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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九屛山), 九峰山, 白雲臺
구병산은 白頭大幹 중 소금강인 속리산줄기 형제봉(828m)과 "비재고개"의 중간지점 충청북도 報恩郡 內俗離面과
마로면 慶北 尙州市 化南面 道界에 속해 있으며 높이 876m으로 주변에 상주청원간 고속국도(30) 속리산휴게소
를 뒤로하여 웅장하게 펼쳐져 있고 忠北의 알프스로 상주~청원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부터 년중 등산객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산봉우리가 9개가 연이어 솟아 있어 九峰山이라고도 부르며 적암리 휴게소를 지나 등산로가기전 적암리 마을은 壬亂
때 의병장 趙憲의 문인포제인 李命百이 의병을 일으켜 士氣를 진작시켰다고 士氣幕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마을앞 상주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시루봉(320m)이 전설을 뒤받침이라도 해 주듯이 웅장하게 마을을 지켜 주고 있다
주변에 구병산과 마주보고 있는 상주시 화남면 임곡리, 화서면 사산리 소재 천택산(天澤山 683m)은 우복길지를 안고
있는 명산이며 천택산에서 바라보는 구병산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웅장함이 눈앞에 들어온다 주변에 서당골관광
농원과 서원계곡, 만수계곡, 삼가호수, 99칸 선병국 고가와 역사의 산교육장인 삼년산성 그리고 우리나라의 8경중의
하나인 제2금강산 소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 남단에 자리하고 있어 자연 문화유적을 둘러볼수 있는 관광지로 괜찮은
곳이다.
俗離山 천황봉(天皇峯1,508m)은 지아비산, 九屛山은 지어미산 그리고 금적산(金積山 652m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소재)
은 아들산 이라하여 삼산(三山)이라 불린다.
서원계곡쪽에는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닮은 큰소나무가 정이품송 부인으로 "암소나무"라고 불리며 수령이 250년으로
충청북도의 도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적암리(赤岩里)의 유래
면적 6.8㎢, 인구 87가구 232명(1999년말). 본면의 동쪽에 위치하며, 東은 경북, 西는 갈평리(葛坪里), 南은 임곡리
(壬谷里), 北은 내속리면(內俗離面)에 접하고 있다.
2. 연혁
본래 보은군 왕래면의 지역으로서 적바위가 있으므로 적바위 또는 적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암리라 해서 馬老面에 편입되었다.
3. 자연마을
・사기막말 : 상주시계에 위치한 마을. 조선 선조때 이명백이란 장군이 임란중 스승 조헌(趙憲)이 의병을 일으킬 때
스승의 만류로 참전치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병을 간호하던 중 금산에서 의병들이 패하여 순절하였다는 소식
을 듣고 화령, 중모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과 싸워 전과를 거두었으나 중과부적으로 장렬한 순국을 하였다.
여기에서 의병들의 사기를 드높인 곳이라 하여 ‘사기막’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또한 사기를 굽던 곳이라고도 함.
・안말 : 사기막 마을을 말함.
・주막뜸 : 사기막 남쪽에 있는 마을. 주막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적암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다.
4. 기타지명
・남산모롱이 : 베루들 북쪽에 있는 모롱이.
・넓은골 : 적암리에 있는 넓은 골짜기.
・도마티들 : 적암 서북쪽에 있는 들. 옛날에는 집이 있고 사람이 살던 곳으로 도적이 심해 집이 없어지고 들로 변함.
・먹골 : 먹산 동쪽 골짜기.
・먹뫼들 : 먹산 북쪽에 있는 들.
・먹산 : 적암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비란이라는 새가 먹을 먹으러 온다는 산.
・바구시샘 : 시루봉 밑에 있는 샘으로 장수가 시루봉에서 수련하던 중 말의 먹이를 주던 곳이라 함. 샘의 길이가 4m
깊이가 20m나 된다고 함.
・베루들 : 적암 서쪽에 있는 들로 벼루 모양이라고 함.
・보은바위 : 적바위를 말함.
