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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朴洪奎, 1919-1994)에게서 벩송
류종렬,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오후 4시, 철학아카데미 3층
- 철학아카데미: http://www.acaphilo.or.kr/자유게시판/?mod=document&uid=5765
1. 박홍규에 있어서 철학적 사유의 자료들
“철학하다”는 모든 자료들을, 즉 자료의 총체성을 다루어야 한다. 사변적 대상에서 물질적 흐름에 이르기 까지 경험적 총체성을 다루어야 한다. 제반과학들의 성과를 검토하고 그 깊이를 따져보아야 한다. 깊이는 벩송이 말하는 “안으로(dedans)” 또는 대상들의 이전에 움직이고 있는 것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의 성과들의 배경을 재인식의 차원에서 검토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존재론과 인식론은 이런 성과의 재현(표상)들을 다룬다. 박선생님이 자료들이라고 할 때, 플라톤의 작품에 쓰여진 것을 쓰여진 대로, 그리고 행간을 읽고, 그리고 시대의 문화와 더불어 읽으라고 한다.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다루려고 했는지를 다시 물어 보라(재인식해보라)고 한다.
플라톤 이전에 소피스트에 대해 박선생님은 철학사적 일반론으로 이야기 하셨는데, 벩송은 여러 강의록에서 이오니아학파에서 소피스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전문가들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자연(phusis)과 휠레(물질), 아르케(arche)와 아이티아(aitia)를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읽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벩송은 이들을 움직이는 능력(역동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특히 소크라테스가 고르기아스에게 배우러 간적이 있다고 하는데, 고르기아스의 3가지 회의론을 심리학적으로 읽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알 수 없는 것이 움직이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이런 강의록의 대하면 벩송이 영혼에 대한 주제가 그의 학문 전체를 관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선생님도 아리스토텔레스를 플라톤의 주석과 연관하여 부분적으로 읽으셨지만, 전체를 읽으신 것은 영혼론(“페리 프쉬케”)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서 10년을 배울 수 있었는데,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의 계보들을 볼 필요가 있다. 박선생님은 플라톤의 연구에만 집중하여, 다른 계보에 대해 이야기 하시지 않았지만, 벩송은 희랍어와 라틴어가 능숙했기에 고대 철학적 계보들에 대해 강의록들을 남겼다. 우선 여기서 소크라테스 계보의 편의상 다섯 층위를 나누자. 바깥으로 두 계층으로 플라톤과 플라톤의 선배인 크세노폰, 그리고 중간쯤으로 일찍이 메가라 학파를 연 에우클리데스, 안으로 또는 깊이에서 두 위상으로 퀴레네 학파 창설자 아리스티포스와 퀴니코스 학파의 창설자인 안티스테네스가 있다. 그 중에서도 퀴니코스학파를 좀 예외적으로 언급하였으나, 벩송은 퀴니코스학파에서 스토아학파의 연결을 중요시 한다.
플라톤도 처음에는 소크라테스가 강조했듯이, 삶에서 생기는 난제(aporia)를 해결하고 한다. 아테네라는 지역에서 삶에서 제기된 문제는 “훌륭함”에 대해 아는 것이 최고의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오니아학파이래로 아르케가 문제였다. 그럼에도 아테네의 제국화 과정에서 이 제도(체제)를 인간답게 이끌어 가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시민들의 훌륭함이 필수적이며 이로부터 훌륭한 도시국가가 나온다고 여겼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나라의 안위를 보존하는 전투에서 용기가 있어야 하고, 평시에는 세상사에서 멋짐(아름다움)도 있어야 하며, 이런 삶을 평생 이어가는 자기 수련과 확신으로 지혜를 사랑해서 자기완성(정체성, 동일성, l’identité)으로, 또는 영혼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개념의 추상화인 관념은 대상인가? 철학적 사고에서 대상이다. 그 대상은 “존재”라고 개념화(conception) 한다. 그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체로 있다(. 박선생님은 그것으로부터 무엇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국가(폴리테이아)”편에서 선분의 비유든 동굴의 우화든 간에 완전하고 불변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이 완전한 것이 현존인가? 아니다. 현존은 현실에서 있는 것으로 에이나이가 아니라 온(ον, 현존)의 상태들이다. 그러면 이데아(관념)와 현존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다루어야 한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편에서 이데아가 아페이론에 어떻게 적용 또는 응용되느냐고 물어야 했다. 플라톤은 아페이론의 방황하는 원인(필연)을 데미우르고스가 어떻게든 달래서(구실러서) 이데아를 유지하게 하려 한다. 여기서 선생님은 “폴리테이아”편의 이원성과 달리 티마이오스 편은 “3원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티마이오스를 우주론으로 읽지 말고, 우주 생성론(genèse)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 벩송의 창조적 진화 3장을 우주발생론(cosmogonie)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박선생님이 고대철학사를 읽는 관점이 자료들의 총체를 보라는 것은 플라톤의 저술만이 아니었듯이, 벩송의 경우에도 저술만이 아니었다. 물론 플라톤과 벩송에서 우주발생론이라는 주제가 같다는 점을 끌어낸 요인은 자료의 총체에서 상층ㆍ표면ㆍ심층이라는 도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유의 극한에서 상층(아페이론)과 심층(深層, 아페이론)이라는 두 축을 고안해 냈다는 점이다. 벩송은 철학사 전체를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심층으로 라는 세 단계의 통시적 고찰을 하였지만 말이다.
박홍규는 페라스와 아페이론이란 두 축이 공간의 축과 시간의 축이라고 한다. 이 두 축의 설명은 대상화의 방식에 있으며, 분명히 DI에서 공간(정지)의 축이 아니라 시간(운동)을 구별하고, 다음으로 MM에서 둘을 각 각 평면의 축과 수직의 두 축으로 설명한다.(MM 그림 3). 그 MM에서 두 축이 만나는 점이 현재이다. 그리고 현재의 의식상태가 현존(existence)이다.표면 위의 현상 또는 표상(재현)을 다루는 철학자들은 19세기 초반까지 과거 의식(기억)을 다룰 수 없는 것으로 보듯이, 평면에서 점들의 나열과 배치를 인정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추론이 상층에서 논리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영혼 또는 정신이 어느 시점은 아니라도, 상층의 완전한 것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영혼 또는 의식이 생성, 발전, 진화를 거듭한다는 것은 19세기 후반까지는 성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두 축에 연관된 모든 사실들과 활동들을 “전부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정지에서 운동으로 방법을 사용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이고, 운동에서 정지로 다른 이는 벩송이라고 보았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에는 서양철학사가 전개해 왔듯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게 하는 부동의 운동자가 있다. 그런데 벩송에서 이데아와 부동의 원동자는 현존이 아니며, 현실의 실재성도 없는 우화와 같은 것 쯤으로 여기면서, 상징(기호)일 뿐이라 한다. 그런데 그런 상징은 왜 생겨나느냐는 문제는 삶에서 필요한 소통의 언어에서 일반화의 두 길 중에서 하나인 지성의 길에서 나온 개념화와 추상화에서 온다고 보았다. 벩송은 운동하고 파동하며 변화하는 실재성이 있고, 이것들의 상대적 둔화와 정지에서 개념화가 있으며, 그 개념화를 추상화하여 영원(aion)화 하는 것은 지성의 경향이라는 것이다.
