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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3권
15. 심생멸의 인연, 의와 의식
15.1. 개관
이 아래는 두 번째 그 인연(심생멸의 인연)을 풀이한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생멸이 인연에 의하는 뜻을 밝혔고,
나중은 소의所依인 인연의 체상을 밝혔다.
처음 가운데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논]
다음 생멸인연이라는 것은 이른바 중생이 마음에 의하여 의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다.
[소]
처음 가운데 “인연”이라고 말한 것은 알라야식의 심체가 모든 법을 변작變作하는 것이니 이것이 생멸인이고,
근본무명이 심체를 훈습하여 움직이게 하니 이것이 생멸연이다.
또한 무명주지는 모든 염법의 근본으로 모든 생멸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육진의 경계는 칠식의 물결의 생멸을 요동시키니, 이것이 생멸연이며,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하여 인연을 나타낸다.
모든 생멸의 상이 모여서 생기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체가 없고 오직 심체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에 의하여”라고 말하였으니,
곧 알라야의 자상심自相心이다.
능의能依인 중생은 의와 의식이니 그렇기 때문에 “의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소]
이 아래는 각각 풀이한 것이다.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마음에 의하여”라는 것을 풀이하였고,
다음은 “의가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하였고,
나중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하였다.
15.2. 마음에 의하여, 알라야식
[논]
이 뜻이 무엇인가?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
[소]
처음 가운데 “알라야식”이라고 말한 것은 위에서 말한 “마음”이니 곧 생멸의 인因이고,
“무명이 있다”고 한 것은 (이 무명이) 알라야식에 있는 것이니 곧 생멸의 연이다.
이 인연에 의하여 의와 의식이 전변함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라고 한 것이다.
위의 총괄하여 나타낸 것 가운데서는 간략히 그 인을 나타냈기 때문에 다만 ‘마음에 의하여’라고 말하였고,
여기의 각각 해석한 가운데서는 인연을 갖추어 나타냈기 때문에 또한 알라야식과 그 안에 있는 무명에 의한다고 말한 것이다.
[별기]
무명주지는 칠식이 포섭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저것(칠식)에 의하여 훈습되는 종자도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논]
불각하여 일어나서 볼 수 있고 나타낼 수 있으며 경계를 취할 수 있어서, 망념을 일으켜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의意’라고 말하였다.
이 의는 다시 다섯 가지의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업식이라고 이름하니, 무명의 힘으로 불각하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니, 이를 말한 것이다.
둘째는 전식이라고 이름하니, 움직여진 마음에 의하여 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현식이라고 이름하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를 나타냄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현식도 그러하여 그 오진五塵을 따라서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 앞뒤가 없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식智識이라고 이름하니, 염법과 정법을 분별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상속식이라고 이름하니, 망념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량없는 기간의 선악의 업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또 현재와 미래의 고락 등의 과보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에 현재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三界는 거짓된 것이요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마음을 여의면 육진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일체법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잘못 생각하여 생긴 것이어서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自心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 얻을 만한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세간의 모든 경계는 다 중생의 무명망심에 의하여 머물러 있게 되니, 그러므로 일체법은 거울 가운데의 형상과 같아서 얻을 만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15.3. 의가 전변하기 때문
[소]
다음은 의意가 전변함을 설명한 것이다.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의가 전변함을 간략히 밝혔고,
둘째는 전변하는 상을 자세히 나타냈고,
셋째는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지었다.
15.3.1. 의가 전변함
처음 가운데에는 곧 다섯 가지 식의 상을 밝혔다.
1) 업식
“불각하여 일어나서”라는 것은 소의所依인 심체가 무명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니, 곧 이것은 업식이다.
2) 전식
“볼 수 있고”라고 말한 것은 곧 저 심체가 차츰 능견을 이루는 것이니 이는 전식이다.
3) 현식
“나타낼 수 있으며”라고 말한 것은 곧 저 심체가 다시 능현을 이룬 것이니 곧 현식이다.
4) 지식
“경계를 취할 수 있어서”라는 것은 현식이 나타낸 경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지식이다.
5) 상속식
“망념을 일으켜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라는 것은 취한 바의 경계에 대하여 모든 추념麤念을 일으키니 이것은 상속식이다.
이 다섯 가지의 뜻이 차례로 전성轉成함에 의하여 모든 경계에 대하여 의식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를 의意라고 말한 것이다.
[별기]
이 가운데 다섯 번째(상속식)는 오히려 의식이지만 뒤의 것(의식)을 낸다는 뜻에 의하여 의意 가운데 함께 넣어 포함시켰다.
