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하권
15. 자부공회경(子父共會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석국(釋國)에 계실 적에 천 제자범지(弟子梵志)를 가르치시니 사람들마다 모두 늙은 나이에도 응진(應眞)과 육달(六達)을 얻어 구하는 바를 모두 갖추었다.
부처님은 다시 나라와 고을마다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시다가 다시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 밖의 니구류(尼拘類) 동산에 이르시니 가유라위성 안에 있던 모든 석씨들은 부처님께서 나이 많은 응진들과 천 비구들을 가르쳐주신 뒤에 이 나라에 오셔서 성 가까이 있는 동산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서로 이르기를
“첫닭이 울면 모두 모이자”하고는 이렇게 상의하였다.
“현자들이여, 태자께서 도를 즐기시지 않고 차가월왕(遮加越王)이 되셨다면 우리들은 모두가 그의 백성이 되었을 것이나, 이제 칠보를 버리시고 도를 닦아 부처님이 되셨으니 우리들은 지금 장자의 집마다 한 사람씩을 내어 사문이 되게 합시다.”
모든 석씨들은 이렇듯 무리가 더욱 늘더니 문득 가유라위성을 나가니 이는 세존의 덕성을 뵙고자 하고 밝으신 법을 듣고자 함이었다.
이때 석씨네 여자들도 모여서 함께 부처님 처소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밝은 법을 듣고자 함이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신족(神足)의 선정에 들어가셨다가 선정에서 나오시어 문득 허공을 걸으시니 모든 석씨들은 부처님께서 허공을 걸으시는 것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면서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때에 열두단왕(悅頭檀王:정반왕)이 문득 머리 숙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한 쪽에 섰으니 가유라위성의 백성들은
“왕이 부처님께 절을 하였으니 무슨 법인가. 아들에게 절을 하시다니…”하면서 불평을 하였다.
왕은 백성들이 모두 이렇게 불평한다는 말을 듣고 문득 이렇게 말하였다.
“현자들이여, 이 태자가 처음 탄생할 때에 땅이 크게 진동하고 큰 광명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 비추었으며, 태어나자마자 문득 일곱 걸음을 걷되 기대는 바가 없었으며
좌우를 돌아보고 문득 외치기를
‘삼계가 매우 괴로우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하였다.
하늘무리들은 공중에서 흰 일산을 가지고 덮어주고, 또 마니꽃[摩尼花]을 흩으며, 또 오백 개의 북을 쳐 풍악을 연주하며, 또 향수(香水)를 뿌려 태자와 백성들을 목욕시키니 그때 나는 태자에게 절을 했으니 이것이 첫 번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태자가 염부나무 동산의 나무 밑에 계실 때 일찍 일어나 거닐다가 앉거나 누우면 나뭇가지가 모두 태자의 동쪽에서 그늘을 드리우고 낮부터 저녁때까지 나뭇가지는 모두 서쪽에서 태자에게 그늘을 지워 주었습니다.
나무도 태자의 몸을 거스리지 않거늘 모든 백성이겠는가? 그때에 내가 태자에게 절을 했으니 이것이 두 번째 입니다.”
그때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제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분이 되셨기에
머리 숙여 두루 관찰하시는 님의 발에 예합니다.
처음 태어나실 때엔 천지가 진동하였고
나무그늘에 앉으시면 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네.
그때에 부처님께 신통력을 거두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비구승들이 그 앞의 윗자리에 앉고 모든 석씨들과 석씨네 여자들도 모두 와서 함께 머리 숙여 부처님께 절하고 자리에 앉으니
왕도 자리에 나아가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코끼리와 말에다 황금수레 메워서
대(臺)와 각(閣)사이로 다니시고
황금발[金足] 온누리의 땅을 두루 밟으시니
발에 어찌 때가 끼리요.
신통스러운 발로 당신의 수레 삼아
마음대로 끝없는 무리 제도하시네.
이렇듯 신비한 수레를 타시니
세간의 수레야 어찌 오랠 수 있으리요.
곱고 보드라운 옷을 입으셨으나
입은 것이 그대로 몸의 맵시이어라.
황금이슬 몸에 걸치고 계시나
이 옷이 무슨 좋은 바 있으리요.
나는 왕법(王法)으로 옷을 삼으나
세상을 염려하시어 가르침을 펴시니
이 옷을 만드는 법은 내가 이미 배웠는데
나는 그가 바로 여래임을 알았네.
본래는 높은 전사(殿舍)에서 즐기시고
수시로 누각을 지었는데
이제 홀로 숲 속에 계시니
두려울 때엔 어디에 의지하시나요.
구담(瞿曇)은 세상에 원한이 없으시고
원수를 지었더라도 음욕을 이미 끊었기에
애욕을 벗어나서 생각에 근심이 없으시니
원수가 없거늘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랴.
본래는 마음대로 맛있는 것을 드시고
황금그릇에 맛난 음식을 드셨는데
이제 음식을 얻기는 하셨으나
추악하거니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자신은 이미 법의 맛을 밥으로 먹었기에
탐욕을 버리고 괴롭고 공함을 따르시는 것입니까.
네 가지 밥의 근본을 다 끊으셨기에
세상을 가엾이 여겨 걸식을 하시옵니까.
거룩하신 몸을 꽃과 향으로 씻어드리고
기녀(伎女)가 앞뒤로 풍악을 잡혀야 하는데
산중의 숲 속에서 기거하시니
누가 밝으신 님을 씻어드리리.
계법을 즐김으로써 강물을 삼으시니
맑고 지혜로움이 모두 거기에 있어
싸우기에 지치시면 가서 씻으시면서
제도하는 길 오가시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시겠네.
