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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1권
3.3. 삼매를 닦는 법(3)
3.3.4.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자기의 기질에 맞는 명상주제
103. 아직 자기의 기질에 맞는 명상주제를 모든 면에서 밝힌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음 마띠까(mātika, 마띠까, 論母,개요)의 구절을 상세하게 설할 때 자동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자기의 기질에 맞는 어떤 명상주제를 들고라고(§28) 앞서 설했다.
여기서는 이제
① 숫자의 설명에 따라
②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가져오는 것에 따라
③ 禪의 종류에 따라
④ 극복함에 따라
⑤ 확장함과 확장하지 않음에 따라
⑥ 대상에 따라
⑦ 장소[地]에 따라
⑧ 취하는 것에 따라
⑨ 조건에 따라
⑩ 기질에 맞는 것에 따라
– 이 열 가지 측면에 따라 명상주제의 판별을 알아야 한다.
(1) 숫자의 설명에 따라
104.
① 숫자의 설명에 따라: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라고 앞서 설했다. 40가지 명상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열 가지 까시나(kasiṇa)
② 열 가지 부정(不淨, asubha)
③ 열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anussati, 隨念)
④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brahmavihāra, 梵住)
⑤ 네 가지 무색(無色)의 경지(āruppa)
⑥ 한 가지 인식(saññā)
⑦ 한 가지 분석(vavatthāna)
105.
① 여기서 땅의 까시나, 물의 까시나, 불의 까시나, 바람의 까시나,
푸른색의 까시나, 노란색의 까시나, 빨간색의 까시나, 흰색의 까시나,
광명의 까시나, 한정된 허공의 까시나
– 이것이 열 가지 가시나(kasiṇa)이다.
② 부었고, 검푸르고, 문드러지고 끊어지고, 뜯어 먹히고, 흩어지고, 난도질당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피가 흐르고, 벌레가 버글거리고, 해골이 됨
– 이것이 열 가지 더러움(不淨, asubha)이다.
③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anussati),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
승가를 계속해서 생각함,
계를 계속해서 생각함,
관대함을 계속해서 생각함,
천신을 계속해서 생각함,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함,
몸에 대한 마음챙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고요함(upasama)을 계속해서 생각함
–이것이 열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隨念, anussati)이다.
④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梵住 ,brahma-vihāra, )이다.
⑤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가 네 가지 무색(無色)의 경지(āruppa)이다.
⑥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paṭikūla-saññā)이 한 가지 인식이다.
⑦ 사대(四大)를 분석(vavatthāna)하는 것이 한 가지 분석(vava-tthāna)이다.
이와 같이 숫자의 설명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2)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가져오는 것에 따라
106.
(2)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가져오는 것에 따라:
몸에 대한 마음챙김과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제외한 여덟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隨念)과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과 사대에 대한 분석의 이 열 가지 명상주제는 근접삼매를 가져오고, 나머지는 본삼매를 가져온다.
이와 같이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가져오는 것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3) 禪의 종류에 따라
107.
(3) 禪의 종류에 따라:
본삼매를 가져오는 [3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과 함께 열 가지 까시나는 네 가지 禪을 모두 가져온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과 함께 열 가지 부정은 초선만을 가져온다.
처음 세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梵住)은 세 가지 禪을 가져온다.
네 번째 거룩한 마음가짐과 네 가지 무색의 경지는 네 번째 禪을 가져온다.
(4) 극복함에 따라
108.
(4) 극복함에 따라:
두 가지 극복함이 있는데 구성요소(名支)를 극복함과 대상을 극복함이다.
세 가지와 네 가지 禪을 가져오는 모든 명상주제의 경우 구성요소를 극복함이 있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결심(伺) 등의 禪의 구성요소를 극복한 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두 번째 禪 등애 도달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거룩한 마음가짐(梵住)의 경우에도 이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도 자애 등이 가졌던 바로 그 대상에 대해서 기쁨을 극복한 다음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가지 무색의 경지의 경우 극복해야 할 것은 바로 대상이다. 처음 9가지 까시나 가운데서 어떤 하나를 극복한 다음 공무변처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허공 등을 극복한 다음 식무변처 등에 도달해야 한다. 나머지 경우에는 극복함이 없다.
이와 같이 극복함에 따라서 판별을 알아야 한다.
(5) 확장함과 확장하지 않음에 따라
109.
(5) 확장함과 확장하지 않음에 따라:
이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서 열 가지 까시나만 확장해야 한다.
가시나를 통해 공간을 확장한 만큼, 그 범위 내에서 천상의 귀의 요소(dhātu, 界)로 소리를 들을 수 있고(天耳通) 천상의 눈의 [요소]로 형상을 볼 수 있고(天眼通)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他心通).