박선생은 서양철학사의 두 측을 플라톤과 벩송만으로 구축해 냈다는 것은 대단한 통찰일 것이다. 그런데 벩송은 많은 고대 문헌학자들을 섭렵하면서 그리고 당대의 변화와 진화에 대한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유전학 등을 통해서, 실증적으로 기원과 근원에서는 운동과 진동이 먼저이라고 하였고, 우리의 의식활동이 상대적으로 그 운동을 잘랐을 때 정지가 나온다고 보았다. 이런 벩송의 사고는 유일신앙 국가에서 위험천만한 발상이었지만, 19세기 말에 수학이 원리가 아니라고 개연성이었고, 물리학이 물질의 비결정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생물학이 수학의 원리와 물리의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결정적이며, 게다가 심리학은 생명체보다 유동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새로운 학문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벩송이 그런 학문발달사의 중대한 변역(變易)의 시기에 살았기에, 운동, 지속, 생명, 자연의 자발성(필연성)을 통해서 유일신앙과는 전혀 다른 인간본성(la naturehumaine)을 온자연(la Nature, la Vie)와 공연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선생님의 답은 아니지만, 벩송의 답은 알렉산드리아에서 2세기경의 두 학자에게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지의 길은 아프로디지에우스에게, 운동의 길은 플로티노스에 있다. 전자는 유일신앙과 스콜라철학으로 이어지고, 후자는 세파라드 철학을 통해 앙소프의 운동성으로 이어지는 데, 전자는 로고스의 철학으로 후자는 누스의 철학이다. 어째거나 전자는 논리라는 하나로부터 변화의 설명에, 후자는 생성에서 누스의 분열을 말한다. 그런데 후자에서 누스의 분열에서 두 경향성이 하나는 공감성의 길로, 다른 하나는 지성의 개념작업에서 일반화의 길로 간다. 벩송은 EC에서 자연의 자기 생성에서 두 질서라고 설명하게 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이야기는 철학사를 보는 입장에서 다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56NMA)
2. 철학은 자료들의 총체를 통해 모순 또는 난문제(aporia)를 해결하려 한다.
박선생님은 난문제(aporia)가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기술적인 문제와 도덕론적 문제 사이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사적 입장은 난문제의 원인이 본성(자연)에 있는데,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원인성보다 자연 형성의 기능과 자료의 종합에서 보려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긴 설명이 없지만, 그리스적 난제의 기원을 알고 있었는데, 플라톤의 자료들을 중심으로 다루기에 그리스철학의 기원보다 그리스철학의 전개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벩송으로 보면, 이중성의 문제가 분할에 의한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뿐만이 아니라 철학사 통시적 과정 전반에서 이중화의 분열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벩송에서 자아의 이중성인 분열이 지성과 공감의 문제이며 이런 해명은 전자기학과 심리학이 등장하고서야 실증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거꾸로 고대철학의 형이상학이 이미 분열되어 있었는데, 벩송은 과학과 기술에는 로고스와, 공감과 총체에는 누스와 연관해서, 기원 또는 근원을 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기능과 능력을 분리해서 설명하려 했다. 지속과 운동들(궤적들), 기억의 능력과 추억들의 기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생님은 아포리아를 먼저 수학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수학사에 난제들 중에 원이 직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문제는 돌이켜 보면, 수학사의 문제 이전에, 천구의 운행과 지상의 운동 사이의 문제이며, 영혼이 위상화의 문제였다.
선생님의 난문제는 주로 존재론적 난문제에 있으며,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A와 A아닌 것이 라는 모순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A와 B 사이를 구별 또는 분류하는 방식이 무엇이냐에 있다. 내가 강의를 듣는 4년 동안에는 후자의 문제를 거의 학기마다, 여러 번 손으로 두 면을 또는 칠판에 그림을 그려서 설명했는데,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면서 하나 다음에 둘이 어떻게 성립하느냐고 한다. 둘이 있기나 한가? 세계도 하나이고 물방울이 둘이라도 붙으면 하나고 눈을 감으면 모든 세상이 하나이지 둘이 왜 생겼느냐고 하면서, 둘의 성립은 지성이 자른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벩송은 정확성과 올바른 문제제기가 문제의 해결이라고 보았듯이, 선생님도 올바른 문제제기와 더불어 저술들의 속뜻을 정확히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모순이든 분류(선별)이든 둘 다 자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이뭣꼬”를 그 자체적으로 다루지 못하면, 다른(차이 나는) 것을 잘라내는 분석이라는 방법을 가져올 것이다. 훌륭함은 훌륭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구별되어 분류해야 한다. 그런데 그 분류 또는 분할을 하는 자름의 도구는 무엇인가를 물으신다. 고대철학에서는 상식(5관)을 통해서 일 것이고, 그 상식을 종합하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자르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고, 잘라지는 것들이 있다고 여겼다. 잘려져 나간 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는 없는데, 무라는 것과 있는 것 사이의 자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제사 자르는 능력이라는 사유능력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동물과 다른(차이나는) 사유능력을 다시 묻는 것은 문제거리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있다와 없다 사이의 차이가 대상이다와 대상 아니다의 차이와 다르다는 것을 탐색하면서도, 이것을 다루는 사유능력을 묻기보다, 이런 두 가지 종류의 차이(사물과 명제 사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별할 수 있는 또는 설명할 수 있는 길로 나갔다.
‘있다’와 ‘없다’ 대 ‘이다’와 ‘아니다’라는 차히와 차이라는 구별을 존재론과 인식론에서 다룬다고들 할 때, 둘 사이의 문제제기가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무엇이 차이를 규정하고 있는지를 물어 들어간다. 이런 문제제기에서 존재와 무(비-존재)로 보는 것은 종교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철학적이 아니라 한다. 문제는 현존에서 사물A와 사물B사이에 구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 차례 설명한다. A와B사이에 무엇이 있다면 AB가 연결될 것이고, 존재론적 의미에서 하나의 덩어리일 것이고, AB 전혀 다른 C가 개입한다면 AB와 다른 C를 설명해야 하고 또 각 AC 와 CB 사이에 차이를 설명하기에 각각의 사이에 또 다른 DF설 설정해야 하고 등등 계속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AB 사이의 연결로서 떨어짐 없는 하나의 덩어리와 AB사이에 무수히 다른 매개자들로 이어지는 선적인 통일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생님은 설명상 전자에서 연속성의 방식과 계속성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어쩌면 한편으로 플라톤에서 데미우르고스의 아페이론 접합을 생각한 것 같고, 다른 한면 부동의 원동자가 질료 속에 개입하는 것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에서는 권리상 AB에 기저에 공간과 같은 터전을 전제해야 하고, 후자에서는 사실상 공간을 설정하지 않고서 연결선으로 부동의 원동자의 계속성을 전제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양자에서 설명의 완전성을 위하여 규정상(정의상) 논리적으로 영속성을 미리 기저에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기저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달리 쓰였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 기저 자체에는 영속성을 갖고 있으며, 게다가 암암리에 영속성에다가 연속성과 완전성 불어넣고, 그리고 영원성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설명은 그리스 사유에서 정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왜일까? 박선생님이 플라노메네 아이티아 또는 질료에게 자기 생산성과 자발성을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마음대로 생성과 확장을 한다면, 철학은 동일반복성이 없는 대상을 다룰 수 없다는 수학적 정확성에 벗어나기 때문이다. 박선생님은 이 두 철학자 중에서 플라톤은 아페이론의 고유성이 있을 것이라는 측면을 염두에 두고 자료들의 총체를 다루었는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휠레에게 수동성만을 보아서 휄레가 부동의 원동자의 경향과 방향을 따를 수 밖에 없은 것으로 한정했고, 경험적 근거에 의해 그러한 것은 일정하게 대상으로 다룰 수 있다고 여겼다. 게다가 그는 대상들이 분류상으로 종과 류를 나누어 일반화한 개념을 성립하게 만들면서 논리학의 기초들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고대 그리스 사유가 현존하는 사물들의 생산과 창조를 우주론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플라톤에서만은 우주론이 아니라 우주발생론이 있다고 말한다. 아페이론의 성격상 이데아를 닮으려 하지 않는 성격, 즉 플라노메네 아이티아가 있다는 것이고, 이로부터 발생론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런 발생론의 단초를 벩송에서도 보았던 것이다.
