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본행경 제3권
15. 불연아란품(不然阿蘭品)
이렇게 보살은 넓은 어깨와 긴 팔로
사자의 걸음같이 조용히 걸어
아란(阿蘭)에게 나아가 생사의 출요(出要)를 물어
생ㆍ사의 관문(關門)을 헐어 버리려 했네.
멀리서 아란을 보니 제자들과
함께 모여 앉아 범전(梵典)을 강론했네.
보살은 덕이 넓어 제석천왕과 같은데
영접해 문안하고 앉아 이야기하였네.
앉고 나서 훌륭한 뜻으로 서로 보며
보살은 자비로운 뜻으로 아란을 위로하였네.
아란은 대답하되 “오래 덕화를 입었사온대
출가하여 존귀한 영화를 버리셨소.
사랑에 집착하여 얽매인 그물을 째고
굳세고 용맹함이 큰 코끼리같이
높은 이름의 전륜왕위를 버리시되
지혜로운 사람이 독이 든 밥을 버림과 같소.
옛날 전륜왕도 족히 기이하지 않아
한창때를 지나 늙으면 집을 버리고 숲에 들어가며
전륜왕위를 그 태자에게 물리니
마치 시든 꽃을 사람에게 줌과 같았소.
내 이제 의심컨대 당신은 젊고 아름다운데
6정이 하고자 함도 다하지 못하고
응당 널리 자연의 영화를 받을 것이거늘
이 아름다운 이름을 버렸으니 뉘라서 의심치 않으리.
태자의 진실함을 살펴 짐작하건대
반드시 큰 법의 그릇을 성취하리다.
정진의 덕으로써 지혜의 배를 찾아
빨리 생사의 바다 못을 건너리다.”
이때 보살은 아란의 말을 듣고
웃음을 머금고 기뻐 대답하였네.
“내 아직 일을 성취하지 못하므로 여기 왔거니와
지금 그대는 스스로 지켜 일을 반드시 성취하리라.
마치 어둠 가운데서 문득 광명을 보듯
미혹한 사람이 사람의 길 인도를 얻듯
마치 강을 건넘에 배를 만나 건너듯
그러므로 여기 와 착한 스승을 구하노라.
다행히 자비를 드리워 가르침을 보게 하라.
만약 제자가 되어 스승으로 섬긴다면
노ㆍ병ㆍ사의 괴로움을 어떻게 건질지
원컨대 이 이치를 가르쳐 보여라.”
이때 아란은 세간의 도사[世導師]에게 말하되
“자세히 들으소서. 우리 바라문의 법은
생사에 구르고 굴러 두루 돌아가고
위아래가 전도되어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듯하오.
8사사(私事)가 있으니 이것을 내법(內法)이라 하오.
또 16종의 의심되고 어지러운 여러 일 있으니
이것을 인연하여 그 사람의 뜻이 강함을 알아야 하오.
일체 세간은 이것을 인연하여 생기고 멸하며
이런 다섯 가지 성(性)과 여섯째 식(識)과
일곱째 의(意)와 여덟째 유예(猶豫) 등이며
무릇 5정(情)이 있으면 5욕(欲)이 있다오.
또 여섯 가지 잘못의 어지러움을 깨닫소.
이런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을 각업(覺業)이라 부르며
적선(赤仙)의 지위가 되면 다 깨달아 알므로
범천(梵天)이라 부르고 일체를 다 아는 것이오.
또 이것을 잘 아는 것을 열반업[泥洹業]이라 하며
생사의 뿌리가 익어 끌어 얽매었으니
다만 이것을 깨닫고 다른 것은 결정하지 않고
우리들은 여기서 방편을 구하오.
우리들의 이 열반을 당신이 깨치고자 하거든
어떤 지혜로운 이가 이것을 열반이라 하거나
혹은 선정의 보(報)를 열반이라 하듯이
지금 서로 생사에 뛰어나는 길을 가르쳤으니
뜻에 맞게 부지런히 하여 병에 약을 구하듯 하시라.
옛 관정한 선인으로 지족(知足)이라 하는 이와
정행(定行)이라 하는 이가 오래 알몸을 드러내고
모두 다 해를 쫓아 도를 행하였으며
다시 해탈을 구하였다 하네.”
