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3권
[원수와 적을 꺾고 4마를 뛰어 넘는 것]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원수와 적을 굴복시켜 4마(魔)를 초월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허깨비와 같은 지혜로 5온(蘊)의 모든 법이 다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통달한다면 5온의 마(魔)를 초월할 수 있고,
모든 법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임을 통달한다면 번뇌의 마를 초월할 수 있으며,
인연이 일어나는 법을 통달한다면 생사의 마를 초월할 수 있고,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자재천(自在天)의 마를 초월할 수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보살이 이렇게 관찰함으로써 온갖 장애를 일으키는 일체의 마군들이 그 틈을 엿보지 못하리라.
마업(魔業)이란 어떤 것인가?
소승(小乘)을 즐기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보리의 마음을 옹호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유정들을 차별하여 보시를 행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태어날 곳을 구하기 위해 계율을 지키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어떤 색상(色相)을 구하기 위해 인욕을 닦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세간의 일을 위해 서로 상응하여 정진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선정의 맛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지혜를 가짐으로써 저열한 법을 깔보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생사에 있어서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온갖 선근(善根)을 짓되 회향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번뇌를 견디지 못해서 피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자기의 허물을 숨기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보살에게 질투심을 내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바른 법을 비방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은혜를 배반하여 갚을 줄 모르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모든 바라밀을 구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바른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설법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이익을 바라고서 설법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방편을 버림으로써 유정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4섭법(攝法)을 버리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계율을 헐뜯거나 깨뜨리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계율을 지키는 이를 깔보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성문(聲聞)의 행에 수순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연각(緣覺)의 승(乘)에 수순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함이 없는 법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함이 있는 법을 싫어하여 여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마음에 의혹을 품고서 유정을 이롭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들은 법을 의심하여 이치에 따라 통달하지 않고 함부로 자기의 뜻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아첨하거나 속이기를 좋아하여 거짓으로 가엾이 여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거친 말씨로써 꾸짖거나 모욕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죄를 저지르고도 싫어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자신의 법에 염착(染著)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들은 것이 적으면서도 만족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바른 법을 구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법이 아닌 것을 구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장애로 덮이고 얽매인 법에 대해 다스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업이고,
사문으로서 마음과 입을 청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마업이며,
사문으로서 더러움을 참아 견디는 것이 바로 마업이니라.
선남자여, 이것도 그러하거니와 내지 저 열 가지의 선하지 않은 업을 행하기 좋아하고 선한 법을 버리는 것이 다 마업이니라.
보살이 만약 이 마업을 초월하려면 네 가지의 법을 성취해야 하느니라.
그 네 가지의 법이란,
보리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6바라밀을 부지런히 닦아서 방일하지 않는 것이 둘째이며,
뛰어난 지혜에 머물러 유정들을 성숙시키는 것이 셋째이고,
매우 깊은 이치에 머물러 바른 법을 옹호하는 것이 넷째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 법에 상응하여 성취한다면, 결정코 모든 마군과 원수를 무찌르게 되리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4마(魔)를 초월하는 것이니라.
[복덕을 쌓아서 모든 유정들을 위해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는 것]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한량없는 복덕의 자량(資糧)을 쌓아서 모든 유정들을 위해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일체 유정들에게 한몸과 같은 큰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켜서 선정에 머물되 와서 구하는 유정들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을 다 베푼다면, 다함이 없는 복덕으로 보배로운 손[寶手]을 얻어 유정들로 하여금 널리 수용하게 할 것이니라.
한편으로 그 뜻이 청정하고 마음이 평지와 같아서 높거나 낮음이 없어 무엇을 바라는 유정들에게 다 풍부한 이익을 베풀고,
또한 계율이 청정하기 때문에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모든 감관을 잘 옹호하며,
나아가서는 그 일체 보시의 모임을 마련하는 동시에 다라니를 얻어 변재를 성취하게 되리라.