모순으로 알려진 것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관계라기보다, 현존의 다양한 사물들 사이로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설명에 앞서서, 존재와 비존재의 난제를 풀려는 작업이 있다와 없다가 현존론이 아니라, 이다와 아니다로 개념 설정론으로 갔다고 볼 필요가 있다. 박선생님은 이점을 탐구하지 않았지만, 벩송은 “강의록(1903-904)”에서 길게 다룬다. 인도유럽피언 언어에서 같은 동사(에이나이든, 에뜨르든)가 존재사로도 지시사로도 쓰인다. 선생님의 제자인 윤구병은 이 구별을 하면서 존재사에서 현존을, 지시사에서 사물들이 아니라 대상을 또는 실체사가 아니라 행함을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윤구병은 현존에서 삶을 지시사의 개념형성에서 인식이 아니라 함(실천)을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박홍규에서 윤구병으로 현존론과 실천론(앎과 함)으로 이어지는 탐구의 확장은 다른 논의일 것이다. 박선생님은 존재와 무 사이의 불완전한 해결, - 신의 작업이든, 플라톤의 규정화(페라스화)이든, 아리스토텔레스 일반화(개념) 작업이든 – 아페이론의 내재성의 작동과 생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그러면 아페이론이라는 규정화의 내용과 작동은 무엇일까?
고대 철학의 기저의 운동성(실재성)을 벩송에서 의식의 내재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겉으로 보면 엄청난 비약이다. 물론 고대 철학사는 이데아나 에이도스가 실재성이지, 알려지지 않은 보이지 않은 내재성을 실재성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벩송은 이데아와 에이도스는 실재성이 아니라 상징성이고, 내재성이 실재성이라고 하였다. 이 역전된 사유를 박홍규는 벩송의 DI와 EC에서 현존에 실재성 있다는 것을 찾았다. 그는 DI 3장에서 자연의 자발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EC 1장에서는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창조”가 있다는 것을 연결하였으며, 3장에서 현존의 계속적이고 영속적인 변화과정에서 자연의 변화를 설명한다. 더하여 기존의 형이상학이 물질의 하강에 지성을 대입시켰고, 벩송으로서는 의식의 상향에 직관을 통해서 설명한다. 박선생님은 고대의 정지(부동) 철학이 설명하는 운동은 이동과 거리에 속한다면, 벩송이 설명하는 시간과 운동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물들인데도 현실적 활동이 있게 하는 과정으로 영속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죽 있어왔다는 것이다. 이 지속성은 고대와 근대가 말하는 헤아리고 재는 시간과 운동과 달리, 자기변화과정을 지니고 이질적으로 생성하면서도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지속(운동, 시간)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용어 때문에, 양식 있는 사람들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벩송의 강의록에 따르면, 고대철학에서 생성과 변화, 운동과 이동을 설명하는 방식은 ‘보이지 않는 공간’과 ‘제시하여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직관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설명하거나 일반화하여 개념작업하기보다, 감성적으로 “있음”(현존)인데, 이것을 언어적으로 “이다”(기호, 상징)와 동일시에 놓음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모든 사물이 현존할 수 있는 보이지 않은 사물로서 기저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벩송의 견해로는, 존재와 현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은 데서 오는 난점을 해소하기 위해, 우선 말해야할 것은, 존재는 현존이 아니다. 논리적 사고의 대상을, 나아가 추상의 극한 인 존재를 있음이라 하는데 오는 착각이다. 그리고 현존의 변화와 운동을 설명하면서 하나의 질서가 있다고 여기고 다른 질서를 무질서로 여기는 것도 착각이다. 이런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세계의 끝이 ‘있다’와 ‘없다’에 대해서, 간략하게 한 설명은 오성적으로 여기고, 다른 설명은 이성적이라고 하는데,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도 착오(faute)라는 것이다. 게다가 신이라는 존재가 보편타당하고 무한편재하다고 여기는 것은 오류(erreur)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고 모든 능력이 있고 모든 곳에 내재하며, 모든 것을 실행한다고 말하는 그 모든 것은 인식능력에 속하지 않으며, 또한 정의(定義)도 아니다. 또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 대상들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성적 직관과 유사하게, 추론적 사고의 극한의 대상화(추상)임에도 거기다가 존재를 또는 현존 대입한 것은 부조리의 오류이다. 들뢰즈의 표현으로, 이런 오류가 성립되고 여러 이야기 속에 지금까지도 전승되는 것은 수많은 파라독스의 성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모순은 논리에서 성립하는 것이지, 현존하는 사물들 속에서 양립가능한 사물들이 있으며, 게다가 다른 차히로서 서로는 부딪히지도, 관계맺지도 않으면서, 학문들 각각의 영역(위상)들의 한계 사이에서 서로 차히에 있어서 계열을 달리하는 경우에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학문의 그런 영역(위상)들은 무엇이며, 각각이 성립하는 것은 동일한 터전(공간) 위에서, 동일한 시간(지속)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또는 생성하는 것인가? 정확성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사물들 사이에 다른 차히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벩송이 말하는 올바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생성의 과정상 서로는 다른 방향과 다른 경향성을 지니고 현존에서 엉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벩송 이전에 철학자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경향성에서 보았던 그 인식의 주체가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 인식 주체가 사물들을 대상화하면서 선전제로서 직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공간과 표현할 수 없다고 여긴 시간(지속, 기억)을 느끼고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왜 철학은 현실에서 보이는 것과 오관을 통해 감각하는 대상들을 제시(présenter)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재현(représenter)하는 대상으로부터 대상의 내용(본질)과 실재성(현존)을 거꾸로 추론하여 최고의 추상화인 신을 대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대상화하고 현존이 아니라 존재로, 그리고 하나(통일성)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그 대상이 환타지(시뮬라크르)가 아니겠는가. 모순, 안티노미, 부조리, 파락독스 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형이상학의 본래적 탐구를 거꾸로 만들어 놓았던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탐만치의 사고를, 즉 이런 전도된 사고를 방향을 달리 사유 하는 철학이 벩송의 새로운 철학이라는 것이다. 삶에서 함으로 그리고 지식(인식)을 생산하는 길로... (56OKF)
3. 서양 철학사에 대한 공시태관점과 통시태관점
1) 공시태에서 본 여러 철학들.
서양철학의 난제들은 사물들을 대상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사물화를 체계로 세우는 공시태는 어떤 시점에 누구에 의해 체계화 되었을까 라고 물어보자. 박선생님은 플라톤에 대한 강의에서, 플라톤에 대해 관점들에게 차이가 있다고 한다.
어느 때는 플라톤이 어쩌면 2원론이야, 페라스와 아페이론을 놓고 나가면서, 이 양자 사이에서 연관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지를 알린다고 한다. 이런 이원론이 서양 철학사에서 중세 보편논쟁이든 근세의 데카르트이후의 이원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 이원론에서 플라톤은 이데아의 성립을 “폴리테이아”편의 선분의 비유에 있다. 사람들은 그림자를 통해서 사물을 설명하듯이, 추론을 통하여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사와 에피스테메의 구분하여 보았고, 그리고 서양철학사의 지식론은 에피스테메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독사라는 견해는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벩송은 “강의록”에서 이원성이 아니라 분열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EC에서는 인식의 능력의 이분화시켜서 내재하는 인식능력인 본능(공감성)을 추론하는 지성과 대등하게 두게 될 것이다.
