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중본기경 하권
15. 부처님께서 말이 먹는 보리를 잡수신 품[佛食馬麥品]
이때에 부처님께서는 파화리원(波和離園)으로부터 1,250인의 비구와 함께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가셨다.
이때 사위국 경계 중간에 수란연(隨蘭然)이라는 군(郡)이 있고 거기에 아기달(阿祇達)이라는 바라문이 있어서 지혜가 많고 슬기가 밝으며 부자로 살아서 견줄 이가 없었는데, 아난기기(阿難祁祁)의 집에 나아가서 논의하던 일이 끝나자 수달(須達)에게 물었다.
“지금 이 도읍 아래 어떤 신령한 분이 계신다 하던데 스승으로 존숭할 만한 이입니까?”
수달은 대답하였다.
“당신은 아직 듣지 못하셨습니까? 석가 성바지의 왕자로서 집을 떠나 도를 닦아서 도가 이룩되자 부처님이라 하는데 몸의 빛깔과 상호가 세상에서는 보던 바가 아닙니다.
법률[法戒]이 맑고 바르며 마음의 때를 비추어 없애서 신통이 밝고 통달되어 중생의 근원을 앎으로 하늘과 용이며 귀신들이 받들지 않음이 없습니다.
매양 설명하는 법의 말씀은 정밀한 이치가 신령함에 들었으므로, 나 반딧불로서는 널리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아기달은 부처님의 거룩한 덕을 듣고 다섯 가지 감정[五情]이 속으로 쓰라리므로 곧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며 만나뵐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가까운 기원에서 넓고 참된 말씀을 열고 계십니다.”
다음 날에 아기달은 기원에 나아가 문을 들어가며 부처님을 뵙자, 거룩한 광명에 공경하는 마음이 속에서 일어나므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더니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법을 말씀하시므로 기뻐 날뛰면서 곧 자리에서 물러나며 부처님과 비구승을 청하였다.
“왕림하시어 한 철 석 달 동안 교화를 드리우소서.”
부처님께서는 거룩한 뜻으로써 옛날의 인연을 아셨는지라 잠자코 청을 받으시자, 아기달은 부처님의 허락을 얻고는 하직하고 물러나 나라로 돌아갔다.
이에 아기달은 집에 돌아와 공양을 차리며 아주 세상에서 값지고 맛있는 것으로 하였는데, 이 날에 세존과 5백의 비구승들은 수란연으로 나아가셨다.
이때에 아기달은 하늘 악마에게 헷갈려서 다섯 가지 욕심에 빠졌으니,
첫째 보배의 장식이요, 둘째 여자의 즐거움이요, 셋째 의복과 음식이요, 넷째 영화와 이끗이며, 다섯째 색욕이 그것이었다.
아기달은 물러가서 후편의 별당에 들어가서 문지기에게 명하였다.
“손님과 통하지 말라. 한 철 석 달 동안에는 높고 낮음을 묻지 말고 나의 분부 있기만을 기다려라.”
여래께서 문에 이르셨으나 닫고서 통하지 않는지라, 곧 집 곁의 크게 우거진 나무 아래에 머무시며 부처님께서는 비구승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고을은 흉년인데다가 사람들이 도를 좋아하지 않으니 저마다 편리할 대로 걸식을 하여라.”
사리불만 명을 받아 혼자 도리천상에 올라가서 날마다 저절로 된 밥을 먹었다.
대중 스님들은 걸식을 하였으나 사흘째 빈손으로 돌아왔었는데, 때에 말 먹이는 이가 보리를 줄여서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 공양하였다.
아난은 그 보리를 발우에 얻어서는 마음에 몹시 슬퍼하면서 말하였다.
“여러 하늘의 이름 있는 맛과 국왕이 이바지하는 음식도 매양 그 맛이 부처님의 입에는 안 되었다 여겼거늘, 이제 이 보리를 얻었으니 매우 거칠고 나쁘구나. 어찌 차마 이것을 가져다 부처님께 공양할까?”
그리고는 얻은 보리를 가지고 한 할머니에게 나아갔다.
“부처님이란 지극히 높으시고 법을 어거하신 으뜸되는 성인이신데 이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려 하니, 할머니는 밥을 지어 주십시오. 공덕이 한량없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아난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일이 바빠서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한 부인이 부처님께서는 높으시다는 찬탄을 듣고 달려 나와 요구하였으므로, 아난이 주자 즉시 밥을 지어 주었다.
부처님께서는 잡수시고 주원을 하셨는데, 아난의 마음이 맺혀 있는지라 부처님께서는 풀어 주시려고 하여 나머지 밥을 주셨는데, 온갖 맛에 향기롭고 맛이 있어서 세상에는 없는 것이었으므로 아난은 뜻이 풀리어 말하였다.
“여래의 미묘한 덕이야말로 불가사의하구나.”
