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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3권
7. 제불권조품[2]
[열 가지 다함없는 법]
다시 연수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무외좌(無畏座)에 오르시면 다시 마땅히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열 가지 법이 되는가?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으며, 부처님의 몸도 한량이 없고 법도 또한 한량이 없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다시 다함없는 무형의 법해(法海)가 있어서 불사를 위하여 베푸느니라.
다시 다함없이 안식(眼識)으로 거두어들일 수 없음이 있어서 시방의 유형과 무형의 식을 널리 보시느니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건져서 구제하여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일체를 널리 세워서 열 가지 착한 행을 닦느니라.
다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안으로 항상 한뜻[一意]이면서 밖으로 설법을 나타내시는데,
한 가지 정한 것으로 적멸법에 응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으로 바깥의 어지러움을 나타내지 않느니라.
다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법을 설하실 때 감로의 법우(法雨)를 내려서 유정ㆍ무정과 유식(有識)ㆍ무식(無識)에게 널리 두루하여 모두 윤택을 입게 하시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집에 살면서 색상(色相)의 특수함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 높은 곳에 처한 자의 마음을 항복시켜 스스로 낮추게 하면서 나의 성(姓)이 부귀하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게 하고,
낮은 곳에 처한 자는 여래는 본래 족성(族姓)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전생 일을 아는 지혜[宿命智]로써 전생의 일을 아시는 데 다함이 없어 계량할 수 없느니라.
제도하기 어려운 중생은 5도(道)에 태어나서 본래 이 인연을 지었으니, 이제 다시 인연을 갚는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느니라.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크나큰 서원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발해서
능히 시방의 형상이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하루에 부처를 이루어 온갖 상(相)을 갖추고 여실히 원대로 모두 부처의 도를 이루게 하시느니라.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뜻을 견고하게 세워서 본래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시느니라.
다시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로 하여금 널리 똑같이 하루에 다 멸도(滅度)를 취하게 하는데,
그의 생각[念]대로라서 어기거나 그릇되지 않느니라.
이상을 열 가지 다함없는 여래의 법요(法要)라고 말하나니,
무외좌에 올라 이 법요를 갖추어서 여래의 다함없는 법을 선포해 창달하시니,
또한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능히 전할 바가 아니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익혀 행하여서 누구나 믿음의 경지에 서서 보살의 행을 닦으면,
그 복이 많은가 많지 않은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측량할 수 없사오며 비유할 수도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無盡藏)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하니,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외는 복(福)은 앞에서 말한 선남자나 선여인의 복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2지(地)에 있으면서 뭇 행을 갖추고 게으름과 하열한 마음을 품지 않고 아울러 다시 앞서 믿음을 세운 것과 같이 공양하길, 시방의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불국토에서도 모두 이와 같이 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가히 측량할 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믿음의 경지로부터 2지(地)까지 이르고,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찼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 매우 기특하여 비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받들어 지녀서 수행함만 못함이니,
그 복은 몹시 많고 몹시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3지(地)를 성취해서 모든 법의 근본을 충분히 성취케 하고,
아울러 앞의 믿음의 경지와 2지와 시방의 항하 모래 수효의 불국토의 모든 이와 같은 무리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가히 측량할 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받들어 수행해서 믿음의 경지로부터 2지, 3지까지 이르고,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함은 비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만 못하니,
그 복은 매우 많고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4지를 성취해서 앞서의 믿음의 경지, 2지, 3지로 하여금 충만하게 하여 동등하게 하였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은 저 선남자나 선여인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하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진실한 진리를 갖추고 법을 의심하지 않아서 5지의 여래 법인(法印)을 버리지 않고,
아울러 믿음의 경지에서부터 4지까지 행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으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부처님이시여,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을 받들어 지녀서 수행함만 못함이니,
그 복은 매우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이걸 버리고 나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6지(地)에 있으면서 뭇 행을 갖추어 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이미 초월하고 필연적으로 의심치 않는 한편, 믿음의 경지에서 5지까지 행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다고 하면, 어떠한가?
족성자야,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이 저것보다 뛰어나느니라.”
부처님이 다시 연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족성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큰 서원이 굳건하여 7지에서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며 온갖 법을 갖추어서 피아(彼我)가 없고,
믿음의 경지로부터 6지에 이르기까지 뭇 덕이 갖춰지고 온갖 행이 완비되었다면,
어떤가, 족성자야.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은 저것보다 뛰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7지를 이미 지나서 앞으로 성불로 나아가면서
‘나는 이제 피차의 상념이 없는 경지에 이미 머물렀다,
나의 자각(自覺)은 필연이라서 의심치 않는다’고 하며,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에 두루 가득 차서 앞서 믿음의 경지부터 7지에 이르기까지처럼 공양한다면,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하나니,
그 복은 저것보다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미 생겨남이 없고 일어나거나 멸함도 없는 법[無生無起滅法]을 얻어서 마음이 허공 같아 더럽힐 수가 없고 오직 방편의 지혜로 나무 아래에 나아가는데,
이와 동등한 무리가 처음 믿음의 경지부터 8지에 이르기까지 뭇 행을 갖추고 성불이 머지않아서 삼천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족성자여,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부처의 짝[佛伴]에 머물러서 문득 그 이름을 부처라 하거늘,
하물며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서 믿음의 경지로부터 8지에 이르기까지이겠나이까?