어느 때는 박홍규는 플라톤 사상이 일원론이야 라고 한다. 일원론이라고 보는 입장은 이데아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이데아의 실재성에 비해, 존재론적으로 이데아의 대척점에 있는 아페이론은 비실재성(비존재)이 되거나, 도덕적으로 허무가 될 것이다. 그는 이런 비존재와 허무주의의 극복을 철학사의 사유의 중요한 줄기로 본다. 그럼에도 그는 이데아 또는 선의 이데아와 같은 단위를 먼저 두고 하는 철학은 쉬운 철학이며, 신학과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잘 읽어보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성찰을 고민하면서 아페이론 또는 비존재로 불리는 사물(휠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를 대화록 곳곳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원론을 이중화의 분화로 읽은 것은 벩송만이 아닐 것이다. 벩송이 기원과 원인성에서 의식의 분열로 읽은 것은 문헌적으로는 플로티노스덕분 일이다. 그럼에도 벩송은 철학사의 사유과정에서 플로티노스에 앞서서 이런 이중화의 노력은 이미 스토아에서도 있었고, 그리고 소크라테서에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홍규가 보기에, 플라톤의 작품들에서도 있다는 것인데, 삶의 행위에서 이분화의 성향을 “소피스트”편에서, 언어에서 이분화의 경향은 “테아이테토스”편에 있다고 한다. 그는 이분화의 분류작업을 잘 들여다보면, 이데아를 설명하는 선분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플라톤은 아페이론을 비존재로 또는 무로서 “없다”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아페이론에서 무엇인가 모자라는 측면이 있지만, 그 자체가 이데아와 다른 특이한 활동이 있다는 것, 즉 수동성만이 아니라 능동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플라톤이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홍규는 플라톤의 “필레보스”편을 기존 학자들이 읽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 속에서 능동성이 “필연”으로 또는 “방황하는 원인”과 연관해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고, 그 필연은 이데아 연관없이도 있을 수 있는, 그리고 의식에서는 자각할 수 없는 어떤 무엇, 즉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사물(휠레)이 실재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박선생님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어떤 것(사물)이 벩송에서 의식이 무매개적으로 다루는 ‘이미지’와 연결해서 사유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연결성을 인정하면, 그는 벩송의 DI 3장에서 자연의 자발성을 뽑아내어 벩송 사유의 단초로 삼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서양 형이상학사가 이데아를 실재성으로 삼아 철학의 단초로 삼은 사고가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 벩송으로부터, 이데아는 상징일 뿐이고 자연(휄레)이 곧 실재성이며, 이 실재성을 다루는 방식은 서양철학사 2천 5백년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일원론, 플라톤의 일원론이라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로부터 일원론인데 비해, 실재성의 발생과 창조에서 시작하는 자연이라는 단위(다양체)의 일원론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선생님이 서양철학사에서 공간(정지)의 철학과 시간(흐름)의 철학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 먼 간격을 단번에 뛰어 넘어서 20세기 한국에서 일원론의 두 종류를 말하고, 또한 중세 유명론이래로 달리 실재성을 찾아낸 박홍규의 탐구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양에도 이런 철학자가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들뢰즈도 이런 사유를 했다는 것이다.
박홍규의 강의록 중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사실상 “티마이오스”편일 것이다. 이 편에서 플라톤은 이데아계와 아페이론계 사이에 제작자(지성, 이성)로서 데미우르고스를 개입시켜서 설명하였다. 들뢰즈가 표현하듯이 상승과 심층 사이에 표면이 있다. 우리는 이 용어들에 비추어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다. 박홍규는 무심결에 플라톤의 철학은 ‘삼원론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삼원론이라는 용어는 철학사에서 쓰이지 않은 용어이다. 앞에서 설명한 이원론은 인식론에서, 일원론은 자료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세계의 설명에서 즉 형이상학에서 다른 것인데, ‘삼원론’이라니. 어쩌면 모순, 부조리, 안티노미, 파라독스 등의 난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잘 안될 때, 소크라테스 시대의 가장영향력 있었던 유리피데스도 연극에서 데우스엑스 마키나를 사용한다. 세계와 인간 사이에(형이상학적으로), 소피스트가 활동하는 시기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인식론적으로), 외부의 개입이 세계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일까? 플라톤이 데미우르고스를 신이니 제작자니 하는 용어를 쓰는 것은 여전히 아데아를 실재성(실체)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데미우르고스 즉 인간의 인식기능(지성)일까? 하늘의 운행을 땅의 운동(변화)을 설명하려면, 어떻게 대립 또는 대비되어야 하느냐가 그 시대 중요 문제거리 였다. 물론 데미우르고스가 이데아를 지상에 접합시키는 방식에서, 플라톤은 지수화풍의 수학적 완전체들을 동원해서 어렵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박홍규는 단순히 천구의 완전자에서 지상의 운동으로 대입한 것이 아닐 것으로 보았다. 그는 “파이드로스” 편에서 두가지 동일성을 설명한다. 하나는 “그 자체적으로 동일한 것”, 다른 하나는 “움직이면서도 동일한 것”이다. 플라톤은 후자의 동일성을 천문에서 보았고, 그 동일성이 자체적 동일성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보았다. 천체의 움직이는 동일성에서, 매번 돌아오는 영속성, 그리고 영속적이라는 의미에서 연속성이 있고, 그 연속성은 끊어지는 또는 잘라지는 측면이 없다는 측면에서 영구성이고, 그 영구성이 변하지 않은 의미에서 영원성이고, 그 영원성에 불멸성을 넣었다. 영원성에서 불멸성으로 이전 과정에서 인간의 영혼의 지위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은 철학사에서 추측이나 추론이 아니라, 벩송이 보기에 난제에 대해 말하지 않은(non-dit) 문제거리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영혼은 어디서 와서, 무엇이며, 어디로 가느냐는 문제거리를 달리 다루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3원성이 근대철학이후 데가르트의 주체의 등장과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벩송은 철학사를 공시태에서 보는 관점을 인식적으로 두질서라고 했고, 통시태에서는 상층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심층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전편에 걸쳐서 보여주었다. (56OLC)
2) 통시태로 본 철학사의 경향
이제 우리는 통시태의 관점을 볼 필요가 있다. 선생님은 고별강연에서 프랑스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학문적인 틀이 무너지는 과정을 매우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새로운 철학을 하게 되는 것은 꽁트의 실증주의의 영향으로 보았다. 우리가 보기에 꽁트의 실증의는 형이상학의 시대가 끝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과정과 전개를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삶과 제도에 연관을 더 많이 다루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사회학의 창설과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벩송이 본 실증과학의 발달은 다른 측면이 있다. 철학사가들도 개별과학들의 발달이 아리스토텔레스 경험과학들이 무너지는 과정이라 한다. 마지막 남은 것이 프쉬케에 관한 심리학이었다고 한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전도된 방식을 바꾸는 것은 천문학에서, 그리고 갈릴레이 이래로 물리학에서, 그리고 물질에 대해 라브와지에의 화학에서, 그리고 생명의 기원과 생장에서 라마르크의 생물학에서 그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상식(오관)을 통한 정립이었다는 것을 알려졌다. 그리고 원자의 내부로, 생명체의 내부로, 의식현상의 내부로 들어가는 방식을 데카르트이래로 주체의 인식능력의 확장인 양식으로서도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사회학과 인류학, 그리고 언어학의 새로운 방식의 등장 이상으로 생물학, 의학, 생리학, 심리학 등은 스콜라주의의 철학과 다른 방향으로 길을 간다. 간단히 벩송이 보기에 다윈류도 스펜서류도 스콜라철학의 방향이며, 인간의 제도와 연관하여 국가와 법률에 다루는 방식에서도 그리고 인류학에서 인간의 행동을 실증적으로 다루는데 있어서도 이데아적 원본을 선가정하여 다루는 방식에 속한다고 보았다. 벩송은 이런 상층의 원본을 빗대어서 철학하는 방식은 진정으로, 자연(생명)의 창조, 생성, 생장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여 난제를 안고 있다고 보았고, 이들은 재현(표상)을 다루면서 주지주의를 신봉하는데, 네오 스콜라주의자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박선생님은 앞에서 언급하듯이 플라톤의 자료 총체에 대한 양극단을 모두 다루려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층에서, - 이데아든, 에이도스든, 선의 이데아든, 부동의 운동자든, - 내려오는 연역적 설명의 체계였다면, 이에 비해 벩송은 내부에서 솟아나는 창조와 발생(생성, 되기), 전개의 방식이다. 이런 설명에서도 제반 과학발달사와 연계시켜서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증과학의 발달이 철학의 방법을 바꾸었다고는 설명한다. 선생님은 실증과학의 발달이 철학에 미친 영향으로 갈릴레이의 물리학을 중요성을 강조했으며(DI), 그리고 그는 MM을 현실적 사물로서 신체와 내재적 의식으로서 기억 사이의 연관에 대해 설명하면서, 둘 사이에 접합점이 있는지에 대해 어렵게 설명하기도 했는데,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적 신체를 다루는 사물들의 세로축의 평면과, 의식의 활동으로서 기억과 이미지를 다루는 세로 축의 고깔 사이에, 두 가지 다른 철학으로 설명했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물론 두 축의 설명이 새로운 심리학과 병리학에 근거하는 것인데, 당시 나로서는 여기에 대한 강의를 죽 들었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다. 단지 박선생님은 생명과 물질은 다른 기원이라는 관점을 유지하였는데, 일차적으로는 파스퇴르의 생명은 생명에서 발생한다는 학설을 따랐고, 현대의 유전자로서 DNA에 대한 설명도 생명의 자기발생을 반박하지 못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로서 선생님의 견해에서 유물론과 생명론(유심론)은 별개이라는 관점을 두 개의 축과 마찬가지로 유지하였다고 나는 본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선생님이 MM을 강의했을 때, 기억의 잔존이 기억의 영원성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벩송의 견해를 강조했다는 것이 남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의식, 지속, 기억, 유전을 수학의 공연성이 아니라, 생명의 동연성이라고 하였는데, 그 동연성이 같은 뿌리(층)에서 나왔다는 점을 설명했었다. 그러면 “형이상학 입문”에서 흐르는 실재성이 동연성의 기원에서부터 나온다고 본다면, 의식의 흐름과 물질의 흐름이 같은 동연성이 아닐까요?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플라톤과 벩송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사유하였기에, 그 철학사적 과정에 대해서는, - 강의 중에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 피상적이고, 게다가 “고별강연”을 선생님이 다시 수정하여 네 편이라 강의하였는데도 두 축의 관점을 유지하였다. 우리는 벩송의 전편에 흐르는 관점에서부터 다시 볼 것이다.