보살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뜻을 돌이켜 이 근본을 찾아 살피니
보살은 겁을 쌓아 깨달은 지혜라
그 흠집을 깨닫고 바라문에게 일렀네.
“이미 그대들의 심오한 지혜를 들으니
이른바 각업(覺業)이란 생사에서 벗어난다 하나
내가 아는 바로는 그것은 그렇지 않도다.
마치 씨앗이 있어야 반드시 나와지듯
모든 정(情)이 각각 다른데 이것을 해탈이라 하네.
만약 상대가 오면 도리어 얽매임이 되나니
지(地)ㆍ수(水)의 기운은 또한 씨가 없이
나지 않는 것이며 인연으로 얽힘이라네.
만약 씨앗이 상대와 서로 만나면
반드시 다시 난다고 나는 이렇게 아노라.
행이 청정하고 때[垢]가 엷어야 수명이 길며
뜻으로 벗어났다 해야 이것을 열반이라 하리라.”
아란(阿蘭)의 법을 보살은 그렇지 않다 하고
다시 가란(迦蘭)에게 나아가 법을 묻자
여덟 가지 뜻을 해설하여 보살은 곧 알았네.
적은 식[微識]에 짐짓 집착하여 깨달음에 티가 있으며
그 뜻을 체득하면 법을 얻음이라 한다네.
보살은 이 때문에 가란법(迦蘭法)을 버리고
곧 니련선하[尼連禪江] 가에 이르러
청정행을 닦고 선정에 들었네.
금빛의 몸은 광명이 빛나고 빛나
마치 연꽃이 햇빛에 비침과 같았네.
하루 삼씨 한 알이나 멥쌀 반 개를 드시고
음식을 주린 지 오래이므로 형체가 야위었다네.
몸의 피가 다하고 기름도 말라
기력이 쇠잔하고 몸도 피로하여서
온 세상 중생들은 참고 견딜 수 없거니
이렇게 피곤한 채 6년이 지났다네.
보살은 이렇게 몸을 드러내었으나
아직도 감로의 법약을 마시지 못하였다네.
뜻을 돌리어 생각컨대 도에 옳음이 없었으며
옛적 염부나무 아래 억 가지 훌륭함이 옳았으나
또한 이처럼 수척한 몸으로
이 일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네.
모든 천왕이 공중에서 음식을 먹고
기력을 충실히 하여 도를 이루라 권하였네.
“뜻으로 존중함이 수미산 같았고
부처를 구하는 뜻이 매우 중대한지라
뜻이 비록 굳건해 억세기 금강 같으나
음식이 충실치 않아 몸을 가눌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자 보살은 문득 일어나
음식을 더 드시고 그 몸을 기르자
시봉하던 다섯 사람은 보살이 밥 먹는 것을 보고
버리고 피하여 다른 한가한 곳에 갔다네.
이때 문득 크게 기쁜 마음으로
두 처녀의 유미(乳糜) 감로의 베풂을 받고
곧 미묘한 보리수 밑으로 나아가되
조용히 걸어 결정코 생사에서 벗어나리라 하였네.
공덕을 쌓아 장엄함이 드높아
발로 땅을 밟자 곧 크게 진동하였네.
이때 크고 검은 바다의 용왕이
발로 땅을 밟자 진동하는 좋은 소리를 들었네.
그리고 문득 의심이 생겨 곰곰이 생각하자
‘오랜 옛적에도 이런 진동 소리를 들었으리니
세상을 인도하는, 모든 스승 가운데 스승이
그 발로 땅을 밟자 이런 진동 소리가 난 것이었네.’
땅 귀신도 크게 기뻐 흔들거리고 춤추며
진동 소리 은은하여 버림이 있는 듯
세간의 큰 도사가 나타나려 하므로
땅도 조용히 움직여 뛰놀고 웃는 듯하였네.
진동하는 소리에 따라 물에서 용이 솟구치니
그 형상이 커서 검은 산 같았다네.
갖가지 보배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마치 검은 구름이 번갯불로 장식한 듯하였다네.
약간 머리를 변화시켜 널리 공중을 덮고
몸에서 광명을 놓되 불이 타듯 하니
마치 구름덩이가 해 가까이 오듯 하였다네.
