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입능가경 제4권
3. 무상품(無常品) ①[1]
그때 부처님께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마땅히 너를 위하여 의성신의 차별한 모양[意成身差別相]을 설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서 그것을 잘 생각하고 기억하라.”
대혜가 “예” 하고 대답하였다.
[의상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의성신에 세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삼매의 즐거움에 든 의성신(意成身),
법의 자성을 깨달은 의성신,
종류와 함께 행하며 짓는 행이 없는 의성신이다.
모든 수행자는 초지(初地)에 들어서 점차 깨달음을 얻는다.
대혜여, 어떤 것이 삼매의 즐거움에 든 의성신인가?
말하자면 3ㆍ4ㆍ5지(地)에서 삼매에 들어 갖가지 마음을 떠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고, 마음의 바다에 전식(轉識:八識 외의 모든 식)의 파랑을 일으키지 않고, 경계는 마음이 나타난 것이므로 모두 있는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삼매의 즐거움에 들어간 의성신이라 한다.
어떤 것이 법의 자성을 깨닫는 의성신인가?
8지(地) 가운데서 법이 환과 같아 모두 모양이 없음을 깨달아 마음이 의지하는 바를 바꾸어 환과 같은 선정[如幻定]과 다른 삼매에 머물러 능히 한량없는 자재한 신통을 나타낸다.
마치 꽃이 활짝 핀 것과 같고, 빠르기가 뜻과 같고,
환과 같고, 꿈과 같고, 그림과 같고, 비추는 모양 같으며,
4대(大)로 지은 것은 아니지만 4대로 지은 것과 비슷하며,
일체 색상(色相)을 구족하게 장엄하고 널리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 모든 법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법의 자성을 깨치는 의성신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종류와 함께 생하는, 짓는 행이 없는 의성신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모든 부처님께서 스스로 깨달으신 법상을 통달하면 이것을 종류와 함께 생하는, 짓는 행이 없는 의성신이라고 한다.
대혜여, 세 가지 몸의 모양(의성신)을 반드시 부지런히 관찰하여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의 대승은 승(乘)이 아니고
소리도 아니요 글자도 아니다.
제(諦:四諦)도 아니요 해탈도 아니요
또한 무상의 경계[無相竟]도 아니니라.
그러나 대승[摩訶衍]을 타면
삼마제에 자재하고
갖가지 의성신으로
자재(自在)의 꽃 장엄하리라.
[5무간업]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심과 같이 5무간업(無間業)은 어떤 것이 다섯이며,
만약 사람이 지으면 아비(阿鼻)지옥에 떨어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대혜가 “예” 하고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5무간이란 말하면 어머니를 죽이고[殺母], 아버지를 죽이고[殺父], 아라한을 죽이고[殺阿羅漢], 화합승을 깨트리고[破和合僧], 악역(惡逆:극악무도함)의 마음을 품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다.
대혜여, 어떤 것이 중생의 어머니인가?
말하자면 중생을 사랑으로 이끌어 탐하여 기뻐함과 함께 함이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듯이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아버지인가?
무명(無明)이 6처(處)의 취락(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 중에 태어나게 하므로 두 근본을 끊음을 말하여 부모를 죽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아라한을 죽인다 하는가?
수면(隨眠:번뇌)을 원수로 삼아 쥐의 독[鼠毒]이 발한 것과 같이하여 끝내 그것을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라한을 죽인다고 이름한다.
어떤 것을 화합승(和合僧)을 깨뜨린다고 하는가?
모든 온(蘊)은 다른 모양이 화합하면 모인 것으로 끝내는 끊는 것을 화합승을 깨뜨린다고 한다.
어떤 것을 악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 피를 낸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8식(識)의 몸이 허망하게 생각을 내어 자기 마음 밖에 자상(自相)과 공상(公相)이 있는 것으로 본다. 삼해탈(三解脫)의 무루(無漏) 악심(惡心)으로 끝내는 팔식신 부처[八識身佛]를 끊는 것을 악한 마음으로 부처님 몸에 피를 낸다고 이름한다.
대혜여, 이것이 안[內]의 5무간(無間)이다.
만약 이것을 짓는 이[作者]가 있다면 무간은 곧 현재 진실한 법을 깨닫는다.
또한 대혜여, 지금 너를 위하여 밖[外]의 무간을 설하여 나와 다른 보살이 이 뜻을 듣고 미래 세상에 의혹을 내지 않게 하리라.
어떤 것이 밖의 5무간인가?
말하자면 다른 가르침 가운데 설한 무간인데, 만일 그것을 짓는 이가 있다면 3해탈을 능히 직접 증득[現證]하지 못한다.
오직 여래와 모든 큰 보살과 큰 성문이 그 무간업을 짓는 자를 보고 권하고 발하여 그 중생들의 허물을 고치게 하고자 하니,
신통력으로 그 일(무간업)을 똑같이 보여 이윽고 곧 뉘우쳐 없애어 해탈을 증득케 하는 것은 제외한다.
