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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4권[3]
[초제 화상] 招提
석두石頭의 법을 이었다. 휘諱는 혜랑惠朗이요, 성은 구양歐陽이며, 소주韶州의 곡강曲江 사람이다. 13세에 등림사鄧林寺의 모模 선사에 의해 출가하고, 17세에 형악衡岳을 유람하고, 20세에 계를 받고, 건주虔州 공공산龔公山으로 가서 대적을 뵈니,
대적이 물었다.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부처의 지견知見을 얻으러 왔습니다.”
“부처는 지견이 없나니, 지견은 마의 경계니라. 그대가 남악에서 왔다고는 하나 석두의 조계심요曹溪心要를 보지 못한 것 같으니, 다시 석두로 돌아가라.”
초제 선사가 말씀에 따라 곧 석두에게로 돌아가니, 과연 대적의 말과 같이 인연이 부합하여 깨달았다. 이로부터 초제산招提山을 30년 동안 떠나지 않으니, 이 까닭에 초제 혜랑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화元和 15년 경자庚子 정월 22일에 입적하기까지 춘추는 83세요, 승랍은 64세였다.
[약산 화상] 藥山
석두의 법을 이었고, 낭주朗州에서 살았다. 휘는 유엄惟儼이요, 성은 한韓씨이며, 강주絳州 사람이다. 나중에 남강南康으로 옮겼는데, 17세에 조주潮州 서산西山 혜조慧照를 섬기다가 대력大歷 8년에 형악衡岳에서 희조希澡 율사에게 계를 받았다.
어느 날 아침에 선사가 말했다.
“대장부가 마땅히 법을 떠나 스스로 청정해질지언정 어찌 형식적인 세행[肩肩事]에 얽매이겠는가?”
그 길로 석두 대사를 뵙고, 현묘한 뜻을 은밀히 이어받았다.
선사는 정원貞元 초에 예양澧陽의 작약산芍藥山에서 살았으므로 약산 화상이라 불리게 되었다. 선사가 처음 머물 때, 촌장에게 가서 외양간을 얻어 승당僧堂을 만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무 명의 스님이 모였다. 이때 갑자기 어떤 스님이 나서서 자진하여 원주院主 소임을 보니, 차츰차츰 40~50사람이 모여서 장소가 협소하게 되었다. 이에 뒷산에 올라가 조그마한 집을 지어 놓고 와서 약산 화상에게 윗자리에 앉기를 청하여 윗자리에 모시고, 차례차례 대중이 그 집의 일을 주관해서 원주를 봤다. 원주가 선사에게 설법해 주기를 두세 차례 청하니, 화상이 한두 차례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세 번째에야 비로소 허락을 하였다.
이에 원주가 기뻐하면서 대중에게 알리자, 대중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종을 치고 모였다. 대중이 모이자마자 화상이 문을 닫아 버리고 방장으로 돌아가니, 원주가 밖에서 꾸짖었다.
“화상께서는 아까 저희들에게 설법해 주실 것을 허락해 주셨는데, 이제 어째서 중생들을 위하지 않으시고 저를 속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論에는 논사論師가 있고, 율에는 율사律師가 있거늘 원주는 나의 어떤 점을 나무라는가?”
이로부터 한가한 며칠이 지난 뒤에 선사가 법당에 오르니,
어떤 이가 물었다.
“화상은 누구의 법을 이으셨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옛 부처님의 전각에서 글을 한 줄 주웠느니라.”
“그 한 줄에 무엇이 쓰여 있었습니까?”
“‘그는 나를 닮지 않고, 나는 그를 닮지 않았다’ 했느니라. 그러므로 그 글자를 인정했느니라.”
상공相公인 이고李翶가 화상을 뵈러 왔는데, 마침 화상이 경을 보고 있던 까닭에 전혀 돌아본 체도 하지 않으니, 상공은 절을 할 생각도 않고 비꼬는 말을 하였다.
“만나 보니 천 리 밖에서 소문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이에 선사가 상공을 불렀다.
“상공!”
상공이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어째서 귀만 소중히 여기고 눈은 천히 여기는가?”
상공이 얼른 절을 하고 나서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선사가 하늘을 가리켰다가 다시 물병을 가리키고서 말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느니라.”