110. 몸에 대한 마음챙김과 [열 가지] 부정은 확장해서는 안된다.
무슨 이유인가? 범위가 한정되어있고 또한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은 닦는 방법을 설명하는 곳에서 밝혀질 것이다.
만약 이들이 확장된다면 시체더미만 확장된다. 그러므로 아무런 이익이 없다. 소빠까(Sopāka)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세존이시여, 형상에 대한 인식은 명료합니다. 그러나 해골에 대한 인식은 명료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표상을 확장했다는 뜻에서 형상에 대한 인식은 명료하다고 설했고, 확장하지 않았다는 뜻에서 해골에 대한 인식은 명료하지 않다고 설했다.
111. 그러나 “오직 해골에 대한 인식으로 대지를 뒤덮었다.(Th1. 18)”라고 설한 것은 해골에 대한 인식을 얻은 자에게 그것이 나타난 모양대로 설한 것이다.
마치 법의 왕 아소까(Dhammāsoka)의 시대에 가릉빈가(kavavīka)새가 사방이 거울로 된 벽 속에서 자신의 영상을 보고는 전 방향에 가릉빈가 새들이 있음을 인식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장로도 해골에 대한 인식을 얻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표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전 대지가 해골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다.
112. 만약 그렇다면 ‘부정상을 통해서 생긴 禪들은 무량한 대상을 가진다’라고 설한 것은 모순되는가?
그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어떤 자는 통째로 부은 시체 혹은 큰 해골에서 표상을 취하고
어떤 자는 작은 것에서 표상을 취한다.
이런 방법으로 어떤 자에게는 작은 대상을 가진 禪이 있고,
어떤 자에게는 큰 대상을 가진 禪이 있다.
[부정상을] 확장함에 위험을 보지 않으면서 확장하는 자에 관해서
“무량한 대상을 가진 자Dhs.55)”라고 설했다.
그러나 이익이 없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이다.
113. 이와 같이 나머지도 확장해서는 안된다.
왜 그런가? 이 가운데서 들숨날숨의 표상을 확장할 때 바람의 더미만 확장될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것의 범위는 정해져있다.
이와 같이 위험이 있고 또한 범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
거룩한 마음가짐(梵住)은 중생을 대상으로 가진다. 그들의 표상을 확장하면 중생의 무리만 커질 뿐 아무런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이것도 확장해서는 안된다.
114. “자애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D.i.250)” 등으로 설한 것은 취하는 것에 따라 설한 것이다.
한 집, 두 집 등을 통해 점점 한 방향의 중생을 취하여 닦으면서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라고 설한 것이다.
표상을 확장하면서 설한 것이 아니다.
[이 거룩한 마음가짐에는] 확장해야 할 닮은 표상이 없다.
작은 대상과 무량한 대상의 상태도 [대상인 중생을] 취하는 것에 다라 설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115. 무색의 경지의 대상 가운데서 [공무변처의 대상인] 허공도 역시 [확장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까시나를 제거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까시나가 사라진 것으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한다. 그 이외에 확장할 것이 없다.
[식무변처의 대상인 공무변처의] 알음알이(識)는 고유성질(sabhāva,自性)을 가진 법이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 고유성질을 가진 법은 확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소유처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사라짐은 알음알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
비상비비상처의 대상인 [무소유처의 알음알이]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이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
116. 나머지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 등 열 가지]는 표상이 없기 때문에 [확장해서는 안된다]. 닮은 표상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계속해서 생각함(不隨念) 등의 대상은 닮은 표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확장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확장함과 확장하지 않음에 따라서 [판별을 알아야 한다].
(6) 대상에 따라
117.
(6) 대상에 따라:
이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열 가지 까시나, 열 가지 부정,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몸에 대한 마음챙김 – 이 22가지는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가진다.
나머지 [18가지]는 닮은 표상을 대상으로 갖지 않는다.
열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隨念) 가운데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과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제외한 여덟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사대의 분석, 식무변처, 비상비비상처 – 이 12가지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을 대상으로 가진다.
열 가지 까시나, 열 가지 부정,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몸에 대한 마음챙김 – 이 22가지는 표상을 대상으로 가진다.
나머지 여섯은 설할 수 없는 대상을 가진다.
곪은 것, 피가 흐르는 것, 벌레가 버글거리는 것,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물위 가시나, 불의 가시나, 바람의 가시나, 광명의 까시나의 경우 태양 등의 둥근 광명 – 이 여덟 가지는 움직이는 대상을 가진다.
