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2권
2. 보응수공양품(報應受供養品)
15) 제석천이 부처님을 공양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계셨다.
그때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매우 어리석고 교만하며 질투가 심하였다. 그는 아사세(阿闍世)왕으로 하여금 법이 아닌 제도를 만들어 북[鼓]을 쳐서 민중들에 명령을 내리되, 그 누구라도 구담(瞿曇: 釋尊)에게 가서 공양 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신봉하는 저 성에 사는 사람들이 이러한 규제의 법을 듣고서 근심하며 눈물을 흘리고 슬픔에 젖어 고뇌하니, 제석천의 궁전(宮殿)이 감응하여 그 궁전을 흔들어 불안하게 하였다.
이때 제석천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우리의 궁전이 이같이 흔들릴까?’
제석천이 관찰해 보니, 저 아사세왕이 법이 아닌 제도를 만듦으로 인하여 성에 사는 사람들이 근심하고 슬퍼하여서 울음으로 그 궁전이 감응한 것을 알았다.
그는 곧 천궁에서 내려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 나 자신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供養)하리라.”
이렇게 외친 뒤에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예배하고 꿇어앉아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세존과 여러 비구 스님들께서는 제 목숨이 끝날 때까지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그 청을 허락하지 않으시자, 제석천이 부처님께 다시 아뢰었다.
“만약에 제 목숨이 끝날 때까지 공양을 받지 않으시려면, 앞으로 다섯 해 동안만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시기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역시 허락하시지 않자,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섯 해 동안도 받으실 수 없다면 다섯 달만이라도 받아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역시 허락하시지 않자,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다섯 달마저 받으실 수 없다면 단 닷새 동안만이라도 받아 주셔야 하겠나이다.”
마침내 부처님께서 공양을 받을 것을 허락하시자, 제석천은 곧 가란타 죽림을 비사야(毘闍耶) 궁전처럼 만들어서 거기에 침구 등 온갖 도구를 갖춰 두었다.
한편 금 그릇에 하늘의 수타(須陀) 음식을 담아서 여러 하늘 대중들과 함께 손수 그 음식을 받들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였다.
이때 아사세왕이 높은 누각 위에서 멀리 저 가란타 죽림이 마치 천상의 누각처럼 꾸며져 있는 가운데 제석천이 대중들과 함께 보배 그릇에 담겨 있는 갖가지 음식을 손수 받들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는 광경을 보고는, 곧 스스로 후회하고 자책을 하며 크게 화를 내고 제바달다를 꾸짖었다.
“그대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어째서 나로 하여금 함부로 법이 아닌 제도를 만들어서 감히 세존께 대항하게 하였는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왕은 곧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깊이 신심과 공경심을 내었다.
이때 여러 신하들도 왕에게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왕께선 이제 앞서 제정한 그 법이 아닌 제도를 고치시어 민중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여래를 보게 하고 여래를 공양하게 하며,
또 사관(司官)으로 하여금 북을 치고 명령을 내려 지금부터 온 민중들이 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게 하소서.”
이에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신 다음, 그들에게 갖가지 법을 설하시자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혹은 수다원을 얻은 자도 있고, 혹은 사다함을 얻은 자, 혹은 아나함을 얻은 자, 내지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자도 있었다.
이때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찬탄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 세존께선 과거세에 어떠한 복을 심으셨기에 제석천이 이러한 공양을 바치나이까?”
이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한량없는 과거세에 바라날국(波羅捺國)에 보전(寶殿)이라는 불 세존이 출현하시어 많은 비구들을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교화하시다가 마침 가시왕(伽翅王)의 나라에 도착하셨다.
왕이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곧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세존을 맞이하여 꿇어앉아 청하되,
‘석 달 동안만이라도 저희들의 네 가지 공양을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내 그 청을 허락하시고 공양을 받으신 뒤에 갖가지 법을 설하시자 왕은 곧 보리심을 내었으며,
저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대왕이 미래세에 성불할 때엔 석가모니란 명호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것이오’라고 수기하셨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때의 가시왕은 바로 나의 전신이었고, 그 때의 여러 신하들은 바로 지금의 여러 비구들의 전신이었다.
그 당시 모두 저 부처님을 공양했기 때문에 한량없는 세간에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천상ㆍ인간의 쾌락을 받아 왔으며, 또 이제 스스로가 성불했기 때문에 모든 하늘ㆍ사람들이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니라.”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