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순식간에 지난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하늘이 높아졌다. 바닥에 반사막을 설치한 덕분인지, 양판점 지하 식품매장의 잘 익은 사과가 추석 상을 기다린다. 지방에 따라 올라오는 추석 상차림이 다른 만큼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후손은 당연히 제 고장 농수축산물을 상에 올려야 옳지만 농경사회를 내버린 요즘은 통 여의치 않다. 수입 농산물이 식탁의 80퍼센트를 장악한 요즘, 조상에게 죄스럽게도 추석 상이나마 국내산이면 다행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조상들은 풍성한 수확을 약속하는 황금빛 들판에서 가을을 만끽했을 텐데, 그 말을 뒤집으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한가위 오기 전의 밥상은 언제나 허전했다는 의미로 들리는 까닭이다. 수입 과일도 서슴없이 올라가는 요즘 한가위 상은 전에 없이 풍성하다. 자급률 23퍼센트가 밑도는 마당이니 조상은 제 철 제 고장 이외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받기야 하겠지만, 못내 씁쓸할 듯하다. 그뿐인가. 어쩌면 상차림에 방사능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 인근 5개 현에서 8천 톤의 수산물을 수입한 세상이 아닌가. 우리가 자주 먹는 까나리, 대구, 은어, 붕어, 송어, 명태, 홍어, 농어, 민어, 도다리. 후쿠시마 인근에서 잡은 것으로 보이는 수입 수산물들이다. 민주당 임내현 의원의 요구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출한 ‘후쿠시마현등 8개현 수입수산물 검사 현황’을 분석했더니 미야기 현 수산물은 2011년에 비해 167배 늘어난 1,844톤에 달했다고 한다. 노량진 수산물시장에서 수산물 시식에 앞장선 정부의 태도는 인천 연안부두 어시장을 한산하게 만든 국무총리의 괴담 엄단 선포와 맥을 같이하는데, 우리는 곧 추석 상을 차려야 한다. 일본 수산물 안전하다며 먹은 아나운서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는데, 임내현 의원에게 국회의원에게 보고서를 제출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이수두 과장은 방송에 출연해 “사실 평생 먹어도 인체에 유해가 없다고 해석해도 되기 때문에 기준치 이하는 사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발휘했고, 그 소식이 실린 인터넷 매체는 수많은 댓글을 남겼다. 괴담론의 후폭풍에 놀랐을까?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수산물 수입을 막겠다고 선포했는데, 그 우리 정부를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일본은 이수두 과장에게 표창장을 하사하고 싶을 것 같다. 수산물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인근 농산물도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건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는 수산물 수입만 막았을 뿐 농산물은 규제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핵연료가 들러붙어 있는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는 순환되지 못하고 바다로 스며들어가는데, 냉각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은 지하수를 피하지 않는다. 지하수는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후쿠시마의 지하수를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지역의 농산물은 안전할까. 수산물이나 농산물은 먹기 때문에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 몸 밖에서 날아오는 방사능과 다르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방사능은 극히 일부라도 몸에 들어오면 위험하다. 유럽 국가들은 방사성 물질 허용을 식품 1킬로그램 당 4에서 8베크렐 이하로 규정하는데 우리는 최근 일본 흉내 내며 100베크렐로 낮췄다. 하지만 수산물만 낮췄을 뿐, 농산물과 축산물은 370베크렐을 여전히 고집한다. 농산물의 허용기준치를 핵발전소 폭발 이후 100베크렐 이하로 낮춘 일본이지만, 후쿠시마의 한 농부는 자국 정부를 향해 절규한다. “100베크렐이면 안전하니 당신 자식들에게 주겠는가?” 우리 정부는 그런 질문이 오면 뭐라 답할 수 있을까. 괴담 퍼뜨리는 현행범으로 몰아 즉각 체포하려 들까?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작물을 스스로도 먹고 소비자에게도 판매해왔는데, 그런 수확의 기쁨이란 게 지금은 없다”고 말하는 일본의 농부는 “내 작물에 몇 베크렐이 들었는지 알고 있다. 방사능 양이 100베크렐 이하이면 출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안 먹는다. 하지만 사먹는 사람들은 방사능이 없는 줄 알고 먹는다. 어쩔 거냐? 우린 알고 있다”고 죄의식을 고백하면서 정부를 질책했다. 그 농부는 자신의 농산물이 한국으로 수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까. 일본 후쿠시마 인근의 수산물과 농산물을 수입하는 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직 우리 농산물과 수산물은 안전하지만, 우리 핵발전소가 일본보다 안전하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중국 동해안에서 우리 서해안을 바라보며 이어져 있는 핵발전소가 앞으로 내내 안전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리 황해는 내버리는 오염물질의 확산이 잘 되는 동해와 다르다. 만일 무거운 방사성 물질이 갯벌에 가라앉으면 황해에서 잡는 모든 수산물을 영구히 포기해야 한다. 이번 추석 상은 예전처럼 풍성한데, 언제까지 풍성할 수 있을까. 일본 생선을 마다한 추석 상의 내일이 더욱 걱정이다. 얼마나 오그라들 것인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