・북바위골 : 적음터에 있는 바위로 북 같이 생겼음.
・붉은디기 버딩 : 적암 북쪽에 있는 버딩으로 흙이 붉음.
・비양골 : 스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목이고개 : 적암에서 상주시 화남면 평온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모양이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함.
・세창고개 : 적암에서 붉은디기로 넘어가는 고개로 쉬어가는 고개라 새참고개라 하던 것이 ‘세창고개’로 변한 것임.
・속곳바우 : 적암리와 상주시의 군계에 있는 바위로 치마바위라고도 불리움.
・스무골 : 적암 북쪽 골로 작은 골짜기가 많음.
・시루봉(증봉) : 적암에 있는 높이 320m의 산으로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함. 보은(報恩)의 4증 8항 동쪽에 있다
하여 동증이라고 함.
・신선대 : 스므골 위쪽에 있는 기우제 터 예전에 신선이 내려왔다고 함.
・쌀바우 : 적암리 시루봉 중턱에 있는 바위.
・원골(원터) : 조선시대 관리와 행인들의 숙식을 제공해 주던 역원이 있던 터.
・임신바우 : 사기막 마을에 있는 바위.
・장기판들 : 신선이 장기를 두는 형국이라고 함.
・적바위(보은바위) : 구병산 동쪽에 있는 바위로 색깔이 붉어 적바위라고도 하며, 충북과 경북의 도계에 바위가 두
개 있는데, 보은쪽에 있다고 하여 보은바위라고 함.
・전진바우 : 적암 남쪽에 있는 바위에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 새겨짐
・해상골 : 스무골 동쪽골로 바다같이 골짜기가 깊다고 함.
・횟골 : 옛날 이곳에서 회를 구었다고 함.
5. 문화유적
○ 적암리 청자요지(靑磁窯址)
유구가 두 곳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적암리 서쪽,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씨가 있는 전진바위 북쪽 40미터 정도의
구릉에 있는 무너진 요지인데 가마의 윤곽이 경사가 져 있으며, 주변에 그릇을 굽기 위한 갓바퀴와 눈바기 자국이 있는
순청자에서백자조각까지 흩어져 있어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876미터의 구병산 자라에 위치하며, 앞에는
금계천이 흐르고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요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일찍이 요지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6. 전설
○ 보은현감(報恩縣監) 장현광의 선정(善政)
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상주군과의 도계에 ‘솟곳바위’ 또는 ‘치마바위’라고부르는 큰 바위가 있고 이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된 데 대하여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회) 선생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장현광 선생은 서기 1554년에 태어나
서기 1637년에 세상을 떠난 분으로 자를 덕회(德晦), 호가 여헌(旅軒)이라고 부르는 이로 인동 장씨다. 그는 퇴계 이황
(退溪 李滉)의 제자이자 조카사위로 퇴계의 성리학을 전수 받았으나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의 주장에 찬동하였다. 서기 1595년에 학문이 높고 행실이 바른 분으로 추천되어 보은현감(報恩顯監 - 오늘의 군수)에
임명되어 21일간 근무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 뒤 형조좌랑(刑曹佐郞 - 법무부 계장급)에서부터
공조판서(工曹判書 - 건설부장관)에 이르기까지 20여 차례나 벼슬자리에 임명되었으나 그때마다 모두 사퇴하고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다.
속곳 바위의 이야기는 그가 보은현감에 있다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갈 때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록 한달 가량 재직하였지만 학문과 덕이 높은지라 고을을 다스림이 남다른 데가 있었다. 또한 고을 백성들도 선생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러던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소문이 나자 고을 사람들은 너나 없이 좀더 계셔서
고을을 다스려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선생의 뜻을 꺽을 수가 없음을 깨닫고 이별을 아쉬워 하면서 전별의 선물을 가져왔다. 그러나 워낙 청빈한 현감인지라 모두 물리치고 부임할때와 마찬가지로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 인동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행차는 어느덧 군의 마지막 적암리에 도착하고 한말만 더 가면 이제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 땅인 상주였다. 선생은 걸음을
멈추게 명하고 길가 나무그늘에 앉아 보은 고을 쪽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마 그도 가슴에 만감이 오고갔을 것이다. 선생의 눈길이 멈춘 것은 가난한 자신과 결혼한 이후 고생만 하는 아내의 무릎 밑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놀라움에 크게 떠졌다.
