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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서문
태종문황제제(太宗文皇帝製) 御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통합뷰어
황태자신치술성기(皇太子臣治述聖記)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가 중국의 중심에 흐르는 팔천(八川)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 : 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 : 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 : 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법상(法相)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달・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 : 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