그때에 부처님께서 왕과 모든 석씨들과 석씨네 여인들에게 경법을 널리 설하시되
먼저 보시와 지계는 선현천(善現天)의 지름길이기에 경미한 선이라는 것과,
아픈길[痛道]에는 괴로움의 앞잡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고
다음 세상을 통달하는데는 37품을 가까이 하여야 그로부터 진여에 편안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보이셨다.
부처님께서는 도력[道意]으로써 열두단왕의 뜻이 기쁨으로 충만하고 성품이 이미 부드러워져서 속박과 어지러움을 알아 잘 건너가는 법[善度法]을 설해 드릴만한 때가 되었음을 아셨다.
그리고는 문득 고제(苦諦)와 습기를 다하는 도제(道諦)의 법을 설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사제법을 설하실 때 왕이 좌중에 계시다가 깨달음을 열어 삼독의 때를 제거하고 불법 안에서 진실한 눈을 얻었으니
비유하면 마치 깨끗한 비단을 염색물에 넣으면 곧 예쁜 빛으로 바뀌는 것처럼 왕이 법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이와 같았다.
그때에 왕은 진리를 깨쳐 의심을 끊은 뒤 불법에 대한 지혜를 얻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렇게 아뢰었다.
“이미 가까이 해야 할 것은 가까이했고, 이미 멀리해야 할 것은 멀리했습니다.
나는 지금 몸소 부처님과 법과 그리고 비구승에게 귀의하오니 저를 받아들여 청신사(淸信士)로 허락해 주소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모두 계를 범하지 않으리니 스스로를 깨끗이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또 석씨 중에는 부처님께 귀의하는 이도 있었고, 법에 귀의하는 이도 있었으며, 승가에 귀의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석씨네 여자들도 역시 그와 같이 스스로 귀의하였으며 개중에는 불살생계를 지니겠다는 이도 있었고, 불도계(不盜戒)를 지니겠다는 이도 있었으며, 불음계(不婬戒)를 지니겠다는 이도 있었고, 불기계(不欺戒)를 지키겠다는 이도 있었으며, 원주계(遠酒戒)나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지키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때에 열두단왕이 법을 봄에 매우 분명하고 진리를 봄에 의심이 없어서 법에 대하여 용기를 내어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이런 뜻을 묶어 게송으로 아뢰었다.
계행이 구족한 이를 어떻게 뵈올 수 있습니까?
오음(五陰)에서 고(苦)가 생긴다 말씀하셨으니
구담이시여, 이를 해설해 주소서.
빠른 뜻을 묻자옵니다, 세웅생(世雄生)이시여.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먼저 이미 행했던 극심한 성냄을 버리고
또한 미래의 소원도 집착하지 말며
현재의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존경도 받아들이지 말아 공(空)하게 하시오.
미래의 생각에도 집착하지 말고
오래 간다는 생각으로도 근심하지 말고
오래오래 행하면 부드럽고 연한 느낌까지도 버릴 수 있나니
삿된 소견 다하면 조금도 남는 것 없으리.
이미 지나간 두려움에 두려워 말고
움직이지 않는 믿음으로 의심을 없애시오.
미워하는 마음 없이 남에게 기쁨을 줄지니
이렇게 행하면 존귀한 생명 사랑하는 것이리.
스스로를 지켜 많기를 바라지 말지니
스스로 많이 얻으면 지혜없는 질투 뿐이라.
악하고 추하지도 말고 더럽게 다듬지도 말며
양설(兩舌)도 말아서 희론과 의심 버리고
모든 생각에서 벗어나 집착함이 없고
자기의 소견 버려 꾸밈과 거짓된 말 없애라.
조심스레 행하여 사물을 대할 줄 알면
희망하지 않아도 애욕의 생각 끊어지리.
즐기고 욕망하는 것을 배워 구하지 말라.
모두가 공한 것이라 근심할 것 없나니
원망도 사랑도 없애고 애욕까지 버려서
세상 맛에 끄달리는 처지가 되지 말라.
나와 같은 이 없다고 스스로 높은 체 말라.
까닭없이 얻은 공경, 훼방으로 맞서리니
관법(觀法)을 행하라 산(山)의 뜻 같이
선악을 보더라도 희망하지 말게.
있는 것을 떠나 멈춤이 없으라.
향하는 법 관하면 어디에 집착하랴.
욕심도 물질도 공한 것이요, 또한 없는 것이거늘
간교한 계교만 따를 뿐 벗어나려 하지 않네.
애욕이 멸한 뒤에 마침내 쉬면
삼계가 공함을 알아 즐기려는 뜻 없어지리.
모두 벗어나 여의었으니 어디서 찾으랴.
대부분 고해의 바다 건너 근심없는 데 이르게 되리.
살아서 자손 두는 것 보기를 원하지 않고
땅 끝까지 행하니 서원의 보배 더욱 느네.
와도 태어남이 아니요, 가도 이르름이 아니니
어디서 찾고 어디서 얻으려 하나.
모든 말로는 끝까지 이를 수 없기에
뭇 사문 배워서 마음으로 따르나니
그들 모두로 하여금 있는 곳에서마다
해로운 촉감은 버리듯 하려 합니다.
질투하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으며
높은 지위에 있어도 즐거워하지 않고
중간 지위 낮은 지위 모두 즐기지 않나니
옳은 법은 따르고 그른 법은 버리기 위함일세.
이들은 모두가 공하고 있지도 않으매
얻을 수도 없고 구하지도 않나니
세상의 삿된 쾌락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면
그의 뜻 이미 쉬어 문득 최후의 경지에 이르렀도다.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해 마치시니 비구들과 열두단왕과 석씨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