용은 이런 상으로 보살의 발에 절하며
공경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찬탄하였네.
“내 먼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심을 보나니
과거 부처님에게서도 지금과 같은 상서를 보았네.
유위불(維衛佛) 이래로 다시 가섭불에 이르도록
여섯 부처가 세상에 나오는 상서를 보았다네.
존자는 지금 일곱째 상서를 나타내되 그와 같이
광명의 상이 세상을 밝게 비추니
오늘 반드시 감로를 성취하리라.
지금 존자의 감[行]을 보니 발을 떼는 걸음걸음에
이 땅도 때를 따라 조용히 진동하네.
광명도 특별하여 햇빛보다 뛰어나니
오늘 반드시 소원을 원만히 이루리.
푸른 새를 봐도 에워싸 따르며 날아
푸른 구름 가운데 해의 묘한 빛이 나타남 같네.
사랑에 넘치는 소리로 보살을 공경하니
오늘 반드시 불도를 이루오리라.
짐작하건대 오늘은 바람도 맑아 고르고
온갖 물도 맑게 허공이 청명함 같습니다.
나는 새도 다정스레 부드럽게 우느니
오늘 일체 지혜를 이루리.
보살의 몸을 보니 금산과 같이 빛나
갖가지 보배를 장엄하였네.
보살의 몸은 온갖 상호로 꾸몄으니
오늘 반드시 부처의 도(道) 그릇을 이루리.
둥근 빛이 수레바퀴 같은 그 중앙에 있어
햇빛처럼 휘황하여 다섯 가지 채색이라
이제 세간의 어둠을 끊을 듯하여라.
이렇게 오래지 않아 부처의 해가 뜨리니
숲 나무도 다 움직여 이름난 꽃들을 흩뿌리네.
일체 온갖 꽃이 같은 때에 활짝 피고
나무도 무심히 굽혀 마음이 있는 양
오늘 반드시 일체가 정례하네.
흰 연꽃이 달이 밝아 피듯 하며
햇빛이 밝게 비추자 부용이 피네.
보살은 이제 부처의 해ㆍ달빛을 나타내니
천상과 인간의 마음이 쾌락한 꽃인 양 열리네.
지금 모든 상서가 나타남을 보건대
매우 만나기 어려운 우담바라꽃 같이
꽃을 만나기 어렵듯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네.
두 가지 어려움이 함께 세상에 나타나니
오늘 꼭 지혜의 날카로운 화살로
반드시 번뇌의 왕궁을 쳐부수었던
과거 부처의 처소가 박두하여 온다네.
오늘 반드시 감로를 마시게 되리니
지금 결정한 이의 계(戒)를 관찰하건대
몸에 80종호로 장엄하여서
모든 천상 세계 인간의 몸을 비추네.
오늘 반드시 천상과 인간의 숭배를 받으시리.”
검은 용[驪龍]은 이렇게 보살을 찬탄하고서
샘물 위로 지나 보리수로 나아갔네.
멀리서 보리수를 보자 천상의 장엄같이
마치 천상의 주도수(晝度樹)와 같네.
손에 길상초(吉祥草)를 가져 받들어 올리고
보살이 이름을 묻자 곧 대답하였네.
“모든 사람이 보고 길상(吉祥)이라 불렀습니다.”
보살은 생각하되 ‘내 반드시 길상하리라.’
곧 그에게 보드라운 풀을 받아
금강좌(金剛座)에 흩으니 풀은 모두 가지런했고
가부를 맺고 앉아 뜻은 굳었네.
안의 심식(心識)으로 자세 살펴 가늠하되
‘마군의 경계 온갖 번뇌의 티끌을 건지지 못하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또한 밥도 먹지 않으리라.
가령 사대육신이 산산조각이 나고
해ㆍ달이 땅에 떨어지고 수미산이 허공에 올라
이렇게 온갖 것이 변할 수 있을지언정
나는 마침내 이 서원을 어기지 않으리라.’
서원을 마치자 모든 천왕도 크게 기뻐했네.
“보살은 뜻을 내어 마군을 항복시키려 하였네.
외도이학(外道異學)도 그렇지 못하듯
천상과 인간과 용의 찬탄한 것같이
중생들에게 찬탄한 바를 입게 하고
시방 중생들도 소원을 이루기를 원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