이와 같이 선근을 쌓고 보리에 회향하여 유정들을 널리 이롭게 하니, 그 바깥의 4대(大)가 일체의 세간을 위해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는 것처럼, 안의 4대 역시 일체의 유정들을 위해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느니라.
보살 자신도 생각하기를
‘내가 쌓은 이 일체의 선근과 뛰어난 법의 지혜는 그 어느 것도 유정들을 위해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지 않음이 없노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한량없는 복덕의 자량을 얻어 모든 유정들을 위해 그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없는 세간에 출현하여 유정들을 위해 온갖 불사를 일으키는 것]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부처님께서 안 계신 세간에 출현하여 유정들을 위해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보살이 그 도리에 계합함과 계합하지 못함을 분명히 아는 지혜[處非處智]를 내기 위해서는 10력(力)의 업을 닦아야 하고,
번뇌를 끊은 지혜[漏盡智]를 내기 위해서는 4무소외(無所畏)를 닦아야 하고,
서른 가지의 걸림이 없는 지혜를 내기 위해서는 18불공법(不共法)을 닦아야 하고,
부처님 눈의 광명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알아보는 저 5안(眼)을 닦아야 하고,
일체의 신통을 내기 위해서는 전생을 아는 업을 닦아야 하고,
보리를 원만히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선한 법을 닦아 그 몸ㆍ입ㆍ뜻에 대한 모든 번뇌의 업을 끊어야 하고,
장엄한 상호를 갖추기 위해서는 일체 복덕의 자량이 되는 업을 닦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만약 이러한 법을 닦아 구족한다면, 그야말로 부처님께서 안 계신 세간에 출현하여 유정들을 위해 크나큰 불사를 일으켜 성취할 수 있으리라.
[해인 삼매를 얻어서 일체 유정들의 마음의 행에 물들지 않는 것]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해인(海印)삼마지를 얻어 일체 유정들의 마음의 행에 더렵혀지지 않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저 해인삼마지라고 하는 것은 마치 남섬부주(南贍部洲) 안에는 갖가지의 모습과 갖가지 종류의 유정들이 다 바다 속에서 그 그림자와 형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큰 바다라고 일컫는 것처럼,
이러한 일체 유정들의 마음의 종류와 음성의 그림자가 다 보살의 마음의 바다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해인삼마지라고 하느니라.
또 저 큰 바다가 한결같은 한 가지의 짠맛인 것처럼,
보살이 한 가지의 법의 맛으로 해탈의 지혜를 성취함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가 조수의 시기를 어기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알맞은 시기와 알맞지 않은 시기를 관찰함으로써 도량에 앉아 시기를 어기지 않고 보리를 성취함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가 썩은 송장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그 일체의 번뇌의 습기와 성문ㆍ연각의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음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가 사방으로 흐르는 물을 다 받아들이되 늘지도 줄지도 않는 것처럼,
보살이 일체의 법을 다 받아들이되 늘거나 줄지 않음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의 넓이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의 바다의 넓이가 끝이 없음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가 너무나 넓어서 그 밑을 측량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살의 지혜의 바다를 일체의 성문ㆍ연각들이 측량할 수 없음도 그러하니라.
또 저 큰 바다가 한량없는 세계의 의지할 바를 마련해 주는 것처럼,
보살이 모든 유정들의 의지할 바를 마련해 줌도 그러하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해인삼마지를 얻어 그 일체 유정들의 마음의 행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니라.
[유정들의 마음의 행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유정들의 마음의 행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마치 허공의 바람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여, 보살이 그 일체의 법에 얽매인 소견을 멀리 여읨으로써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으니, 마치 큰바람이 허공 가운데서 조금도 더렵혀지거나 물듦이 없는 것과 같느니라.
보살이 일체의 법에 대해 마음의 집착이 없는 것도 그러하니라.
이것을 일컬어 보살의 집착 없는 마음이 저 허공의 걸림 없는 바람과 같다고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