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2030년이라 가정해보자.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와 입법기관은 모든 법적인 장애물을 제거하고,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공도를 완전히 자유롭게 돌아다닐 것이다. 물론 도로관리당국도 자율주행차 운행에 필요한 기반시설 완비를 비롯해 모든 임무를 마친 상태.
그렇다면 이 같은 환상적인 세계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도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 개발에 4년이 걸린 F015 럭셔리 인 모션(Luxury in Motion) 콘셉트. 메르세데스-벤츠의 자율주행차 비전이다. 미래의 S클래스는 직업적인 운전기사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장기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차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콘셉트다. 파워트레인을 비롯해 구조상의 신기술을 받아들인 혁신적 디자인이다. 무엇보다 운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내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완전히 바꿨다. 올해 초 메르세데스 총수 디터 제체가 F015 공개행사에서 직접 말한 그대로다. "오직 기술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이 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의 한계를 넘어선다.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한다."
F015는 올 초부터 여러 모터쇼를 두루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나는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입은 이 차를 직접 타보는 걸 피해왔지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모터쇼를 빠져나온 F015와 처음으로 마주쳤다. 우선 독특한 모양이 큰 충격을 줬다. 정말로 미래에서 온 자동차다웠다.
크기는 현재의 S클래스 롱 휠베이스(LWB)보다 약간 짧으나 조금 더 넓고 높다. 그리고 가장 뚜렷한 차이는 프러포션에 있다. F015는 S클래스의 3박스 실루엣과는 달리 큼직한 유선형 원 박스 형태다. 누에고치 같은 드라이버즈카가 아니라 응접실과 같은 실내를 마련했다.
F015가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된 까닭은 보닛 아래 재래식 엔진이 없기 때문이다(수소-전기 파워트레인을 쓸 전망이다. 하지만 워킹 프로토타입인 이 콘셉트는 배터리만으로 달린다). 따라서 오버행이 아주 짧고 뒤 윈드실드는 거의 90로 일어섰다. 더불어 3,610mm 휠베이스 덕분에 실내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실제로 S클래스 LWB보다 445mm나 더 길다.
실제로 메르세데스임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은 그릴에 달린 엠블럼뿐이다. 이로써 철저하게 변신한 콘셉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외부 디자인 언어나 파워트레인 기술이 아니라 실내다. 자율주행차의 이론적인 바탕은 운전자에게 시간을 되돌려주려는 데 있다. 따라서 미래의 S클래스인 F015는 시장의 정상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직접 운전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큰 덕목으로 꼽히는 차급이기 때문이다.
처음 실내에 들어가면, 익숙한 공간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은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레이아웃과 소재가 너무나 다르고, 운전에 필요한 장비가 눈에 띄지 않는다. 기존 모델에 자율주행 기술을 담은 게 아니라 자율주행차다운 실내를 완전히 새롭게 꾸몄다.
4도어 F015에는 기존의 B필러가 없다. 따라서 앞 도어와 힌지가 뒤에 달린 뒤 도어를 통해 호화로운 실내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처럼 여유 있는 공간에 좌석은 4개밖에 없다. 물론 이 차는 MPV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편안히 실내로 들어가려면 좌석을 30 가량 돌린다. 게다가 실내의 좌석배열을 2가지로 맞출 수 있다. 2인 2열로 하거나 앞좌석을 뒤로 돌려 앞뒤 좌석을 마주보게 할 수도 있다.
실내 소재의 선택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고급 목재와 가죽, 금속이 흐르는 듯한 공간에 빈틈없이 어우러졌고 6개의 첨단 터치스크린이 실내를 장식했다. 그중 하나는 앞쪽에 자리 잡아 손짓과 몸짓으로 조작하는 대시보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뒷벽에, 나머지 4개는 도어에 달려 있다. 이들 스크린은 승객이 개별적으로 인포테인먼트에서 차량 속도에 이르기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물론 TV 스포츠 중계 같은 영상도 스크린에 띄울 수 있고, 360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서로 마주보는 좌석배치에는 생각보다 쉽게 적응된다. 일단 도어를 닫으면 안전벨트가 채워지고, 차가 움직인다. 모두가 아주 자연스럽다. 운전대를 잡지 않은 채 차를 타고 가면서 속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일에 열중할 수 있다니 어리둥절했다. 교통체증에도 눈길을 돌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남아도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수 있는 장비와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 실려 다니기에 지치면 F015를 직접 운전할 수도 있다. 운전석을 앞으로 돌리면 대시보드에 달린 스티어링과, 바닥에 있는 페달이 나타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율주행 기술을 적극 추진하지만 사람의 운전 능력을 절대로 빼앗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운전하기에 좋은 차를 만들 것이다. 구글과는 뚜렷이 대조를 이루는 접근방식이다. 구글의 경우 몰골이 빈약한 자율주행 콘셉트에서 운전자와 조종 장비를 몽땅 빼버렸다.
F015의 운전대를 잡으면 그릴에 달린 LED 램프가 백색으로 빛나며 사람이 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자율주행 운전으로 바뀌면 램프가 푸른색으로 변하고, 여러가지 영리한 기능을 자랑한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도로에 들어서는 보행자를 만났을 때. 보행자를 만나면 일단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는가를 확인한 뒤, 도로에 횡단보도와 같은 얼룩무늬를 그려준다. 그리고 외부 스피커를 통해 "건너가세요"라고 안내한다.
F015는 진정한 의미의 콘셉트 카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세상을 위해 설계했다. 아마도 F015의 가장 큰 역할은 미래의 자율주행차를 둘러싼 기술과 디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자율주행차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걸었다.
과연 F015가 자동차의 미래일까? 궁극적으로 미래의 차가 F015와 같든 말든 그 일부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메르세데스는 직접 운전모드와 자율주행 모드를 다 같이 경험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진보와 다양한 선택이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
■ 메르세데스의 자율주행 기술에 대비할 6단계
메르세데스-벤츠 기술진은 앞으로 자율주행차 실용화에 대비한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미래의 도로에 자율주행차가 널리 보급되기에 앞서 6개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첫째, 기술 그 자체를 빨리 개발해야 한다. 현재 자율주행차는 악천후나 야간에 마음대로 다니기가 힘들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을 한층 잘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책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져야 할까? 셋째, 소비자들이 자율주행 기술을 받아들이고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넷째, 승객을 태우고 다니면서 수집한 데이터의 비밀을 보호하는 문제가 있다. 세계 각국의 비밀보호법이 너무나 다양하여 까다로운 문제가 나올 수 있다.
그밖에도 도로를 개선해야 하고, 각국의 도로신호와 표지를 통일해야 한다. 한편 노면의 품질도 면밀해 살펴야 한다. 끝으로 교통관련법을 운전자의 행동변화에 맞춰 고쳐야 한다. 스티어링을 잡지 않거나 심지어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도 몰고 가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