상공이 절을 한 뒤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
고상히 연마한 몸 학과 같으시고
천 그루의 솔밭 속의 두어 상자 경經이로다.
스승께 도를 물었더니 다른 말씀 없으시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하시네.
선사가 어느 달 밝은 밤에 약산에 올라 밤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한바탕 웃었는데, 동쪽으로 90리 밖 예양까지의 사람들이 그날 밤 모두가 자기네 동쪽 이웃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하면서 차츰차츰 동쪽으로 찾아와서 약산에까지 이르니, 대중들이 말하였다.
“지난밤에 화상께서 산마루에서 웃으시는 소리를 들었노라.”
이에 상공 이고가 다음과 같이 찬讚했다.
조용한 삶 선택하여 소탈한 마음 흐뭇하구나.
한 해가 저물도록 맞고 보낸 일 없도다.
때로는 외로운 봉우리에 곧장 올라서
달 아래, 구름 헤치고 한바탕 웃으셨네.
상공이 따로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계戒ㆍ정定ㆍ혜慧입니까?”
“빈도貧道의 처소에는 그런 소용없는 살림살이는 없느니라.”
“저의 할 일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화상께서 지시해 주십시오.”
선사가 한동안 잠자코 침음沈吟하더니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한마디 말해 주기는 어렵지 않으나 그대가 오직 말끝에 알아보아야 하느니라.”
선사가 사미沙彌를 부르니,
도오道吾가 물었다.
“사미 동자는 불러서 무엇 하시렵니까?”
“이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어째서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있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선사가 석두가 설법한 “말과 동작조차도 상관없는 일이다”는 말을 인하여 말했다.
“말과 동작이 없더라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에 석두가 말했다.
“여기는 바늘 끝으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는다.”
선사가 대꾸했다.
“여기는 마치 돌 끝에다 꽃을 재배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장남漳南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돌 위에 꽃을 재배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대의 대담大膽함에 졌느니라.”
그리고는 또 말했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문둥이가 돼지고기를 먹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근래에 어디를 떠나서 여길 왔는가?”
“백장百丈에게서 왔습니다.”
“회해懷海 사형이 하루 종일 그대들에게 어떤 법을 말씀하시던가?”
“때로는 3구句 밖에서 알아차리라 하시고, 6구句 밖에서 깨치라 하시고, 때로는 현현한 거울을 얻지 못한 이는 잠시 요의교(了義敎:완전한 가르침)에 의지하면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 하시더이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3천 리 밖의 쓸모없는 짓이 우습기만 하구나.”
선사가 칼을 차고 다니는데,
도오道吾가 물었다.
“등 뒤의 것이 무엇입니까?”
이에 선사가 칼을 뽑아들고 입을 찍었다.
선사가 밤에 불을 켜지 않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스님이 일어나려고 할 때 말했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황소가 새끼를 낳은 후에 너에게 말해 주겠다.”
스님이 말했다.
“황소가 새끼를 낳았습니다만 단지 화상께서 말씀하지 않으실 뿐입니다.”
선사가 곧 불을 켜라 하여 불을 켜자 스님이 곧 몸을 돌려 대중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후에 운암雲巖이 이 일을 동산洞山에게 말해 주니, 동산이 말했다.
“그 스님이 도리를 보았지만 다만 예배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들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이미 도리를 보았다면 어째서 예배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장경이 말했다.
“그저 예의가 없었을 뿐이다.”
백련白蓮이 이 이야기를 들어 스님에게 물었다.
“이미 도리를 보았다면 어째서 예배를 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자, 백련이 대신하여 말했다.
“더는 나서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사가 또 어느 때 사미沙彌를 부르니, 운암이 말했다.
“그를 불러 무얼 하려고 그러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내게 다리 부러진 솥이 있는데, 그로 하여금 들었다 놓게 하려고 그런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화상께 한 사람 몫으로 한 손을 내어 드리지요.”
선사가 언젠가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제방을 행각行脚하고 왔는데, 얻기 어려운 물건을 찾아가지고 왔는가?”
스님의 대답이 맞지 않자 선사가 말했다.
“그래서 무엇에 쓰겠는가?”
그리고는 대신 말했다.