그러나 이 대상들은 [닮은 표상이 일어나기] 이전에는 움직이지만 닮은 표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머지는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가진다.
이와 같이 대상에 따라서 판별을 알아야 한다.
(7) 장소에 따라
118.
(7) 장소에 따라:
열 가지 부정, 몸에 대한 마음챙김,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 이 12가지는 신들 가운데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 12가지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 이 13가지는 범천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무색계 존재에서는 네 가지 무색의 경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들에는 모든 것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장소에 따라서 판별을 알아야 한다.
(8) 취하는 것에 따라
119.
(8) 취하는 것에 따라:
보고 닿고 듣는 것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바람의 까시나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 까시나와 열 가지 부정 – 이 19가지는 보아서 취해야 한다. 즉 초기 단계에서 눈으로 계속해서 쳐다보아서 이들의 표상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에서 피부의 오개조(五個組)는 보아서 취해야 하고 나머지는 들어서 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대상은 보도 들어서 취해야 한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닿음으로, 바람의 까시나는 보고 닿음으로, 나머지 18가지는 듣고서 취해야 한다.
여기서 평온(捨)의 거룩한 마음가짐과 네 가지 무색의 경지는 초보자가 취해서는 안된다. 나머지 35가지를 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취하는 것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9) 조건에 따라
120.
(9) 조건에 따라:
이 명상주제 가운데서 허공의 까시나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 까시나는 무색의 경지들에게 조건이 된다.
열 가지 까시나는 초월지에게,
세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은 네 번째 거룩한 마음가짐에게,
하위의 무색의 경지는 각각 그 상위의 무색의 경지에게,
비상비비상처는 멸진정에게 조건이 된다.
이 모든 것은 [금생에서] 행복하게 머묾과 위빳사나와 [고귀한] 존재를 성취하는 조건이 된다.
이와 같이 조건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10) 기질에 맞는 것에 따라
121.
(10) 기질에 맞는 것에 따라: 기질에 맞는 것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즉
탐하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열 가지 부정과 몸에 대한 마음챙김 – 이 11가지 명상주제가 적합하다.
성내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과 네 가지 색깔의 까시나 – 이 여덟 가지가 적합하다.
어리석은 기질을 가진 자와 사색하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한 가지 명상주제인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 적합하다.
믿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처음 여섯 가지 계속해서 생각함(隨念)이 적합하다. 지적인 기질을 가진 자에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고요함을 계속해서 생각함, 사대의 분석, 음식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 – 이 네 가지가 적합하다.
나머지의 까시나와 네 가지 무색의 경지는 모든 종류의 기질에 적합하다.
까시나 가운데서 작은 것은 사색하는 기질을 가진 자에게, 큰 것은 어리석은 기질을 가진 자에게 적합하다.
이와 같이 기질에 맞는 것에 따라 판별을 알아야 한다.
122. 이 모든 것은 [기질과] 정반대되는 것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에 따라 설했다. 그러나 참으로 유익한 법(善法)을 닦음은 탐욕 등을 억압하지 않음이 없고, 믿음 등을 돕지 않음이 없다.
「메기야 경」(Meghiya Sutta)에서도 이와 같이 설하셨다.
“네 가지 법을 더 닦아야 한다. 탐욕을 버리기 위하여 부정을 닦아야 한다.
악의를 버리기 위하여 자애를 닦아야 한다.
일으킨 생각을 귾어버리기 위하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나다’라는 자만을 통째 뿌리 뽑기 위하여 무상의 인식을 닦아야 한다.(A.IV.358)”
「라훌라 경」(Mahārāhulovāda Sutta, M62)에서도
“라훌라여,, 자애의 수행을 닦아야 한다.(M.i.424)”라고 시작하는 방법으로 [라훌라] 한 분에게 일곱 가지 명상주제를 설하셨다.
그러므로 단지 말에 떨어져 고집(abhinivesa)하지 말고 모든 곳에서 참된 뜻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명상주제를 들고’라고 [앞서 언급한] 명상주제에 대한 판별이다.
123.‘ [명상주제를] 들고’(§28):
이제 이 단어의 뜻을 밝힌다.
‘그 수행자는 명상주제를 주는 선우를 친근하고’라고(§§57-73) 이미 설한 방법대로 그러한 선우를 친근한 뒤 부처님 세존께 혹은 스승께 헌신하고 의향(ajjhāsaya)을 구족하고 확신을 구족하여 명상주제를 청해야 한다.
124. 여기서 ‘세존이시여,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이와 같이 부처님 세존께 자기를 헌신해야 한다.
