요.
제대로만 밝힌다면 암탉의 목을 비틀어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