“살림살이에 끄달리지 않았더라면 찾은 지 오래일 것이니라.”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물을 길어 옵니다.”
“그 친구는?”
“있습니다.”
“그대가 왔다갔다함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움직입니다.”
“어째서 그 사람보고 함께하자고 하지 않는가?”
“화상께서는 남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
선사가 대신 대답하였다.
“‘짐을 짊어져 본 일이 있기는 하십니까?’ 하라.”
선사가 언젠가 말했다.
“내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남에게 말한 적이 없다.”
이에 도오道吾가 말했다.
“따라왔습니다.”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남전南泉 스님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있었는가?”
“겨울과 여름을 지냈습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의 물소가 되었겠구나.”
“거기에 있었으나 남의 식당에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동서의 바람만 마셔서는 안 될 터인데…….”
“화상은 잘못 알지 마십시오. 수저를 잡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운암이 물었다.
“한 구절이란 어떠한 말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말이 아니니라.”
이에 도오가 말했다.
“벌써 말씀하셨습니다.”
운암이 백장에게 공양거리를 빌러 갔는데,
선사가 물었다.
“음계陰界는 먹지 않거늘 누구를 위해서 구걸하는가?”
“누군가 한 사람이 요구합니다.”
상공 우적于迪이 자옥紫玉에게 물었다.
“불법의 지극한 이치가 어떠합니까?”
이에 자옥이 “상공이여” 하고 불러 상공이 대답하니, 자옥이 말했다.
“더 이상 다른 것을 구하지 말라.”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그 놈을 박살을 냈어야 했을 것이니라.”
그 말을 전한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시겠습니까?”
“‘이게 무엇인고?’ 했어야 하느니라.”
원주가 와서 말했다.
“화상이시여, 종을 쳤습니다. 법상에 오르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발우를 갖다다오.”
원주가 알아듣지 못하니, 운암이 말했다.
“화상은 손발이 없이 지내신 것이 얼마입니까?”
선사가 대꾸했다.
“그대는 다만 허황되게 가사만 걸쳤을 뿐이로다.”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나에게 그런 식구는 없느니라.”
선사가 원두園頭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오는가?”
“채소를 심고 옵니다.”
“심는 것이야 관계없으나 뿌리가 돋지 않게 하라.”
“뿌리가 돋지 않게 하면 대중은 무엇을 먹습니까?”
“그대는 아직도 입이 있는가?”
선사가 불佛 자 하나를 써서 도오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글자인가?”
“부처 불 자입니다.”
“에잇, 이 말 많은 중아, 천 불이 대신 손을 모으고 뒤로 물러서는구나.”
또 약산의 둘째 기연을 대신하여 말하기를,
“틀렸다” 하였다.
어떤 스님이 약산에서 3년 동안 공양주를 했는데,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
“3년 있었습니다.”
“나는 줄곧 그대를 몰랐도다.”
그 스님이 알지 못하고, 원망하여 떠나려 하면서 물었다.
“학인學人에게 의심이 있으니, 스님께서 풀어 주십시오.”
“상당上堂하기까지 기다려라.”
선사는 그날 저녁에 상당하여 말했다.
“오늘 의심을 풀어 달라고 하던 중이 어디에 있는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오자마자 선사가 그를 끌어내고는 방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선사가 길을 가는데 운암이 길가로 피해서 옆으로 섰다가 선사가 이르자 말했다.
“뒤의 것입니다, 뒤의 것입니다.”
선사가 갑자기 입을 쥐어지르며 물었다.
“어떻게 하여야 여러 경계에 홀리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왜 그대를 막는지를 들어 보아라.”
“학인은 이 뜻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경계가 그대를 홀리던가?”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중에서 보배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아첨하거나 굽실거리지 말라.”
“아첨하거나 굽실거리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나라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느니라.”
도오道吾 화상은 46세가 되어서야 출가했으니, 속성은 왕王씨요, 종릉鍾陵의 건창현建昌縣 사람이다.
운암 화상은 도오의 친동생으로, 형보다 먼저 출가하여 백장百丈에게서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도오는 집에 있다가 보탐관報探官이 되어 하루에 5백 리를 걸어 우연히 백장의 농막에 이르러 밥을 달라고 하였다.