15.3.2. 전변하는 상을 자세히 나타냄
[소]
“이 의는” 이하는 둘째로 자세히 밝힌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각각 해석한 가운데,
“무명의 힘으로”라고 말한 것은 소의所依인 연緣을 든 것이고,
“불각하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니”라는 것은 업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일어나 움직인다(起動)’는 뜻이 업의 뜻이기 때문이다.
전식 가운데 “움직여진 마음에 의하여 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앞의 업식이 움직임에 의하여 능견의 상을 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식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만약 무명에 의해 움직여져서 능견을 전성한다는 뜻에 의한다면, 이는 본식에 있는 것이고,
만일 경계에 의하여 움직여져서 능견을 전성하는 것이라면 이는 칠식을 이르는 것이니, 이 가운데 전상은 처음의 뜻에 의한 것이다.
[별기]
또한 어떤 곳에서는 모든 이런 능견을 통틀어 전식이라고 이름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곧 팔식에 상통하는 것이다.
[소]
현식 가운데에 “일체의 경계를 나타냄”이라고 말한 것은 앞의 전식의 견見에 의하여 다시 능현能現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니,
윗글에서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현식은 전식에 의하지만 능견의 작용이 곧 능현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러므로 앞에서 “볼 수 있고 나타낼 수 있으며”라고 말한 것이다.
다음은 실례이고, 나중은 적용한 것이다.
적용한 가운데 “오진五塵”이라고 말한 것은 우선 거칠게 나타나는 것을 들어서 물체의 형상에 적용하였으나 실제로 논한다면 일체의 경계를 통틀어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제6ㆍ7식이 어떤 때에는 끊어지고 멸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 글로써 증명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모두 본식 내의 다른 작용임을 알아야 한다.
[별기]
세 번째 현상現相은 위의 세 가지 상 가운데 경계상과 같으니, 다만 이 가운데서는 전식을 여의면 따로 경계상이 없음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능현을 들어서 나타난 경계를 밝힌 것이다.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은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의 식이 있고, 자세히 말하면 여덟 가지 상이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진식眞識, 현식現識 및 분별사식分別事識을 말함이니,
예를 들면 밝은 거울이 모든 물체의 형상을 간직하는 것과 같아서 현식이 (대상을) 나타내는 바도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이 글(『기신론』) 가운데 ‘현現’의 뜻을 말하기를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현식은 반드시 제8식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업식 등이 이것(현식)과 더불어 본식이 되어 그 상이 더욱 미세하니, 어떻게 억지로 가져다가 제7식 가운데 두는 것이 옳겠는가?
“그 오진을 따라서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라고 말한 것은 오진을 따라 일어난 상이 모두 능견을 여의지 아니하여,
오직 능견의 거울 가운데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라고 말한 것이니,
실제로 말한다면 법진法塵도 나타내지만 우선 거칠게 나타내는 것을 잡아서 간략히 들었을 따름이다.
[문]
이 식(현식)의 경계의 범위는 어떠한가?
이 『기신론』에서는 다만 오진을 말했지만,
『능가경』에서는,
“알라야식이 그가 나타낸 경계인 자기의 신체와 경험의 대상(資生)과 기세간器世間 등을 분별함에 있어 일시에 아는 것이지 전후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유가사지론』에서는,
“알라야식은 두 가지의 반연하는 경계에 의하여 전변한다.
첫째는 내집수內執受를 분별함에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변계소집의 자성을 잘못 집착하는 습기習氣와 모든 색근과 근이 의지하는 처소(몸)를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유색계有色界의 경우에 대해서이고, 만약 무색계라면 오직 습기집수習氣執受의 요별了別만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외무분별기상外無分別器相을 요별함에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내집수內執受를 반연하는 알라야식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때에 있어서 끊어지는 일이 없는 기세간상器世間相을 분별할 수 있음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등잔의 불꽃이 일어날 때 안으로는 기름심지를 잡고, 밖으로는 빛을 발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알라야식이 내집수경內執受境을 반연하고 외기상外器相을 반연하여 생기는 도리도 역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중변분별론』에서는,
“이 식이 취하는 네 가지 경계는 진塵과 근根과 아我와 식識을 말하니, (이 네 가지가) 포섭하는 것은 실로 체상이 없다.