이때 세존께서는 발기국(拔奢國)으로 가시려 하면서 먼저 아난을 시켜
‘가서 아기달에게 말하라’고 하셨으므로
아난은 분부를 받고 곧 가서 말하였더니,
아기달은 아난을 보고도 뜻이 아직 깨지 못하여 바로 아난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난은 대답하였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계십니다. 그 뒤로 석 달 동안 앞서 당신의 청을 받으셨지만 부처님께서는 두 말씀이 없이 한 철을 벌써 마치셨으니, 작별을 알리고 떠나가야겠습니다.”
그러자 아기달은 부처님께서 교화하여 주셨음을 듣고 공양드리지 못한 것에 슬픔과 두려움이 엇섞였으므로, 즉시 부처님께 달려 나가서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스스로 자세히 말하였다.
“어리석고 죄가 덮여서 언약을 어겼사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그 중죄를 용서하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지극한 마음을 밝혔느니라.”
아기달은 기뻐하며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이레 동안만이라도 머무시면 공양을 올릴 수 있겠나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해가 다 되었는지라 곧 허가하셨다.
그 날 사리불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일 년의 계절도 이미 지나갔으므로 발기국으로 나아가시려 하자,
아기달은 공양하고 남은 것을 가져다 길 가운데 두루 흩어서 부처님께서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하려 하므로 부처님께서는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공양거리와 쌀, 곡식은 바로 먹어야 하는 것이요, 발로써 밟음은 마땅하지 않느니라.”
그리고는 부처님께서는 그 보시를 받으시며 곧 주원을 하시면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외도가 닦고 섬기는 바는
불을 애써 힘씀이 으뜸이 되고
학문이 날로 더욱 밝음에는
뭇 이치를 통달함이 으뜸이니라.
인간 중에 돌아가서 우러를 데는
전륜성왕이 으뜸이 되고
강물과 시내의 수원의 흐름은
큰 바다의 깊음이 으뜸이니라.
뭇 별이 공중에 있어도
해와 달의 광명이 으뜸이 되듯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보시를 받음이 가장 으뜸이니라.
아기달은 마음이 기뻐지고 맺힘이 풀려서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으며, 나라의 인민으로서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가 도의 마음을 내어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이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거룩함을 받들어서 여러 비구들이 마음 속으로 크게 의심함을 알고 기회를 보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신령하고 미묘하며 3달(達)로 중생들의 생각과 인연이 일어나는 바를 아시온데, 모르겠사옵니다. 무엇 때문에 보리를 한 철 동안 잡수셨나이까?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르쳐 주시어 대중의 의심을 풀어헤쳐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오랜 옛적에 반두월(盤頭越)이라는 큰 나라가 있었고, 그때 세상에 빈두왕(頻頭王)이라는 왕에게 유위(維衛)라는 태자가 있었는데,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도가 이루어져서 부처님이 되어서도 그대로 유위라고 하였으며 상호와 거룩한 덕은 모든 부처님의 법과 동일하나니, 따르는 비구 6만 2천 명과 함께 계셨다.
이때에 부왕은 부처님과 비구승을 공양하느라고 당기ㆍ번기를 엄숙하게 꾸미고 세상에서 제일의 보배로 성 안이 정돈되었으므로 광채가 눈부시게 빛났다.
이때에 범지가 있어서 맑고 깨끗하여 덕이 높았었는데, 제자들을 데리고 일이 있어서 성에 들어왔다가 돌아보며 뭇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슨 특별한 명절이기에 광명과 장식이 이러합니까?’
행인이 대답하였다.
‘빈두왕의 태자께서 도를 얻었기에 부처님이라 부르는데, 오늘 오셨으므로 왕과 신민(臣民)들이 공양을 하기 때문입니다.’
도사는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헷갈렸구나. 맛있는 음식을 버리며 이 사람을 먹이고 있다니, 당신이 말하는 바와 같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말을 먹이는 보리를 먹여야 한다.’
5백의 제자들은 소리를 같이하여 ‘잘한다’고 칭찬하였으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있다가 스승에게 간하였다.
‘스승의 말씀이 잘못입니다. 만약 저 분의 말과 같다면 이 사람의 덕이야말로 높으셔서 하늘의 음식을 잡수시기에 마땅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행이 높은 범지는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이요, 5백의 제자들은 바로 지금의 너희들이며, 이때에 스승에게 간한 이는 지금의 사리불이니라. 나는 이 재앙을 심었다가 지금에야 비로소 마쳤느니라.”
그리고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마다 마음과 입을 보호하며 부디 방자함이 없으라.
선과 악은 사람을 따라서 오래되어도 버려지지 않나니, 마땅히 밝은 행을 닦으며 좇아야 할 도를 얻어야 한다. 나는 배상할 것을 여기에서 마쳤느니라.”
그러자 비구들은 경전을 듣고 기뻐하며 받아들이고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