이때 마침 시자도 농막에 일이 있어 내려갔더니, 장주(莊主:농막 주인)가 시자에게 손님 접대를 하라고 하였다.
시자가 와서 수인사를 마치고 물었다.
“장군께서는 어느 곳 사람이시오?”
“종릉鍾陵의 건창建昌 사람이오.”
“성은 무엇입니까?”
“왕씨입니다.”
시자는 이 말에 얼른 친형임을 알고 손을 덥석 잡고 울면서 물었다.
“어머니는 생존하신가요?”
“스님(동생)을 그리워하시어 지나치게 울다가 한쪽 눈을 잃으시더니, 아주 별세하셨소.”
시자는 이 소식을 듣자, 그날로 백장에게 형을 데리고 가서 친견하게 한 뒤 말하였다.
“이 사람은 저의 형인데 화상께 의지해 출가하고자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백장이 말했다.
“나를 의지해 출가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찌하면 됩니까?”
“사백師伯께 의지해 출가하도록 해라.”
시자가 형을 데리고 사백에게 가서 앞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사백이 이를 허락하여 형이 출가하게 되었다.
나중에 시자가 사제師弟가 된 속가의 친형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계를 받게 한 뒤에 다시 백장으로 돌아오던 중에 둘이서 길가에 앉아 쉬었다.
그러다 도오 시자가 일어나 절을 하고 물었다.
“내게 의심되는 일이 하나 있어 여러 번 물으려 했는데 짬을 얻지 못했소.
오늘 다행히 기회가 있으니, 사형께 묻겠는데 괜찮겠습니까?”
운암이 되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도오가 물었다.
“이 몸이 껍질을 벗어버린 뒤엔 어디서 사형과 만날 수 있을까요?”
운암이 대답했다.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곳에서 만날 것입니다.”
도오가 말했다.
“풀밭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 마시오. 누군가가 살피고 있습니다.”
운암이 말했다.
“그대의 복건 자국이 아직 있는데, 그런 말과 태도를 취하다니 무엇 하는 것입니까?”
도오가 말했다.
“사형은 그런 말을 마시오. 불법은 승속에 관계가 없습니다.”
이에 운암이 얼른 물었다.
“그렇게 이치가 구구절절하다면 사제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도오가 대답했다.
“불생불멸하는 곳도 아니요, 만나기를 바랄 것도 아닙니다.”
운암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 당신의 안목은 그토록 섬세하십니다. 만일 산으로 돌아가거든 서로서로 이끌고 제도합시다.”
그들은 바로 백장산百丈山으로 돌아가서 한 해를 지내고 도오가 백장을 하직하고 약산藥山으로 가니,
선사(약산)가 물었다.
“한 구절의 말을 어떻게 이야기하던가?”
“어떤 사람은 전혀 말을 하지 않더이다.”
“큰 장경藏經, 작은 장경은 어디서 생겼을까?”
“곁가지에서 나왔습니다.”
선사가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이로 인해 선을 배워 선열[滋味]을 얻고는 항상 사형이 오는가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석두는 순금 가게요, 강서 마조는 잡화 가게인데, 사형은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서 무엇을 하시려오? 제발 속히 오시오.”
운암이 이 편지를 받고, 끝없는 근심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은 화상 곁에서 3경更까지 모시고 섰으니, 화상이 말하였다.
“가서 쉬라.”
그래도 운암이 가지 않으니,
화상이 물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기에 얼굴이 거칠고 야위었느냐?
마치 배에 탈이 있는 듯하구나. 일이 있으면 그저 말만 하여라.”
“아무 일도 없습니다.”
“원지(圓智:도오의 법명) 사리闍梨의 편지를 받은 것이 아니냐?”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에 백장이 도오의 편지를 달라 하매 운암이 찾아다 바치니, 백장 화상이 받아서 읽고 말했다.
“과연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이루는 이는 벗이란 말이 맞는구나. 그대는 내게 있을 필요가 없으니 빨리 가거라.”
운암이 대답했다.
“차마 갈 수가 없습니다.”
화상이 말했다.
“내가 약산에게 보낼 편지와 신물信物이 있으니, 그대는 이를 가지고 빨리 떠나라.”