아내 치마 밑으로 삐죽이 나온 아내의 속곳이 처음 보는 황홀한 비단옷이었다.
“여보 부인 내가 가난하여 당신에게 옷 한 벌 못해 주었구려. 참으로 미안한 일이나 이제 부인의 속곳을 보니 처음 보는
비단이구려. 어디서 장만한 옷입니까?”하고 선생이 묻자 부인은 자랑이나 하듯 치마를 조금 더 걷어 올리며 “이 옷
말씀입니까? 우리 형편에 이와 같은 비단옷을 구할 수 있습니까? 어제 저녁에 당신께서 고향에 돌아가신다고 고을
백성이 섭섭하다고 저에게 선물로 가져온 것인데 처음 보는 비단옷이라 입고 가는 것입니다.”고 대답했다. 선생은
이 말을 듣고 한참 후에 “부인 우리는 참으로 가난하구려 그러나 가난하다는 것이 자랑이 되지는 못해도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때문에 나는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삼가고 청빈을 낙으로 삼아 살아왔소 그런데 비록 속곳 치마지만
남에게 폐를 주고 선물로 받았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구려”하면서 다시 눈을 하늘 쪽으로 돌리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여보 제가 부덕이 부족하여 당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런 몹쓸 여자가 있습니까? 아직
보은 땅이니 저 앞에 보이는 바위 위에 두고 가면 보은에서 받은 물건을 보은에 돌려주는 것이 될 것인즉 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속곳을 벗어 바위 위에 걸친 후 다시 길을 재촉하여 고향을 떠났다 한다.
참으로 그 남편에 그 아내의 행실이 아닐 수 없다. 그 후부터 그 바위를 “속곳바위” 혹은 “치마바위”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생의 높은 학문과 맑고 조촐한 덕행을 잊을 수 없었던 고을 백성들이 비를 세워 영원히 기리었고, 이 비는
현재 400여년이 지났지만 보은읍 죽전 2리 보은고등학교 정문 옆 길가에 우뚝 솟아있어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 쌀이 나오는 구멍바위(쌀바위)
320미터의 시루봉 산 중턱의 절벽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바위가 있는데 “쌀바위”라 부른다. 신라 때 이 바위 앞에 작은
암자가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열심히 도를 닦고 있었다. 너무나도 작은 암자여서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도 없어서
암자 뒤 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겨우 먹고 지내었다. 암자에 찾아오는 사람 수만큼 쌀이 나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바위 밑에는 쌀이 무진장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쌀이 나오는 구멍이 작아서
적게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구멍을 크게 파놓았다 이제는 한꺼번에 쌀이 많이 나올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튿 날
아침에 큰 바가지를 가져가 바위 구멍에 대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쌀 한 톨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중이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린 탓으로 쌀이 나오지 않자 자연히 암자도 없어지고 이 바위만 남았다고 한다.
九屛里 의 유래
俗離山이 굽어보는 牛腹洞 마을 九屛里 피란과 보신의 땅 우복동(牛腹洞) !
충북에서 두 번째로 큰 보은군 외속리면 삼가저수지(외속리면 삼가리) 인근 구병산 자락(구병리)엔 이곳을 정감록의
십승지지나 우복동이라는 명당으로 여기고 난리가 나도 화를 입지 않을 것이라 여겨 전국 각지에서 들어온 비결파들
수십 호가 땅을 차지하고 있다.
