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장엄경론 제4권
11. 명신품(明信品)
[믿음의 모양]
[釋] 이미 위없는 보리에 수순함을 말하였다.
보리란 이른바 믿음이니, 이 믿음의 모양을 이제 마땅히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이미 난 것과 나지 않은 것과
바르게 받음과 유사하게 받음과
남의 힘과 또한 자기의 힘과
미혹함이 있음과 또한 미혹하지 아니함과
앞에 나타남과 앞에 나타나지 아니함과
법을 들음과 뜻을 구함과
관찰하는 것들의 열세 가지를
믿는 모양에서 분별하겠다.
[釋] 믿는 모양의 차별에 열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미 생겨난 믿음이니 이른바 과거와 현재의 믿음이요,
둘째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믿음이니 이른바 미래의 믿음이요,
셋째는 바로 받는 믿음이니 이른바 안의 믿음이요,
넷째는 받는 것 같은 믿음이니 이른바 밖의 믿음이요,
다섯째는 남의 힘으로 믿는 것이니 이른바 거친 믿음으로서 착한 벗의 힘을 의지하여 생기는 것이요,
여섯째는 자기 힘으로 믿는 것이니 이른바 미세한 믿음으로서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요,
일곱째는 미혹함이 있는 믿음이니 이른바 나쁜 믿음으로서 전도(顚倒)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미혹하지 않는 믿음이니 이른바 좋은 믿음으로서 전도됨이 없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앞에 나타나는 믿음이니 이른바 가까운 믿음으로서 장애가 없기 때문이요,
열째는 앞에 나타나지 않은 믿음이니 이른바 먼 믿음으로서 장애가 있기 때문이요,
열한째는 법을 듣는 믿음이니 이른바 듣고 믿는 것으로서 들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요,
열두째는 뜻을 구하는 믿음이니 이른바 생각하여 믿는 것으로서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요,
열셋째는 관찰의 믿음이니 이른바 닦는 믿음으로서 닦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믿음의 종류의 차별]
이미 믿음의 모양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믿음의 종류의 차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가히 뺏음과 사이가 있음과 사이 없음과
많음이 있음과 또한 적음이 있음과
덮음이 있음과 덮음이 없음과
서로 응함과 서로 응하지 않음과
모임[聚]이 있음과 또한 모임이 없음과
지극히 들어감과 또한 멀리 들어감이다.
다시 이 열세 가지의 뜻을
믿음의 종류로 분별하였다.
[釋] 믿음의 종류에 차별되는 것이 또한 열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히 뺏는 믿음이니 이른바 하품(下品)의 믿음이요,
둘째는 사이가 있는 믿음이니 이른바 중품(中品)의 믿음이요,
셋째는 사이가 없는 믿음이니 이른바 상품(上品)의 믿음이다.
넷째는 많이 믿는 것이니 이른바 대승의 믿음이요,
다섯째는 적게 믿는 것이니 이른바 소승의 믿음이요,
여섯째는 덮음이 있는 믿음이니 이른바 장애가 있는 믿음으로서 능히 뛰어난 데 나아가지 못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덮음이 없는 믿음이니 이른바 장애가 없는 믿음으로서 능히 뛰어난 데 나아감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서로 응하는 믿음이니 이른바 성숙하게 닦은 믿음으로서 항상 행하고 공경을 행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서로 응하지 않는 믿음이니 이른바 성숙하게 닦은 믿음이 아닌 것으로서 앞의 두 가지 행을 벗어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열째는 모임이 있는 믿음이니 이른바 결과가 있는 믿음으로서 능히 큰 보리를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열한째는 모임이 없는 믿음이니 이른바 결과가 없는 믿음으로서 능히 큰 보리를 얻지 못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요,
열두째는 지극히 들어가는 믿음이니 이른바 공용(功用)의 믿음으로서 초지(初地)로부터 7지(地)에 이르기 때문이요,
열셋째는 멀리 들어가는 믿음이니, 이른바 극히 청정한 믿음으로서 8지(地)로부터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다.