그러하니 9지 보살마하살의 일념의 덕만 못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면, 오늘날의 나처럼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를 이루지만, 오히려 열 가지 무진장은 얻지 못하리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열 가지 무진장을 닦아 익히고자 하는 이, 시방의 여래가 일시(一時)에 도를 얻음을 다 아는 이, 같은 때에 열반에 드는 이, 중생의 심식에서 상념의 집착을 다 멸한 이, 앞에 있으면서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이, 중생을 거두어 부처의 마음과 똑같게 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이 열 가지 무진장을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비록 부처 이룬 것은
옛적에 권하고 도운 과보로 말미암은 것이니
바른 법은 옮길 수 없고
대도는 약간(若干)이 없네.
지나간 세상 스스로 생각하니
여러 부처님을 섬기어 공양했고
도법(道法)으로써 권하고 도와주어
형상을 버리고 형상 없음에 이르렀노라.
다시 무수한 겁에
무진장(無盡藏)은 얻지 못해
뜻을 세워서 상념을 두지 않아
무위의 언덕[無爲岸]에 차츰 이르렀노라.
여래 등정각은
세 가지 통달하고 여섯 가지 통한 지혜로
권하고 도와서 뭇 행을 갖추어
이에 무진장을 얻었네.
본원(本願)이 이제 과보를 얻으니
그래서 ‘하늘 중의 하늘’이라 이름하고
이 권하고 도운 복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무극존(無極尊)을 이루었노라.
강과 바다도 다하고
산과 강도 무너져 버리고
해와 달도 이지러지고 찰 수 있지만
법장(法藏)은 다함이 없도다.
모든 부처님의 권혜(權慧)의 도(道)는
그 힘을 헤아릴 수 없으니,
온갖 중생을 양육하면서
자비와 연민으로 법을 굴리시네.
혹은 모태(母胎)에 나타나 있음은
부모를 교화하고자 함이고
다시 전륜왕이 되어서
무수한 국토를 거느렸도다.
명쾌하다, 이 과보여
이 무진장을 얻었고
수행으로 성불을 얻었으니
변화는 다함이 없구나.
옛적 무수한 세상에 있으면서
복을 짓고 공덕을 세웠는데
권유와 도움을 제일로 삼으매
더 이상 뛰어난 자가 없었네.
금ㆍ은 등 7보(寶)는
색상(色相)이 비길 데 없나니
모두 권유와 도움을 말미암은 과보이니
다함없는 온갖 법장이로다.
허공은 있는 바가 없어서
형상과 색(色)의 모습을 지음을 말미암나니
이 법은 너무나 깊고 묘해서
진제(眞諦)는 무너뜨릴 수가 없어라.
그때 석가모니여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발했을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온갖 중생을 나와 다르지 않게 하려는 이는 이 열 가지 무진장을 반드시 익혀야 하느니라.”
이때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장차 법을 설해 법륜을 굴리고자 문득 무진장정의(無盡藏定意)에 들어가시어 시방의 항하 모래 수효의 온갖 부처님을 감동시키고, 때에 감응하여 얼굴을 나타내서 동시에 한 음성으로 각기 게송을 말씀하셨다.
현재의 법[現法]은 네 가지 뜻을 여의고
여래는 집착의 행이 없네.
하나를 닦아서 불도(佛道)를 얻고
생각[念]으로 나아가매 게으름 없네.
삼향(三向)은 평등의 공(空)으로
그 호칭을 무진장이라 하나니,
열 가지 행의 근본을 버리지 않음을
이것을 일러 여래장(如來藏)이라 하도다.
불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나니
허공처럼 받아들이는 바가 없고
나의 식은 나를 보지 못하나니
이 감응이 무진장이로다.
부처님의 행은 다함이 있지 않고
연설하신 바도 헤아릴 수 없으며
일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있는 바 없음[無所有]을 나타내 보이시도다.
여래이신 모든 부처님의 상(相)은
도를 이루면 차이가 없지만
저 중생의 뜻에 따라서
상(相)에 높고 낮음 있음을 아네.
나는 이제 동등함이 없어
중생의 고통을 근심하고 싫어하나니
도로써 뜻을 스스로 거두어 잡아
온갖 외도를 항복시키네.
일체 모든 법의 근본은
연(緣) 없으면 또한 합하지 않고
도는 평등각(平等覺)으로부터
곧 여래의 지혜에 이르네.
모든 부처님은 불가사의하고
법의 근본도 불가사의하고
연(緣)의 과보도 불가사의하고
분별도 불가사의하네.
내가 머물면서 천겁을 지냈는데
부처와 부처가 스스로 칭찬하나니
능히 법장(法藏)을 다해서
털끝만큼의 손감(損減)도 있지 않았네.
우리들이 벌써 성불하여
공(空)의 법신(法身)을 갖춘 것은
옛적에 무진장을 닦아서
스스로 사람 중에 높은 이[人中尊]가 되었네.
욕계는 번뇌가 많지만
욕심을 끊음도 딴 곳에서가 아니니,
욕심에서 욕심을 능히 여읨은
모두 무진장을 말미암음이로다.
비록 머물면서도 머묾에 처하지 않고
형상과 색의 모습 또한 없으니,
온갖 집착을 분별하여 설하지만
부처님의 식[佛識]에는 형상 없도다.
여래는 색상(色相)이 없건만
중생 위해 상(相)을 나타내고
집착도 없고 오염도 없어서
여래의 몸도 또한 공(空)하도다.
바로 지금 등정각(等正覺)이
시방의 세계에 두루 찼으니
본식(本識)은 불가사의해서
무진장을 연설하시네.
이때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자, 여덟 방위[八方]및 위와 아래에서 여섯 번이나 진동이 반복되었다.
그때 자리에 있던 6백 명의 비구들은 본래 아라한에 나아갔었으나, 잠깐 사이에 뜻을 돌려 무진장에 이르렀고, 13억의 중생들도 다함없는 법장을 또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