이와 같이 헌신하지 않고 외딴 거처에 지낼 때 무서운 대상이 나타나면 확고부동할 수 없어 마을의 숙소로 내려가 신도들과 어울리게 되고 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을 구하다가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허신하면 비록 무서운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움이 일지 않는다.
오히려 ‘현자여, 그대는 일찍이 부처님께 그대 자신을 바치지 않았느냐’라고 반조할 때 그에게 기쁨이 일어난다.
125.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최상품 까시(바라나시)의 천이 있다고 치자.
쥐나 좀이 그것을 갉아먹으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옷이 없는 비구에게 준다면 그 비구가 [누더기를 만들기 위해] 찢는 것을 보고서도 즐거워할 것이다.
이런 [비유의] 적용으로 그[뜻을] 알아야 한다.
126. 스승께 헌신할 때도
‘스승님이시여, 제 자신을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이 헌신하지 않으면 경책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완고하거나 훈계대로 행하지 않거나 허락 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다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는 심오한 서적을 배울 수 없다. 이 두 가지 도움을 얻지 못할 때 그는 교단에서 발판을 얻지 못한다. 머지않아 그는 계를 파하거나 환속을 할 것이다.
자기를 헌신한 자는 경책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고, 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다니지도 않고, 유순하고, 스승에 의지해서 산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두 가지 도움을 얻으면서 교단에서 향상과 증장과 번영을 얻는다.
127. 마치 쭐라삔다빠띠까(Cūḷa-Piṇḍapātika, 작은 탁발 수행승) 띳사(Tissa0 장로의 제자들처럼. 장로 곁에 세 명의 비구가 왔다.
그 가운데 한 비구는
“스승님이시여, 저는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백 길의 높이가 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비구는
“스승님이시여, 저는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제 자신을 발굽부터 시작하여 남김없이 돌에 갈아서 던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 번째 비구는
“스승님이시여, 저는 스승님을 위해서 들숨과 날숨을 멈추고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장로는
‘이 비구들은 참으로 가능성이 있는 자들이구나’라고 여기고 명상주제를 설했다.
그의 훈도에 따라 세 비구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헌신의] 이익이다. 그래서 부처님 세존께 혹은 스승께 헌신하고하고 설했다.
128. ‘의향을 구족하고 확신을 구족하여’(§123):
수행자는 탐욕없음 등 여섯 가지 굳은 의향을 가져야 한다. 이런 굳은 의향을 가진 자는 세 가지 깨달음 가운데 하나를 얻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의향이 보살들의 깨달음을 성숙하게 한다.
탐욕 없음의 의향으로 보살들은 탐욕에 허물을 본다.
성냄 없음의 의향으로 보살들은 성냄에 허물을 본다.
출가(nekkamma, 出離)의 의향으로 보살들은 재가의 삶에 허물을 본다.
한거의 의향으로 보살들은 대중생활의 허물을 본다.
벗어남의 의향으로 보살들은 모든 존재와 태어날 곳에서 허물을 본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번뇌 다한 자, 벽지불, 정등각자, 이 모든 분들은 이 여섯 가지를 통해 각자 이르러야 할 수승함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여섯 가지를 통해서 의향을 구족해야 한다.
129. 그런 확신으로 그는 확신을 구족해야 한다.
삼매를 확신해야 하고, 삼매를 존중해야 하고, 삼매로 향해야 하고, 열반을 확신해야 하고, 열반을 존중해야 하고, 열반으로 향해야 한다는 뜻이다.
130. 이와 같이 의향을 구족하고 확신을 구족한 자가 명상주제를 청할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를 얻은 스승은 제자의 마음의 움직음을 보고 그 기질을 알 수 있다.
[타심통을 얻지 못한] 나머지 스승은
‘자네는 어떤 기질을 가진 자인가?
자네에게 어떤 법들이 자주 일어나는가?
어떤 것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편안한가?
어떤 명상주제로 마음이 기우는가?’라는 등으로 물어보고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알고서 기질에 맞는 명상주제를 설해야 한다.
설할 때에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해야 한다.
선천적으로 명상주제를 습득한 자에게 한 번 혹은 두 번 [자기 앞에 앉아서] 외우게 한 뒤 주어야 한다.
가까이 사는 자에게는 올 때마다 설해야 한다.
습득한 뒤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너무 간략하지도 너무 상세하지도 않게 설해야 한다.
3.4. 땅의 까시나의 아홉 가지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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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3.4는 내용을 보면 4장의 첫머리에 들어갈 내용이다. 이에 이 편집본에서는 4장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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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청정도론의
삼매수행의 표제에서
명상주제의 습득에 관한 해설이라 불리는
제3장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