속리산과 더불어 맞붙다시피 한 구병산 줄기는 이 지역을 깔대기를 닮은 천혜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고 산을 넘지 않는
다면 시원하게 굽이치는 만수계곡을 유일한 통로로 두고 대목이, 갈목이, 소루목이, 무수목이, 불목이, 새목이,
멍어목이, 느진목이 등 비결을 믿는 사람들이 목마다 올망졸망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십승지지(十勝之地) 곧 십승지란, 정감록 '감별' 편에서 밝힌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이다. 원래 승지란 경치가 좋은 곳을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굶주림과 전쟁을 면할 수 있는 곳을 말하기도 한다.
바로 피란과 보신의 땅인 것이다.
비결파들은 주로 조선 말기의 혼란기나 한국전쟁 중에 이 마을에 많이 들어왔다. 십승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피란지의
역할도 충분히 해내서 전쟁 중에도 이 곳 사람들은 다친 사람이 없다. 한국전쟁 중에는 17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 집에서
몸을 보존했다.
또한 비결파들은 이 마을이 십승지일 뿐만 아니라 우복동이라 믿는다. 최치원이 노닐었다는 이상향인 상상의 청학동과는
달리 우복동은 현세적이고 실존하는 천하의 명당이다. 풍수에서 명당이 머리쪽에서 있으면 용머리, 배쪽에 있으면 우복이
라 한다. 그 이름의 유래는 오복이 와전되어 우복이 되었다는 설, 농사일에 빼놓을 수 없는 친밀한 동물인 소의 자궁같이
편하다는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또 우리 나라가 호랑이를 닮았고 호랑이의 배에 해당된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 우복동이 속리산 부근에 있는데 우복동이 여기 구병리와 대목리, 만수리 일대 외에 또 한 곳이 있어 결국 두 군데다.
속리산 천황봉에서 동쪽으로 10리쯤 있는 상주군 화북면 용유리가 또 다른 우복동이다. 이곳 구병리와는 속리산을 사이에
두고 동북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이다. 우복동이 두 곳인 이유는 명당답사기록인 유산결이 두가지기 때문이다.
두사충의 「산도」와 일이승의 「우복동진결」에서 약간의 차이가 우복동이 두 곳이 된 이유다. 위치 설명에서 두사충은
속리산 남쪽 오리쯤을, 일이승은 동쪽 기슭(용유리)에 우복동이 있다고 밝힌 차이다.
자궁이 두 개인 동물은 없다. 그러므로 우복동은 하나일 수밖에 없어 풍수학자들은 어느 곳이 진짜 우복동인가를 놓고
골치를 싸매고 있다.
십승지에도 어둠이 깔리고 별은 초롱한데 글쎄 난세로 치자면 시방의 현실도 난세이거늘. 이 어두컴컴한 시국의 불안감 속
에서 오롯이 몸과 마음 성할 십승지는 과연 어디일까.
충북 보은에서 속리산으로 드는 25번 국도를 따라 3.5㎞쯤 가면 대야리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말티고개를 넘어 법주사쪽 속리산으로 들다가 갈목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05번 지방도를 따르면 터널을지나삼가
저수지에 닿는다. 저수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나가면서 대목리로 들어서는 길과 만수계곡으로 드는 길을 지나 계속
저수지를 끼고 돌면 얼마지 않아 구병리다.
각 마을로 드는 입구에는 이정표가 잘 되어있다.
매년 가을이면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주변 민박집과 토속음식점이 많다
10여년쯤에는 삼가저수지에 낚시행락객이 많이 찿아오고 지역 경기가 활성화
되다가 최근에는 저수지에 외래종인 베스가 서식되면서 빙어와 토종 담수
어종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낚시꾼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속리산의 영향권에 있는지라 근처에 법주사를 비롯하여 정이품송 등 볼거리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십승지에 속하는 만수계곡은 풍부한 수량과 서늘한 계곡의 깊이를 자랑한다.
십승지를 둘러보고 나올 때에는
삼가저수지에서 외속리(장내리) 구간의 505번 지방도를 따르면 약 6㎞에 걸쳐 기암절벽과 푸른 숲, 삼가저수지
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어울려 풍경이 뛰어난 서원계곡을 구경할 수 있다.
