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요의론 제6권
[모든 여래들의 있는 그대로 진실한 여래의 열반]
여기에서 어떤 것이 모든 여래들의 있는 그대로 진실한 여래의 열반일까?
헤아릴 수없이 많은 경전 안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여래흥현경(如來興顯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만약 모든 보살로서 모든 불여래의 대열반을 기꺼이 온통 알고자 하는 사람은 지혜로써 관찰하되, 먼저 마땅히 법(法)의 본래의 성질[自性性]을 모두 알아야 한다.
법의 자성(自性)이란, 말하자면 곧 진여실제(眞如實際)이며 법계(法界)이며 허공계(虛空界)이며 자성청정제(自性淸淨際)이며 무상제(無相際)이며 아자성제(我自性際)이며 일체 법의 자성(自性)은 여여열반(如如涅槃)이니,
마땅히 모든 여래의 있는 그대로 진실한 열반은 이와 같음을 모두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자(佛子)여, 모든 법은 본래부터 이와 같이 생겨남도 없고 생겨난 바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이 본래 이와 같이 생겨남도 없고 생겨난 바도 없다면, 이러한 까닭에 아무리 사소한 법이라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러나 불여래께서 태어나는 바가 있는 것은 오직 서로 이어가면서 태어나는 일을 유정들이 기뻐하고 즐기기 때문이며,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태어나는 일을 유정들이 싫증내고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여래께서는 본래부터 태어난 바도 없으시고 역시 열반도 없으시나, 이 모든 여래들께서는 항상 법계에 머무르신다.
불자여, 비유하자면 태양의 광명이 나타나서 모든 세계를 두루 널리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청정한 물이 담겨 있는 그릇마다 태양의 빛나는 그림자가 비추더라도 역시 태양은 모든 곳에 두루 있는 것은 아니고 그릇 안에 따라 들어가서 이에 나타나는 바가 있을 뿐이다.
만약 다시 저 청정한 물이 담긴 그릇이 혹시 부서져 깨어지거나 혹은 흐리고 탁하거나 혹은 물이 줄어들어 적을 때는 저 태양의 광명도 한결같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태양의 빛나는 그림자가 비록 그릇 안에 나타나 보이지 않더라도 태양의 잘못은 아니고, 저 청정한 물이 담긴 그릇 자체가 부서져 깨어졌기 때문이다.
불자여,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아서 법계의 넓고 커다란 태양 빛은 법계 안으로부터 항상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세계를 순순히 따라 널리 두루 밝게 비친다.
만약 유정들의 청정한 마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면 여래께서는 바로 모습을 나타내신다.
일체 유정들이 비록 여래라는 태양의 모습을 항상 바라보더라도 역시 여래께서는 일체의 곳에 두루하실 뿐이지 누구를 위하여 나타나시지는 않는다.
만약 다시 유정들이 저 깨어진 그릇과 같아서 청정하지 않은 마음이 서로 이어지고 업과 번뇌에 덮여 있는 까닭에 여래의 햇빛 모습을 보지 못하면, 저 모든 유정들은 바로 여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여래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유정들이 서로 이어온 선근에 부서지고 깨어짐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마땅히 대열반의 법으로써 가히 교화하여 제도할 바의 유정들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께서는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이시나, 참으로 여래께서는 오심도 없고 가심도 없고 역시 머무르시는 바도 없다.
불자여, 비유하자면 일체 세계에 모두 불을 놓는 것과 같다.
혹시 다시 그 후에 다른 마을이나 국토나 성읍의 불길이 멈추어 없어지더라도 다시 널리 일체 세계를 다하는 불길은 한결같이 멈추지 않는다.
불자여,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아서 널리 일체 세계를 모두 순순히 따라 베풀어 일체의 불사(佛事)를 지으신다.
만약 다른 부처님의 세계 안에서 일찍이 불사를 지으시어 열반에 드셨다고 해서 일체 세계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열반에 드시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교묘한 마술사가 마술법을 잘 배워서 주문의 능력을 온통 밝혀 한결같이 꿰뚫어 알고는 삼천대천세계 안에 널리 온갖 마술을 부려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되,
일체의 마을과 국토와 성읍에 한결같이 두루 나타내기를 그 마술의 능력대로 한다.
그러다가 만약 한 겁을 머무르거나 한 겁을 지나 혹은 다른 마을이나 혹은 다른 성읍 안에서 일찍이 마술을 부려 자신의 모습을 사라지게 하더라도 역시 일체 세계의 마술이 한결같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불자여,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다.
마술과 같은 한량없는 지(智)로써 방편을 잘 배워 훌륭한 지혜를 밝혀서 일체 법계에 마술을 드러내 보이시고 여래께서도 함께 드러내 보이시지만, 여래의 몸은 끝내 평안히 머무르신다.
법계 및 허공계의 유정들도 평등하게 업을 받들어 각각의 부처님 나라마다 일찍이 순순히 따라 지어서 열반을 드러내 보이되,
역시 한 부처님의 나라에서만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닌 까닭에 일체 법계의 여래들께서도 한결같이 열반에 드신다.
불자여, 모든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니,
모든 불여래의 대열반(大涅槃) 때문에 아는 바가 한량없고 끝내 집착함이 없으며
법계는 끝이 없고 역시 또한 중간도 없어서 마치 허공계의 자성(自性)이 넓고 큰 것과 같다.
진여(眞如)는 생겨남이 없기에 역시 스러짐도 없어서 실제(實際)에 평안히 머무르나 방편으로써 때를 따라 나타내 보일 뿐이다.
이러한 까닭에 반드시 알아야 하니, 일체 세상에 대해 고달파하여 싫증내지 말고 일찍이 세운 원(願)을 따라 스스로 평안히 머무르면, 일체 세계의 일체 부처님 나라에 있는 모든 훌륭한 법의 행(行)을 모두 이룬다.’”