이것은 모두 화현(化現)함이요 진실로 지은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실로 무간업을 만드는 이가 있다면 끝내 현재의 몸으로 해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기 마음에 나타난 몸과 재물[資]과 머무는 곳을 깨달아 나와 내 것을 분별하여 집착하는 견해를 떠나거나 혹은 미래 세상에 다른 곳에서 생(生)을 받아 선지식을 만나 분별하는 허물을 떠나 비로소 해탈을 증득하는 것은 제외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탐애를 어머니라 하고
무명은 곧 아버지라 하며,
식(識)은 경계를 깨달으니
이를 곧 부처라 이름하느니라.
번뇌[隨眠]는 아라한,
온(蘊)의 모임은 화합승,
저 남김없이 무간업 끊음을
무간업이라 하느니라.
[부처님의 체성]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저희를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체성(體性)을 말씀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2무아(無我)를 깨닫고 두 가지 장애[障]를 없애고, 두 가지 죽음을 떠나 두 번뇌를 끊으면, 이것이 부처님의 체성이다.
대혜여, 성문과 연각이 이 법을 덜고 나면 또한 이름하여 부처님이라 하나니 나는 이러한 뜻으로서 다만 1승을 설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을 설하셨다.
2무아(無我)를 잘 알고
두 가지 장애 두 가지 번뇌와
부사의한 죽음 없애면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네 가지 평등한 비밀의 뜻]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어떠한 비밀의 뜻으로 대중 가운데서 말씀하여 외치시기를,
‘나는 과거 일체 모든 부처님이다’고 하시며,
또 백천(百千)의 본생(전생)의 일을 설하시며,
‘나는 그때 정생왕(頂生王)ㆍ큰 코끼리ㆍ앵무ㆍ월광(月光)ㆍ묘안(妙眼) 등 이와 같은 몸이 되었다’고 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여래ㆍ응(應)ㆍ정등각께서 네 가지 평등한 비밀의 뜻에 의지하는 까닭에 대중 가운데서 말하기를,
‘나는 옛날에 구류손불(拘留孫佛)ㆍ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ㆍ가섭불(迦葉佛)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글자의 평등ㆍ말의 평등ㆍ몸의 평등ㆍ법의 평등이다.
어떤 것이 글자의 평등인가?
나를 부처라 이름하고 일체 여래도 또한 부처라 이름한다.
부처님의 이름이 차별이 없으니 이것을 글자가 평등하다고 한다.
어떤 것이 말의 평등인가?
나는 64가지 범(梵)음성의 말을 하고, 일체 여래도 또한 이 같은 말을 한다.
가릉빈가(迦陵頻伽) 범음성(梵音聲)의 성품을 더하지도 아니하고 덜하지도 아니하여 차별이 없나니, 이것을 말의 평등이라 이름한다.
어떤 것을 몸의 평등이라 하는가?
나와 모든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색상(色相)과 수형호(隨形好:相好)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나,
여러 중생을 조복(調伏) 시키기 위하여 수류신(隨類身:중생 따라 나누는 몸)을 나타내는 몸은 제외한다.
이것을 몸의 평등이라 한다.
어떤 것이 법의 평등인가?
나와 모든 부처님은 모두 다 같이 37가지의 보리분법(菩提分法:37조도품)을 증득하였나니 이것을 법의 평등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여래ㆍ응ㆍ정등각께서 대중 가운데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가섭ㆍ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이 나라고 한 것은
네 가지 평등함에 의한 까닭에
모든 불자 위하여 설하노라.
[부처님의 설법, 두 가지 비밀법]
그때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느 날 밤에 최정각(最正覺:覺)을 이루고 나아가 어느 날 밤에 마땅히 열반에 들며 그 중간에 한 자도 설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이미 설하지 아니하였고, 앞으로도 설하지 아니할 것이니,
설하지 아니하는 것이 부처님의 설법이다’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어떤 비밀한 뜻에 의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두 가지 비밀법에 의하는 까닭에 이와 같이 설하였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법인가?
스스로 깨닫는 법[自證法]과,
본래 머무는 법[本住法]이다.
어떤 것이 자증법인가?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를 나도 또한 똑같이 깨달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깨달은 지혜로 행하는 것은 말의 모양을 떠났고,
분별의 모양을 떠났고,
이름 자[名字]의 모양도 떠난 것이다.
어떤 것이 본래 머무는 법인가?
법의 본성은 금이 금광[鑛]에 있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거나 세상에 나오지 않으시거나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무르며,
법계의 법성(法性)은 모두 다 항상 머문다.
대혜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광야를 가다가 고성(古城)으로 향하는 평탄한 옛길을 보고 곧 따라 들어가 쉬며 노는 것과 같다.
대혜여, 너의 뜻은 어떠하냐? 그가 이 길과 성 안의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었겠느냐?”
대혜가 말했다.
“아니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나와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여와 항상 머무는 법성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므로 처음 성불 때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 자도 설하지 않았고, 또 이미 설하지도 않았고, 또한 앞으로도 설하지 아니한다고 말하였다.”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느 날 밤 정각 이루고
어느 날 밤 반열반하며
이 둘 중간에
나는 전혀 설한 바 없느니라.
스스로 깨친 법과 본래 머문 법
그 때문에 이 비밀의 말 하니
나와 모든 여래는
조금도 차별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