[믿음의 장애와 어려움]
이미 믿음의 종류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믿음의 장애와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많이 잊어버림과 또한 게으름과
미혹된 행과 아울러 악한 벗이며
선리(善羸)와 삿된 기억과
방일(放逸)함과 다시 보고 들음이 적음과
듣고 기뻐함과 생각하고 기뻐하며
정(定)에 인한 증상만(增上慢),
마땅히 알아라. 이러한 허물들은
믿음의 모양에 장애가 된다.
[釋] 장애라 하는 것은 서로 어긋난다는 뜻이다.
‘많이 잊는다’고 함은 이미 생긴 믿음에 장애가 된다.
‘게으르다’고 함은 아직 생기지 않은 믿음에 장애가 된다.
‘행이 미혹하다’고 함은 바르게 받고 유사하게 받는 믿음에 장애가 된다. 먼저 받은 소수(所受)와 능수(能受)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악한 벗’이라고 함은 타력(他力)의 믿음에 장애가 된다. 그것은 전도된 법으로써 받게 하기 때문이다.
‘선리(善羸)’라고 함은 자력(自力)의 믿음에 장애가 된다.
‘삿된 기억’이라고 함은 미혹하지 않은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
‘방일함’이라고 함은 현전(現前)의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
‘적게 보고 듣는다’고 함은 법을 듣는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의 도리[了義]를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듣고 기뻐한다’고 함은 뜻을 구하는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유(思惟)함이 적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기뻐함과 정(定)에 인한 증상만’이라 함은 관찰하는 믿음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닦음이 적고 자세하게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장애가 믿음의 종류를 장애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싫어하지 아니함과 익히지 아니함과
싫어함이 있음과 또한 덮음이 있음과
응함이 없음과 모임[聚]이 없는 것이
믿음의 종류를 장애하는 줄 마땅히 알아야 한다.
[釋] ‘익히지 않았다’고 함은 가탈(可奪)의 믿음과 유문(有聞)의 믿음에 장애가 된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함은 작은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생사(生死)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싫어함이 있다’고 함은 큰 믿음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 그것은 생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덮음이 있다’고 함은 덮음이 없는 믿음에서 장애가 된다.
‘응함이 없다’고 함은 서로 응하는 믿음에서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모음이 없다’고 함은 모음이 있는 믿음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공덕]
이미 믿음의 장애와 어려움을 나타내 보였으니,
다음에는 믿음의 공덕에 대해 찬탄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믿음에는 큰 복덕이 있고
뉘우치지 아니하고 크게 기뻐하며
무너지지 아니하고 장차 견고하고
지위에 나아가고 아울러 법을 얻고
자신에게 이익되고 또 남에게 이익되며
또한 다시 여러 신통에 빠르니
이러한 여러 공덕으로써
믿음의 이익을 찬탄한다.
[釋] ‘큰 복덕’이라고 함은 현재의 믿음을 찬탄한 것이다.
‘뉘우치지 않는다’고 함은 과거의 믿음을 찬탄한 것이니 따라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기쁨’이라 함은 바르게 받는 믿음과 유사하게 받는 믿음을 찬탄한 것이니 결정코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
‘무너지지 않는다’고 함은 벗의 힘으로 믿는 것을 찬탄함이니 그것은 바른 길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견고하다’고 함은 자기 힘으로 믿는 것을 찬탄함이니 그것은 물러서거나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위에 나아간다’고 함은 미혹하지 않는 믿음과 현전의 믿음과 법을 듣는 믿음과 뜻을 구하는 믿음과 관찰하는 믿음과 사이가 있는 믿음을 찬탄한 것이다.
‘법을 얻는다’고 함은 사이가 없는 믿음을 찬탄한 것이다.
‘자신에게 이익된다’고 함은 적은 믿음을 찬탄한 것이다.
‘남에게 이익된다’고 함은 많은 믿음을 찬탄한 것이다.
