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도계 테마시
막장 공차
-도계갱 입갱기
도계갱 입구에서 인차를 타고
수평갱도-1사갱도-2사갱도-수평갱도
5천 미터 19편 막장에 도착했을 때
문득 고래 뱃속의 청어를 상상했다
산소호흡기 호스 같은 공기 파이프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날아오는 탄가루를 털어내고
나의 캡램프 빛은 자주 길을 잃었다
캐빙막장은 입관을 마친 시신처럼
제 할 일을 다했다며 영면에 들고
채준막장에선 선산부가 천공 후
폭약을 설치하고 장비점검 중이다
쉰 한 살 선산부 김씨는
내년에 폐광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앞날이 막장보다 더 깜깜하단다
갱도의 천정과 벽을 막고 있는
철제빔과 빔 사이의 절장목이
진폐환자의 폐 엑스레이 사진처럼
패이고 잘리고 곳곳에 상처다
굴진막장의 경석 실은 실차 몇 량이
철컹 철커덩 서로의 몸을 밀어주고
전차공은 뽕끼로 선로를 변경했다
입갱 2시간쯤 되니 속옷이 젖었다
공진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싶을 만큼
살아 숨 쉰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상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지만
갱에선 반드시 입갱 길로 퇴갱한다
수평갱도-2사갱도-1사갱도-수평갱도
맵고 찬 바람이 와락 달려오고
땀에 젖은 몸이 오돌오돌 떨고 있다
갱 밖으로 나왔을 때 공차 몇 량 매단
전차가 입갱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처 부위에 피가 고여있는 것처럼
곳곳에 붉은 녹물을 품고 있는 공차
갱구와 공차를 바라보는
광부들의 눈동자에도 녹물이 고였다
어머니가 달마로 깨어나는 아침
어머니 방의 벽에 걸린 달마상이
어머니의 초상화처럼 보인다
날마다 홀로 꾸벅꾸벅 좌선에 들고
이제 겨우 말문이 트인 증손자와
게송을 주고받기도 한다
어머니, 달마가 왜 동쪽으로 갔나요?
넌 박사라면서 그것도 모르냐?
아침 해가 동쪽에서 뜨잖아
달마가 눈꺼풀 자른 이야기하며
넌 졸리더라도 그러지 마라
졸리면 잠깐 눈 붙이도록 해라
고속도로에 졸음쉼터가 왜 있겠니
달마가 죽을 줄 알면서도
담담하게 독을 마신 이야기하며
너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참 수행이란다
벽에 걸려있는 달마와
방바닥에 누워 잠든 어머니 사이
천년의 세월이 꿈인 듯 지나가고
아들아,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어머니가 달마로 깨어나는 아침
떡이 신문을 찢다
오늘 아침 나의 식탁에는
야채주스 한 잔과 떡 두 조각
반찬처럼 놓인 조간신문,
주스 마시고 떡을 입에 넣고
신문기사를 꾸역꾸역 씹는데
아코, 입안의 떡이 튀어나와
식탁 위 신문에 떨어진다
젓가락으로 떡을 잡아당기니
싸르르 신문이 찢어졌다
국민이 격노,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활동 재개
허걱, 그 많은 신문기사 중
하필이면 '김건희 여사'가
찢어진 것이다 칼로 자른 듯
서각, 眞空妙有
(書刻, 진공묘유)
죽은 나무의 심장에
환생을 꿈꾸는 부적 한 장 붙인다
眞空妙有
왼손은 칼을 잡고
오른손은 망치를 들고
부적의 붉은 피가
나무의 핏줄을 타고 흐르도록
생식세포와 체세포가 증가하도록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선생님은 손목의 힘을 빼라고 한다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하다고
선생님은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고
다이아몬드 숫돌에 칼날을 세워
나무의 군살을 찍어내면
내 안의 어둠도 그만큼씩 부서지고
마침내, 眞空妙有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텅 빈 충만이 내 눈을 가린다
내 귀를 막는다
내 영혼을 마비시킨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여백마다
사라진 나무의 숨결이
파도처럼 쉼 없이 적멸을 노래하고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은
내 이름이 주홍글씨로 피어난다
카페 게시글
47집(2024)
두타문학 시 작품
워킹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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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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