운암이 스승의 분부를 받고 약산으로 가니, 도오가 화상에게로 인도하였다. 운암이 백장이 전하는 편지와 신물을 모두 전달하니,
약산이 물었다.
“회해懷海 사형이 평상시에 무엇이라 설법을 하시던가?”
운암이 대답했다.
“3구 밖에서 알아차리라 하시고, 혹은 6구 밖에서 알아야 한다 하십니다.”
이에 약산 선사가 말했다.
“3천 리 밖의 쓸모없는 짓이 우습기만 하구나.”
그리고는 또 물었다.
“그 밖에 어떤 설법이 계셨는가?”
“언젠가 설법을 마치시고 대중이 흩어지려는데, 화상께서 ‘대중들이여’ 하셔서 대중이 고개를 돌리니, 화상께서 ‘이것이 무엇인고?’ 하셨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왜 회해 사형이 여전히 건재하시다고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그대를 인하여 백장을 알게 되었구나.”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눈앞의 생사를 어찌해야 하는가?”
운암이 대답했다.
“눈앞에 생사가 없습니다.”
“20년 동안이나 백장에 있었다면서 속기俗氣를 제거하지 못했구나.”
운암이 다시 물었다.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어리석고 약하고 못나고 둔하니, 1백 가지가 추하고 1천 가지가 옹졸하며, 그저 이렇게 세월을 보내느니라.”
이로부터 사제(도오)와 더불어 서로 부축하여 공부를 이룬 뒤, 어느 날 운암이 선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위산潙山에게로 가겠습니다.”
“위산에게는 무슨 일 때문에 가려는가?”
“제가 위산과 함께 백장에 있을 때에 서로 서원誓願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서원이었는가?”
“저희들 두 사람이 백장에 있을 때, 위산은 전좌典座를 맡고 저는 시자를 맡으며, 화상의 좌우를 뜨지 않고 잘 모시기로 하였는데, 나중에 이 서원을 어겼기 때문에 이 일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선사가 허락하여, 운암이 산을 내려가는데 도오는 바랑을 짊어지고 다리까지 전송해 주고 돌아가서 선사에게 인사를 드리니,
선사가 물었다.
“사형을 전송하였는가?”
“예, 전송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도오가 다시 물었다.
“사형이 스님의 곁을 떠나도 됩니까?”
“원지圓智 사리闍梨야,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몇 해 동안이나 무릎을 마주한 도반이었으니, 무슨 일인들 도모하지 못하겠으며, 무슨 일인들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물을 필요가 없느니라.”
도오가 말했다.
“후세 사람들이 표준을 삼을 만한 화상의 한 말씀이 없으셨으니, 화상의 한 말씀을 바라나이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말하리라. 안목은 있으나 도태淘汰할 일만이 모자라느니라.”
도오가 이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길을 떠나 이튿날 새벽 마을 여관에 가서 사형을 만나 선사의 말씀을 전하고는함께 돌아와서 영영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진각眞覺 대사가 이 일을 들어 현오玄晤 대사에게 물었다.
“눈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산하를 비추면 산하와 대지가 그 안광眼光을 가리지 못하는데, 이 사람의 허물이 어디에 있기에 도태할 일만이 모자란다고 하였겠습니까?”
현오 대사가 대답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 그 아래로는 대오의 법을 맡기려면 반드시 도태를 해야 하느니라.”
“그게 누구누구입니까?”
“서역에 한 사람이요, 당토唐土에 한 사람이니라.”
“서역의 한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유마維摩 거사居士니라.”
“당토의 한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쌍림雙林 부傅 대사大士니라.”
“이 두 사람은 어떤 시절과 인연을 만났기에 도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깎고 다듬기는 그대보다 낫느니라.”조당朝堂의 거자擧者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용화龍花가 든 것이라 한다.
운암이 편찮을 때,
도오가 물었다.
“이 껍질을 벗은 다음에 다시 어디서 만날까요?”
운암이 대답했다.
“불생불멸하는 곳에서 만납시다.”
이에 도오가 말했다.
“어째서 불생불멸하는 곳도 아니요, 만나기를 바랄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선사가 운암에게 물었다.
“말에 뿔 난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있다 한들 봐서 무엇 합니까?”