소취所取(진ㆍ근ㆍ아ㆍ식)가 이미 없다면 능취能取인 난식亂識도 또한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만약 『중변분별론』과 『능가경』에 의한다면 습기習氣 등은 이 식의 경계가 아닐 것이고,
만약 『유가사지론』에 의한다면 성진聲塵과 일곱 가지 식 등은 이 식의 반연하는 바가 아닐 것이며,
이 『기신론』의 설명에 의한다면 근과 식 등을 나타내는 것은 또한 이 식이 나타내는 경계가 아니다.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니 어떻게 화합시킬 수 있겠는가?
[답]
이것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니 어째서인가?
오직 이와 같은 법만을 반연한다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나머지 법은 경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비록 서로 어긋나는 것은 없더라도 같지 아니한 것은 있으니, 같지 아니한 뜻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답]
같지 아니한 뜻에는 각각 도리가 있다.
『중변분별론』 같은 데서는 현기現起한 모든 법은 다 본식이 나타낸 것이어서 식을 여읜 밖에 다시 따로 법이 없음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오직 현행現行하는 모든 법만을 말하였고,
습기 종자種子는 그 상이 나타나지 아니하나 식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아니하였다.
『유가사지론』 등에서는 모든 상이 견見을 여의고서는 스스로 상속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심과 심법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상속하는 법이 이 식에 의하여 요별됨을 말하였고,
모든 심과 심법은 진塵을 여의고서는 성립되지 아니하니 이는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모든 나머지 논에서의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은 뜻은 이를 준거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한쪽에 치우쳐 집착하여 두루 통하는 법의 말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소]
네 번째 “지식”은 제7식이요 위의 육상六相 중 처음의 지상智相이니,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과보를 염정법이라 이름하니, 저 법(염정법)을 분별하여 아와 아소라고 계탁하기 때문에 “염법과 정법을 분별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섯째 “상속식”은 곧 의식意識이니, 위의 여섯 가지 상 중에 상속상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망념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법집法執이 상응하여 오래 상속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는 (의식) 자체가 끊어지지 아니함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한 것이고,
“간직하여(住持)” 이하는 그 공능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하였다.
이 식이 애취번뇌愛取煩惱를 일으키므로 과거에 무명에서 일으킨 모든 행위를 인지引持하여 미래의 과보가 있도록 감당케 하기 때문에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라고 말한 것이고,
또한 윤생번뇌潤生煩惱를 일으켜 업의 과보가 계속 생겨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삼세의 인과가 유전하여 끊어지지 아니함은 그 공능이 의식에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상속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다음에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식의 작용의 거칠게 나타나는 분별이 지식의 미세한 분별과 같지 아니함을 나타낸 것이니,
이 식은 오직 의식에 있으며 위에서 말한 상속심相續心과는 같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15.3.3.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 맺어 밝힘
“그러므로” 아래는 세 번째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 맺어 밝혔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간략히 말한 것이고,
나중은 자세히 말한 것이다.
처음에 ‘그러므로’라고 말한 것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식 등이 마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런 뜻에 의하므로 삼계의 모든 법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이는 『십지경十地經』에서,
“불자야! 삼계는 다만 일심이 지은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이하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모든 법이 없지 않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고,
나중은 모든 법이 있지 않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나타냈다.
처음 가운데에 “일체법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잘못 생각하여 생긴 것이어서”라고 말한 것은 모든 법이 현현함이 없지 않음을 밝힌 것이고,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 얻을 만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있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몸과 경험의 대상과 기세간(住持)이 마치 꿈 가운데 살아 있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두 가지의 마음이 있을 것이나 마음은 두 가지의 상이 없다.
이는 마치 칼이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손가락도 스스로를 가리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것 같은 것도 그 일이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한 것과 같다.
해석해 보면, 만약 꿈에서 보는 모든 일처럼 이와 같은 소견所見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능견과 소견의 두 가지 상이 있을 것이나, 그 꿈에서는 실로 두 가지 법이 없다.
삼계의 모든 마음은 다 이 꿈과 같으니 마음을 떠난 밖에는 분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하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이 칼이나 손가락 등이 스스로 자르거나 가리키지 못함과 같기 때문에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이미 볼 만한 대상이 없으며 또한 스스로 볼 수도 없으니, 소견所見이 없기 때문에 능견能見도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능ㆍ소의 두 가지 상이 모두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을 만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질문한 것을 풀이하여 새것(『십권능가경』)과 옛것(『십지경』)을 회통시킨 것은 『별기』 가운데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별기]
이는 저 (『십권능가경』에서) 게송으로 말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며,
분별(분별성)과 분별한 일(의타성)과
오법五法과 이심(능취ㆍ소취)은
적정하여 이와 같은 것이 없다.