벩송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 생각이 출판된 8권 속에 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연설문, 강연, 보고서, 편지 등 합해도 16권정도 분량이다. 이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여러번 죽 읽어보았을 때, 우선 드는 느낌은 벩송이 서양 철학사의 마지막은 마지막 단계에서 앞시대의 철학적 관점을 뒤엎고(전복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우선 당대의 최고의 철학적 학설이라는 영국 계열의 스펜서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그런데 다시 처음부터 편지글과 강연 등을 종합해보면 그는 독일 계열에서 칸트에 대한 반박과 과학적 인식론을 강조하는 신칸트학파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벩송은 스페서류와 신칸트학파류가 네오스콜라주의에 회귀했다고 한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벩송은 철학적 논의를 하던 시기에 국가와 역사, 정치경제학에 영향을 확장하고 있던 헤겔과 맑스에 대한 언급은, 뒤르껭과 멘느 드 비랑이 없듯이, 전 저술 속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러면 벩송은 철학사를 통해 무엇으로 보았는가?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다루었지만 잘 풀지 못했다고 여기는 또는 아포리아로 남은 삶(생명), 앎(이론, 형이상학), 함(실천, 도덕과 종교)이 주제였다.
벩송이 저술 속에서 서양 철학사를 보는 관점은, - 들뢰즈의 표현을 빌려서, - 상층형이상학에서 표면의 이중성으로 그리고 심층의 형이상학(형이심학)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층형이상학의 이데아와 에이도스를 실체로 또는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이 있어왔다. 그리고 중세는 이를 실체라고 부르면서 상층에서 논리학과 더불어 논의 되었는데, 이런 철학사의 실증과학의 배경은 기하학과 천문학이었고, 지구 중심의 천문학 속에서 상식을 통해 전개된 것이라 한다. 그런데 갈릴레이의 등장으로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하늘의 운행이 지상에서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벩송은 철학이 “하늘에서 빗금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즉 상층에서 표면으로 내려왔다. 말하자면 천문학과 달리 자연학(물리학)이 독자적 학문으로 개별과학이 성립한다. 자연학은 고대 유물(휠레)론자로부터 있어왔지만, 물리학에 의한 운동의 이중성의 성립은 논리학의 동일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물체들이 현실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데카르트에 와서 영혼과 신체의 이중성으로 전개된다. - 벩송의 “강의록”들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천구의 영원성과 지상의 소멸성 사이의 난제가 해결없이 르네상스에 이르러 천구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상대적으로 동등하게 놓았기 때문에 천구의 운동을 닮았다고 여긴 영혼과 지상의 운동을 현실적으로 하고 있는 신체와의 대등한 관계를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제는 여전하다. 둘 사이에 이원성에서 이 둘 사이의 연결은 여전히 난제라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 스피노자의 두 속성론,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등은 영혼과 신체에서 대등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틀이었지만, 이원론도 평행론도 거울과 같은 대칭론도 양자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했다. 난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벩송이 보기에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묘한 방향으로 철학사를 뒤엎으려고 했는데, 데카르트 이후 칸트에 이르기까지 이원성에서, 주체의 우월성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독일철학 주체와 객체를 주장하는 것과 데카르트후계자들이 유물론을 설명하는 것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벩송이 보기에 프랑스 쪽에서 너비(l’étendu)와 독일 쪽에서 외연(l’extension)은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신체의 자기 생성과 발전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쪽이라면, 외연은 주체가 대상화하여 일반화에서 경계를 구성하는 쪽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원성을 고민했던 칸트가 자아에 심리학적 추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안티노미와 신의 이상을 이성이라는 사고 기능(능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럼에서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도덕성은 하늘의 별과 같다고 보면서 도덕형이상학으로 나갔다. 기능론과 도덕론 사이의 난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난제였는데, 또다시 칸트가 지적한 것이다. 벩송이 보기에 표면의 이중성을 각각의 계열로 고집하면 종합이 불가능하며, 기술적으로 또는 원자론적 조립으로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원론자들이 암묵적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달리 다루어야 한다면? 벩송이 보기에 상층형이상학이 상층의 이데아와 에이도스를 실재성으로 보았던 것이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징이지 실재성이 아니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철학에서 자아는 어떤 위상을 갖는 것인가? 자아가 영혼 쪽에, 또는 신체 쪽에 가까운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자아를 영혼의 능력으로 보아 상층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보게 되면, 신체는 물질이라는 심층에서 근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설명의 선분의 비유로 되돌아가게 된다. 즉 암묵적으로 스콜라철학에 함몰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아(영혼)의 본성(퓌시스)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닌가? 인간은 신으로부터 또는 상층으로부터 온 것을 버리지 못한 점에서는 칸트도 마찬가지였다. 신칸트학파의 오성(이성)은 기능 역활을 넘어서 능력의 작동을 하면서, 실체라고 여긴 제도와 국가 속에서 진리, 선, 미를 행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2천년 동안 고대와 중세의 상층에서, 빗금을 따라 내려와 근대 2백여 년의 표면의 이중성을 하다가, 독일철학은 다시 하늘의 별의 아름다움과 착함으로 거꾸로 올라가면서, 하늘이 아니라 이번에는 국가에게 인륜성과 완전성을 보려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인성의 완성을 “법률”편에서 규정하려했듯이, 국가의 법률 속에서 제도의 완전성이 인간 본성(퓌스스)의 실현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벩송이 이런 견해를 네오스콜라라고 보는 것은, 하늘의 뜻이 인간 세상에 구현, 현실화와 물질화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신학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로 다시 올라가지 않는 사유는 무엇인가? 사물 속으로, “내부로” 탐구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사물의 내부로 방향은 어쩌면 프랑스 혁명에서도 영향을 입었을 것이다. 하늘로부터가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생각을 한 루소의 영향은 로베스삐에르로 이어졌는데, 로베스삐에르가 혁명 중에도 루소와 스토아학파를 열심히 읽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인민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사유를, 혁명가들은 상층에서가 아니라 하부인 인민으로부터 사유할 줄 알았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상층의 왕과 귀족들 그리고 주교와 성직자들 단두대 이슬로 보내면서, 심층인 인민이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는 권능을 불어넣었다. 다른 한편 혁명에서 자유의 이념은 종교권과 왕권 없이도 인간본성이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유의 방향을 달리 하는 것은 우선 라브와지에 화학의 성립을 들 수 있다. 화학에서 연금술의 난점을 해결하여 새로운 원소의 내부구조를 탐구하게 되었고, 그로부터를 30여년이 지나면 원자 안에는전자와 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부로 또는 안으로 사유는 물질에서 뿐만 아니라 생명체에서도 전개되었다. 외형(형상)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린네와 다른 방식으로, 프랑스의 분류학에서는 식물과 동물의 생성과 성장에 관심을 가졌고, 나아가 자연에서 생명체의 변형과정을 탐구하면서 생명체의 구조와 생성에 대한 오랜 기간의 논의를 거쳤다. 변형과정의 논의는 진화론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이후로 생명체는 눈으로 보는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현미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미생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체를 이루는 것은 물체라기보다 세포들이라는 것을, 세포 안에는세포핵과 세포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에서 파스퇴르의 승리로 알려진다. 서양 역사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해부가 금지되었다가, 혁명의 과정에서 신체의 해부에 이어 인간 신체를 다루는 해부학의 발달은 의학의 비약적인 발달을 가져오고, 신체적 질병과는 다른 정신(심리적) 소외에 대한 심리병리학(정신병)을 다루는 데에도, 내부로 안으로 파고드는 과정이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병리학, 심리학 등에서 실증 경험은 볼 수 있는 것(visible)과 달리 볼 수 없는(invisible)도 징후와 증상을 통하여 실재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벩송은 이런 시기에, 자기장의 상대성은 운동의 상대성과 달리 방향이 다른 힘의 양립을,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엔트로피 역행을, 그리고, 심리학에서 내재의식(in-conscient) 실재성을 탐색하였다.
