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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전업농부·작가
다들 이렇게 하고 살았어
아침 5시, 옆사람은 미숫가루 한 잔 마시고 논에 간다. 나는 새참을 준비해 7시 반에 논에 도착한다. 비가 계속 내린다.
비옷 입고 물장화 신고 팔토시에 장갑 끼고 논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폴더폰처럼 접고 네발짐승처럼 엎드려 한 걸음씩 나아간다. 두 손으로 풀을 긁어 뭉쳐서 논흙 깊숙이 쑤셔 넣고 물장화 신은 발로 꾸욱 꾹 밟는다. 모포기를 더듬어 잡고 줄기의 마디를 들여다보며 피를 구분해 뜯어낸다. 선 자리에서 앞과 좌우의 모를 4줄씩 살피며 간다.
빗속에서 김매기 하다.
비옷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옷 속 셔츠가 땀으로 축축하다. 젖은 옷에서 피어오른 김이 비옷의 목깃 사이로 새어 나와 안경알을 뿌옇게 만든다. 굵어진 빗줄기가 등허리를 때린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참 더디다. 논에 들어선 지 2시간째, 잠시 앉아 쉬고 싶지만 논물에 주저앉을 순 없으니 계속 나아간다. 허리 펴고 뒤돌아보니 절반도 못 왔다.
옷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받지 않는다. 계속 울린다. 무시한다. 끊기나 싶더니 잠시 후 다시 울린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진흙 범벅인 장갑을 벗고 더러운 손을 비옷 안의 젖은 셔츠에 문질러 대충 닦은 후 옷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전화기에 빗물이 떨어진다. 긴급한 내용은 아니다. 서둘러 끊는다.
풀 매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풀의 기세가 가히 기록적이다. 해마다 김매기를 해왔지만 이렇게 풀로 꽉 찬 논은 처음이다. 우리가 짓는 논 3곳 가운데 이 논이 가장 심하다. 작년까지는 다른 사람이 짓던 논이다. 지나가던 마을 어른이 우리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소리치신다. “약 안 치곤 방법이 없어! 돼도 안 해!” 아닌 게 아니라 숨이 막힐 만한 광경이다.
풀로 가득 찬 논.
논에 들어간 지 3시간쯤 지났을까. 한번 들어선 논, 저 끝까지 가는 게 목표인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눈앞이 어둑어둑해지며 식은땀이 난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토할 것 같다. 논물에 엎어질 순 없어 뒤돌아 허우적허우적 논을 빠져나온다. 시멘트 농로에 올라서자마자 그대로 길바닥에 드러눕는다.
물멀미다. 옛날에 ‘아짐’들이 논일하다가 “머리가 빙글빙글 도네” 하면서 논두렁에 드러눕곤 했다는 이야기를 한 선배로부터 들었는데 딱 그 상황이다. 온종일 눈앞에 물이 일렁이니 멀미가 날 법도 하다. 비 오는 날은 더하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한참을 길바닥에 누워 있으니 속이 좀 가라앉는다.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 윗논들을 둘러본다. 아랫논 매느라 아직 손도 못 댄 윗논은 피와 물질경이가 논바닥에 카펫을 엮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둘이 해낼 양도 아니다. 바닷물을 숟가락으로 뜨는 기분이 이럴까. 포기하자는 말이 목구멍에서 멈칫거린다.
엎드려 풀을 뽑는 옆사람.
그는 엎드린 채 계속 나아가고 있다. 논에 들어간 지 4시간이 넘었다. 저 중노동을 어찌 견디나. 여름 내내, 동틀 무렵부터 해 질 녘까지 하루 10시간씩 논에 엎드려 산다. 10시간이면 고속버스가 서울ㅡ부산 왕복할 시간인데 논 이편에서 저편까지 100m를 왕복조차 못한다. 논 끝에 도달했다 되돌아오는 도중에 해가 저무는 것이다.