----- 중략 ------
이제부터는 赤岩에서 가장 가까운 등산 코스를 오르면서 산행기록을 해볼까 한다
== 찿아오는길 ==
서울지역 = 상주청원간고속도로(30번) → 속리산 IC→ 상주방향(25번도로) 시속70키로 5분정도 ☞ (적암휴게소)
남부지역 = 중부내륙(45번고속도로) →낙동분기점(상주청원30번)으로 진입 후 화서 IC에서 →25번국도 보은방향
상주 경계 화남면사무소 → 도경계지나고 1분정도 ☞(적암휴게소)
⊙ 일시 : 2010. 3. 13(토) 10:00 ~
⊙ 출발 : 적암리 휴게소를 지나 마을경로당앞 → 위성기지국 → 인삼밭갈림길 → 나무계단 → 쌀난바위 → 철계단→
능선 → 정상 → 풍혈→ 정상→ 853봉쪽하산→절터→팔각정→ 산불근무초소, 포장마차 → 경로당(출발지점)
→적암리휴게소(해산)
* 상주~청원간 30번고속국도 화서 IC에서 25번국도 → 보은경계 구병휴게소 입구
* 구병리로 들어가는 입구 멀리 구병산 정상이 한눈에 바라 보인다(중간 쌍봉 좌측)
*경로당 앞에서 상주방향 시루봉
* 등산지도와 등산료 표지판 - 청색표시가 출발점
*경로당과 마을쉼터에서 위성기지국으로 가는 길 - 쉼터에는 하산길에 귀한 농특산물을파는 반짝장터
가 생긴다 , 감식초, 곶감, 검은콩, 오미자엑기스, 산나물, 약초술 등
* KT위성기지국 뒤를돌아서 인삼밭 갈림길로 들어선다
등산로 입구까지 콘크리트포장으로 걷기에는 안성마춤 옛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다
* 나무다리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든다 겨울에 내린눈이 녹아 맑은계곡물이 봄소식을 전해준다 철계단 쌀난바위
까지는 30분정도 걸린다 계곡을따라 계속올라간다
* 더디어 쌀난바위와 철계단 주변 계곡에 도착한다, 중간에 보이는 뾰족 튀어나온 봉우리가 마치 여자의 거시기를
연상케한다 풍수에 기록되기를 음기가 서려있는 곳에는 오래 머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철계단속을 뚫고 기어올라가면 정상까지 30분정도 급경사가 이어지고 조금힘이 드는 코스이다
쌀난바위밑에 무당들이 굿을하는 동굴이 있고 옛날 그굴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혹자가 생각하기에
는 6.25동란시 피난민들이 숨어살다가 쌀을 두고 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면 임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은둔생활을 하던곳에 숨겨둔쌀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쌀바위는 적암리 유래에보면 시루봉에 있는 작은암자의 바위구멍에서 쌀이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위치가 구병산자락 어디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서로 다른곳인지
해답이 없다 그냥 그렇게 넘어갑니다 ~ ?