벩송은 “형이상학입문”에서 이제까지 형이상학은 외부에서 사고했는데 비해, 이제는 내부에서 사유를 탐험해야한다고 한다. 외부의 사고를 다루는 지성은 사물들을 잘라서(분석)서 재배열하는 것으로, 현재화와 재현화에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지속하고 운동하며 진동하는 내부를 다루는 방법은 공감하고 교감하는 것으로 직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성과 직관은 인식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 벩송은 말하지 않았지만 – 자석의 상반된 힘의 영역이 현존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상향하는 질서와 하향하는 두 질서는 공존한다. 이런 설명을 하는데, 기존의 형이상학적 도식과 체계로서는 난제에 빠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1900 새로운 사유를 전개하기 위해 세계철학자 대회에서 “원인”으로부터 철학을 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런 원인 또는 기원에 대한 철학사적 내용을 고대 그리스철학으로부터 다시 정립하였다.
원인과 근원에 대한 오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양철학사이다. 상층에서 표면으로 사고(로고스)의 철학은 재현의 철학이고, 심층에서 표면으로 사유(누스)의 철학은 재인식의 철학이다. 제대로 다시 재인식하는 철학사를 본 벩송은 진솔한 철학사의 과정이 원인의 분열성에서 심층과 상층의 두 흐름이 죽 있어왔다는 것이다.
4. 박홍규는 벩송의 사유를 어디까지 추적했을까?
벩송의 공시적 관점을 박홍규는 플라톤을 통하여 파악하였으며, 철학사에서 형이상학의 두 종류를 분간해냈다. 가로축(형상형이상학)과 세로축(질료형이상학). 그는 전자의 철학으로 아포리아(난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계론 또는 목적론과 유사하여 쉬운 방법인데, 그것은 실재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며, 차라리 분석적이고 구성적(구축적)이라 보았다. 이에 비해 벩송의 철학은 열린과정의 사유이고, 공감성을 통한 총체적 종합으로서 교향악과 같은 하모니의 조성적(composant)일 것이다. EC에서 벩송의 철학은 자연(생명)의 자기에 의한 자기의 생성이다. 그 생성이 물질과 타협안(modus vivendi)으로 물체(생명체, 신체)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홍규의 견해는 두 상반된 항들이 성립하는 두 축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게 보인다. 그런데 박홍규도 들뢰즈도 주목했듯이 MM에서 벩송은 왜 체(coprpus)를 기원에 두지 않고 이미지를 기원으로 삼았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체로 보는 것은 스토아 사상이라고 한다. 영혼(psyche)도 신체(soma)도 아니지만, 볼 수 없는 어떤 것(l’invisible)이 현존한다는 것이고, 이를 중세에서 체로 번역했다고 한다.
현존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스 철학에서 “어떠한가”라고 묻지 않고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에서 자연 또는 휠레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인간의 행위를 물었다고 본다. 자연은 자기의 역량과 권능이 있고, 무엇이라는 물음에서 대상에 대해서 인간의 행동이 들어있다고 본다. 철학적 사유는 움직이는 권능이 있고, 그 권능을 분유하는(참여하는) 영혼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진행해 갔다고 보면, 이오이나학파의 자연에서 아테네의 인간본성(자연)으로 물음이 진행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벩송이 지속을 인격성 안에서구해내고 그 안에서 실재적이고 경험적 근거를 찾아서 기억을 구해냈다고 본다. 그런데 벩송이 다시 1900년에 원인성에 대해 탐구로부터 다시 탐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원인과 결과란 한 경계(페라스) 안에서 일어난 사태들(이루어진 것들)을 다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인에서 여러 가지로 발생, 생성, 창조를 한다면,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성은 성립하는가? 인과성은 재현의 현상들에서 그 재현에 맞는 것만을 골라서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원인성에서 다양한 생성을 탐구해야지, 왜 원인과 결과와 같은 인과성을 지식이라고 했느냐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에 맞는 것을 지식 또는 진리라고 하는 것은, 근대 이래로 주체의 우월성을 인정하면서, 주체의 인식능력을 정신처럼 상층에 올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주체의 정신성을 유심론이라고 하고, 주체의 우월성에 의해 다루는 물질들 중에서 물체화하는 것을 유물론이라 부르는 데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유심론과 유물론의 형이상학적 방식을 인식론적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이 합리론과 경험론인 셈이다. 이런 구별을 벩송이 형상형이상학적이고 스콜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벩송은 실재론과 관념론으로 구별하는데, 실재론은 내재성에서, 관념론은 외재성에서 일반화 방식으로 구별하였다. 이런 구별은 의식의 분열에 기초하는데, 저술 속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대학 강의록과 꼴레즈드 프랑스 강의록에서는 플로티노스에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플로티노스에 따른 설명은 박홍규와 들뢰즈도 없었다. 왜냐하면 대학 강의록은 1999년에,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록은 2017년 이후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두 철학자는 이것을 읽지 않았지만 어떤 추론에 의해 벩송이 플라톤 이전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박홍규는 그런 설명을 행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층의 우월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벩송이 새로운 철학을 창안했다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그런데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 그는 벩송의 저술 속에는 없지만, 행간을 읽으면 스토아철학의 영향이 컷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재로 벩송은 강의록에서 플로티노스의 재해석도 중요하지만, 스토아학파의 분열의 방식을 플로티노스의 저작으로부터 보았다는 것을 알린다. 그 스토아학파의 학설은 하늘과 땅의 이중성의 연대성을 현재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벩송도 MM에서 현재를 순간과 찰나를 구별하면서 분열을 보았다. 그 분열이 그의 독서편력으로 보아 분명히 스토아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분열을 통해 플로티노스 학설을 기존의 동심원적 배열과 달리 분열적 배치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의 플로티노스 전공자에게 넘겨야 할 것이다.