우르릉 쾅쾅, 천둥 번개가 친다. 폭우가 쏟아진다. 패잔병 꼴로 집에 들어오니 산책을 기다리던 개들이 깡깡 짖기 시작한다. 안됐지만 오늘은 산책 포기다. 비만 안 오면 개들 데리고 저수지 한 바퀴 돌 텐데…. 개 산책은 피곤해도 거르지 않는 저녁 루틴이다. 저녁식사는 늘 9시를 넘긴다. 피곤으로 곤죽이 된 그가 소주병을 깐다. 그가 말도 안 하고 웃지도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 역시 기진맥진, 입 열 힘도 없다. 그가 말한다. “다들 이렇게 하고 살았어.”
제초 도구의 힘에 기대다
손의 속도가 풀 자라는 속도를 도저히 추월할 수 없어서 벼랑 끝 대책을 고민한다. 일손을 좀 빌리자 했다. 세 사람 정도 붙어서 급한 데만 처리해도 숨통이 트일 것 같다.
귀농 청년 셋에게 오전 한나절, 사흘간 일해 달라 했다. 오후까지 하라기엔 너무 고된 일이다. 오전 4시간 일한 청년들이 옆사람한테 묻는다. 정말 이 논을 혼자 다 매셨냐고, 오후에도 일하실 거냐고, 이러다 몸 상하시겠다고. 오전만 일했는데도 너무 힘든 게지. 청년들 점심 사 먹여 보낸 후 집에 들어와 두어 시간 누웠다가 그는 또 논으로 간다.
그가 청년 셋과 김매기 하고 있다.
청년들 일손을 사흘간 빌려 겨우 아랫논의 일부 구간을 처리했다. 전체로 보면 미미하다. 한 사람이 모 4줄을 맡아 진행하면 논 중간쯤에서 정오가 되니, 고작 사흘 만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길 리 없다. 열댓 명쯤 달려들면 모를까. 하지만 이 논의 쌀을 다 팔아도 그 인건비는 나올 가망이 없으니 우리 힘으로 하는 데까지 해볼 수밖에.
옛날 제초 도구.
헛간에 방치해둔 옛날 제초 도구를 꺼냈다. 몇 년 전, 고물로 팔려는 사람한테 쌀 10키로 주고 산 것이다. 모 포기 사이를 밀면 쇠갈퀴가 회전을 한다. 풀이 어릴 때 사용하는 도구인데, 밀고 다니기 힘들고 풀뿌리 제거도 쉽지 않아 되살아나는 풀이 많았다. 벼포기 옆에 바짝 붙은 피도 이걸로는 잡을 수 없다. 도구의 한계를 알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꺼내 들었는데, 결국 며칠 만에 그만두었다.
중경제초기 날을 예초기에 달았다.
김매기로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은 선배 농부께서 예초기에 달아 쓸 수 있는 제초 날을 빌려주셨다. 중경제초기 날 하나를 예초기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중경제초기란, 여러 모포기 사이를 동시에 밀어서 제거하는 농기계다. 2~3줄을 밀고 가는 보행식도 있고 6~8줄까지 동시에 밀고 가는 승용식도 있는데, 모의 줄이 잘 맞지 않으면 모포기가 다치고, 특히 논 가장자리에서 기계를 돌릴 때 모의 손상이 심하다.)
꽤 무겁지만 풀이 뒤쫓아오는 상황이라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없다. 중경제초기 날을 예초기에 장착한 후, 풀이 가득한 골 사이를 밀고 나간다. 육중한 날이 굉음을 내며 회전하니 질척한 논흙이 옷과 얼굴 위로 솟구쳐 오른다. 해는 중천에 떠서 사람을 익힐 듯이 이글거리고, 예초기를 들어 올려 이 골 저 골 넘나드는 그의 얼굴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풀이 날에 휘감기고 진흙이 온몸에 튀어오른다.