그날 염소 모자(母子)를 부근에서 만났다 어디서 언제 구병산자락에 살게 되었는지 벌써 야성에 익숙해져서
오라고 손짓을 하여도 멀리 사라져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지난과거 호랑이나 늑대 등 큰짐승이 있을을때면 살아
남지 못하였을텐데 모자가 온산을 누비며 먹이를 찿아 생활을 하고 있다는게 자못 신기롭기만하다
혹 이글을 보시는 분은 포획할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염소(산양) 모자를 보호하고
실제 주인을 찿아서 보금자리로 돌아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 지금부터는 계속급경사 를 차고올라서면 주능선이 보이고 반대편 구병리의 삼가 저수지가 눈아래 보인다
좌측으로 100m정도 남짓한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그날 덜녹은 눈으로 등산객들이 혼줄이 났다
대전에서 여주에서 산악회원들이 정상을 정복한 뒷풀이를 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날 날이 맑아서 멀리 속리산 문장대와 지아비산 천황봉과 금적산을 한눈에 볼수 있었다
* 정상에서 서원리쪽으로 30m아래 우리나라 3대 풍혈 (진안 대둔산, 울릉도동, 구병산풍혈) 을 들러서 다시 정상
으로와서 853봉쪽으로 하산길을 택하였다
* 정상에서 보이는 상주~청원간 고속국도(30번) 속리산 휴게소가 바라다보이고 853봉과 신선대는 당일 경유하지
않고 지난번에 찍은사진을 올려 본다 중간 이정표 하산길 절터로 내려오는 짧은 하산길을 선택하였다
* 내려오면서 다시 바라다본 853봉의 절벽이 가물가물하기만하고 30분정도 내려오니 한국전쟁당시 폐허가 되었
다는 토골사 절터가나오고 그중 정수암터 옹달샘을 지키고 있는 돌두꺼비가 옛날 절터의 비밀을 알고나 있는듯
이 점잔하게 앉아 있고 잦은 겨울눈과 비가 녹아흘러 내리니 모처럼 정수대가 물을 품어 내고 있었다
한모금을 마시고 기록된 전설의 글귀를 차근차근히 읽어 내려 갔다 "옛날 이곳에 있던 정수암에서 불심에 정념
하던 스님들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암자를 떠나 속세로 나왔다고 한다 옹달샘의 물을음용하면서 주체할수
없는 정력을 참지못하여 하산하였다는 전설이 기록되어있다"
주변 절터를 살펴보니 옛날 스님들이 관리 한것으로 생각되는 참옻나무가 묵은 뿌리에서 새가지가 돋아나서
자생하고 있었다 요즘 어혈과 위장 간장에 좋다는 소문으로 참옻나무를 뿌리채 남획하는 일이 있어 보호가
요망되고 있다 사진에 있는 뽀얀 참옻나무는 돋아난지 3년째 되는것으로 추정된다 잘커서 거목이 되고 참옻이
꼭 필요한 등산객에게 잔가지와 잎을 조금씩 나눠주었어면 하는 생각이 든다 * 손대지 마세요 ~ 옻올라요
500년전 절로 되돌아가면 6개월을 참지 못하고 하산한 내용이 이 옻나무와 연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뇌리를 스쳐간다
옻을 먹은 스님이 국보1호에 옻이올라 가려워서 비비고 당기고 흔들고 하다가 도저히 이기질 못하여 하산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코리생각-
이제 조금만 내려가면 출발점이 나온다 ~~
* 유난히도 많이내린 겨울눈 탓으로 봄비와 어우러저 녹아내리는 계곡물소리가 등산객들의 마음을 즐겁게하고
갓피어난 버들강아지가 수줍은듯 물소리와 어우려져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기만 하다
봄을 알리는 생강나무 꽃 망울이 터질락 말랑 다음주쯤 노란꽃잎을 보여줄것 같다
신선대를 거쳐 형제봉쪽 등산로 하산 갈림길을 지나 내려오면 최근에 설치한 팔각정이 보이고 산불초소와
접해 있는 포장마차가 하산객을 맞이 한다
보은의 마로면 명주 생막걸리를 비롯하여 닭백숙, 찜닭, 손두부, 파전 등 해달라는 음식은 다해준다
오십이 넘어보이는 이쁘장한 주인 아지매와 21일 칭구들이 온다고 대충 예약해놓고 정성들여 탄 커피한잔
을 건네 주셨다 산행 끝이라 커피맛이 꿀맛이라는게 이런거구나 하고 감사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출발지로
내려 왔다
2010.3.21 서울에서 영모,남수, 재호, 광식, 경희, 옥자,영심이..................... 부산에서동억이 울산에서
구미에서 태상,상원 , 상주 종성이, 준이 명호 등 5학년3반 초딩동기들이 밝은 웃음으로 봄맞이 구병산행 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놓 았지요 그래서 칭구들이 잘다녀가게 1주일전 사전 답사 산행기를 작성 해 보았습니다
고향을지키는 총무라는 이름 때문에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