“그렇다면 좋은 말이군요.”
“좋은 말이거든 끌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선사가 어느 날 경을 보는데,
백안白顔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경 보는 일을 그만두신다면 사람에게 펼 필요가 없겠습니다.”
선사가 경을 덮고 백안에게 물었다.
“계합하면 무엇과 같게 되는가?”
“마치 정오와 같습니다.”
“아직도 그런 문채 자취가 남았구나.”
“없다는 것도 없습니다.”
“그대는 몹시도 총명하구나.”
“저는 그렇거니와 화상은 어떠하십니까?”
“어리석고, 둔하고, 못생기고, 졸하니, 1백 가지가 추하고 1천 가지가 옹졸한 채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느니라.”
명계茗溪 화상이 선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뒤에 선사가 운암에게 말했다.
“명계의 지난날이 매우 현달했었느니라.”
운암이 다시 물었다.
“화상의 지난날은 어떠하셨습니까?”
“어리석고, 둔하고, 못생기고, 졸하니,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냈느니라.”
운암이 절을 하고 물러나서 도오에게 이 인연을 이야기했더니, 도오가 말했다.
“퍽 좋은 이야기이나 꼭 한 가지 질문을 빠뜨린 것이 흠이오.”
이에 운암이 물었다.
“어떤 질문인가?”
“‘왜 그렇습니까?’ 했어야 합니다.”
운암이 물을 거리를 얻자 곧 화상에게 가서 앞의 일에 이어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책을 편 적이 없느니라.”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석상石霜에게 이야기하니, 석상이 말했다.
“일찍이 그 책을 편 적이 없느니라.”
또 언젠가 시자侍者가 화상에게 약식을 들라 청하니, 선사가 말했다.
“안 먹겠다.”
“어째서 드시지 않으십니까?”
“그것을 소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이 소화시킬 수 있습니까?”
“범하지 않는 우바이優婆夷니라.”
“화상은 어째서 소화를 못 시킵니까?”
이에 선사가 솜 보푸라기를 들어 올리고 말했다.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운암이 선사에게 목욕을 하라고 청하니,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목욕을 않겠다.”
“어째서 목욕을 안 하십니까?”
“때가 없다.”
“때가 없어도 목욕은 하셔야 합니다.”
“이 중생아, 때가 없는데 목욕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이에 운암이 말했다.
“그렇게 많은 구멍이 있는 것이야 어찌합니까?”
선사가 동국東國에서 온 스님을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
“그대 나이가 몇 살인가?”
“78세입니다.”
“참으로 78세인가?”
“그렇습니다.”
이에 선사가 때렸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이를 들어서 조산曺山에게 물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약산의 매를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야흐로 천자天子의 칙서를 올바르게 받들고 가면 제후들은 길을 피하느니라.”
“그러면 그 상좌의 허물이 무엇이기에 매를 맞았습니까?”
“앞에서 요란한 소리로 밀고 들어가는 것은 얕고, 뒤에서 화살을 쏘는 사람은 깊이 들어가느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학인學人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온몸이 불에 데어 문드러진 데다 가시밭에 누워 있는데, 그가 살아서 돌아가겠는가?”
“그렇다면 저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아니다, 그렇더라도 돌아가거라. 그대가 만일 돌아가게 된다면 내가 그대에게 휴량방(休糧方:곡식을 끊는 법)을 가르쳐 주리라.”
“화상이시여, 휴량방을 가르쳐 주소서.”
“두 때에 발우를 들고 당堂에 올라 먹되, 한 톨의 쌀도 씹어 터뜨리지 말지니라.”
선사가 요일송曜日頌을 읊었으니, 다음과 같다.
온몸이 불에 데어 문드러진 이 또한 누구이던가?
우거진 가시밭에 누웠으니 그 지혜 참되다.
여러분에게 알리노니 묘함을 체험하라.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완연히 새롭다.
석실의 고高 사미가 서울로 계를 받으러 가다가 낭주朗州를 지나는 도중에,
약산 근처에서 한 노인을 만나 물었다.
“노인은 만복萬福하십니까?”
이에 노인이 대꾸했다.
“법공法公께서도 만복하십니까?”