며칠 사용 후 이 기계는 더 쓰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① 너무 무겁다. 예초기 끝에 쌀가마가 매달린 느낌이다. ② 진흙과 풀이 날에 휘감겨 수시로 작업을 멈추고 빼내야 한다. ③ 엔진 과부하로 시동이 자꾸 꺼진다. ④ 뒤집힌 풀이 며칠 후 되살아난다. ⑤ 벼가 상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기계가 고속 회전하며 벼 뿌리가 다치거나 벼포기 일부가 꺾여 말려든다.
예초기에 달아서 쓰는 ‘논다매’의 날.
손 제초 외엔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할 무렵, “이런 것도 있더라”며 알려주신 이웃 덕에 가볍고 효율적인 제초기를 만났다. 이름이 ‘논밭 다맨다’인데 우린 논에서만 쓰니까 그냥 ‘논다매’라고 부른다. 예초기에 달아 사용하는데 중경제초기 날보다 훨씬 가벼워 힘이 덜 든다. 중경제초기 날이 위아래로 회전하며 논흙을 뒤집는 반면, 논다매 날은 논흙 바로 밑을 얕게 갈면서 풀의 뿌리를 해체한다. 이런 물건을 왜 이제야 알았는지, 그간 고생한 게 억울할 정도다.
중경제초기든 논다매든 풀의 성장 초기에 사용해야 효과가 있지 풀뿌리가 억세지고 풀의 키가 벼를 넘보는 상황에선 소용이 없다. 우리 논은 풀이 많이 자라서 물달개비가 낮게 깔린 곳만 ‘논다매’를 사용하고 키 큰 여뀌바늘이나 피는 손으로 맨다. 논다매를 늦게 만난 건 아쉽지만 우리에겐 내년이 있으니까. 내년은 올해와 다를 것이다. 희망이 생겼다.
논다매로 밀고 간 자리. 오른쪽엔 물달개비가 깔려 있다.
후회하지 않는 결정 하나
지금까지 쓴 글은 재작년과 작년의 김매기 기록이다. 지난 두 해 동안 겪었던 풀 천지 논은 돌이켜 생각하기도 버겁다. 우렁이도 넣고, 사람 손도 빌리고, 제초 도구로 밀기도 했지만 왕성한 풀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암담한 풀 천지를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모르겠다.
작년엔 8월 중순 벼꽃 피기 직전까지 그토록 아등바등 매달렸는데도 끝내 풀을 다 매지 못했다. 미처 매지 못한 풀들이 벼의 통풍을 막아 일부 벼에 병이 생겼다. 가을에 수확해보니 알곡보다 쭉정이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유기재배 벼는 관행재배 벼보다 면적당 수확량이 적은데(약 80%) 풀을 못 이긴 우리 논의 수확량은 50%를 밑돌았다. 그 고생을 했음에도…. 허탈할 뿐이었다.
올해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올해도 여전히 김매기를 하고 있지만 작년의 풀 천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쓰기로 한다.
물장화로 바꿔 신느라 논둑에 벗어둔 고무신.
몇 년 사이 옆사람의 외모는 많이 변했다. 몸은 마르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에 새까맣고, 머리털은 휑하니 빠졌다. 손은 딱딱한 나무껍질처럼 뻣세고 거칠고 갈라졌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툭툭 불거지고 손톱 밑은 새까맣다. 귀농 후 몸을 아끼지 않고 혹사함으로써, 사람의 육체가 어떻게 시들고 망가져 가는가를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육체의 쇠락으로 보면 볼품없고 초라하고 가난한 중년이다. 그러나 노동의 주체로서 스스로 계획하고 일하고 거두며 살고 싶었던 그의 소망으로 보면 나름 괜찮은 중년이다.
밥상머리에서 그가 말한다.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는 중대한 결정 하나가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된 것”이라고. “나랑 같네.” 그랬다. 도시 살 땐 책상머리 인생이었는데 여기선 손발 노동이 삶을 떠받친다. 힘들긴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인생 어느 때보다 지금이 가장 좋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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