‘속히 통한다’고 함은 자기 분수의 믿음을 찬탄한 것이니 이른바 덮음이 없는 믿음과 서로 응하는 믿음과 모음이 있는 믿음과 극히 들어가는 믿음과 멀리 들어가는 믿음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개와 거북과 노예와 왕을 비유로
순서대로 네 가지의 믿음에 비유하니
하고자 함을 익히고 여러 정(定)을 익히며
자신에게 이익되고 남에게 이익되는 사람이다.
[釋] 비유하면 굶주린 개가 먹을 것을 구하여 싫어함이 없듯이
모든 하고자 함을 익히는 사람의 믿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항상 가지가지를 믿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눈먼 거북이가 물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과 같이
모든 외도의 정(定)을 익히는 사람의 믿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오직 세간의 정(定)을 닦아 익힐 줄만 아는 것이다.
비유하면 도적과 노예가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이
모든 자기의 이익을 부지런히 짓는다. 사람의 믿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사를 겁내서 방편을 부지런히 한다.
비유하면 대왕(大王)이 마음대로 조칙(詔勅)을 내리는 것과 같이
이타(利他)하는 모든 사람의 믿음도 또한 이와 같아서 교화를 더해감에 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보살은 여러 믿음을 스스로 알아서 널리 분별하여 그들로 하여금 앎을 얻게 하고 이와 같이 여러 중생들에게 권하여 대승의 믿음을 내게 한다.
[하열한 마음을 막음]
이미 믿음의 공덕을 찬탄하였으니,
다음에 하열(下劣)한 마음을 막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사람의 몸과 여기저기의 처소와
시절이 다 한량없어
이 세 가지의 인(因)으로 보리를 얻으니
하열(下劣)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釋] ‘사람의 몸과 여기저기의 처소와 시절이 다 한량없다’고 함은 위없는 보리를 얻는 데는 세 가지 인의 한량없음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사람의 몸이 한량없는 것이니, 인간세상의 중생들이 한량없음을 얻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기저기의 처소가 한량없는 것이니, 시방세계가 한량없음을 얻기 때문이다.
셋째는 시절이 한량없는 것이니,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찰나찰나가 한량없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세 가지의 인으로 보리를 얻으니 하열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고 함은 이 세 가지의 인이 한량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보살이 위없는 보리에 있어서 마땅히 물러나 굴복하여 하열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복덕이 뛰어남]
이미 하열한 마음을 막았으니,
다음에는 복덕이 뛰어남에 대하여 나타내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복을 얻음은 그에게 보시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자신의 수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남이 설한 대승에 의지하고
자의적인 법에 의지하지 말라.
[釋] ‘복을 얻음은 그에게 보시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자신의 수용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고 함은 비유하면 음식을 그에게 베풀면 큰 복(福)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을 이롭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용이 능히 큰 복전을 얻음이 아니다’고 함은 자기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문] 만일 그러하다면 보살이 어찌하여 복을 얻습니까?
[답] 남이 설한 대승에 의지하고 자의적인 법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이 남이 설한 대승 경전에 의지하여 대복덕을 얻으니, 자기의 이익에 의지하여 설한 소승 경전은 대복덕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과(果) 얻음]
이미 뛰어난 복에 대하여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과(果) 얻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큰 법은 큰 믿음을 일으키고
큰 믿음의 과는 세 가지가 있으니
믿음이 더하고 복이 더하고
부처님의 공덕의 체를 얻는다.
[釋] ‘큰 법은 큰 믿음을 일으키고 큰 믿음의 과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이른바 지혜 있는 사람이 대승의 성스러운 법에서 큰 믿음을 내고, 이 큰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과를 얻는 것이다.
[문] 어떠한 것들의 과를 얻습니까?
[답] 믿음이 더하고 복이 더하며 부처님의 공덕의 체를 얻는다고 하였다.
이는 첫째로 큰 믿음의 과를 얻어서 믿음이 증장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큰 복의 과를 얻어서 복이 증장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큰 보리의 과를 얻어서 공덕을 비길 만한 이가 없고 부처님의 체가 크기 때문이다.
「명신품(明信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