분열이 왜 중요하냐? 모든 철학자들이 상층을 선전제로 두고서 통일성과 통일성의 단위로부터 사변적 사고를 출발하는데, 왜 벩송은 기원 또는 근원에서 분열이 있었다고 하였던가. 기원에서부터 하나라는 통일성 또는 단위는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질적인 단위는 엘레아학파와 플라톤에 이르러서 인데, 그렇다면 신화 또는 신들과 결별했던 철학의 시초에서 단위 또는 통일성은 무엇인가? 또는 어떠한가? 박홍규의 장점은 어떠한가의 문제거리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철학사에서 이오니아학파의 휠레 또는 자연을 대상화하엿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닐까? 그리고 그는 누스를 기계론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나마 자신의 경험적 탐구는 기계론이 아니라 과정으로서 다루었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이 목적성이라는 것이다. 기계론과 목적론에 대한 벩송의 견해는 곳곳에서 다루지만, 간단히 두 학설은 서로가 대립인 것처럼 시작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심론과 유물론, 합리론과 경험론, 목적론과 기계론은 대상화의 방식에서 차이를 갖지만 그 기능에서는 서로를 의존하는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근원에는 고대철학에서 하늘과 땅의 대비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성에 왔고, 그리고 근대에서는 좁혀서 영혼과 신체를 인식론적으로 다루면서 분석(자르기)를 통해 미분화를 하면서 원자론의 학설에 기댄 것도, 하늘과 땅의 연대성을 이원성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의 아포리아의 미해결은, 전자기학이 도래한 시절에도 여전히 대립을 푸는 방식으로 닮음(유사)와 인접을 통해서 해결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그 해결에 원자를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또 쪼갤 수 있고 또 자를 수 있다는 가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벩송은 이런 이분적 분할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분열에 의한 스토아적 사유를 받아들이면서, 기원에서 누스는 움직이는 무엇이며, 모든 것이 엉켜있으면서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는 통일체로 보는 관점을 다시 불러올린 것이다. 물론 단위의 동질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단위의 이질성이 독사이며, 결함있는 존재, 부족한 존재, 무의 존재, 악의 존재로 보았던 사고방식에 벗어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내재성을 비존재로만 보았던가?
내재성의 철학적 전개는 신화의 탈피에서 나온 이오니아의 탈레스로부터 있어왔다. 이 탈피에서 자연 또는 휠레, 아르케 또는 아이티아를 다루는 것을 철학사로 보는 것이 벩송의 관심이기도 하였다. 박홍규는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신들과 독재자인 참주 또는 동방의 황제제에서 벗어나서 인격이 세울 수 있는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을 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플라톤이 이런 나라를 세우는데 정립해야 할 정의(justice)는, 앎과 행동의 일치를 통한 시민(폴리스인)의 구성으로 보았고, 이런 체계가 없어서 아테네가 멸망했다고 보고 폴리스에 맞는 제도와 법률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플라톤보다 소크라테스의 “이 뭣꼬”에 많은 해설을 했다. 그 “뭣”이 지성의 일반화와 다른 일반화도 있다는 것인데, 그 다른 일반화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벩송은 지성의 개념화와 공감의 일반화를 구별하면서 형상화의 인식과 구체적 실천을 구별하였다. 전자는 형상형이상학이, 후자는 도덕론에서 이어져 온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데아를 지칭할까 또는 이데아를 부리는 행동일까? 벩송에서 부릴 수 있는 이데아는 없다. 신들도, 유일신도 없다. 벩송은 MM에서, 가로축인 평면 P 위에는 무수히 많은 현실화(실현화, 물질화)의 점들이 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만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에서 편안의 추구와 미래 예측이라는 측면에서 현재로부터 미래의 평면들 P’ P” 등등을 나열하면서 개연성에 빠져있다. 그러나 각각의 현재에는 내부의식인 기억의 고깔이 실재하고 있는데도, 과거는 사라지고 없다고들 한다. 내재의식(in-conscience)의 내용이 현재를 실재적이게 한다. 진화론, 화석학, 유전학이 없었던 시절에는 과거는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과거는 살아있는 신체 속에 추억들로서 뿐만 아니라, 기억의 권능으로 현재에서 활동하고 작동하는 실재성이다.
내재하는 의식, 즉 무의식(inconscient)이 실재성이고, 그 실재성은 무한정(무한이 아니라)한 깊이를 내포하고 있고, 그 심층은 추억들처럼 층위가 아니라, 기억의 권능으로 우글거리는 원인성으로서 현재에 닿아 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개연성인데, 무엇이 진정으로 실재성인가? 그 미래를 위해 평면에서 점들을 조합하고 집합하여 사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또는 구축하는 것이 실체라고 하는 것은 환타지[시뮬라크르]라는 것이다. 임시적 조립을 실체라고 부르는 것은 형상형이상학에서 이데아가 실재한다고 하는 선가정을 믿기에(독사), 평면인 세상에서 여러 국가를 갖는 것을 실체라고 하는데, 이는 임시적 주사위 놀이판의 한 경우에 수에 지나지 않는다.
박홍규는 그리스 철학이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벩송이 PM에서 말하듯이 문제를 올바로 제기해야 하며, 그리고 자료들을 다룸에서 정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강의에 강조하였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이전 철학으로 또는 플로티노스로 확장이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 철학계가 그리스 원전을 읽을 수 있는 철학자는 선생님 혼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철학에서 벩송으로 이르는 표면 아래의 철학을 전개하는 과정을 탐구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철학계의 역량이 모자랐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는 고전 철학의 전공이 아니라도 프랑스에서 자료들의 무수히 많아서 내재성의 철학을 추적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독재정치(참주제)가 성행하는 것은 학자가 학문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설탕물이 녹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생명인 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노력, 철학적 탐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56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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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박홍규의 강의록들에서 **
* 데이터.
[요컨대 서양 철학의 주류는 데이터[자료들]에서 출발합니다. .. 우리가 서양 철학에 접근(approach)하는 것은 우선 데이터로서의 서양철학에 접근해 보려는 것입니다. .. 그러니까 독일 철학은 그 나름대로 일단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고, 독일 철학을 어디 영미철학이나 불란서 철학에다 옮겨놓고 이해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희랍철학도 마찬가지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추상적인 어떤 문제를 놓고 얘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또 철학은 데이터 그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느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54-55) - 박홍규, “고별강연(1984)”
* 두 축: 시간과 공간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사물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냐 공간이냐 둘 뿐이에요. 플라톤은 둘 다를 놓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간에서 형상이론(form theory)을 놓았고, 베르그송은 시간에서 정리했습니다. 그 이외는 없어요. (54) - 박홍규, “고별강연(1984)”]
[베르그송은 근대 물리학이니 현대물리학의 특징이 뭐냐 하면, 시간이 독립변수고, 나머지는 종속변수라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형상이 독립변수고 운동은 종속변수야. (333) - 박홍규, “존재의 충족이유률(1992)]
* 자기운동: 동일성과 역동성
[생명의 운동이 <스스로 움직이는(hauton kinoûn)>이라는 말이야.(100), / 플라톤은 운동에 대해서 이 소리 했다 저 소리 했다 그래. 하여튼 영혼(psychê)은 불멸(athanatos)인데, 생명체뿐 아니라 우주의 영혼도 그렇다는 거야. 티마이오스편에 가면 세계영혼이 있고, 그래서 우주가 움직인다고 해. 그 영혼 속에는 이성이 있고 추리력(dianoia)이 있어. 또 법률편에서도 운동 이론이 나오는데 모두 이런 운동이론이야. 물질보다 영혼이 먼저라는 거지. (104) - 박홍규, “자기 운동 I: "파이드로스"편, 245c-246a”(1986)] - [영혼 운동이 정지보다 먼저야]
[시초가 <adiaphthoron(비소멸적)>이라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인데,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움직이고(heauton kinoûn)>, 그때의 <자기자신(heauto)>, 즉 움직이는 것은 형상(eidos)의 <자체성(kath'hauto)>과 같은 것이라는 데에 있어. 바로 그것이 시초고, 비소멸적이며, 비생성적이라는 얘기야. (108) - 박홍규, “자기 운동 I: "파이드로스"편, 245c-246a”(1986)] -[벩송에서는 ‘자기운동(hauton kinoûn)’이 먼저이고 그리고 ‘자기자신(kath'hauto)’이 일반개념으로 다음에 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운동은 실재적이고 자기자신은 상징적이다.]