[문]
『집량론集量論』에서 “모든 심과 심법은 다 자체를 증득하니, 이를 현량現量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찍이 보지 못한 경우에는 마땅히 억념憶念(기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
여기 『십권능가경』에서는 ‘스스로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회통하겠는가?
[답]
여기에는 같지 않은 뜻이 있어서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니, 어째서인가?
이 『능가경』과 『기신론』의 뜻은 견분見分과 별도로 따로 상분相分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 것으로 상분의 나타남이 볼 바가 없어서 또한 (상분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곧 이 견분이 도리어 견분을 보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며,
(견분이) 밖을 향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과 손가락으로써 긍정적 실례(同法喩)를 삼은 것이다.
『집량론』의 뜻은 비록 그 견분이 스스로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자증분의 작용이 있어서 견분의 체를 증명할 수 있으니, 그 작용에 다름이 있기 때문이며 (견분이) 안을 향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과 불꽃으로 긍정적 실례를 삼은 것이니,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또한 이 『능가경』과 『기신론』 가운데에는 실상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있지 않음(非有)의 뜻에 나아가 스스로를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이고,
『집량론』의 저자는 가명假名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없지 않음(非無)의 뜻에 의하여 스스로 증명함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가명은 실상을 움직이지 못하고 실상은 가명을 깨뜨리지 아니한다. 깨뜨리지 않고 움직이게 하지 않으니 어찌 서로 어긋남이 있겠는가?
이 가운데에는 견분을 떠나서는 상분이 없기 때문에 견분은 상분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였으나,
다른 곳에서는 상분은 견분이 아니기 때문에 견분은 상분을 볼 수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앞서와 같이 역시 서로 깨뜨리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말하기를 가유假有를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상분도 있고 견분도 있다고 하였고,
가무假無를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상분도 없고 견분도 없다고 말하였다.
가유는 (참)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를 움직이지 않고,
가무는 (참)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유를 깨뜨리지 않는다.
유를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의연히 있는 것이요,
무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의연히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인연의 도리가 고요하여 의거하는 것이 없으며 환하여 막힘이 없으니, 어찌 어긋나는 논쟁을 그 사이에 용납하겠는가?
[소]
“알아야 한다.” 이하는 다음으로 있지 않으나 없지도 않다(非有而不無)는 뜻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세간의 모든 경계는……, 얻을 만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있지 않음(非有)을 밝힌 것이고,
다음에 “왜냐하면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이하는 그 없지 않음(非無)을 밝힌 것이다.
무명의 힘에 의하여 불각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내지 일체의 경계 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무명의 마음(불각심)이 없어진다면 경계가 따라서 없어져 모든 분별식이 다 없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찰나를 가지고 생멸을 밝힌 것이 아니다.
의意를 자세히 해석함을 마친다.
15.4.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
[논]
다음에 의식이라고 말한 것은 곧 이 상속식이 모든 범부의 집착함이 점점 깊어짐에 의하여 아와 아소를 계탁하여 여러 가지 망집妄執으로 일에 따라 반연하여 육진六塵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한 분리식分離識이라고도 이름하고 다시 분별사식(사물을 분별하는 식)이라고도 이름하니, 이 식이 견애번뇌見愛煩惱의 증장되는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
[소]
다음은 의식을 해석하였다.
의식은 곧 앞에서의 상속식이니,
다만 법집분별로 상응하여 뒤의 것을 낸다는 뜻에 의한다면 의意라고 말하고,
그것이 견애번뇌見愛煩惱를 일으켜서 앞의 것에 따라 생긴다는 뜻에 의한다면 의식意識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의식이라고 말한 것은 곧 이 상속식이……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한다.”고 한 것이다.
이 『기신론』은 그 하나의 의식의 뜻에 의하기 때문에 안식眼識 등의 오식五識을 따로 내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의식이 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분리식이라고도 이름하고”라는 것은 육근에 의하여 각각 육진을 취하는 것이니,
말나(제7식)가 각각의 근에 의하지 않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분리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 과거와 미래, 안과 밖의 여러 가지 사상事相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분별사식이라고도 이름하니”라고 하였다.
“견애번뇌의 증장되는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분별사식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왜냐하면 견수번뇌見修煩惱가 증장됨에 의하여 여러 가지의 일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육상六相 내의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이 이 의식 중에 서로 좇아 들어가 포함된다.
위에서부터 생멸이 인연에 의한다는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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