사미가 다시 물었다.
“앞길이 어떻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법공法公이여, 왜 서두르시오? 약산에는 육신肉身 보살이 나타나셨고, 나한羅漢인 스님이 원주를 맡고 있으니, 산에 올라가서 예를 갖춰 절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사미가 이 소식을 듣고, 곧장 약산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법당으로 가 약산 화상에게 절을 하니,
화상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남악南嶽에서 옵니다.”
“어디로 가는가?”
“강릉江陵으로 계를 받으러 갑니다.”
“계는 받아서 무엇 하려는가?”
“생사를 면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를 받지 않고도 생사를 멀리했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250조목의 계를 제정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십니까?”
이에 선사가 꾸짖었다.
“에잇, 저 말 많은 사미가 아직도 입술과 이에 걸려 있도다.”
그리고는 바로 그를 대중에 참여하게 하니, 사미가 고두庫頭 소임을 맡아 일을 보기로 했는데, 도오가 와서 화상에게 문안을 했다.
이때 화상이 도오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까 온 절름발이 사미를 보았는가?”
“네, 보았습니다.”
화상이 말하였다.
“이 사미에게 기색이 있다.”
“촌뜨기에게 무슨 기미가 있겠습니까? 아직 충분히 살펴보지 못했으니, 더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선사가 시자에게 그 사미를 불러오라 하여 그 사미가 올라오니, 선사가 말했다.
“듣건대 장안長安이 퍽 시끄럽다는데 그대도 알고 있는가?”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매우 태평한 것으로 압니다.”
“그대는 경을 봐서 알았는가, 남에게 물어서 알았는가?”
“경을 봐서 안 것도 아니요, 남에게 물어서 안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어떤 사람은 경을 보지도 않고 남에게 묻지도 않았는데도 어째서 알지 못하는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다만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여 감당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선사가 도오에게 말했다.
“그래도 믿지 않겠는가? 노승은 헛소리를 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법상에서 내려와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참 사자 새끼로다.”
사미가 이어 화상에게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암자로 살러 갑니다.”
“생사의 일이 큰데 어째서 계를 받으러 가지 않는가?”
“거기나 여기나 모두 같은 것인데, 무엇을 일러 계를 받는다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내 곁에 있으면서 가끔 만나도록 하라.”
이로 인하여 약산에서 반半 리쯤 떨어진 곳에 암자를 짓고 일생을 지내니, 석실의 고 사미라 부르게 되었다.
스님이 물었다.
“목숨이 몹시 급한 곳은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잡곡을 심지 말라.”
“그러면 무엇을 공양하시겠습니까?”
“입 가진 이가 없느니라.”
선사가 설법하였다.
“여러분들이 보임하는 일을 알고자 한다면,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서고, 깊고 깊은 바다 밑에 들어가서 걸어야 하나니, 여기서 다니기와 조금도 다름이 없어야 비로소 약간 상응相應할 몫이 있다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말을 들어 순덕順德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가서 서고, 깊고 깊은 바다 밑으로 다니라.’ 했는데,
어떤 것이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서는 것입니까?”
“거기는 가파르니라.”
“어떤 것이 깊고 깊은 바다 밑으로 다니는 것입니까?”
“깊고 밝은 데를 밟고 걷는 것이니라.”
선사가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 평소에 경을 보지 못하게 하시더니, 어째서 자신은 경을 보십니까?”
“내 눈을 가려야겠군.”
“학인學人도 화상을 따라 경을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따라서 경을 본다면 쇠가죽도 뚫을 것이니라.”
장경長慶이 이 이야기를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눈을 가린다 하였는데, 눈에 무슨 허물이 있는가?”
이에 대답하는 이는 많았으나 모두가 장경의 뜻에 부합되지 못하므로 스스로 대답하여 말했다.
“또 하나 눈의 티는 어찌할 것인가?”
선사가 태화太和 8년 갑인년[甲寅歲] 11월 6일에 대중에게 외치기를,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 했지만,
대중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물건을 들고 나가 버리니, 선사가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고 말했다.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르는구나.”
그리고는 열반에 드니, 춘추는 84세요, 법랍은 65세이며, 시호는 홍도弘道 대사, 탑호塔號는 화성化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