[대열반, 자성은 공하다]
『반야바라밀다경(般若波羅蜜多經)』에서 말하였다.
“대열반(大涅槃)이란, 말하자면 자성(自性)은 공(空)하다는 것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만약 능히 저 일체 법의 평등한 성품을 온통 깨닫는다면 이것이 대열반이다.’”
그 경전에 또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께서는 해야 할 모든 일을 이미 모두 마치시어 부처를 이루시고, 더없이 심히 오래 전에 오시고 수명은 한량없으시다.
여래께서는 항상 머무르시고 열반에 드시지 않으나, 유정들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열반을 나타내 보이신다. 왜냐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연(緣)으로써 유정들을 성숙시키시기 때문이다.’”
『대비경(大悲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범(大梵)이여,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업이 다하고 번뇌가 다하고 고통이 다하고 고통의 연(緣)이 그치고 적멸의 상태로 벗어나면 이것을 말하여 열반이라고 한다.
대범이여, 여기에 다시 이 열반을 온전히 아는 사람이란 없다.
말씀하시기를, 업의 번뇌가 다하여 자성(自性)이 청정하다고 한다.’”
『출세품(出世品)』에서는 말한다.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방편으로 끝없는 열반의 법을 열어 보이신다.”
『범왕문경(梵王問經)』에서 말하였다.
“범왕(梵王)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출가자들이 따라 즐기는 일체 모양 가운데에서 만약 능히 그치어 쉰다면 이것을 말하여 열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범이여, 이들은 서로 연(緣)이 되어 성립하기 때문이다.’”
『각지방광경(覺智方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목건련(大目乾連)이여, 과거에 고현(高顯)이라는 부처님께서 계셨다.
저 부처님 나라 안에는 오직 성문들의 무리만이 있었는데, 이 때 유명한 한 비구가 모든 대상을 평등하게 관하여 대승의 행(行)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일찍이 한량없는 구지(俱胝) 나유다(那庾多)의 세월에 걸쳐 부처님 자리에 대해 선근을 씨뿌려 일찍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에 대해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었으며, 위없는 대승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면서 가히 말로 다할 수 없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부처님의 나라들을 꾸미어 장엄하고 청정히 하고자 하였다.
그 부처님 나라에는 따로 보리심(菩提心)을 낸 유정들이 없었다.
이 때 저 비구는 비록 선근을 널리 심었지만 깊고 깊은 법 안에서 가벼이 여기고 으스대는 마음을 내어 이러한 연(緣)으로 마땅히 장수천(長壽天)에 태어났다.
이 때 고현이라는 여래께서는 그 응하는 대로 일찍이 불사(佛事)를 마치시고 바로 모든 부처님 나라를 널리 둘러보셨으나, 어느 부처님 나라 안에서도 유정들은 불사를 짓지 않았다.
다시 몸소 자신의 나라 안을 살펴보았다.
한 비구가 대승의 행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구에게는 장애와 고난의 일이 있었으며 이로써 장수천에 태어난 까닭에 그 육신의 그릇은 능히 보리의 선근을 심어서 가꿀 수 있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 아비대지옥 안에 떨어짐을 당하니 역시 능히 보리의 선근을 심어서 가꿀 수 있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옥을 벗어나 인간 안에 태어나서도 다시 말 못하고 귀먹어서 하고자 하는 바의 모든 것은 손을 들어 물건을 가리켰으며,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 일을 바야흐로 깨달았다.
이 때 고현(高顯)이라는 여래께서는 그 비구를 교화하여 제도하고자 하셨던 까닭에, 훌륭한 방편으로써 60구지 나유다의 수많은 생애 동안 힘껏 수고하고 고통을 참으면서 여러 가지 교화의 일을 펼쳐 성숙하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목건련이여, 너는 또한 저 여래께서 대비심으로 인하여 유정 가운데 하나를 위해 이와 같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힘든 고통을 받아가면서 저 비구의 기연(機緣)을 성숙하게 하여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는 경지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하신 것을 살펴보았다.
대목건련이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그때 고현이라는 여래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바로 현일체의여래(現一切義如來)이시며, 모든 대상을 평등하게 관한 저 비구는 바로 무량광여래(無量光如來)이시다.’”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의 「선행품(先行品)」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妙吉祥)이여, 저 과거세계에서 윤회하는 동안의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비할 바 없고 견줄 바 없고 시작도 없는 부사의(不思議)한 그때 어떤 여래께서 계셨는데, 이름이 제당(帝幢)이었으며 긍가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들의 나라를 거치셨다.
이 모든 부처님들의 나라에 있는 유정들은 한결같이 다섯 가지 즐거움을 얻으니,
어떤 것은 더러 그 욕망의 즐거움을 얻고,
어떤 것은 더러 벗어나는 즐거움을 얻고,
어떤 것은 더러 선정(禪定)의 즐거움을 얻고,
어떤 것은 더러 삼마지(三摩地)의 즐거움을 얻고,
어떤 것은 더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즐거움을 얻었다.
그러나 저 모든 유정들은 비록 모든 쾌락을 누리더라도 얽히거나 집착함이 없었다.
비유하자면, 날아다니는 새가 공중으로 올라 자재함을 얻는 것과 같았다.
저 모든 유정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역시 그러해서 한결같이 집착하는 바가 없었다.’
묘길상이 부처님께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때의 제당여래란 곧 우리의 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적정(寂靜)도 관(觀)하지 않고
또한 수행하는 모습도 일으키지 않고
게다가 분별하는 마음도 없으니
그러기에 나는 열반을 증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