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아비달마론 하권
4.1. 상응행(9), 인(忍)
인(忍: kṣānti)에는 고ㆍ집ㆍ멸ㆍ도의 법지인(法智忍)과 고ㆍ집ㆍ멸ㆍ도의 유지인(類智忍) 등 여덟 가지가 있다.
이 여덟 가지는 능히 결정지(決定智)를 낳는 뛰어난 혜(慧)로서 고(苦) 등 사성제의 이치를 인가하는 의식작용이기 때문에 인(忍)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 인 중에서 이 여덟 가지는 오로지 관찰법의 인인데, 이는 견(見)과 혜(慧)로서 지(智)를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결정’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지의 뜻이기 때문이다.
즉 이 여덟 가지는 대상을 추리 판단하려는 목적의식[推度意樂]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으며, 숙고와 판단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고법지인(苦法智忍)은 욕계 견고소단인 열 가지 수면을 획득함과 동시에 소멸하며, 고법지(苦法智)는 그 같은 단(斷)이 획득됨과 동시에 생겨난다.
[고법지인(苦法智忍): 욕계 고제를 관찰 인가함으로써 고(苦)에 대한 법지(法智)를 일으키게 하는 의식작용.]
곧 인(忍)이란 무간도(無間道)이고 지(智)는 해탈도(解脫道)로서, 욕계 견고소단인 열 가지 수면을 대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집 안에서 도적을 문 밖으로 쫓아내면 다른 한 사람은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고류지인(苦類智忍)은 색ㆍ무색계의 견고소단인 열여덟 가지 수면을 획득함과 동시에 소멸하고, 고류지(苦類智)는 그 같은 단이 획득됨과 동시에 생겨나는 것이다.
[고류지인(苦類智忍): 색ㆍ무색계의 고제를 관찰 인가함으로써 법지(法智)와 유사한 지식을 일으키게 하는 의식 작용.]
그리고 나머지 집ㆍ멸ㆍ도의 경우 역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이와 같이 네 가지 마음이 삼계의 고제를 현관하는 것처럼 집ㆍ멸ㆍ도의 경우에 있어서도 네 가지 마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 가지 마음: 고제에 대한 두 가지 관찰 인가인 고법지인과 고류지인 및 그로 인해 생겨난 두 가지 지식인 고법지와 고류지.]
곧 이 같은 16심(十六心)이 삼계의 사제를 능히 현관하여 견소단인 여든여덟 가지 번뇌를 끊어 예류과(預流果)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아직 끊어지지 않고 남은 번뇌는 욕계에 네 가지(탐ㆍ진ㆍ만ㆍ무명), 색계ㆍ무색계에 각기 세 가지(탐ㆍ만ㆍ무명) 등 수소단의 열 가지 수면이다.
이 가운데 욕계 네 가지 수면은, 이를테면 갈대단처럼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 것인데, 그 모두는 상상(上上)으로부터 하하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로 나뉜다.
그리고 그것들을 대치하는 무간도와 해탈도에도 역시 아홉 가지가 있다. 즉 하하품의 도는 능히 상상품의 수면을 대치하고, 나아가 상상품의 도는 능히 하하품의 수면을 대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여섯 가지 번뇌(상상품에서 중하품까지)가 끊어질 때 일래과(一來果)를 획득하며, 아홉 가지 모두가 끊어질 때 불환과(不還果)를 획득한다.
욕계 네 가지 수면은 모두 아홉 가지로 나뉘고, 그것들을 대치하는 무간ㆍ해탈의 도 역시 각기 아홉 가지가 있는 것처럼 색계ㆍ무색계에는 각기 사지(四地: 4정려와 4무색정)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지 중의 번뇌[所治]와 대치(能治)도 역시 각기 아홉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점차 그러한 8지의 수면을 끊고, 나아가 유정(有頂: 비상비비상처 번뇌를 말함)의 하하품마저 다할 때 아라한과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류과 등 사과(四果) 중간에 있는 여러 도와 앞의 견도(見道)를 사향(四向)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위(果位)에 선행하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과위를 향해 나아가는 상태, 즉 ‘과향(果向)’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성도(聖道)를 닦는 성자에는 이처럼 4향으로 나아가는 자와 4과에 머무는 자 등 여덟 가지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있다. 그리고 이 같은 4향 4과는 종성의 차별에 따라 다시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 즉 둔근(鈍根)과 이근(利根)의 종성인 이생(異生)이 만약 견도에 들어 제15심(心)에 이르면 전자를 수신행(隨信行), 후자를 수법행(隨法行)이라고 한다.
다시 이 두 가지 종성이,
이를테면 제16심으로부터 금강유정(金剛喩定)에 이르는 수도위에 들면 전자를 신승해(信勝解)라고 하고, 후자를 견지(見至)라고 한다.
또한 이 두 가지 종성이 진지(盡智)로부터 시작하여 아라한의 최후심에 이르는 무학위에 들면 전자를 시해탈(時解脫)이라 하고, 후자를 불시해탈(不時解脫)이라고 한다.
이상 모든 심소의 종류 차별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갈래가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마음에 근거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심소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我]에 근거한 것을 나의 것[我所]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상과 같은 심소를 심상응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득(得) 등 불상응행은 이와 반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