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백산 국립공원 초입 다리안국민관광지에 세워진 추모비

위 추모비의 뒷면에 새겨진 추모시 '고산자 김정호'(시인 남궁 호 작)
고산자 김정호
그이가 찍은 지도의 한 점은 이 민족의 한방울 눈물이었고
그이가 그은 한줄은 우리겨레의 핏줄이었다
그이가 표시한 산은 그의 심장이요 한줄기 내는 동맥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산천 이곳이 우뚝하고 저곳이 후미진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뭇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이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세상이 그를 비웃어도 그이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나니
흰 두루(백두)의 봉우리가 탐라의 내외오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아
이제 그이가 입었던 누더기와 굶주림과 흔들림 없는 곧은 마음을
그대들에게 되돌리니 폐허의 세상에 새싹을 틔우시라
여기 눈빛 맑은 이들이 뜻을 모아 비를 세우고
온몸으로 조국의 산천을 쓸어안고 스러져간
고귀한 정신과 마주하노라.
위 추모비 뒷면의 시를 새삼 옮겨봤어요
봄나들이 하듯 대종회 홈페이지에 들러 여기저기 기웃대다
청도김문 {유적 란에{ 고산자 김정호 선조 님에 대한 정보가 있어
둘러봤는데 추모비 비문의 시가 마음에 확 들어오더군요.
하여, 대종회에 전화로 허락을 얻어 일부나마 여기 업어왔답니다.
봄은 오래 전에 당도했다 건만 꽃샘추위에 속절없이 움츠러들었던 심신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심기일전 하는 계기가 된 듯하여 마냥 좋습니다.
그를 기리는 기념비(1. 부산/국방부 측지부대 건립)
(2. 예전에 살았던 '약현'으로 추정되는 서울 서소문공원 앞 로터리/1991. 4. 30.),
흉상(경북 문경/측량박물관/2006. 10. 6. 세움),
동상(경기 수원/국토지리정보원/1987년 11월 건립)
그 외, 고산자로(路), 고산자교(橋),
그리고 우리나라 천문연구진이 1992년 새로 발견한 소행성에 '위인' 김정호 의 이름을
국제천문연맹의 승인을 받아 등재했다는군요(1991년 발견한 소행성엔 *실학자 '홍대용'으로 명명)
대종회 홈피 방문하시면 위 유적들에 대한 관련 기사, 사진 등 더 많은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추모 비문의 시도 좋지만 구름(청운)이 주목한 것은
위 추모비 건립의 주체가 서울 청량리 일대 지역경제인들의 친목을 위해
구성된 '청량산악회' 즉 일반 국민(민간인)이라는 점입니다.
더하여 청도김문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듯한 단체가 주축이 되어
고산자 선생의 험난했던 여정과 고단한 삶을 헤아려 그 외로운 넋을 위로하고
'숭고한 국토사랑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십시일반 성금을 거둬 마련한 기금으로
추모비를 건립했다는 사실에 감명받음은 물론 일변 고무?되기까지 했습니다만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숨길 순 없겠네요^^;
1996년~1998년 당시 청량산악회 부회장 박동안 씨를 필두로 소백산 비로봉 정상에
추모비 건립을 적극 추진했지만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혀 소백산 국립공원 진입 관문의
'다리안국민관광지'(충북 단양군, 읍, 천동리 380-1번지 일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꿈(비로봉 정상에 추모비를 올리는 일)을 이룰 것이라고,
(분단으로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아마 백두산 천지 부터 시작했을 듯..?)
또 전국 각 도의 명산마다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1道1碑/1998.1.19.자 경향신문 기사)이라고
한 것까지 봤는데 이후의 소식(추이 등)은 알 수가 없어 궁금하지만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이어서 여기에 소개할 날도 머잖아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 실학자 홍대용 - 조선 영정조 시대의 실학자/ 남양인 호는 담헌/ 과학자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 자명종 등을 만듦
'열하일기'(홍대용의 '燕記'-북경방문기 이후에 쓴)의 연암 박지원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첫댓글 한번 보러 가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