[그러니까 파이드로스편에 나오는 <자기 운동자(autokinêton)>의 그 <자기(auto)> 속에는 동일한 것(tauton)이란 의미도 있고 즉자적인 것(kath’hauto)이란 의미가 다 들어 있다고 보아야 된다는 거야.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이 플로티노스야. 우주의 기본 중심이 어디 있느냐? 일원론이란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데, 동적으로 우주를 보면 이 우주의 내용이 일자에서 계속해서 흘러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지. 일자에서 형상이 자꾸 내려오느냐, 일자만으로는 형상이 성립할 수 없고, 일자와 제1질료(protê hylê) 사이의 관계 속에서만 형상이 성립하느냐 하는 점만 달라. 플라톤은 형상만 자꾸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방황하는 원인도 파르메니데스 존재론에서 플라톤으로 넘어가는 데 통과해야 할 존재론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관문이야. (274-275) - 박홍규: “방황하는 원인(planômenê aitia)”, 1987.]
[이 관문을 플라톤은 방황하는 원인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matter)라 했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옳으냐고 물으면 플라톤이 옳다고 답해야 되겠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한 경우에, 즉 설득되었다고 할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어째든 중심은 자꾸 일자로 가. 플로티노스는 물에 물을 부으면 그대로 넘쳐나듯이, 또는 불에서 빛이 흘러나오듯이 일자에서 넘쳐흐른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런 것은 전부 유물론적 해석이야. (275) - 박홍규: “방황하는 원인(planômenê aitia)”, 1987.]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혼(psychê)이 아니라 영혼을 가진 사물, 즉 신체(sôma)지. 영혼자체의 불멸성(aei athanaton) 증명은 영혼의 운동이 <스스로 움직인다(autokinêton)> - <autokinêton> 대신에 <aeikinêton(항상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 판본도 있는데 – 는 것에 기반하여 스스로 움직이는 것(autokinêton)이 불사적(athanaton)이라고 나왔었지? (130-131) - 박홍규, “자기 운동 II: 파이드로스, 245c-246a”(1986)
* 이데아: 추상성
[고유명사는 대체가 되지 않아. .. 군대 가면 군번 갖고 통해. 다시 말하면 얼마든지 대체될 수가 있어. .. 가정에서는, 자연인으로서는 구체적인 이 사람, 이 사람이야. 따라다녀. 고향도 따라다니고. (374) .. 군대에서는 자연인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구성은 완전히 다 없어져버려. 군대는 추상적인 인간이야. 추상적인 공간이 나와야 돼. .. 대장이라는 것이 딱 있어서 거기서 명령을 내려. 그걸 우리가 조직[조폭]이라고 해. (374) 박홍규, “희랍철학의 이면”(1992)] - [[예수 이전의 신은 명령과 개입이다. 모세 십계명이 명령이고, 국가의 법이 명령이다.노마드 사상은, 로마제국에 저항한 예수가 자신 내재성(공감)을 드러내는 것이 신의 사랑이라 하듯이, 자신을 공감하는 일반성으로 생성 창조하는 권능의 발현이다. - 일제와 미제에 저항하지 않은 종교인이 조폭의 똘마니로서 악이며 사탄이다. - 이런 논법의 전개는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려했던 스토아 사상이었다. 복음서가 스토아학자들의 알렉산드리아의 코히네 언어로 썻다고들 하는 이유가 있다.]]
* “안다”는 것: 행하는 것이다. - 추상은 언어의 표출방식이다.
[희랍어 <poion esti(그것은 어떠한가)>와 <ti esti(그것은 무엇인가)>는 어떻게 달라? <그것은 어떠한가>라고 묻는 사람은 적어도 문제되는 주제(subject)를 조금은 알고 있어. 그러나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 전혀 모를 때.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모른다, 즉 난관(aporia)의 극한에 빠졌으니까 <그것은 무엇인가>하고 묻는 거야. ... 행동에 있어서 완전히 난관에 봉착했으니까 그런 물음을 던진다는 것을 의미해. 그러니까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결국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모르겠다, 도대체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야. (308-309) - 박홍규, 앎의 개념(1987)]
* 재인식
[지속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지속해? 이 대화편에서는 뭐라고 말해? 그것이 나에게 나타나서(phainetai), 상(phantasia)으로 들어오고, 나의 표상(doxa)이 되어서 다시 재인(anagnôrisis)될 때까지 그대로 있어야 돼. (192) - 박홍규, “인식과 존재: "테아이테토스"편”(1986)
[영혼(psychê)도 자체적인 것(kath’hauto)이 있고, 신체(sôma) 속에 들어가는 것이 있잖아. 신체 속에 들어가는 한에서는 움직이는 측면이 있고, 또 영혼으로서 움직이지 않는 측면도 있어. 그것이 합쳐져서 감각(aisthêsis)이 성립하거든. 그러니까 신체가 무엇이냐는 것도 복잡해. 여기서는 거기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없어. 요컨대 감각이 존재[현존]에 대한 것이었을 때 인식이 되는데, 그 때 절대적인 단일 형상으로서 언제든지 자기 동일성을 갖는 지식은 아니지만, 항상 되풀이 되는(repeat) 부분이 있어. (201) 박홍규, “인식과 존재: "테아이테토스"편”(1986)]
* 난제의 극복
[ [고르기아스 사상도] 갈등 아냐? 하나의 기준(criterium)을 놓으니까 그와 반대되는 기준이 부정적으로 나오더라. 가장 확실한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는 가장 불확실한 허무주의(nihilism)를 낳더라는 거야. (464) ... 허무주의를 넘어서려면 모순율로, 즉 파르메니데스로 다시 돌아가야지. 그게 플라톤이야. 기독교도 모순을 극복하는 사상이지. 거긴 더 심각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의 힘으로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고 할 때, 기독교가 나와.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니까 심각한 거지. (464) - 박홍규, “고르기아스의 비존재 강의후 질문”(1989)]
[그러니까 우리 논의의 요점은 이거야. 기독교[퀴니코스]나 희랍철학[플라톤]이나 난관(aporia)에서 출발했다. 그 난관이 어디서 나왔냐하면 전쟁에서 나왔다. 전쟁에서는 어떤 난관이 나오느냐? 허무주의의 극단이라고 하는 고르기아스(Gorgias, 전487-380??)의 니힐리즘이 나오더라. 플라톤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더라. 플라톤이 어떻게 극복했냐 하면, [한편] 이 다(多)와 운동의 세계가 있는 타자화된 한에 있어서의 존재[현존]의 세계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더라. [다른 한편] 롯은 그리고 타자화되지 않는 존재 그것은 허무와 직접 관계를 맺는데, 그것은 보통 모순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신앙 세계로 가서 극복되더라. 따라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더라. 그것이 곧 학문하고 신앙이더라. 이것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 독자성(autonomy, 자치)이 나오니까 신앙 세계의 독자성도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 얘기야. 예전에는 학문 세계에 독자성이 없어서 혼동[혼란]됐기 때문에 종교가 모든 것을 다해. (166-167, 마지막 문단 전체) -박홍규, “플라톤과 허무주의”(1989)] - [박홍규의 해석은 스콜라적이고, 벩송은 그리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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